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어려움은 어디에서 오는가?
- 강원도당 이건수
1. 우리는 지금 어디에 서 있는가?
○ 변혁의지의 증발
80년대의 혁명적 열정 이후 한국사회의 구조적 모순은 오히려 더 심화되었으나 사회변혁 의지는 심각할 정도로 탈색되었다. 변혁의지가 증발된 현재의 상황에서 자본주의 사회의 모순을 해결하고, 상품사회 이후를 전망하는 ‘정당으로서의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 한때 우리는 ‘어떤 길을 따라 갈 것인가’의 문제를 넘어서서 ‘그 길을 어떻게 나아가야 할 것인가?’를 고민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시대의 상황은 이제 우리에게 다시 ‘어떤 길을 따라 갈 것인가’를 고민하도록 만들고 있다.
케인즈적 개량마저 거부한 신자유주의가 금융위기라는 파국을 통해 시대적 소명을 다하였음을 극적으로 보여주었지만, 새로운 대안이 등장하지 않음으로써 장기간의 불안정한 국면이 지속되고 있다. 지평은 넓어졌으나 무기력한 대중운동, 대중과 괴리되고 선명하지 못한 변혁정당, 의회주의에 매몰된 개량정당, 부르주아헤게모니에 포섭되고 관료적인 시민사회 등 교착상태라고 할 만한 이러한 상황은 사회운동 전반에서도 확인되고 있다. 주체적 측면의 이러한 지리멸렬은 부르주아민주주의가 완성된 선진자본주의 사회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특성(‘강제력, 동의, 떡고물’에 의한 부르주아 헤게모니 관철)이기도 하다.
○ 90년대 초의 방향전환(재야의 분화 혹은 신사회운동) : 총체적 실패
- 87년 직선제 개헌 이후 일정 정도 진척된 부르주아민주주의가 개량의 시대를 열었다면, 뒤이어 발생한 90년대 초 사회주의 소련의 붕괴는 일거에 혁명적 열정을 잠재웠다. 변혁운동의 기저인 변혁운동의 전망도 역시 붕괴시켰기 때문이다. ‘변혁의지의 증발’이라 할 만한 새로운 상황에서 사회운동은 재야의 분화 혹은 신사회운동이라고 불릴만한 흐름(진보정당론, 시민사회단체의 등장 등)을 통해서 활로를 모색하였다. 25년 정도 경과된 지금 시점에서 이러한 신사회운동은 총체적 실패라는 것이 확인되고 있다. 즉,
학생운동의 소멸 : 90년대의 극한 투쟁 이후 대학은 신자유주의 경쟁의 도구로 전락.
합법정당의 개량화 : 정치와 경제의 기계적 분업, 의회주의와 선거에 매몰,
시민사회의 한계 : 몰계급적 한계, 지배이데올로기 동의의 근거지
협동조합의 왜곡: 계급협조주의, 노동감수성 실종, 신자유주의의 하위 파트너 역할.
노동운동의 교착 : 대기업 정규직 중심, 비정규직 해결에 무관심. 민주노총의 2대 과제(산별건설과 노동정치) 실패
○ 사회운동정당
진보정당운동의 흐름을 이어받은 우리는 무기로서의 당을 명맥으로나마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대중과 괴리되고 선명성이 부족하다. 선명성의 부족에 대해서는 다음에서 살펴보고 우선 대중운동에 대해서 논의해 보자.
- 강력한 사회운동만이 혁명적 조건을 창출한다. 또한 사회운동에 대한 확고한 장악력만이 지도력을 보장한다. 따라서 일단 현재의 침체된 사회운동을 건설하고 확고한 지도력을 확보하는 한편, 이 사회를 근본적으로 변혁하겠다는 투지를 불러일으키는 역할을 수행하여야 한다. 그리고, 이 모든 시작은 강력한 사회운동의 건설로부터 시작된다. 우리가 최근의 강령 개정을 통해서 사회운동정당을 표방한 것은 이러한 측면에서 의의를 발견할 수 있다.
- 합법정당운동을 개량주의와 기회주의 운동으로 전락시킨 의회주의와 기계적 분업론에 매몰되지 않는 수단이 사회운동정당이다. 의회주의(의회,선거,지방행정체계)에 묶이지 않기 위해서는 사회운동에 기반한 정당이 되어야 한다. 또한 선거는 정당에 맡기고 경제투쟁은 노조에 맡기는, 정치와 경제의 기계론적 분업에 매몰되지 않기 위해서는 사회운동과의 강력한 유대가 필수적이다.
민주노조운동은 대중운동으로서의 생명력을 잃어가는 반면에 역설적으로 조합원 수는 계속 늘어나고 있다. 기간제, 알바, 건설일용, 마트 등 한계지점에 몰린 노동자들의 절박함이 조직화로 이어진 결과이다. 운동의 지도력과 무관하게 자본의 탐욕이 빚어낸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원성이 동력이 되고 있는 것이다. 80년대와 비교해서 지평이 한층 더 깊고 넓어진 사회운동에 그 당시 운동의 생기와 헌신과 결의를 불어 넣어야 할 시점이다. 우리 운동의 강점이 사회운동의 잠재력과 대중의 각성 가능성에 있다면, 약점은 변혁세력의 결기와 창의성 부족에 있다.
- 정당의 조직형태는 이념, 경쟁, 자원에 의해서 결정된다. 노동자정당은 산별로 구성되며, 보수정당은 지역의 명망가를 중심으로 구성된다. 탄압을 받는 혁명정당은 점조직의 형태를 갖추지만, 현대의 대중정당은 경쟁이 심화됨에 따라 포괄정당의 모습으로 서로 닮아있다. 또한 자원이 풍부한 당은 방대하고 그렇지 않은 당은 간결하다. 현재, 남한 진보정당의 조직형태는 경쟁하는 보수정당과 닮아있다. 국회의원 선거구 단위의 지구당이 기초조직이고, 이것이 모여 시도당과 중앙당으로 골간체계가 상향한다. 영국의 근대적 정당의 최초의 모습이 지역의 명망가가 중심이 된 보수정당인데, 남한의 정당이 영국과 닮아있는 것은 영국과 마찬가지로 소선거구제에 적응한 결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영국 노동당이 노동조합과의 밀접한 관계 속에서 산별구조를 일정 정도 포괄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남한의 진보정당이 얼마나 취약한 구조를 가지고 있는지 잘 알 수 있다.
- 따라서 노동당에서 사회운동정당을 표방하며 의제모임을 골간체계의 하나로 인정한 것은 의미 있는 시도이다. 계급성이 모호한, 아니 자영업자에게 견인당하기 십상인 ‘주민’이라는 이름의 모호한 대중이 아니라 ‘계급’으로서의 대중 속에 뿌리 박기 위한 노력을 의제모임을 통해서 실현하자. 현대인의 생활패턴은 정주성보다 이동성이 매우 강하다. 이사는 자주 해도 그러나 직업은 남는다. 지역의 좁은 틀을 벗어나서 자신의 직업과 관심사를 기반으로, 전국적 의제를 통해서 더 많은 대중과 전국적으로 활동하자.
- 레닌이 사민주의자의 정치활동으로 제시한 ‘광범위한 정치폭로’는 각 계급간의 역관계에 대한 살아 있는 교육수단이다. 그러자면, 우리는 ‘모든 계급의 주민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그람시가 주장한 ‘대항 헤게모니’ 형성은 단순한 웅변가가 아니라 건설자, 조직자, 영구적인 설득자로서 실제 생활에 적극 참여하는 유기적 지식인에 의해서 수행된다. 즉, 사회운동정당의 당원이 대항 헤게모니의 담지자이며 광범위한 정치폭로를 수행하는 주체이다.
2. 정당정치는 어떠해야 하는가?
○ 경계선
- 정치의 동력은 입장의 올바름에 달려있고, 입장의 올바름은 경계선을 뚜렷이 하는 일을 얼마나 잘 하느냐에 좌우된다. “한 정당의 허약함의 가장 뚜렷한 증거는 그것의 산만함과 선명한 경계선을 흐리는 것에 있다.”(라쌀레가 맑스에게)
진정한 변혁운동은 극좌적 모험주의와 개량적 기회주의 두 경향을 모두 지양함으로써 가능하겠지만, 문제는 어떻게 한국사회라는 현실 속에서 이 목표를 구체화시킬 것인가에 있다. 혁명정신을 사수하기 위해서 레닌이 나로드니키의 모험주의와 멘셰비키의 개량주의를 상대로 치열하게 싸운 것처럼 우리가 지금 힘써 투쟁할 대상은 누구인가?
○ 사회혁명 정당이냐, 사회개량 정당이냐?
⑴ 사회개량노선과의 투쟁
- 90년대 이후 사회변혁의 의지를 상실한(그렇다. 전망이 아니라 의지를 상실한) 다양한 조류들에 대한 폭로와 사상투쟁이 시급하다. 특히, 사회개량노선을 뚜렷이 하고 있는 정의당과 시민사회진영에 대한 상시적이며 끈질긴 폭로전이 필요하다. 정의당에 대해서는 ‘의회주의에 대한 매몰, 정치투쟁과 경제투쟁의 기계적인 분리’로 특징지을 수 있는 개량정당이라는 점을 폭로하고, 시민사회에 대해서는 부르주아헤게모니 동의의 근거지라는 점을 날카롭고 다양하게 비판해야 한다.
- 사회개량노선이 사회개혁에 대한 대중들의 관심을 높여주는 한에서는 긍정적이다. 그러나 우리가 이들의 개량적 속성에 대해서 비판하기를 멈추는 순간, 아류제국주의로 치닫고 있는 대한민국 자본의 놀라운 탐식성과 이데올로기적 침투력이 우리의 발밑을 잠식할 것이다.
- 진보신당에서 노동당으로 이어지는 동안 당내에서 벌어졌던 다양한 탈당소동의 의미를 재인식하고 사상투쟁의 소재로 사용해야 한다. 사회개량정당 노선으로 가고자 하는 탈당소동에 대하여 우리는 정력적으로 투쟁하였으나, 당을 지키기 위한 수세적인 대응에 그쳤다. 이 투쟁이 갖는 성격과 의미에 대해서 광범위하고 대대적으로 홍보하고 알렸어야 했다. 따라서 이들은 본질적으로 기회주의자이며, 부르주아 헤게모니에 포섭된 개량주의자이고, 사이비 사회주의자의 본색에 걸맞게 우리 운동의 성과를 가로채는 자들이라는 것을 폭로하여야 한다.
⑵ 정치혐오주의(반정치주의)의 개량적 속성
정치혐오주의의 역사는 길다. 역대 대통령 치고 정치와 무관하다는 것이 장점이 되어 집권을 하지 않은 경우가 거의 없고, 집권 중에는 대통령 스스로 여의도와 거리를 두고 자신은 마치 정치권과 거리가 먼 통치권자인 양 행세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반정치주의는 정치를 경멸하고 조롱함으로써 일반 시민들이 정치에 기대를 걸지 못하게 하는 태도와 경향, 정치의 가능성을 부정하는 냉소주의를 가리킨다. 통상은 기득권자들이 반정치주의를 동원함으로써 정당 가입과 투표 참여 등을 무가치한 일로 치부하고, 그래 봤자 달라지는 거 없다고 함으로써 기득권을 유지하는 수단으로 사용된다. 그러나 정치혐오주의로 덕을 보는 것이 보수파 내지 기성체제의 수혜자 뿐일까?
시민사회단체 및 협동조합에도 중립성을 가장한 반정치주의가 광범위하게 퍼져 있으며, 진보정치의 발전에 커다란 장애를 조성해 왔다. 그들은 정치가 사회변혁의 유력한 수단이라는 것을 부정하며, 자신들의 ‘운동’이 더욱 근본적인 사회변혁수단이라고 자임한다. 그러나 실제로 자신들의 활동영역으로 들어가면 지자체 및 정부의 예산을 한 푼이라도 따기 위하여 치열하게 정치적 노력을 기울인다. 그 과정에서 진보정당의 정치가가 이용가치가 적다는 것을 이유로 힘을 가질 수 있는(즉, 당선가능성 있는) 개량정당의 노선을 걸을 것을 충고하기도 한다.
노동운동 진영의 소위 좌파들을 보면 외피만 근본주의임을 확인할 수 있다. 이들은 외견상 정당보다 운동을 중시하여 정치혐오를 조장하며 근본주의적 주장을 앞세우지만, 그러나 실제로 그들이 하는 일은 노동조합의 관료에 불과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최근에는 활동가의 고령화와 함께 조직의 유지조차 장담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을 뿐 아니라 정치적 실리주의를 추구하여 민주당, 정의당 등 개량정당에 노골적으로 투항하기도 한다.
⑶ 민족문제의 개량적 속성
북한문제. 그렇다, 북한문제다. 북한이 과연 민주기지인지, 일인지배체제와 3대 세습이 우리가 추구해야 할 모범인지 명확히 해야 한다. 주체사상에서 주장하기를, 사회정치적 생명의 정수는 수령이며, 모든 인민이 이 수령에게 사회정치적 생명을 받기 때문에 그를 어버이라고 부른다. 결국 그 사회에는 오직 한 사람만이 주체이고, 나머지 인민은 모두 아바타라는 말이 된다. 이게 바로 주체사상의 본 모습이다. 북한이 스스로를 사회주의 국가라고 강변한다면 그렇다고 하자. 그러나 남한 사회가 부르주아민주주의를 과제로 한 식민지라는 주장은 북을 중심으로 사고하는 통일지상주의자들의 본말이 전도된 사고에 불과하다. 민중민주주의, 신민주주의, 진보적 민주주의 등 인민민주주의의 아류가 아니라 사회주의 그 자체가 우리가 지향해야 할 목표다.
대한민국은 아류제국주의를 추구할 정도로 발전된 자본주의 국가이며, 촛불투쟁에서 보듯이 부르주아민주주의가 확고하게 완성되었음이 현실로 증명되었다. 미제국주의에 대한 종속성을 이유로 식민지론을 설파하는 자들이 있으나, 종속성이라고 불릴만한 특징은 미제국주의가 세계패권을 장악하기 위한 지배전략에서 대한민국이 하위동맹으로 자리매김한 위치에서 보여줄 수 밖에 없는 필연적 속성으로 보아야 한다. 일본과 대만, 독일도 식민지인가? 식민지라는 표현은 정치선동으로서는 그럴 듯하지만, 냉철한 이성으로 변혁과제를 설정할 때는 객관적이어야 한다.
남한식민지론자들은 계급문제보다 민족문제를 우선시함으로써 부르주아와의 통일전선을 추구하며, 결과적으로 부르주아에게 헤게모니를 양보한다. 계급연합이라는 전술 자체가 잘못이라는 게 아니다. 통일전선의 목표가 인민민주주의에 한정되어 있다는 점이 문제이며, 그러한 양보는 필연적으로 우리를 기회주의와 사회개량의 길로 인도한다는 점에서 파괴적이다.
민주기지론을 바탕으로 하고 해방 무렵의 민족주의적 정서에 기댄 통일운동은 대중에게 민족주의를 증폭시키고 주체사상을 전파하는 매개의 역할을 하고 있다. 통일운동은 남북 민중을 재앙으로 인도하는 운동이다. 지금 당장 통일이 된다면 어떤 상황이 벌어질까? 발달한 자본주의 국가인 남한 주도로 통일이 되면 북한은 내부 식민지로 전락하면서 북한 민중은 2등 국민 취급 받고, 남한의 노동자는 저임금노동자인 북의 노동자들에게 밀려나며 그들을 원망하는 결과를 낳게 될 것이다. 북한 주도로 통일이 되면 어떻게 될까? 모든 인민은 수령의 아바타에 불과한 그런 세상에서 살게 될 것이다. 이런 세상에서 살고 싶은가?
지금 이 시대에는 전쟁의 위험을 방지하고 평화를 정착하는 것이 절박한 과제이지 통일이 중요한 과제는 아니다. 실제로 북의 입장에서 최대의 관심사는 체제보장 즉, 지배자들의 정권 보장이며, 통일은 대남전략 차원에서 구사하는 선전문구에 불과하다. 결국 현 국면에서 지배자들의 최대의 관심사는 북미대화를 통해서 핵과 군사적 긴장해소 및 체제안전 보장을 놓고 협상을 벌여나가는 것이다.
우리가 지금 추구해야 할 것은 민족의 통일이 아니라 남북의 평화공존이며, 남북 각자 사회의 특성에 맞게 사회주의를 추구하는 것이다. 통일 그 자체가 목표가 되면 흡수통일이나 무력통일도 선택지의 하나가 되며, 이것은 재앙으로 가는 지름길이다. 각자 자기 사회의 특성에 맞는 사회주의를 추구했을 때 남과 북의 차이가 해소되고 진정한 통일의 기반이 조성된다. 통일은 남과 북의 변화가 선행되어야 가능하며, 따라서 지금은 통일운동이 아니라 평화운동이 시대적 과제이다. 지배자들의 협상에 좌우되는 평화가 아니라, 아래로부터의 압력에 의해서 지배자들이 따르지 않을 수 밖에 없는 강력한 평화운동이야 말로 통일을 앞당기는 지름길이다.
3. 이 시대가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
○ 선진자본주의 국가에서 정치투쟁의 양상
후진 러시아 : 짜르전제와 비합법 전위정당, 정치폭로를 위한 전국적인 정치신문
선진자본주의 : 진지전, 대항헤게모니와 유기적 지식인(현대판 군주로서의 당)
발달한 자본주의 국가에서 사회주의 정당의 정치투쟁은 어떠해야 하는가? 봉건적인 짜르 전제 속에서 러시아혁명은 비합법 전위정당의 지도력, 전국적 정치신문을 통한 정치적 폭로에 의해서 성공할 수 있었다. 한편, 부르부아 민주주의가 압도적인 헤게모니를 발휘하는 선진자본주의 국가인 이탈리아에서 그람시는 진지전 및 유기적 지식인의 개념을 정식화했다. 87년 항쟁을 통과하고 발달한 자본주의 국가인 남한의 진보정당은 결국 그람시를 참조할 수 밖에 없다. 그가 제시한 것은 대항이데올로기의 구축에 의한 헤게모니의 장악이었으며, 진지전의 방식으로 수행하는 길이다.
노동당은 대항헤게모니를 생산하고 유통하는 거점이 되어야 한다. 대중을 봉건적 인간관계를 통해 포섭하는 것이 아니라 사상과 의식을 장악함으로써 대중운동의 영혼을 지배하는 선명한 깃발이 되어야 한다. 또한 우리가 생산한 담론과 정치폭로를 효과적으로 파급시키는 전달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그러자면, 우리는 지배이데올로기에 대항하는 독립적이며 위력적인 미디어매체를 스스로 확보하고 있어야 한다.
○ 정치미디어 투쟁, 혹은 전국적 정치신문
- 전국적 정치미디어 매체는 헤게모니투쟁의 거점인 당이 전투를 개시하는 최초의 발화점이다. 정치미디어매체는 모든 계급의 문제를 계급적 관점에서 해설하고, 자본주의를 비판하며 그 대안으로서 사회주의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것을 임무로 한다. 각 시기 투쟁 국면의 표적이 무엇인지, 그리고 어떻게 방아쇠를 당길 것인지 최초의 총성으로 알려주는 역할을 한다. 저들이 만든 이슈를 뒤따라가며 논평하는데 그칠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이슈를 만들고 확산시키자.
레닌이 전국적 정치신문을 통해서 이러한 목적을 달성했다면 남한 사회의 정치신문은 어떠한 모습이어야 하는가? 첫째, 전국적이어야 한다. 둘째, 온라인과 오프라인이 결합된 매체를 확보해야 한다. 셋째, 능동적이며 확고한 전달체계를 건설해야 한다.
- 우리는 그동안 보수정당을 답습하며 지역적 기초를 건설한다는 미명 하에 고립분산적인 활동 속에서 스스로 역량을 소모해왔다. 전망의 통일성이 강력하지도 못하면서 스스로 산개했다. 그 결과는 죽음을 향해 굳어가는 신체에 대항해서 벌이는 ‘마비와의 투쟁’이다.
- 중국공산당이나 브라질노동자당과 같이 한 지역을 거점으로 한 성장전략은 남한 진보정당에 맞지 않다. 이러한 전략은 광활한 영토를 기반으로 한 나라나, 지방분권이 강해서 연방제를 채택한 나라가 아니라면 채택하기 힘들다. 민주노동당 이래로 그동안 진보정당에서 지역, 혹은 지역운동에 대한 강박관념이 있어왔다. 조직의 기초를 튼튼히 하자는 의미도 있지만, 사실상 소선거구 선거제도에 수동적으로 적응한 결과이기도 하다.
- 한국과 같이 국토가 좁고 중앙집권의 역사가 오래된 나라에서는 모든 것이 중앙으로 수렴되며, 한 가지 이슈로 온 나라가 들끓다가 순식간에 다른 이슈로 이동한다. 따라서 중앙당의 정치기획력이 결정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지역을 장악해서 중앙으로 진출하는 것이 아니라, 중앙에서 인정받아야 지역을 장악할 수 있다. 정치적 기획만이 작은 돌 하나로도 커다란 파문이 되어 들끓는 대한민국의 정치판을 뒤흔들 수 있다. 지역이 아니라 중앙을, 품성이 아니라 영혼을, 관계가 아니라 사상을 지배해야 한다. 그러자면 우리는 우리의 목소리를 증폭시키고, 원하는 곳에 도달시키며, 대중의 정신세계를 두드릴 마술피리가 필요하다. 그러자면 우리의 매체는 전국적이어야 한다. 지역의 이슈에 즉각 대응하기 위해서는 지역의 소식지로 충분하다.
- 오프라인을 중심으로 한 정치신문은 교통, 통신이 발달한 현대의 상황에 적응하여야 한다. 따라서 온라인과 오프라인이 결합된 매체가 되어야 하며, 어느 것이 주가 될 것인지 등은 상황에 따라 결정하면 될 것이다.
- 능동적이며 확고한 전달체계를 건설해야 한다. 진보정당의 당원은 자신의 목소리를 대중 에게 어떻게 전달할지 끊임없이 관심을 기울여야 하며, 스스로 1인 미디어로서 역할을 해야 한다. 이러한 능동적인 미디어의 활동무대는 확고한 중심, 즉 노동계급을 대상으로 한 사회운동 단위에서 시작해야 하며, 이 배포망을 체계적이고 확고하게 구축하는 것으로부터 대항이데올로기 투쟁은 시작된다.
○ 남한 진보정당의 두 가지 과제
- 반정치주의, 개량주의(민족주의 포함)와의 투쟁
- (다양한 계급간의 역관계를 보여주는) 정치폭로 혹은 대항이데올로기 투쟁
⑴ 반정치 혹은 정치혐오주의와의 투쟁
근본주의 노동운동 : 당과 노조의 경계선을 흐리며, 정당보다 운동을 중시하여 정치적 행동을 자제하는 근본주의자들이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평생 가야 노동조합의 관료에 그치고, 결국 경제주의에 그치는 결과로 나타난다.
중립성을 가장한 시민사회단체, 계급협조주의를 외치는 협동조합, 양자 모두 계급정치를 부정한다. 계급의식, 사회주의 의식은 매 사안마다 각 계급의 역관계를 인식할 수 있는 지적 능력이다. 중립성과 계급협조주의를 넘어서야 한다.
⑵ 개량주의와의 투쟁
사회개량을 표방하는 사이비 사회주의당인 정의당
사회주의 지향을 흐리고 민족문제로 시선을 돌리는 NL당
민주노총을 잠식하고 있는 민주당 투항주의
부르주아 헤게모니에 잠식된 시민운동(즉, 비판언론의 주된 공략대상이 되어야 함.)
신자유주의의 하위파트너로 전락한 협동조합
- 소위 ‘대안 없는 반대’에 대한 거부감, ‘정책적 능력에 대한 열중’은 부르주아 헤게모니에 굴복한 개량정당과 시민단체가 하는 일이다. 손에 잡힐 수 있는 구체적 요구들을 위해서 싸우는 것, 입법적이고 행정적인 조치를 위한 구체적 요구조건들을 다듬는 것, 노동조합주의적 정치활동에만 몰두하는 것은 현대판 경제주의자들이 하는 일이다.
⑶ 정치폭로 혹은 대항이데올로기 투쟁에 대해서는 이어지는 장에서 논의한다.
4. 대항이데올로기 투쟁의 거점인 당
○ 자생성과 의식성의 관계.
“사회주의 의식은 외부로부터 프롤레타리아트 계급투쟁에 도입된 것이지, 그것 내부에서 자연발생적으로 생겨난 것이 아니다. 따라서 과거의 하인펠트강령은 아주 올바르게도, 사회민주주의의 임무는 프롤레타리아트를 그것의 위치와 임무에 대한 의식으로 물들이는(문자 그대로 프롤레타리아트를 흠뻑 적시는) 것이라고 말했다. 만약 의식이 계급투쟁으로부터 저절로 생겨난다고 한다면 이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칼 카우츠키)
카우츠키의 이 명제는 사회주의 사상의 발생을 이야기하는 것이지만, 이미 대중의 교육수준이 높고, 사회주의 국가의 실존을 경험한 현대에서는 레닌의 다음과 같은 지적이 더 적절할 것이다.
“왜 자생적 운동, 최소 저항노선을 따르는 운동은 부르주아 이데올로기의 지배로 귀결되는가? 왜냐하면 부르주아 이데올로기는 사회주의 이데올로기보다 그 기원에 있어서 훨씬 더 오래된 것이며, 더 충분히 발전되었고 측정할 수 없을 정도로 더 많은 보급수단을 갖고 있다는 단순한 이유 때문이다.”(레닌)
대중과 괴리되어 있다는 우리 당의 특징은 여기에서 연유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변명이 될 수는 없다. 그 만큼 우리의 의식적 활동이 부족했음을 증명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당은 그람시가 지적한 대항이데올로기의 형성을 촉진하는 역할을 정력적으로 수행하는 진원지가 되어야 한다.
“어떤 식으로든 사회주의 이데올로기를 하찮게 여기는 것, 조금이라도 그것을 외면하는 것은 부르주아 이데올로기를 강화시키는 것을 의미한다.”(레닌)
○ 의식성의 총체이며, 권력투쟁의 도구이고, 헤게모니 투쟁의 거점인 당.
- 자본주의가 발전하면 사회주의가 도래한다는 기계론적 유물론을 극복해야 한다. 역사는 자본주의의 가장 약한 고리에서 모순이 폭발했으며, 사회주의 혁명은 이런 곳에서 발생했다는 점을 보여주었다. 사회주의는 상품사회가 강요하는 물질적 관계를 거부하고 끊임없이 추구하는 욕망을 멈춤으로써 평등과 연대의 공동체를 추구하는 의식혁명이며, 사회주의 사상 역시 이러한 배경에서 탄생했다. 역사는 이러한 의지주의적 추진력이 혁명의 동력이었다는 점을 확인해 주고 있다. 물론 (전쟁, 공황 등) 자본주의의 모순과 약한 고리가 객관적 조건을 형성했음은 주지의 사실이지만, 이것은 준비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다만, 우리가 준비되어 있다면, 결정적 순간이 닥쳤을 때 변혁의 흐름을 결단성 있게 밀어부칠 수 있을 것이다.
- 당은 이러한 의식성의 총체이며, 권력을 획득하기 위한 투쟁의 핵심역량이며 도구이다. 그람시의 헤게모니론(혹은 진지전)은 부르주아 문화운동의 알리바이에 그칠 위험성이 있다. 즉. ‘국가지배의 문제에 앞서서 이데올로기적 우위성을 향한 획기적인 투쟁이 시민사회 영역에서 먼저 일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권력을 향한 치열하고 긴박한 투쟁이 배경으로 작동하지 않은 채 시민사회 영역에서 진행되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 이데올로기 투쟁은 문화운동 그 자체에 불과하다. 실제로 국내에서 그람시가 각광받던 시절에 등장한 시민사회단체가 지금은 지배이데올로기 동의의 진원지라는 점을 상기해 보라! 권력 투쟁과 대항 이데올로기의 형성은 선후의 문제가 아니며 상호 촉진하는 관계이다. 이 과정에서 의식성의 총체인 당은 권력투쟁의 가장 강력한 도구이며, 헤게모니투쟁의 거점으로서 이중적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5. 사회운동정당의 대중노선
○ 사회운동정당을 표방하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사회운동정당으로서 대중조직에 깊숙이 개입함에 따라 사회운동의 갈등이 당으로 유입될 수 밖에 없다. 당 내부에 사회운동의 갈등이 그대로 재연될 때, 당원 간의 갈등을 조정할 수 있는 정치력이 필요하다. 이와 더불어 우리는 사회운동의 실무자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회주의 이데올로기의 담지자로서 정치적 폭로에도 능해야 한다. 대중운동론이 필요한 것은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사회운동에 지속적으로 개입하기 위해서는 활동가의 재생산이 지속적으로 담보되어야 하며, 또한 조직의 특성에 맞는 활동을 유능하게 수행하고 대중들에게 신뢰받는 활동가가 될 수 있도록 교육하는 프로그램이 마련되어야 한다. 조직론과 활동가론이 필요한 것은 이 때문이다.
○ 당원은 노동조합의 실무자가 아니라 유기적 지식인이어야 한다.
- 사회운동 조직에 대해서 노동조합을 예로 들어 논의해 보자. 노동조합은 국적, 성별, 종교, 이념을 불문하고 노동자는 누구나 근로조건의 향상과 사회적 정치적 지위향상을 위해 단결하여 투쟁하는 조직이다. 따라서 노조는 가능한 공개적, 합법적이어야 하며 최대한 광범위해야 한다. 그러나 공통의 이념을 중심으로 결합한 결사체인 정당은 이러한 특성에 얽매일 필요가 없다. 이렇게 양자의 특성이 엄연히 다름에도 불구하고 우리 운동은 그간 오류를 거듭해 왔다. 하나의 정당에 다양한 이념과 노선을 허용함으로써 소모적인 내분과 이합집산을 불러오는가 하면, 노동조합의 활동에서 이념과 성향에 따라서 구분 짓고 분파를 형성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 노동조합은 비록 정치투쟁을 하는 경우가 있더라도 사회주의를 목표로 하는 것은 아니다. 사회주의는 비록 오늘날 교육수준이 높아지긴 했으나 노동조합의 투쟁을 통해서 자연히 획득되는 것이 아니다.
당원은 노동조합의 실무자가 아니라 유기적 지식인이어야 한다. 당원은 실무자가 아니라 사회주의를 향한 의식성의 총화이며 이데올로기 투쟁의 선봉이다. 손에 잡힐 수 있는 구체적 요구들을 위해서 싸우는 것, 입법적이고 행정적인 조치를 위한 구체적 요구조건들을 다듬는 것, 노동조합주의적 정치활동(대정부 요구투쟁, 또는 개량적 정치투쟁)에 오로지 몰두하는 것은 노동조합의 실무자에 그치는 것이다. 대중운동의 지평을 넓혀서 혁명의 조건을 창출하는 것이라고 자위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평생 가야 노동조합의 실무자에 그치는 것이며, 자생성에 굴복하는 것이며, 대중의 의식을 경제주의에 머물게 함으로써 부르주아 이데올로기에 양보하는 것이다. 대중운동을 건설하는 임무와 사회주의자로서의 임무, 두 가지를 모두 해야 하는 상황에서 오는 그 모순적 지위를 잘 인식하여야 한다.
유기적 지식인은 정부와 지배계급이 대중의 삶의 모든 영역에서 행하고 있는 모든 일에 대해 생생한 정치폭로를 할 수 있어야 한다. 각 계급의 역관계 속에서 하나의 사건이 정치적으로 어떠한 의미를 가지는지 해설하고, 대중이 자신의 계급적 자각 속에서 세계를 바라볼 수 있는 계기를 만드는 역할을 해야 한다.
“인민의 지도자는, 어디에서 일어나건 어떤 계층과 계급의 인민에게 영향을 미치건 간에 현상화된 모든 폭정과 억압에 대항할 수 있어야 하며, 이 모든 현상을 일반화시켜 경찰의 폭력과 자본주의적 착취에 대한 하나의 형상을 그려낼 수 있어야 하며, 그것이 아무리 사소하다 하더라도 모든 사람 앞에서 자신의 사회주의적 확신과 민주주의적 요구들을 설명하기 위하여, 프롤레타리아트 해방투쟁의 세계사적 의미를 모든 사람 그리고 그 누구에게라도 명료하게 설명하기 위하여 모든 사건을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레닌)
레닌의 시대에는 계몽적 역할이 강조되었으므로 ‘인민의 지도자’라는 표현을 썼다. 대중의 자발성을 강조한 그람시의 ‘유기적 지식인’ 의 임무도 이와 별로 다르지 않을 것이다.
○ 브나로드, 우선 나의 생활 속으로.
유기적 지식인이 되기 위해서 우리는 우선 인민 속에, 각 계급 속에서 뿌리박고 신뢰를 얻는 활동가로서 거듭나야 한다. 각 계급간의 역관계에 대한 살아 있는 폭로를 하자면, 우리는 우선 모든 계급의 주민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그람시의 유기적 지식인은 생활인이다. 자신의 생활터전에서 부르주아 이데올로기가 어떻게 자신과 동료의 삶을 옭아매고 있는지 파악하고, 동료와 함께 삶의 문제를 가지고 투쟁을 건설하고, 대항이데올로기를 자신의 주변에 전파하는 사람이다. 그러자면 우리는 우선 나의 생활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다른 누구를 대신해 주는 것이 아니라 나의 노동에 내재되어 있는 계급적 본질을 자각하고, 연구하고 발언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이와 같은 자신의 사례를 1인 미디어로서 스스로 발언하고, 확산시키자. 또한 더 나아가서 전국적 정치미디어매체에 기고하자. 정치미디어매체를 중심으로 대항이데올로기를 전국적으로 형성하고 전파하자.
- 이 과정은 또한 능동적이며 확고한 전국적 배포망을 건설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배포망이 확고하지 못하다는 것은 우리가 얼마나 대중 속에 뿌리박지 못했는지 증명하는 것이다. 전국적 정치신문이 지금 당장 무리인 것은 사실이다. 그러므로 사회운동신문으로부터 시작하자. 사회운동 건설 경험을 교류하고, 그 속에서 어떻게 우리의 정치적 입장을 전파할 것인지를 공유하자. 이 과정 속에서 전국적 정치신문으로 성장, 전화하자.
그리고 공부하자. 과거의 사례는 물론 발달한 자본주의 사회로서 한국사회에 맞는 운동을 건설하기 위해 해외의 사례와 국내의 사례를 연구하자. 스페인의 포데모스와 그리스의 시리자처럼 자신의 방식으로 대중운동과 정당운동을 결합하고, 새로운 정치운동의 모델을 만들어내자. 우리의 현실에 맞는 대중노선을 만들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