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평과 검, 비판과 학, 정파다운 정파

by 오창엽 posted Jun 12,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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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평과 검, 비판과 학, 정파다운 정파


[야고보서 3장 17, 18절] 오직 위로부터 난 지혜는 첫째 성결하고 다음에 화평하고 관용하고 양순하며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하고 편견과 거짓이 없나니 / 화평하게 하는 자들은 화평으로 심어 의의 열매를 거두느니라
[마태복음 5장 9절]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마태복음 10장 34절, 35절]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 / 내가 온 것은 사람이 그 아버지와, 딸이 어머니와, 며느리가 시어머니와 불화하게 하려 함이니
성경에서 예수는 화평을 권하기도 하고 검을 주러왔다고도 한다. 왜 일까.


비판이 학과 같은 의미로 사용되던 때가 있었다. 칸트, 헤겔 이후 맑스, 키에르케고르도 그랬고 칼 뢰비트나 이사야 벌린도 마찬가지다. 철저하게 비판하고 세부의 차이를 해부하여 우주의 질서와 세계관의 차이를 드러낸다. 맑스의 박사학위논문의 주제가 그것이다.


겉으로 보기에 크게 대립하고 있는 것 같으나 사실 같은 편이라는 것. 보수여야당의 대결은 계급 사이의 대립이 아니다. 그런데 그들의 대립만을 주목하게 만드는 게 보수매체의 역할이다. 그래서 비판하는 사람은 불편한 사람으로 취급당한다. 그들의 링에서 급진적이고 선명한 진보정당의 주장은 외면당한다.


신의와 소통


예전 어느 당에서 당원들은 모르지만 핵심간부들은 아는 어떤 전국모임이 만들어졌다. 그런데 몇 달 후 그 가운데 일부가 그 약속을 깨고 조직과 조직의 내전을 일으켰다. 그래서 내가 비밀약속을 했으면 끝까지 지키든지, 그걸 폭로했으면 당원들에게 먼저 사과하든지 하라고 비판했다. 신의를 지키면서도 당원들과의 소통을 소홀히 하지 말자고 주장하던 나였기에 가능한 일격이었다. 하필이면 나는 그 전국모임의 일원이 아니고 그냥 당원이었다. 비판을 비판으로 수용하지 못하고, 자신들이 그랬던 것처럼 정치적 공세로만 이해하고 격렬히 반발하다가 공론장에서 논쟁을 통해 처절히 심판받았다. 질로든 양으로든 대단한 조직이었는데.


그 당에서 다음 대선을 치른 후에 비슷한 일이 발생했다. 미래전략어쩌고 하면서 K만이 대안이라고 떠벌이며 전국의 당원들을 설득하던 최고위급 간부들이 있었다. 그들이 주도하여 공개적인 충성맹세를 깨고 조직과 조직의 내전을 일으켰다. 하필 나는 그 K와 안 맞아서 자매단체의 상근자로 지내고 있었다. 선거 후 바로 치려는 계획을 갖고 거짓 정치를 하고 있었으니 무엇이 잘 되었겠는가. 그래서 내가 기존 당권파의 무능과 더불어 신의 없는 자들 양쪽을 비판하며 나섰다. 전국을 돌며 당원들을 만나는 일과 당원게시판 논쟁을 병행하려니 조금 힘들었다. 당의 해산은 막았으나 혁신은 이루지 못했다.


나의 비판은 간단하다. 원래 한 가족, 한 통속이었는데 그 책임을 일부에게 떠넘기고 그저 당권만 잡으려 하는 건 윤리적이지 못하다는 것이었다. 당원들을 우롱할 수 있는 질서와 제도와 의식을 혁신하겠다면서 도전했다면 연대했거나 관망했을 것이다. 내가 그런 혁신을 줄기차게 제안하고 분투할 때 철저히 야합하며 현 상태를 즐기면서 ‘책임정치’를 외면해 놓고서.


논쟁을 통한 보고, 공론화, 과제 부각


비판이나 학은 표면적으로 다른 게 본질적으로 같은 것임을 증명하는 것이다. 표면적으로 비슷해 보이는 게 실은 매우 근본적으로 차이 나는 것임을 분석하는 것이다. 원래 의도가 그런 게 아니었다 해도, 그런 실천을 하고 있으니 자각하라고 비판하면, 보통 화부터 낸다. 몰랐으니 그럴 수 있다.


그런데 논쟁과 토론을 하다보면 생각을 깊게 해야 하지 않겠는가. 상대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또 내 생각을 정리하다보면 더 철저해질 수밖에 없다. 계속 앞뒤 안 맞는, 해명할 수 없는 언행을 하다보면 애초의 의도조차 그랬던 것으로 되어간다. 그게 비판자의 잘못인지 지리멸렬한 집단의 탓인지. 무의식, 집단심리 등도 분명 개입된다.


고전을 읽고 철학을 공부하고 논쟁을 해본 사람들은 안다. 다른 사람의 논쟁글을 보고 그 안에서 구사되는 비판의 형태, 양상, 목적, 효과 등을 보면서, 이게 그냥 정치적 입장 차이의 대결이 아닌 것을. 전체 구조와 비판 대상의 정체와 여러 관계들에 대한 해부인 것을. 그것을 읽고 문제가 무엇인지 좀 생각을 해보아야 한다. 사실 논쟁을 통해 당원들과 지지자들에게 많은 것을 보고하고 있는 것이다. 당원들이 꼭 알아야할 뒷이야기나 숨은 정보들도 슬쩍 포함시킨다. 보다 많은 사람들이 훨씬 풍성한 정보를 갖고 이해하고 생각하고 참여할수록 반칙하는 이들이 곤란해지는 것이다.


어느 쪽이 이기고 지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들이 공통적으로 갖고 있던 구질서가 무엇이고 앞으로 무엇을 혁신해야 하는지 과제들을 자연스럽게 드러내는 것이다. 그런 것들이 학적 비판과 논쟁을 통해서 눈앞에 펼쳐지는 것이다. 그것이 맑스가 엥겔스가 레닌이 했던 선전선동들이었다. 스콜라적인 해석공방을 하는 이들은 책의 내용을 이해한 게 아니라 말싸움의 잔재주만 습득한 것이다.


정파다운 정파


[마태복음 9장 17절]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넣지 아니하나니 그렇게 하면 부대가 터져 포도주도 쏟아지고 부대도 버리게 됨이라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둘이 다 보전되느니라


나는 단번에 모든 사람들을 만족시키고 두루 고개를 끄덕이는 그런 언행을 추구하지 않는다. 어느 쪽 입장에서 있든 혹은 관망하며 물러나 있든 열린 마음으로 소통할 수 있는 이들은 장차 동무가 될 것이다. 정치적 필요에 의해 동원되는 비난과 여러 가지를 극복하기 위해 묻고 논하는 비판을 구분할줄 아는 사람들이 존재함을 믿어야 한다. 그걸 회의하면 운동을 할 수 없다. 당원을 인민을 무시하는 이들은 책임정치를 할 수 없다.


작은 걸 지키려고 개혁의 대상, 혁신의 대상으로 전락하지 말아야 한다. 문제를 근본적으로 심사숙고하여 문제를 하나하나 해결하고, 원칙을 세워나가고, 의로운 동지들과 소통하여 뜻과 힘을 모아 새로운 질서, 새로운 정치를 실천할 그룹을 조직해야 한다. 그 조직이 당을 환골탈태하게 만드는데 앞장 서게 될 것이다. 노동당에도 정파다운 정파 하나쯤 만들어지길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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