말을 잘 한다는 것, 논리정연한 언변이 곧 타인의 공감을 끌어내는 가장 좋은 수단이 아님을 새삼 알았다.
진보신당 홍세화 대표의 어제 강연은 어눌했으나 그의 말에는 진정성이 넘쳤다.
어제(3.20) '선택'이란 주제로 한겨레21 인터뷰 특강이 있었다. 지난 주 화요일(13일 김진숙)과 수요일(14일 정연주)에 이어 세번째 인터뷰 특강에 나온 분이 홍세화 진보신당 대표. 김진숙 씨의 강연에는 힘이 느껴졌고, 정연주 씨 강연에는 글세....
홍세화 씨는 진보신당 대표직을 맡으며 '오르고 싶지 않았던 무대'였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 선택은 어쩌면 그에게 놓여진(처지) 것이었고, 지금은 스스로 자신의 몸자리(삶)를 찾아가는 과정인 모양이다. 그의 삶은 끊임 없는 패배의 연속이었으나 그 속에서 그는 늘 주체와 객체 사이의 긴장을 유지하려 애썼다고 했다. 마치 시지프스가 돌이 굴러 떨어질 것을 알면서도 끊임없이 그것을 밀어올리 듯.
'현실'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물음에서 그는,
1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하는 것
2 바꾸어야 할 것
두 종류가 있다고 했다. 그리고 지금 한국사회는 <현실1>을 지나치게 강요하고 있다는 것. 이런 '강요 받는 선택'이 결국 국가, 혹은 권력에 대한 개개인의 '자발적 복종'으로 귀결된다는 것. 결국 우리는 우리가 노예인지 조차 모르면서 노예로 살아가는 셈.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책을 나는 읽어보지 않았다. 물론 앞으로도 이딴 책은 읽을 생각이 없다. 청춘이니까 당연히 아파야 한다는 해괴한 논리가 그 책 안에 들어 있을 것 같아서다. 책도 읽어보지 않고 이러쿵 저러쿵 말하긴 뭣하지만 제목만 놓고 말하자면 그렇다.
청춘이어서 아픈 게 아니라 '비정규직이라서' '이 땅 99% 노동자 중 한 사람이라서' 죽을만큼 아프다는 사실을 이 책이 감추려 하는 것 같아서다. 어쩌면 <아프니까 청춘이다>는 이 땅의 청춘들에게 자발적 복종을 강요하고 있는 '악서 중의 악서'가 아닐까?
이 '자발적 복종' 상태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결국 주체와 객체(상황) 사이의 긴장상태를 끊임없이 유지해야 한다. 주체와 객체 사이의 끊임없는 긴장이 비록 무수한 실패와 좌절로 점철 될지라도 '자발적 복종' 상태로 끌려가는 것보다는 의미있는 삶일 터.
* 제 블로그에 썼던 글인데, 여기에도 옮겨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