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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태일 열사 50주기를 맞이하여 노동당 교육기획단에서 기획한 [전태일의 서울산책] 잘 다녀왔습니다. 열사를 글과 사진으로만 이해할 것이 아니라 현장에서 오감으로 체험해 보고자 기획한 프로그램이지만, 동행하지 못하신 분들을 위해 여기 다시 글과 사진으로나마 기록을 남겨 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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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오후 2시, 열사가 숨을 거두셨던 옛 성모병원, 현재의 가톨릭회관 앞에 모인 우리는 서로를 간단히 소개하고 우선 열사의 약전을 함께 읽었습니다. 그런 다음 서울지방노동청을 지나 전태일기념관에 들러 해설사의 안내에 따라 열사의 삶 전반을 살펴봤습니다. 해설사의 설명을 잘 들었는지 확인하기 위해 강북당협의 윤정현 위원장께서 난이도 제로에 가까운 퀴즈를 내기도 하셨는데요, 성북당협의 남미희 동지가 손도 들지 않고 모든 퀴즈의 정답을 연이어 맞혀서 칭찬 아니 핀잔을 듣기도 했답니다. 

그리고 문재인 이름이 박힌 무궁화훈장도 볼 수 있었는데요, 현실의 투쟁은 탄압하면서 그 불꽃을 당긴 열사의 투쟁은 박제화하려는 이 정권의 기만적인 몸부림을 전태일기념관 안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더 많은 사람들이 열사를 기억할 수 있도록 기념관을 만드는 일은 분명 필요하고 중요합니다만, 열사를 과거로 박제화해서는 안 된다는 점, 현실의 실천으로 이어가야 한다는 점, 우리 당원들은 모두 동의하리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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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념관을 나와서는 청계천을 따라 열사가 산화하셨던 평화시장의 전태일다리로 이동했습니다. 지금의 청계천은 산책하기 좋은 곳이 되었습니다만, 해방 직후만 해도 전국에서 몰려 든 도시빈민들의 판잣집이 가득했던 곳입니다. 열사의 가족도 한때 이곳에서 거주했었죠. 그랬던 곳을 50년대 말 도시미화를 한다며 거주하던 사람들을 주변으로 쫓아내고 복개공사를 했다가, 이명박이 서울시장으로 있던 시절 50년 만에 개천을 드러내고 공원화했답니다. 그 청계천을 따라 20분 정도 걸으면 복개공사 후 지금까지 자리를 지키고 있는 평화시장을 만나게 됩니다.

50년 전 이곳에서 2~3만 명의 봉제노동자들이 창문도 없는 먼지 가득한 다락방 같은 공장에서 하루 14~15시간 노동을 했답니다. 견습공 ‘시다’들은 대부분이 미성년 여성노동자들이었습니다. 식비는커녕 출퇴근 차비도 되지 않는 일당을 받고 일하던 그들은 굶주린 배를 물로 채우기 일쑤였습니다. 참고로 당시 시다들의 일당은 커피 한 잔 값이었습니다. 그렇게 일하다 폐병에라도 걸려도, 아무런 보상 없이 쫓겨나야 했습니다. 전태일 열사는 이런 현실을 바꾸고자 자신의 몸에 불을 붙이셨던 것이고요. 

평화시장 아래 열사 분신 지점에 서서, 5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비인간적인 노동 조건에서 많은 이주노동자들이 일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할 즈음, 열사 동상 앞에 이주노동자들이 모여 있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대구성서공단노동조합의 이주노동자 동지들이 열사를 추모하러 오셨고, 이주노동자노동조합의 우다야 라이 위원장께서 안내하고 계시더군요. 반갑게 인사하고 노동자인 “우리는 하나”라는 우다야 라이 위원장의 인사 말씀을 듣고 함께 묵념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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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에는 지금도 여러 곳에 봉제공장이 남아 있고, 또한 많은 이주노동자들이 살고 있는 창신동에 있는 옛 평화의 집(전태일기념사업회) 터로 이동했습니다. 인천에 살고 계시는 정혜윰 동지는 10년 전 이곳 노동자들로부터 봉제를 배웠던 적이 있답니다. 창신동에 정말 오랜 만에 왔다고 하시길래 그 때와 지금 많이 달라졌냐고 여쭤보니, 전혀 달라진 것이 없다고 하시네요. 예, 어떤 이들에게는 옛 정취가 남아 있어 오히려 ‘힙한’ 공간이 된 창신동 같은 곳에 아직도 9만 여 봉제노동자들이 노동권도 보장받지 못한 채 일하고 있습니다. 제 아무리 미화하려고 해도, 우리 노동자의 삶은 정말 달라진 것이 없답니다.

평화의 집터에서는 노원당협의 강남욱 동지께서 산재로 돌아가신 아버지의 이야기를 들려 주셨습니다. 강남욱 동지 아버지께서는 누적된 과로로 댁에서 숨을 거두셨고, 모두가 산재로 인정하지 않으려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행정소송을 비롯한 강남욱 동지의 노력으로 마침내 내인성 질환에 의한 첫 산재 인정을 받았다고 합니다. 얼마 후면 고 김용균 노동자 2주기입니다. 요즘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움직임이 있습니다만, 더 이상 일하다 죽는 사람이 없도록 노동당도 열심히 싸워야겠습니다.

이후에는 창신동의 좁은 골목과 거의 절벽에 가까운 계단길을 걸어 낙산공원에 올랐습니다. 해가 질 무렵 도착한 이곳에서는 한때 열사 가족이 살았던 판자촌이 있던 남산도 볼 수 있고, 그 판자촌에 화재가 난 후 강제로 이주해 가서 다시 판잣집을 짓고 살았던 쌍문동 뒤 도봉산도 볼 수 있습니다. 마음 같아서는 열사가 걸었던 그 길 그대로를 따라 쌍문동까지 걸어도 보고 싶습니다만, 더 많은 분들과 함께 더 충실한 역사 산책을 위해 올해는 그저 눈에 담아 둔 것으로 만족하기로 합니다.

대신에 낙산성곽 오른편 장수마을을 내려다보며 성북당협 신희철 위원장을 통해 고 배정학 동지가 이 지역에서 어떤 운동을 해 오셨는지 자세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배정학 동지는 장애인운동, 마을운동, 그리고 정당운동 등 여러 분야에서 너무나 많은 활동들을 하셨습니다. 말 그대로 분신을 하지 않았을 뿐, 전태일 열사처럼 자신의 몸을 태워 왔고, 결국 3년 전 전태일 열사가 분신하신 날과 같은 날에 돌아가셨습니다. 배정학 동지를 잃은 후 장수마을은 예전의 활기를 아직도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 빈자리를 채우는 몫, 살아 있는 우리들이 나눠 짊어져야 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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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시간이나마 배정학 동지를 만난 후에는 낙산을 둘러싼 한성도성을 가로질러 혜화동으로 내려갔습니다. 내려가는 길에는 일제시대 사회주의 혁명가 이재유 선생이 잠시 머물렀던 경성제국대학 미야케 시카노스케 교수의 관사 터에 들렀습니다. 이재유 선생은 조선공산당 당원으로서 당이 해체된 이후에도 이현상, 김삼룡과 함께 경성트로이카를 조직하여 적색노조운동을 하다 수차례의 투옥과 탈옥을 반복하셨습니다. 1934년에도 서대문형무소에 갇혀 있다 탈옥한 후 일본인 미야케 교수의 관사로 숨어듭니다. 미야케는 독일에서 유학하면서 독일 공산당에 입당했고 조선에서 마르크스 경제학을 가르쳤던 교수로 관사 마루 아래 토굴을 파서 이재유 선생을 숨겨 줍니다.

이곳에서 38일 동안 은닉하며 일제 경찰을 피했던 이재유 선생은 훗날 전태일 열사가 사셨던 쌍문동 근처 창동에서 농민운동을 하며 ‘적기’를 출간하며 활동하시다 1936년 12월 25일 다시 체포되셨고, 끝내 해방을 보지 못한 채 1944년 10월 26일 옥사하셨습니다. 이재유 선생을 비롯한 한반도 사회주의자들에 의해 엄혹한 일제시대에도 사회주의 운동은 유지되었고 해방 직후 조선공산당은 재건됩니다. 하지만 분단과 한국전쟁, 그리고 지리산 빨치산의 소멸 이후 남한에서 독자적인 사회주의 운동의 맥은 사실상 끊어집니다. 

그럼, 끊어졌던 남한 사회주의 운동의 불꽃은 어떻게 되살아날 수 있었을까요? 여러 계기가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 사건은 1970년 11월 13일 전태일 열사의 분신이었습니다. 열사의 분신 이후, 그 동안 민주화 투쟁에만 집중하던 대학생들이 노동에 시선을 돌리게 되었고, 사회주의 서적들을 찾아 읽고 공장으로 위장취업하여 노동운동에 투신하기 시작합니다. 이른바 노학연대와 학출이 시작된 거죠. 열사가 숨을 거두셨던 옛 성모병원에서 시작한 [전태일의 서울산책]의 마지막 장소는, 그래서 열사 분신에 처음으로 대학생들이 응답하며 움직이기 시작한 옛 서울대학교 캠퍼스인 마로니에 공원입니다.

참가자들은 사위가 이미 어둑어둑해진 오후 6시 마로니에 공원 안쪽 지금의 예술가의 집, 옛 서울대학교 대학본부 앞에 도착했습니다. 낙산공원에서 미리 하산한 적야 동지와 윤정현 동지께서 참가자들이 함께 열사의 초상화를 그릴 수 있도록 준비를 해 둔 상태였습니다. 가로등 아래 둥그렇게 둘러 선 우리는 열사의 일기 ‘나는 돌아가야 한다’를 함께 낭독했습니다. 그리고 각자의 결의를 밝히면서 가운데 펼쳐진 하얀 천 위에 붉은 모래 한 줌 씩을 흩뿌렸습니다. 모두가 붉은 모래를 뿌린 후 하얀 천을 들어 올렸을 때 붉은 모래들 사이에서 열사의 얼굴이 불꽃처럼 떠올랐습니다. 이렇게 전태일 열사 50주기 노동당 특별기획 [전태일의 서울산책]을 마무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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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색이 노동당이건만, 매년 노동자대회에 연대단위로 참여하는 것 외에 우리 당 독자적으로 전태일 열사를 기린 적이 없습니다. 명색이 노동당이건만, 당원 기본교육에 노동평등 분야가 없습니다. 명색이 노동당이건만, 제대로 된 독자적인 노동정치사업조차 없었습니다. 그러나 올해엔 노대 당일인 14일, 좌파단위 독자적으로 결의대회를 별도로 진행하기도 했고, 15일에는 [전태일의 서울산책]이라는 특별한 교육행사를 열기도 했습니다. 내일(18일) 예정된 교육기획단 7차 회의에서는 노동평등을 비롯한 노동당 교육 전반에 대한 권고안 초안을 준비합니다.

이번 산책을 준비하기 위해서 지난 10월에는 서울시당의 강북·노원·성북당협과 함께 사전답사를 했습니다. 교육기획단의 김일규, 적야, 진은희 동지는 10월 답사 당일 저녁에 다시 모여 답사를 평가하고, 내용을 보강했습니다. 그 결과 걷기는 쉬워지고(?!) 프로그램은 충실해졌답니다. 덕분에 대부분 열사를 글로 이해하고 있던 우리들은 열사가 살았던 공간을 직접 둘러보며 열사의 자취를 오감으로 느껴 볼 수 있었습니다.

[전태일의 서울산책]은 50년 전 열사의 자취와 동시에 지난 100년 이 땅의 사회주의 역사와 얼마 전까지 지역운동에 매진하다 쓰러져 간 당원 동지의 자취까지 따라 걸으며, 오늘 우리의 과제를 진지하게 묻고 실천을 결의하는 시간이었습니다. 모쪼록 이번 산책이 우리가 발 딛고 서 있는 땅 구석구석을 직접 걸으며 현장의 노동자와 지역의 주민을 만나 현실에 깊이 파고드는 내밀한 정치를 시작하는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함께 동행해 주신 당원 동지들과 시민들에게 감사드립니다. 내년에는 더 많은 분들과 함께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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