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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좌파정당, 왜 녹색이어야 하나

posted Nov 21,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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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12-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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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파정당추진위 네 번째 토론회 "새로운 진보좌파정당은 왜, 어떤 녹색정당이어야 할까?"에 많은 당원들이 관심을 갖고 영상이나 속기록을 요청했던 바 있습니다. 많이 늦었지만 속기록을 <정치신문 R>에 게재합니다. 녹취 속기작업에 수고해주신 경남도당 양솔규 당원님께 감사드립니다.



진보좌파정당 추진위 연속토론④
“새로운 진보좌파정당은 왜, 어떤 녹색정당이어야 할까?”


일시 : 2012년 8월31일
장소 : 금속노조 4층 2회의실

발제 : 장석준 진보신당 정책위의장 - 새로운 진보좌파정당과 녹색사회주의의 길
토론1 : 서형원 녹색당 과천시의원 - 현실 녹색정치의 평가와 전망
토론2 : 이명희 진보신당 경기도당 녹색위원장 - 지역/생활정치와 녹색정치
토론3 : 배현철 금속노조 교육국장 - 노동정치에서 바라본 녹색정치


김현우 : 진보좌파정당이 어떤 내용과 어떤 틀거리를 가져야 될 것인가, 녹색정치의 문제의식을 가지고 기탄없이 나눠보는 시간이 될 거 같습니다. 그 부분에 가장 적절한, 여러 측면에서 이야기를 해주실 분들을 모셨다고 자부하고 있습니다. 오늘 장석준 의장의 발제문은 이 토론회를 위해서 따로 쓰여진 것은 아니고, <지금 여기의 진보>라는 최근에 나온 책에 실렸던 글입니다. 오늘 주제와 굉장히 일치하고 있어서 이 글을 중심으로 발제하고 진보좌파정당의 녹색정치는 현실적으로 어떻게 구성되어야 될 것인가에 대해 조금만 더 덧붙이면 부족함이 없을 거라 생각합니다. 지금부터 30분 정도 발제를 듣도록 하겠습니다.


녹색사회주의 낯설지 않다: 대중적 흐름으로 정착된 곳도 있어

장석준 : 제가 말씀드릴 내용들이 지나치게 큰 얘기로 들릴 수 있는 얘기입니다. 토론자로 나오신 분들이 우리가 출발해야 할 작은 실천들에 대해 풍부한 비전을 가지고 계신 분들이기 때문에, 그런 부분을 잘 채워주실거 같고요. 그리고 큰 이야기가 명확히 서야만 작은 이야기도 풍부하게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런 부분에 대한 토론도 필요하다고 봅니다. 

녹색사회주의라고 하면, 생태 사회주의랑 다른 말은 아니고요. 같은 의미인데. 아직은 식자층에서는 이런 이야기가 오간 지 20년 정도 한국에서 되었지만, 대중적으로는 낯선 이야기죠. 전 지구적으로 살펴보면 꼭 낯선 것만은 아닙니다. 이 지구의 어떤 곳에서는 대중적 흐름으로 정착되어 있구요. 가령 올해 그리스 총선을 통해 전세계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급진좌파연합이라는 시리자라는 정치세력의 로고, 엠블럼을 보면 세 개의 깃발로 되어 있습니다. 적색, 보라색, 녹색. 과거 통합하기 전 사회당 로고가 비슷했던 걸로 기억합니다. 여기서 적색은 당연히 사회주의를 뜻하고요. 보라색은 여성주의, 녹색은 생태주의. 어떻게 보면 급진좌파연합이 일종의 녹색좌파, 녹색사회주의 세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최근 이태리에서. 이태리가 내년에 총선이 있는데. 총선에 총리 후보로 출마하겠다고 며칠전에 발표한, 이태리 남부 풀리아 주의 주지사가 있습니다. 게이로 유명한 사람입니다. 니키 밴돌라라는 사람인데. 이 사람이 속한 정당은 원외정당이에요. 우리랑 거의 신세가 다를 바 없습니다. 정당 이름이, <좌파, 생태, 자유>입니다. 또 다른 녹색사회주의 세력이라고 할 수 있고요. 심지어 집권한 세력도 있습니다. 아이슬란드 같은 경우는, 2008년 세계금융위기가 일어나면서, 가장 처음 금융위기의 직격탄을 맞은 나라입니다. 2009년에 일종의 준혁명 사태가 있었고, 그러고 나서 곧바로 실시된 총선에서 사회민주연합의 연립정부가 들어섰는데, 연정파트너가 <좌파녹색운동>이라는, 당명 자체부터 녹색사회주의를 분명히 하는 곳입니다. 

이들의 당 홈페이지에 가봐도, 자기들 이념으로 이렇게 표현합니다. 민주적 사회주의, 여성주의, 생태주의. 이러한 세력들이 한국 바깥에서는 이미 상당한 대중적 지지를 받으면서 자기 역할을 해 나가고 있다는 것이죠. 이 얘기를 다르게 얘기할 수 있을 거 같습니다. 녹색사회주의가 아니라, 녹색만을 내건 정치세력, 또는 고전적인, 전통적인 사회주의만을 내건 정치세력이 지금 어떤 한계에 봉착하고 있는가. 그렇게 얘기를 할 수도 있을 거 같습니다. 가령 독일녹색당 같은 경우 여전히 녹색을 캐치프레이즈로 내걸고 있습니다. 하지만 실재 독일녹색당이 어떤 사회경제정책을 대변하고 있느냐. 사실은 상당히 상층 화이트칼라의 이해를 대변하고 있습니다. 상층 화이트칼라 사람들은 사회적 관심에 있어서는 일정하게 진보적이지만, 경제적 측면에서는 신자유주의를 근본적으로 바꾸려는 데는 상당히..., 실제 이들의 정책이 나온거 보면은. 독일에 자유민주당(FDP)이라고 있습니다. 우파 소수정당인데, 기독교민주당보다 훨씬 더 신자유주의적인 정당. 그런데 어떤 측면에서 보면 독일녹색당과 자유민주당이 사회경제정책에서 수렴되기도 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반대로, 사회주의만을 내건 정치세력 중에서, 가령 올해 집권한 프랑스 사회당이 있습니다. 지금 산업부 장관이 아르노 몽테부르라는 사람인데. 몽테부르라는 사람은 작년 사회당 대선후보 경선할 때 가장 왼쪽 입장을 취하면서 사회당이 금융자본에 대해서 좀 더 좌경화정책을 채택하는데 일정한 역할을 했습니다. 이 사람이 최근 뉴스에 오르내리는데. 그 이유는, 올랑드 프랑스 사회당 대통령 후보 시절 공약 중 가장 인상적인 것 중 하나가 핵발전 축소였는데. 몽테부르 산업부장관이 정부 내 인사들 중에서 이 공약을 폐기할 것을 주장하고 나섰습니다. 프랑스 산업의 미래를 책임질 중요한 산업이다, 산업부 장관에 취임하고 보니까 그렇다, 그 공약을 폐기해야 된다고 주장하고 나섰는데요. 희극이기도 하고 비극이기도 하죠. 프랑스 사회주의가 결국 핵발전에 기반하는 사회주의인 거죠. 미테랑 정부 시절에도 핵실험에 반대하는 그린피스 선박을 침몰시켰던게 프랑스 사회당 정부였는데요. 이게 다시 반복되고 있습니다. 이것은 녹색이지 않은 사회주의의 한계를 말해주고 있는거 같고요. 이런 점에서 녹색사회주의가 현재적으로 고민해야 되는 것이라는 점을 강조드립니다. 


독일 녹색당과 프랑스 사회당: 녹색과 적색이 만나지 않을 때의 한계 보여줘

이걸 조금 더 이론적으로 짚어보면, 결국 우리의 시대가 위기의 시대인데, 위기의 두 측면을 함께 봐야 한다는 겁니다. 하나는 지구 자본주의의 위기이고, 하나는 지구 생태계의 위기. 그런데 이게 병렬적으로 두 개의 위기가 있는게 아니라, 두 개가 서로 엇물려 있는 것이죠. 역사적으로 엇물려 있고. 따라서 이 위기의 어느 한 측면에 대응하기 위해서도 전체에 대응할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또한 전체에 대응하지 않았을 경우에 나타나는 편향들은 이미 많이 보고 있습니다. 가령 자본주의 위기에 대한 인식 없이 지구 생태계 위기만을 이야기하는 진영에서의 대표적인 대안이 온실가스 배출권 거래제도입니다. 취지는 기후변화에 대한 대응이라고 여겨지지만, 이 정책이 채택되었을 때 효과는 금융시장이 확대되는 겁니다. 금융시장을 통해서 환경위기를 극복하겠다 이런 발상에서 이런 대안이 나올 수밖에 없는 것이죠. 이건 대안이 아니라고 봅니다. 

또 하나, 지구생태계에 대한 인식 없이 자본주의 위기만을 인식했을 때 나타나는 대안, 지금 나타나고 있는 여러 케인즈주의적 대안이 그것이죠. 경기 확장하려면 공공투자를 해야 되는데. 물론 녹색뉴딜이라는 식으로 공공투자의 방향을 일정하게 얘기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여전히 1930년대식이죠. 1930년대에 뭘 했습니까? 댐 만들었잖아요. 그러한 식의 공공투자를 얘기하는 대안이 나오고 있는 것이죠. 따라서 지금 진행되고 있는 지구생태계의 위기와 자본주의 위기 ‘전반’에 대한 대응이 녹색사회주의의 출발점은 결국 그것일 수밖에 없다고 보고요. 조금 더 구체적으로 들어가면 세 가지 정도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제가 말씀드리는 세 가지 내용만 있다기 보다는 제 역량상, 시간한계상 강조하고 싶은 거 세 개만 말씀드리면요. 


왜 녹색사회주의인가 1. 분권적 지역자립형 사회 지향

첫 번째, 기존 사회주의와 가장 커다란 차이는 무엇인가? 저는 이거라고 생각합니다. 자본주의 생산력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의 문제라고 봅니다. 기존 사회주의의 출발점은 뭐냐하면, 사실은 러다이트 운동에 대한 자기비판으로 출발한게 근대 사회주의입니다. 자본주의 등장에 대한 노동자계급의 첫 번째 반응은 기계를 부수는 것이었습니다. 근대 사회주의는 기계를 부수는 게 아니라, 그 기계를 노동자의 것으로 만들어야 된다. 저는 그게 중요한 출발점이라고 보거든요. 저는 그게 중요한 출발점이라고 보거든요. 그리고 그게 결코 틀린 것은 아니었고, 지금도 100% 틀렸다고 할 수 없는 현실적 측면이 있다고 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생산력을 그대로 대안세력이 자기 것으로 전취함으로써 새로운 사회를 만들 수 있는 것이냐? 결코 그렇지 않다. 사실은 계급투쟁의 시각에서 보더라도 자본주의에서의 기술은 ‘노동절약형 기술’이기 때문에, 기본 구조 자체가 비인간적일 수밖에 없는 측면이 있어요. 그런데 그걸 그대로 계승할 수 있느냐. 그런데 역사 속에서 사회주의자들은 그대로 계승한다고 생각했어요. 대표적인 사람이 누굽니까? 사실 레닌이거든요. 레닌이 사회주의 건설할 때 미국에서 테일러주의를 배워와야된다고 했던 것처럼. 이런 역사적 한계를 극복해야 한다는 것이고요. 이걸 사실 가장 날카롭게 문제제기 했던 사람이 프랑스의, 원래는 오스트리아 출신이죠, 앙드레 고르(Andre Gorz)입니다. 국내에 번역되어 있는 <프롤레타리아여 안녕>이라는 책입니다. 상당히 뭐라고 할까요? 이단적인. 문제제기가 이거죠. 노동자가 핵발전을 그대로 물려받고서는 사회주의가 될 수 없다. 

저는 여기서 생산력의 핵심이 뭐니뭐니해도 결국은 에너지 문제라고 봅니다. 다른 여러 기술의 문제, 도시집중의 문제, 여러 가지가 있는데. 핵심은 에너지다. 왜냐? 자본주의의 출발이 에너지이기 때문입니다. 영국에서 산업자본주의가 출발한 게 석탄이라는 광물을 생각하지 않고서는 영국에서 출발한 이유를 설명할 수 없다는 게 역사가들의 결론이거든요. 지금 현재 에너지 시스템은 화석에너지와 핵에너지. 그리고 둘의 공통점은 고도의 중앙집권적인 에너지 생산이 가능하다. 이게 현재 자본주의의 가장 기본적인 토대를 이루고 있는 것이지요. 자본가들이 만들어 놓은 현 사회가 아닌 다른 대안 사회를 만들고자 하는 세력이라면, 가장 중심적으로 가장 먼저 고민해야 될 사회변화의 첫 번째 축이라고 봅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게 대안이 뭐냐 했을 때 많은 분들이 태양에너지를 얘기하거든요. 그런데 태양에너지의 문제가 뭐냐하면, 화석에너지와 달리 고도의 중앙집중적인 생산이 불가능하다는 거죠. 물론 사하라 사막에서 생산해서 유럽으로 가져오겠다는 구상도 있지만. 그건 유럽의 독특한 제국주의적 전통인거 같고. 다른 사회에서 모든 지구 표면 위에서 가능하려면, 자기 지역에서 소비하는 에너지는 자기 지역에서 생산할 수밖에 없는 게 태양에너지의 기본적인 속성이고요. 그렇게 되면 결국 대안사회라는게 고도의 분권적 사회일 수밖에 없습니다. 고도의 지역 자립형 사회이고요. 이것은 근대 자본주의하고도 다른 사회모습일 뿐만 아니라, 근대 자본주의하고 경쟁했던 20세기 사회주의하고도 다른 모습이죠. 

그러면 어떻게 이행을 할 것인가? 현재의 고도의 중앙집중화된 자본주의에서 분권화된 사회주의로 이행할 것인가. 저는 시장적인 방식으로는 불가능하다고 봅니다. 시장적 방식은 결국 기업에게 맡겨놓는 것인데. 사실은 현대 사회에서 가장 중앙집중화된 게 현대의 대기업이거든요. 더구나 시장적 방식을 취한다 했을 때, 결국 에너지 산업에서도 보이지만, 왜곡될 수밖에 없고. 결국은 다시금 계획이라는 문제가 제출될 수밖에 없다고 봐요. 비시장적인 경제결정으로서의 계획. 그런데 여기서 문제는 우리가 알고 있는 계획은 다 중앙집권적인 계획이죠. 1930년대 소련 사회주의가 자본주의를 따라잡기 위해서 가장 빠른 시간 안에 생산력을 발전시키기 위해 취했던, 그런 경제활동의 결과로 정착된 제도적 패키지가 우리가 알고 있는 중앙집권적 계획인데. 참여분권형 사회를 중앙집중형 방식으로 만들 수는 없다는 거죠. 비시장적이기는 해야 되는데, 그 방식 자체도 참여분권형적인 방식이어야죠. 

참여분권형적인 사회를 중앙집중형 계획으로 만들려는 역사적인 시도가 있었습니다. 20세기 말에. 그게 바로 그 유명한 문화대혁명이죠. 엄청난 실패로 끝날 수밖에 없었다는 거고. 그게 조그만 형태로, 그리고 가장 비인간적인 방식으로 나타났던 거는, 모택동주의를 가장 극악한 방식으로 실천했던 캄보디아입니다. 어떻게 보면 굉장히 생태적인 실험이었어요. 겉모습만 보면. 도시의 과잉된 인구를 농촌에 돌아가게 한다는 건데. 그래서 그 당시에 UN 산하 기구들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했던 보고서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결국은 강제로 이주시킨 거잖아요. 그 과정에서 사람들을 학살했고. 결국은 에너지 전환을 출발점으로 해서 참여분권형 사회주의로 나아간다고 했을 때, 비시장적인 경제결정방식을 취할 수밖에 없지만, 그러면서 그것은 또한 비스탈린주의적인 참여분권형 (이런 표현이 가능하다면) 그런 것일 수밖에 없다. 녹색사회주의라고 얘기했을 때는 이것을 구체적으로 실천해 나가는 것을 목표로 하는 노선이라고 생각합니다. 


왜 녹색사회주의인가 2. 국가주의의 한계를 극복해야

두 번째는 그렇기 때문에 녹색사회주의야말로 이 시대의 가장 참된 의미의 사회주의라고 생각합니다. 왜냐? 이제까지의 사회주의는 사실 국가주의였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시장, 혹은 자본에 대해서 사회가 자기통치하는 사회를 만들겠다 했지만 결국 그 사회라는 것은 고도로 중앙집권화된 강력한 국가에 의해서 되어 왔습니다. 이건 사회민주주의도 마찬가지였고, 스탈린주의도 마찬가지였고, 다 마찬가지였습니다. 하지만, 사회주의라는게 자본주의의 대안이 될 수 있으려면 원래 문제제기로 다시 돌아갈 수밖에 없다. ‘사회 중심의 사회주의’. 가령, 에릭 올린 라이트라는 미국의 사회주의 학자 같은 경우에는 ‘사회중심 사회주의’라는 말까지 쓰고 있는데요. 저는 이게 녹색의 또다른 의미와 만난다고 봅니다. 녹색의 또다른 의미는 사실은 생태 뿐만 아니라, 풀뿌리라는 의미도 담겨 있거든요. 68년 혁명운동의 부산물인 참여민주주의, 풀뿌리 민주주의를 뜻하는 녹색이기도 하기 때문에, 이 녹색과 사회주의의 뿌리로 돌아가자고 하는 거는 서로 만나게 됩니다. 제 발제문에 보면, 이러한 사회주의의 전통을 가장 잘 대변해주는 흐름으로 ‘길드 사회주의(Guild Socialism)’ 이런 것들을 소개해 놨는데요. 그건 자료로 대체하기로 하고요. 

그렇기 때문에 현대에 있어서 사회주의의 핵심은 국가소유 이런 문제가 아니라. 우리나라에서 흔히 사회주의 얘기하면 국유화부터 얘기하잖아요. 이런 부분이 아니라. 그리고 작년에 전세계적으로 벌어졌던 점거운동, 점거운동의 기본가치가 뭡니까? 사실은 촛불시위 때 나타났던 새로운 흐름과 다른 게 아니거든요. 내 삶은 내가 알아서 결정하겠다. 이게 전통적인 ‘국가중심 사회주의’와는 배치되는, 반목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어떻게 보면 사회주의의 뿌리인 사회중심의 사회주의에 가장 잘 부합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점거행위, 점거의 이상(理想)이 사회경제적 삶의 중심지인 기업에서 이루어진다고 했을 때 저는 그게 사실 21세기 사회주의의 핵심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노동자 자주경영을 넘어서는 여러 가지 고민꺼리들이 필요하겠죠. 하지만 출발점은 그렇다는 것이고요. 이게 녹색사회주의와 관련해서 두 번째로 말씀드리는 거고요.


왜 녹색사회주의인가 3. 성장에서 성숙으로, 노동에서 문화로 "좋은 삶"을 위하여

마지막으로 세 번째는, 그러면 이런 것들을 통해서 나아가고자 하는 지향점이 있을 겁니다. 한마디로 좋은 삶, 우리가 만들고자 하는 좋은 삶. 마르크스 엥겔스도 <공산당 선언> 맨 마지막에서 좋은 삶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잖아요. “각인의 자유로운 발전이 만인의 자유로운 발전의 전제조건이 된다.” 굉장히 알아듣기 힘든 독일철학 표현으로 쓴 것이지만, 자기 나름대로 좋은 삶에 대한 얘기를 한거잖습니까?

사실은 이제까지 사회주의에서 좋은 삶은 자본주의에서 이야기하는 성장과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성장이라는 단어와 관련된 경제학적 정의가 아니라, 성장이라는 걸 대중들이 머리에 떠올렸을 때 막연한 그림. 이게 자본주의에서도 그랬고, 사회주의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는 거죠. 크게 다르지 않은 가운데 사회주의가 경제적으로 밀리니까 사회주의가 망한거죠. 저는 이 ‘성장’이라고 표상되는 ‘좋은 삶’이 아닌, 다른 ‘좋은 삶’을 제시를 해야 되고, 거기를 향해 나아가야 되고, 이게 녹색사회주의의 궁극적 목표라고 생각합니다. 거기서 역설적으로 마르크스가 얘기했던 것 중에 사장되었던, 부각되지 못했던 바를 부각시킬 필요가 있다. 이게 자본론 3권에서 얘기하고 있는 ‘자유의 왕국’이라는 이야기죠. ‘자유의 왕국’은 결국 자유시간의 확보다. ‘노동으로부터의 해방’이다. ‘노동으로부터의 해방’이라고 얘기하면, 포스트모던이니 여러 얘기가 나오는데, 사실은 마르크스가 얘기했던 겁니다. 노동과정을 노동자가 통제해야 되지만, 노동과정은 어쨌든 고통스러운, 사람의 생존을 위해서 시간을 죽이는 활동이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해방의, ‘자유의 왕국’의 토대는 ‘자유시간’이다. 각인의 자유로운 발전이라는 건 결국은 자유시간에 이루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것은 결국은 생산 강박으로부터 족쇄가 풀어진 사람들의 삶이겠죠. 이게 기술적으로 표현했을 때는 ‘노동시간의 획기적인 단축’이고요. 이걸 적극적으로 부각시키는 게 녹색사회주의의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노동시간 단축이 제대로 이루어지려면, 노동시간 단축과 일자리 확대가 같이 연동되어야겠죠. 그래야 노동시간이 단축되는 만큼, 또 다른 사람들은 실업이나 비정규직 상태에 있는 사람들은 그 일자리를 채우면서 더욱 더 노동시간이 단축될 여지들이 생기는 것이고요. 그에 대한 중요한 제도적 보완장치로 ‘기본소득’ 등등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이걸 대중적으로 표상하는 건 더 이상 ‘성장’은 아닐거라고 봅니다. 물론 GDP 성장이라는 어떤 경제학적 척도는 계속 남아있을 거예요. 그리고 그것이 마이너스가 될 때 보다는 플러스가 될 때가 낫다는 등은 여전히 중요한 판단으로 남아있을 겁니다. 하지만 대중적인 표상으로서의 ‘성장’, 외연적으로 계속 확대되어야만 우리 삶이 나아질 것이라는 생각이 바뀌어야 된다는 것이고요. 일본 쪽에서 나온 얘기 중 하나는, ‘성장’이 아니라 ‘성숙’이 삶의 가치가 되어야 된다는 얘기가 나오는데, 중요하게 참고할 만한 이야기라고 봅니다. 

녹색사회주의에 대한 제가 생각하는 골자를 세 가지 측면에서 말씀을 드렸고요. 여기까지는 보편적이고 추상적인 얘기들이었는데요. 이걸 한국에 적용을 시켜야겠죠. 한국에서 녹색사회주의를 하자는 게 녹색 좌파정당의 취지이기 때문에요. 거기에 대해서 제가 부족하나마 몇 가지 말씀을 드리고 끝맺겠습니다. 이 글에는 구체적으로 안나와 있는데요. 제가 구두로 말씀드리겠습니다.


한국적 성장자본주의의 결과 -삶의 말살, 삶터의 말살 

저는 한국 자본주의의 중요한 기원은 결국 박정희 시대의 산업화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고 봅니다. 이건 여담이지만, 박정희의 자본주의는 독특한 자본주의예요. 기존 운동권 이론에서 박정희가 친미 정권이었다는 측면을 강조하면서, 친미 자본주의, 마치 미국식 자유주의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것처럼 생각하는데, 분명히 다른 점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다른 점들의 역사적 기원은 만주국 체제죠. 1930년대 만주에 건설되었던 체제는, 자본주의이면서, 1930년대 소련의 국가사회주의 체제를 도입한 아주 이상한 자본주의 체제를 일본인들이 만들어놓고 있었어요. 그리고 거기서 경험을 했던 사람들이 박정희, 최규하 같은 사람들이고, 이 사람들이 60년대에 자본주의 초기 정책들을 펼치면서, 국가사회주의의 어떤 특정한 측면과 결합된 한국 자본주의를 만들었고요. 그리고 그것이 완숙되어가는 시점에 중요한 시도들 중 하나가 1970년대의 새마을 운동이죠. 

재밌는 거는 새마을 운동의 상징 색도 녹색입니다. 녹색이 필드에서 서로 상반된 세력이 싸우는거죠. 현대사라는 배경에서. 이때 이루어진 중요한 측면들을 보면, 자본축적을 위한 총동원체제였습니다. 국가가 나서서 총동원, 국민들의 역량을 총동원했던 거고. 그러면서 두 번째로 그동안 그나마 존재했던 사회의 여러 자율적인 요소들을 최대한 국가로 흡수했습니다. 가령, 하다못해 사람들의 자율적인 금융시스템이었던 ‘계’ 이런 것도 새마을금고 이런 식으로 국가가 감독할 수 있는 체제로 흡수해 버리죠. 마을회관 만든 게 좋은 게 아니죠. 사실은 그때 ‘마을회관’을 그때 만들어졌기 때문에 이후에 좌파가 ‘민중의집’을 만들 힘이 떨어진 거죠. 외국에서는 그걸 그전에 좌파들이 ‘민중의집’을 만들었던 거예요. 그런데 한국에서는 좌파들이 싸그리 다 죽은 상황에서, 마을회관을 국가가 짓기 시작한 거거든요. 그러면서 당연히 공동체의 자원들이 말살되었죠. 

한편으로는 사람들이 고도로 개인화되면서, 한편으로 고도로 국가화되는. 양측면이 같이 갔던 거고. 이게 지리적인, 지역적인 측면에서 보면, 고도로 초집중제로 나타났습니다. 그래서 소도시들이 말살되고, 수도권이 하나의 도시국가가 형성되고. 농촌이 말살되었죠. 이런 틀 안에서, 이게 1990년대 말부터는 신자유주의 금융화가 결합이 된 게 한국의 자본주의지, 한국의 자본주의를 그냥 신자유주의 일반에서 연역해서는 안 된다고 보고요. 저는 한국에서의 녹색사회주의라는 것은 지금까지 말씀드렸던 한국의 역사적 과정들에 대한 ‘회복혁명’, ‘치유혁명’이라고 생각합니다. ‘회복’이라고 해서 과거로 그냥 돌아가자, 일부 생태주의 얘기하시는 분들 중에는 그런 분들이 있는거 같아요. 저는 거기에 동의할 수 없고요. 일부 성과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성과를 비판적으로 전유하면서, 기본적인 틀 자체를 새롭게 만들어가는, ‘반환혁명’(?), ‘회복혁명’ 이런 의미에서의 한국에서의 녹색사회주의다 라고 생각하고요. 
거기서 중요한 내용들이, 사실은 아까 말씀드린 내용이랑 맥이 닿죠. 결국은 보편적인 맥락이 한국에서 나타난 것이기 때문에. 그래서 한국의 자본축적 과정에서 만들어진 일중독 인간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게 노동시간 단축으로 나타나는 것이고. 비정규직의 경우에는 좋은 일자리 공유로 나타나는 것이고. 이것이 가능하게 하기 위한 복지국가. 


도농관계의 전환, 에너지 전환- 한국에서 녹색사회주의의 과제 

두 번째는 도농 관계가 전환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저는 문명이 발달한 상황에서 사실은 도시문명이 없어질 수는 없다고 봐요. 인간은 끊임없이 도시문명을 만들면서 자유를 꾀해 왔던 과정이 있기 때문에. 중요한 것은 한국처럼 수도권 도시국가와 나머지 식민세계로 존재하는 형태가 아니라, 문화와, 복지, 정치 등등의 중심지로서의 중간 규모의 도시들이 있고. 도시를 에워싸고 있는 농촌 지역이 있고. 그런 식으로. 지역자립형 체제들이 갖춰지는 것. 상당히 많은 시간이 걸릴 거라고 보지만, 그걸 향해서 나아가는 게 녹색사회주의의 한국에서의 중요한 과제라고 보고요. 

이것과 연동이 된 게 세 번째 에너지전환이라고 봅니다. 바로 이 과정과 함께 태양에너지 중심의 에너지 체제로 전환하는 과정이라고 보고요. 이렇게 이행해 나가기 위해서 결국은 생산단위 차원에서는 노동자 자주관리가 필요하고, 전체 사회경제적 차원에서는 참여계획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이것이 자본으로부터 벗어나고 비시장적인 그런 행위들이 확산되어 가는 과정 속에서 제가 앞에서 말씀드린 세 가지 과제들이 실현되어 나아가는 것. 이게 지금 현재 상황에서 녹색사회주의라고 얘기했을 때 주요한 논의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내용들을 계속 구체화시켜 나가면서 만들어나가는 정당이 이 시대에 필요한 녹색좌파정당이 아닌가 합니다. 이것으로 마치겠습니다.

김현우 : 말씀 잘 들었고요. 발제문에 포함되어 있지 않은, 구두로 표현한 부분은 조만간 글로 쓰실 것으로 생각됩니다. 지금 진보신당을 가지고 녹색정당으로 갈 것인가 얘기는 안 나온거 같은데. 플로어에서 거들어서 얘기를 할 수 있을 거 같고요. 지금 세 분에게 토론을 부탁드렸는데, 각각 이 발제문에 대한 의견보다는 약간 다른 얘깃거리를 던져주는 그런 내용이 될 거 같아요. 그래도 상관없다고 보고요. 

서형원 의원에게 주문드린 거는 한국 녹색정치 평가 전망이고요. 특히 녹색당과 진보신당이 총선 대응한 것과, 현 상황에 대한 평가, 한국의 녹색정치, 어떻게 생존하고 키워나갈 것인가? 진보신당, 녹색당이 같이 고민했던 부분이 있을거 같아서, 그런 것들을 얘기해 주시면, 장석준 의장 발제문에 대한 의견까지. 15분 정도 부탁드리겠습니다. 박수 주시죠.


서형원 녹색당 시의원 "지속가능하고 더불어사는 동네 어떻게 만들까?"

서형원 : 녹색 사회주의에 대해 이야기해주셨는데요. 지역에서 일을 하면서 보니까, 결국 우리가 동네에서 뭘 하는가를 생각해 보면, 그거더라고요. 지속가능한 거 하고, 더불어 사는 거 말고 뭐가 있나요? 대충 거기에 다 수렴이 되는 거예요. 짐작하시겠지만, 지속가능하고 더불어 사는게 녹색 사회주의랑 등치가 될까요? 말은 좀 축소시킬 수도, 확장시킬 수도 있지만 대충 맞아 떨어지지 않을까 싶어요. 지속가능이란 말도 여러 가지로 바꾸어 말할 수 있겠죠. 원래 지속가능하다는 말도 안썼었는데. 개념이 하도 타협을 하다보니까. 하여간. 더불어 산다는 것도, 그렇잖아요. 

힘이 있든 없든, 돈이 있든 없든, 집이 있든 없든, 투표권이 있든 없든, 시민이든, 그냥 거기 사는 사람이든, 지나치는 사람이든, 이주자든, 또 지금 태어나 있든, 아직 태어나지 않았든, 장애가 있든 없든 등등 이런 사람들이 더불어 산다는 게 연대라고 하기도 하고, 사회주의라고 말할 수도 있고, 인권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죠. 결국은 일하면서 느낀 거는 결국 지속가능하고 더불어사는 과천을 만들면, 그게 그냥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인거 같다. 결국 그걸 어떻게 채우고 급진화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있는거죠. 그걸 뭐라 표현하든지 간에. 녹색사회주의라고 표현을 하든, 지속가능하고 더불어 사는 사회라고 표현을 하든.

저희 동네에서 요즘에 다루고 있는 도시계획 문제도 그래요. 건축, 조경, 경관, 그리고 메스라고 하잖아요. 덩치(?) 있잖아요? 용적률이라든가. 이런 문제. 빈 공간을 얼마나 남겨둘 것인가? 그래서 어떤 사람이 거기서 살건데. 두 가지 문제를 해결하면 대충 이 문제가 해결이 되거든요.


차고 넘치는 생산력 vs. 인류의 1/3이 빈곤층

두 번째는 생산력 이야기가 아무래도 중요하잖아요. 생산력 이야기는 사실 오늘날 우리가 새로 깨달았다 하기에는 난감한 이야기인거 같아요. 너무 늦게 이야기하고 있는거죠. 제가 가끔씩 인용하는 것 중 하나가 김구 선생의, 제가 김구 선생을 특별히 잘 알지도 못하고, 애국자로 존경하고 그러는 것도 아닙니다. 1947년에 그렇게 쓰셨다고 그러더라고요. 오늘날의 인류가 가진 경제적, 뭐라고 표현했는지 정확히는 모르겠는데, 경제력, 물질적 생산력을 가지고 인류가 잘 나눠 쓸 수 있다, 이제. 그런 지점에 우리 인류가 도달했다고 하신 거예요. 그런 시대인식이 있었기 때문에 해방 후 우리나라가 경제적으로 강대국이 되는 게 아니라, 문화적으로 아름다운 나라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런 꿈도 꿀 수 있었던거죠. 아직까지 우리가 뺏어야 살 수 있다고 생각했으면 그런 생각 안했겠지만, 이미 그때 생산력이 너무너무 충분한거예요. 다만 우리가 착취당하고 있을 뿐이라고. 생각을 한거죠. 

그리고 무려 우리가 60여년이 지났잖아요? 그리고선 2000년까지 대략 50년 사이에 통계들을 살펴보면 굉장히 눈부십니다. 인구대비에 비해서 상당히 많은 식량생산이 이루어졌고, GDP는 말할 것도 없고, 에너지생산 말할 것도 없고, 살충제 생산량, 통계가 있어요. 이미 충분하다고 했는데, 충분한 걸 몇 배씩 초월해서 생산했는데, 그러다 보니까 한쪽의 결론은 그렇잖아요. 미국처럼 살려면 지구가 7개 필요하다, 우리나라는 서 너개 너 댓개 그 정도 되는거 같은데요. 그래서 지구환경 위기가 나타나고, 지속불가능해지고. 이게 한 편이지만. 저는 더 한편으로는 그래서 환경이 나빠진 게 아니라, 그 지경을 만들도록 삶이 전혀 개선되지 않았다, 이게 핵심인거 같아요. 누가 뭐라했든지 간에 그런 변화가 일어났는데도, 사회주의라고 표현하신 거, 혹은 더불어 살아야 한다고 했던 거는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는 거죠. 그게 문제의 핵심인거죠. 그러니까 방향을 잘못 잡았다는 거죠. 아예. 환경 위기 이전에 사는 방식을 잘못. 어떻게 삶이 발전할 것인가를 완전히 잘못 잡은. 지구 위기 이전에 삶의 위기이니까. 기아 몇 억명, 통계가 다 있었는데. 2달러 이하로 생활하는 사람들은 몇 억명. 대충 1/3 쯤 되잖아요. 지구 인류의. 그런 현실이니까. 

오늘날 이명박 정부 말기에 느끼는 삶의 문제들도 마찬가지고요. 그래서 우리가 사실 이런 문제들을 새롭게 생각한다기 보다는 상당히 오랫동안 사는 방식을 잘못 잡아왔고, 삶을 조직하는 방식을 잘못 잡아왔는데, 뒤늦게 지금 우리가 무엇을 해볼 것인가? 진보신당 해보고, 저도 옛날에 민중당 잠깐 있었거든요. 이것도 해보고 저것도 해봤는데 안되다 보니까 사회경제적으로, 정치적으로, 굉장히 오랫동안 잘못된 길을 걸어왔다 이런 생각이 있는거 같습니다. 


녹색당 창당 - 불가능이라 여겼던 진입장벽 뛰어넘었다

발제문 몇 가지 뽑아서 얘기하기 전에. 저거 얘기해야 겠구나. 참. 총선 대응, 현상 평가하고, 녹색정치 생존과 발전전략 얘기하라고 하셨는데. (웃음) 총선대응은 별로 얘기를 할 게 없는데요. 창당을 한 거예요. 녹색당 같은 경우에는. 그냥. 진보신당은 어떻게 평가하시는 거죠? 일단 해산한 걸로 평가하면 되나요? 하여튼 저희는 저희 입장에서만 얘기할 수밖에 없으니까. 이번에 일본 녹색당 창당대회에 갔다 왔는데. 우리가 뭘 했나 생각해보니까. 창당을 한 거예요. 창당이라는 엄청난 일을 한 거예요. 창당을 할 수 없다고 생각했거든요. 우리가 당원이 7,000명이고, 당비 내는 사람이 5,000명이라고 하니까 뒤집어지더라고요. 이 사람들이 전부다. 아시아태평양지역 녹색당 운동 하는 사람들이 전부다. 그런데 제도가 그렇게 되어 있으니 어쩔 수 없이 그 사람들을 모은 거잖아요. 어찌 됐든지 간에 5,000명이 당비를 내고...(김현우 : 일본이 몇 명 정도 되는데요?) (일본) 1,000명(?). 후원자 포함해서. 우리도 아마 정당 설립 요건이 그리됐으면 1,000명 모아서 창당 했겠죠. 어찌 되었든 간에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그 진입장벽을 뛰어넘었다는 거지, 그 외에 평가할 게 없어요. 

굳이 왜 잘 안되었는가 생각해보면, 저희 동네가 전형적인데, 녹색당원들이 동네에서 다 하거든요. 코오롱 지원하는 것도 거의 사실 녹색당원들이 열심히 하는데. 그 사람들이 당원인가 내가 잘 몰라요. 그냥 이미 동네 사회운동이나, 자기 역할 하는 사람이지, 당원으로서 정체성을 가지려(?) 선거만 치른 거기 때문에. 우린 아무 것도 사실 한 게 없어요. 선거 평가는 그렇고요.

생존전략과 발전전략은.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제가 집어치우고 선거캠프로 갔어요. 여의도 당사로. 그런데 진보신당이 왜 이렇게 신경이 쓰이는 거예요? 진보신당 어떻게 하고 있지? 자꾸 비교하게 되는 거예요. 지나고 보니까 진짜 웃기는 거예요. 안그래야 된다고 생각하는데, 자꾸 신경이 쓰이는 거예요. 경쟁자라고 생각한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처지가 비슷해서 그런지. 오늘 저를 부르셨잖아요? 우리가 1%인지 0.48%인지 모르겠지만, 결국은 나머지 99%와 대결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그 %에 맞게 깨작깨작 거리는 게 아니라, %가 중요한 게 아니라, 나머지 전체와 대결하고 싸우는 거 말고 특별히 다른 전략이 있겠는가? 선거 과정에서 누구랑 누구랑 합치는 게 우리가 그렇게 의미가 있겠는가? 

특히나 정치적으로 봤을 때 예를 들어 아주 무식하지만, 진심으로 얘기하면, 두물머리, 밀양, 강정을 버리고 가는 선거는 재를 뿌리고 가야지, 거기에 야권연대 이런거 안하고. 이런 생각으로 사실, 하면서 싸우지 않으면, 우리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걸 가지고 나머지 99.52%와 싸우지 않으면 특별히 없고. 사실은 너무나 소수이기 때문에 거기에 특별한 전략전술이 있을까 싶어요. 구체적인 국면에서는 항상 지혜롭고 듣기 좋게 얘기하고, 멋있게 얘기하는 게 필요하지만 큰 틀에서 봤을 때는 우리가 뭐 그다지 대단한 전략전술이 필요한가 싶어요. 그거는 또 선거와 당장 내일 닥친 정치적 상황에 대한 이야기고. 그 이면에서 우리는 뭘 해나갈 것인가? 뭘 해나갈 것인가 하는 문제는 결국 우리는 누구인가 하는 건데. 


풀뿌리 지역운동이 녹색이다

생각나는 대로 말씀드리면, 녹색당 사람들은 그냥 풀뿌리예요. 제가 녹색당이 참 좋은 것 중 하나는, 어느 현장에, 어느 싸움이 벌어져서 가더라도 우리 당원들이 참 열심히 해요. 그 지역에서 뿌리내리고 오래 일한 사람들이 우리 당원이라는게 너무 좋은 거예요. 강정에 우리 당원들이 열심히 하거든요. 그런데 특별히 강정에 다니러 갔다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강정에 열심히 뿌리박고 있는 당원들이 알고 보니까 ‘너도 녹색당원이야?’ 이렇게 되는거죠. 이 사람들이 아직 당원으로서의 정체성이 불분명한 게 당으로서는 그렇지만. 그런 사람들이 당을 채우고 있다는 것이 우리의 정체성이고. 그렇다라면 그게 지역이든, 온라인이든, 직능이든, 청년유니온이든, 어디든지 간에 오래. 이걸 전체 국면에서 여러 가지 전략전술을 생각할 수도 있지만. 거기에 뿌리박고 사는 사람들이라는 의미에서 풀뿌리라는 것이고. 그 사람들이 그 일을 잘 해나가면서 이것이 하나의 정치적 대안이 될 수 있다는 거. 아직 녹색당원들은 긁어 모았을 때 이 사람들이 전혀 훈련되어 있거나 하지 못한데. 그게 핵심이 되겠죠. 

최근에 저희동네 협동조합이나, 사회적 경제에 대한 관심이 되게 많아지면서 공공성, 혹은 사회주의라는 것이 담고 있는 것에 대해 우리가 논쟁할 일이 많은거 같아요. 환경운동과 노동운동 하면서 고민했던 것 중 하나가 우리나라 공기업이 공공성이 있느냐 하는 문제였어요. 민영화는 공공성이 없는 거는 확실하잖아요? 그러면 공기업은 공공성이 있느냐? 제가 뭐라고 얘기했냐 하면 ‘우체국과 소방서 말고는 공공성이 없다’. 그런 폭력이 어딨냐? 이게 무슨 공공성이냐? 차라리 민영화하는 게 낫다라고까지는 얘기하지 말기로 하지만.

그런거죠. 사실은 저희 동네에서도 예를 들어서, 어려운 분들한테, 거동이 불편한 분들한테 도시락 배달하는 사업이 있는데, 행정이 꽉 잡고 하고, 자원봉사 모집해서 배달하는데, 어마어마하게 불만이 많아요. 서비스 질이 낮아요. 제가 어려운 분들 도와달라고 하면 잘해. 주는 건 잘하지만, 먹는 사람은 ‘나는 이가 약한데. 딱딱한 거 준다’ 잘 안 맞아요. 마음이 없는 거예요. 이 행위에. 이 서비스에 사실. 그러니까 여러 가지 문제가 일어나는데. 어제 우리 동네 강연회 하면서, 우리 동네 불법노점상 하면서 장사 하는 사람들이 이런 일 맡아서, 공공서비스 제공하는 사회적 기업이든, 협동조합이든, 스스로 밥하는 노동자의 조합이든, 그런 일을 해서 이런 거를 맡아서 해준다면 다를 거 같아요. 자세히는 말씀드릴 수는 없지만, 전달체계를 그려 봤기 때문에. (?) 거동을 전혀 못하는 사람 도시락을 창문 옆에 내려놓고 가는 거하고, 문 살짝 열고 넣어 주고 가는 거하고는 굉장히 많은 차이가 나거든요. 사실은 뜻있는 시민들이 그걸 만들어서 일을 하고 행정을 뒷받침해주면 공공서비스의 질이 완전히 다른, 훨씬 더 공공성이 확보될 거 같은 거예요. 그런 일이 많아요. 새 ( )의 공공성을 한 번 생각을, 우리가 민영화 하느냐 마느냐, 국가냐, 자본이냐, 이거 가지고 싸우는 것과는 조금 다른. 공공성에 대해 생각해 볼, 아까 말씀하신 분권과 뭐 있죠? 그런거. 지역분권. 이런 거가 살아나지 않을까 하고요.


자발성은 '계획'되지 않는다

노동정책도 할 얘기가 있는데. 결국은 인간에 대한 이해가 바뀌어야 되겠죠. 아까 참여분권형 계획이라는 말을 쓰셨는데. 저는 하여튼 '계획'이라는 말은 조금 더 아직은 비판적으로 접근하고 싶어요. 거기다가 참여분권형이라는 말을 붙이든 지역 뭐라고 붙이든간에. 왜냐하면 사실은 작은 동네에서의 일도, 아무리 작아져도 자발성은 계획되지 않아요. 저는 동네에서 아무 얘기도 못하겠어요. 움직이는 사람도 없고, 계획해봐야 그건 니 생각일 뿐이고. 자기 생리가 있잖아요. 활력이 있잖아요. 이 사람들이 활력있게 일을 할 수 있도록 하는 토양. 자발적으로 일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계기. 돌 던지면 파문이 일어나는. 아무 일도 하지 말자는 건 아니예요. 생각보다 훨씬 더 치밀해야 되요. 사람이 움직여야 하기 때문에. 그러니까 계획을, 기획을 잘해가지고 움직여 줄 것이다 라는 게 아니라, 자발성이 가장 큰 촉매제 아닐까요? 훨씬 더 치밀한 기획이 아닌, 섬세한 배려, 뭐라고 표현해야 될 지. 필요한데요. 계획보다는 다른. 계획이 아니면 사회주의가 아닌 건 아니니까. 스스로 만들어 나가는. 

아까 뭐, 저기 길드사회주의 얘기하셨는데, 저는 장인경제라고 해도 비슷하고, 협동경제라고 해도 비슷하고. 어떤 개념이 맞다 이런 얘기는 전혀 하고 싶지 않은데. 그런 생각을 해보셨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occupy 중요하잖아요. 결국 우리가 지켜보는 사람으로서, 감시하는 사람으로서, 문제제기 하는 사람으로서 니들이 계속 키를 쥐고 있는데 조금씩 바꿔가라 이런 게 아니잖아요. 내가 하겠다는 거잖아요. 0.48%에 불과하더라도. 그럼 occupy 해야 되는건데. 점거 해야 되는건데. 그러면 삼성전자를 점거해가지고 운영할 건가는 다른 거잖아요. 아까 핵, 원전을, 원전도 아니고 도로공사나 LH도 아니고. 하여튼 그 공장은 아닌. 아니잖아요. 그렇다고 내가 쉽게 그러니까 협동조합이 최고다 라고 얘기할 수도 없겠어요. 하지만, 중요한 건 문제제기 ( ) 때려부셔야지만이 우리가 할 수 있다는 거. 삼성은 (?) 해야만 우리가 할 수 있다는 거. 혹은 우리는 감시하고 비판하고 저들이 바뀌기를 우리는 밖에서 요구할 수밖에 없다는 걸 넘어서가지고, 우리가 만들어낼 수 있는 occupy, 경제에 대한, 지역에서든 어디에서든, 그거를 정말 해야되지 않을까, 풀뿌리라고 생각을 하죠. 그런 생각을 하고요. 

경제성장은 모르겠어요. 저는 공부를 안한 경제학도인데. 아무리 생각해도 경제학적으로도 외부효과라고 하잖아요. 지역에서 벌어지는 개발사업만 봐도 실제로 돈으로 계산할 수 있는 건데도 계산을 안하기 때문에 너무나 많은, 예를 들어 요즘 실제 2,000만원어치 값어치가 있는 땅을 그린벨트라고 묶어놓고, 300만원에 사면, 300만원으로 계산해가지고 수익이 난다 하잖아요. 말도 안되잖아요. 말도 안되는데 그렇게 계산하는 거잖아요? 이미 경제지표나 이런 것들에서 급진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때가 되었다. 

마지막으로, 정말 두서가 없으니까. 도농관계의 전환이라든지, 도시농업, 우리 사는 네트워크 어떻게 할 건가? 어저께, 며칠 전에 토론에서, 해외원조나 ODA 얘기하다가 결국 커뮤니티 네트워크 같은 거. 우리가 ODA를 정부가 주는 거 감시를 해야되잖아요? 해외원조를 주거나, 기업이 투자하거나, 감시해야 되는데. 현장에서 영어하는 사람 한 명도 없지만, 주민들이 스스로 조직되서 싸우는 조직들이 많이 있잖아요? 우리는 바로 거기로 달려가서 네트워킹 할 수 있을거 같더라고요. 그런 관계. 그거는 농촌에 있냐, 도시에 있냐 중요하지 않잖아요. 도시에도 ‘두리반’(사례)도 있고. 무슨 뭐 농촌에 있냐, 도시에 있냐가 아니라, 그렇게 싸우거나 다르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네트워크가 어떤 사회 비전을 열어줄 지는 몰라도, 뭔가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김현우 : 배현철 국장님, 노동정치는 노동판에서가 알아서 하고, 녹색정치는 녹색위원회가 알아서 하라, 이런 분위기가 없지 않습니다. 노동정치에서 바라본 녹색정치, 또는 녹색정당은 어떻게 이해되고 뭐가 채워져야 할까요? 노동정치와 녹색정치의 만남이 어디서 어떻게 가능할까요?


배현철 : 제가 2007년에 금속노조 정치국장이었는데요. 장석준 동지랑 세계 노동정치 사례를 만들어보려고 노력했었는데, 분당되는 바람에 제가 그만둬야 했어요. 연락도 못하고 끝났던 적이 있습니다. 이 주제와 관련해서도, 2년 전에 노동안전보건실 실무 책임을 맡았었는데요. 옛날에 산업안전부장 하던 역할, 지금은 바꿔서 노동안전보건이라고 이름 붙였는데 그걸 하면서 느낀 겁니다. 제 경험에 의한 것이라는 점을 미리 말씀드리고요.


지구생태계는 자본주의 경제시스템으로 모두 연결돼있다


여러분 설악산 계곡에 은어 낚시 하는 거 구경하신 적이 있습니까? 없으시죠? 은어가 보리필 때 올라오는데, 어디까지 올라오냐하면 동네까지 올라와요. 바다와 맞닿아 있는 수로가 있으면 은어가 올라오는데. 어렸을 때에 동네 앞까지 올라오던 은어를 알거든요. 왜냐하면 워낙 많이 올라오니까. 가서 바가지로 하나씩, 세숫대야로 하나씩 잡아가곤 했어요. 99년에 김하경 선생을 만나러 마산 진동에 갔더니 거기서 은어가 올라오는 거예요. 지금도. 연어도 마찬가지겠죠. 바닷길이 연결이 되어 있으면 안에 와서 알을 낳고 내려가서 커서 다시 알 낳으러 회귀를 하거든요. 만약에 실개천들이 다 연결되어 있고 깨끗하다면 어느 마을이나 다니지 않겠어요? 그런 상상을 하면서 오늘 얘기를 해봐야겠다 이런 고민을 했습니다. 그런 상상을 하면서 들어봐주시면 좋겠습니다.


오늘 아침에 한겨레 신문을 보니까 아마존의 금채취업자들이 수만 명이랍니다. 거기 보니까 수은이 30톤 쯤 버려진다는 기사가 있었습니다. 52년에는 일본 미나마타 마을에 있는 비료공장에서 나온 수은이 바다를 오염시켜서 그 마을에 살던 사람들이 미나마타병에 걸리기도 했죠. 최근에 마무리 되었다고 해요. 5만 여명이 이 병에 걸렸었죠. 97년에 영국에 있는 토르케미컬(?) 공장이 규제 때문에 남아프리카로 이전을 했는데 그 공장에서의 수은이 주변 강 등을 오염시켰던 사례가 있습니다. 잘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6월에 나온 국제 해양생태연구 프로그램 보고서를 보면 바다도 괴멸상태에 있습니다. 한 세대가 채 가기 전에 해양생태계가 괴멸될 수도 있다고 얘기합니다. 세계 바다의 산호초가 3/4이 괴멸위기에 있고. 98년에 산호초의 12%가 괴멸, 죽은거죠. 농업용 비료, 플라스틱, 쓰레기들. 온갖 쓰레기. 화학적 물질들이 대기로 오든, 비로 씻겨 내려가든 그런 과정을 거쳐서 쓰레기들이 바다로 내려가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건들은 신자유주의가 재구축되는 과정에 기인합니다. 생산기지는 많이 재구축되었죠. 월마트는 2008년만 하더라도 4,000억불의 수입이 있었다고 하는데 이 규모가 오스트리아 한 국가 수준이고, 중국의 10대 교역 대상 중 하나라고 합니다. 전 세계에 생산기지를 구축한 이런 산업체들이 이렇게 전 세계를 오염시키고 쓰레기를 배출하고 바다를 괴멸시키는 상태.


이런 것들을 보면 경제를 바꾸지 않으면 미래가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고. 이런 것들은 다 연결되어 있는 것이죠. 경제 시스템으로 연결되어 있는거죠. 다시 말하면 자본주의 경제 시스템으로 다 수렴되는데. 이 경제 구조가 발전하면, 자본주의의 핵심이 성장이잖아요. 성장이 멈추지 않으면 지구생태계는 미래가 없는 것이다, 이런 것이겠죠. 경제나 사람사회는 지구 생태계의 하위개념이잖아요. 자원의 한계와 수용력의 한계를 보여주고 있고.



오염된 공장- 태아의 제대에서도 발견되는 공장 화학물질들


금속노조에서 작년, 재작년 발표했던 결과입니다. 현대자동차 울산공장에 있는 1,600여개의 화학물질. 이게 현대자동차에서 쓰는 모든 것은 아닙니다. MSDS라고 하는 물질자료가 있는 것만 조사한 겁니다. 예를 들어 칙칙이 이런 것도 많이 쓰는데 그런 것들은 MSDS 에 없어서 조사를 못했고. 갖춰진 것만 한 겁니다. 총 9,044개 제품을 수거해서 분석을 한 겁니다. 해 봤더니 대략 발암성 1급, 2급, 3급, 기타 독성, 잔류성 물질들입니다. 약 50% 가까이가 발암물질이었고요. 발암물질이거나 독성화학물질이었습니다.


화학물질은 항상 어떤 화학물질이든지 어떤 성질을 가졌는지 표기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저희가 조사한 공장내 화학물질들에 이런 표기가 없거나 영업비밀로 숨겨놔서 물질 성분을 알 수 없는 것들이 너무 많았습니다. 자그마치 44%였고, (?)번호가 없는 것이 30%나 되었어요. 얼마나 엉망으로 운영되고 있는가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유럽의 경우 화학물질이 어떤 독성정보가 있는지를 표기하지 않으면 시장에 진입할 수 없게 제도를 만들었습니다. 가장 세계적으로 좋은 제도를 갖고 있는 셈입니다.


2010년 당시에 현대자동차만 확인을 했었는데요. 울산공장이 약 2만9천명 정도 되는데 암으로 인한 사망자만 약 43명입니다. 이건 현대차 회사에서 나온 통계입니다. 삼성 백혈병 잘 아시죠? 그런 문제가 삼성만 있는 게 아니고, 현대자동차 공장이나. 예를 들면 금호타이어도 굉장히 많았다는 것을 확인하는 과정이었죠. 자동차제조업으로 인한 유해물질 배출 데이터도 전체 중 약 3위를 차지합니다.


자동차 화학물질 배출로 인한 유해 대기오염물질 또한 굉장히 위험합니다. 대기오염 물질 중에 디젤 배기가스는 일급발암물질입니다. 그런 것들이 대기 중으로 흘러 나갑니다. 공장에서만 나오는 게 아니고, 자동차로 인한 오염물질도 어마어마합니다. 발암물질이나 유해화학물질들은 모든 사람들, 시민들, 도시, 농촌, 바다 모든 것을 오염시키고 있어요. 어린이들 제대혈을 조사해보니까 이런 화학물질이 280여 종이 나왔다는 겁니다. 유전물질이 아닌데도 유전이 되고 있는 셈이죠. 발암물질에 오염된 학용품은 말할 것도 없고요. 예를 들면 고무에 들어 있는 것들. 그 다음에 학교는 석면교실이죠. 대부분. 그 다음에 지하철 석면.


방사능 유해물질도 심각합니다. 병원에 가면 X-ray 한 방 찍는데 0.1에서 0.3 마이크로시버트(μSv) 된다고 해요. 비행기 한 번 타는 정도라고 해요. LA 한 번 가는 수준이라고 하는데. CT 한 번 찍으면 약 70번 정도 X-ray 찍는 것과 같습니다. 복부는 훨씬 많죠. CT를 찍으면서도 방사능에 노출되서 암을 일으키는 사례들이 많이 고발되고 있습니다. 울산의 암 발병률은 다른 데보다 2배 이상 높다고 합니다. 암 사망률을 보면, 한국은 2010년 인구 10만명당 144.4명 정도 되는데, 약 7만 여명 쯤 되고 전체 사망의 28% 차지합니다. 뇌혈관질환이나 이런 거 보다 훨씬 높다는 것을 보여주는데요. 국민 평균 수명이 80세까지 생존시 발병률은 34% 정도 된다고 합니다. 이건 국가 암정보센터에서 나온 통계입니다.



발암물질 없는 사회 만들기 국민행동, 건강한 자동차 만들기 운동 등을 시작


직업성 암이 어느 정도 되는지 보여주는 건데요. 한국에서는 한 해에 약 20명 정도가 산재로 인정이 됩니다. 어떤 때는 훨씬 줄어들기도 하는데. 실제로는 어마어마하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중앙일보 기사죠. 약 6,000명 정도가 직업성 암으로 사망한다는 연구보고도 있습니다.


이런 과정들을 2년동안 조사하고 지켜보면서, “발암물질 없는 사회 만들기 국민행동”이라는 걸 만들었습니다. 작년에 7월달에 준비위를 만들었습니다. 여기에는 생협들, 학부모 단체나 교사단체, 환경단체, 환경단체는 환경운동연합을 포함한 4개 단체. 녹색연합만 빼고 다 들어와 있고요. 대중조직은 금속노조, 민주노총, 보건의료단체 그렇게 해서 20여개 조직이 참여해서 만들었고요. 그렇게 해서 화학물질 관리 제조 혁신을 위한 일, 그리고 발암물질 사회 만들기가 목표입니다. 어떤 방식으로 사회에 확산시켜 나갈까 하는 고민 속에서 처음에 어린이 용품들을 중심으로 해서 했고요. 이런 게 알려지면서 서울시가 내년 사업으로 책정했어요. ‘발암물질 없는 학교 만들기’를 박원순 시장이 책정을 해서 내년 예산에 반영된다고 합니다. 그리고 “건강한 자동차 만들기 운동”도 발족시켰습니다. 자동차 실내 발암물질이 얼마 전 미국의 연구소에서 나온 걸 보면, 굉장히 많죠. 세계 최고 수준입니다. 포름알데히드나 톨루엔 등등.


원래는 “발암물질 없는 세상만들기 국민행동”을 고민할 때 ‘암예방 특별법’을 고민했었어요. 암예방 특별법 제정을 위한 대책, 이렇게 접근해보자. 왜냐하면 암이라고 하는 거는 노동자들 뿐만 아니라 누구에게나 공포의 대상이기 때문에. 접근을 어떻게 할까 얘기했는데. 얘기하다보니까 충분한 캠페인과 시민설득의 필요성이 제기되었고, 발암물질 없는 세상만들기 국민행동이라는 운동틀로 고민해보자, 제기되서 국민행동을 만든거고요. 발암물질 없는 사회만들기를 통해서 계속 확산해 오고 있는 중인데. 암예방 특별법에 대한 연구를 해 놨죠. 국가 암관리 제도를 한국, 다른 나라 사례들을 연구했고, 암 제도 패러다임 구성을 위한 연구도 해 놓은 편이고. 그걸 이제 보고 심상정 의원실에서 암예방 특별법을 자기네가 제출하겠다 하고 있습니다. 이걸 할 때 사실 진보신당에게도 얘기를 하려고 했는데, 접촉은 했었는데 잘 안되었죠. 의원실이랑 얘기는 했었는데.


어쨌든 이런 사업들을 하는 이유는 아까 공장사례에서 보셨듯이, 상품이 생산되고 사용되고 폐기되는 전 과정들이 곧 오염의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공장에서는 노동자들에게 노출되고, 이 상품이 사회에 들어가면 시민들에게 노출되고, 또 아이들에게 전이되고, 이런 일련의 과정에 접근함에 있어서 노동자들의 이해를 관철하려면 어떻게 해야 되냐, 사회 속으로 가야된다, 그런 판단 속에서 사실은 암의 문제, 발암물질 없는 사회만들기 이렇게 접근하게 된 거죠.


공장과 사회가 분리되지 않는 것이고. 끊임없이 순환되죠. 채취과정, 생산과정, 쓰레기 폐기과정, 이런 일련의 경제순환과정을 거쳐서 끊임없이 오염되고 파괴되어 가고 있는 과정을 끊어내려면 노동자들이 공장에서만 얘기해서는 안된다 이런 거죠.



노동과 녹색, 동떨어져 있지 않다


노동정치 얘기했는데. 노동정치가 14-5년 쯤 되었죠. 민주노총 97년 파업 이후. 국민승리21 되는 것부터 시작하면. 어쨌든 실패로 끝났어요. 누구나 공유하듯이. 결국은 그것의 원인은 대리정치로 갔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울산북구 같은 경우에는 진보정당이 북구청장 연임을 했어요. 그런데 그게 실제로는 자기 혼자 간 것이지 노동정치가 이루어진 게 아니에요. 북구의 노동자들의 수 만 명의 요구와 지역적 과제들이 결합되면서 실천이 되었어야 하는데, 자기 혼자 가서 자기 혼자 머리로 한 거겠죠. 그런 과정은 노동자들이 직접 정치에 참여하는 길을 막았고, 결국은 실패로 돌아오게 된 거죠.


또 하나는 노동운동의 혁신의 실패도 있어요. 저는 두 가지를 얘기하고 싶은데. 노동운동의 혁신의 실패라고 하는 것은 금속노조를 보면 되는데. 교섭구조가 공장 안에 있어요. 그저께인가요? 목요일날 현대자동차가 합의를 했습니다. 잠정합의를 했죠. 그런데 이건 누구도 터치 못하는 교섭과정이에요. 약 950만원 일시금, 550% 성과금으로 받는데. 이건 현대자동차 노동자들의 성과가 아니거든요. 사실은. 정확히 얘기하면 하청과 생산체계 내 모든 노동자들이 만들어 낸 잉여인데 이걸 현대자동차 정규직만 챙기는 구조예요. 어마어마하죠. 천 몇 백만원 일시불로 일시에 챙기는데. 자기 것이 아닌데 자기가 챙기는데도 누구도 얘기 못하는 거죠. 그런데 그게 공장 안에서 교섭이 이루어지는 구조에서는 다른 방법이 없는 거예요. 다른 사람들의 이해를 반영할 길이 없기 때문에.


그런 점에서 금속노조는 2001년부터 그런 점에서 혁신을 실험하는 과정이었다고 봐요. 민주노총이라고 하는 틀 내에서. 그건 중앙교섭이라는 틀로 나타났고. 2003년인가요? 주5일제를 합의하죠. 물론 이건 제도화되요. 노무현 정부에 의해서. 중앙교섭을 통해서 주5일제가 정리되고 나니까, 그때는 4만 조직일 때에요, 대공장이 들어오기 전이죠. 이게 혁신의 과정이었다고 생각해요. 노동운동의 혁신. 흔히 얘기하듯이 산별노조와 정치세력화 양날개론 누군가 했었는데. 어쨌든 혁신의 실험이었다 생각이 되는데. 결국은 10여년 만에 중앙교섭이 실패로 돌아갔죠. 왜냐하면, 대공장들이 교섭구조를 내놓지 않기 때문에. 공장 안에서만 교섭구조를 가지고 있으면 자기들의 이해만 반영할 수밖에 없는 그런 구조를 뛰어넘지 못한 거예요. 기득권을 놓지 않으니까. 뛰어넘기 위한 실험을 했었는데 실패한 거예요. 현재로는. 이게 영원한 실패라고 단정하긴 어렵겠지요.


노동정치와 노동운동의 혁신의 실패라고 하신 분들이 있는지 모르겠는데. 어쨌든 간에 앞의 일련의 실험 과정, 노동, 경제시스템 이런 구조에서 볼 때, 노동과 녹색이 분리되는 것이냐 하면 저는 아니라는 생각을 해요. 제가 보니까 세계적으로 학문적으로 실험은 있었겠지만 정치 현실에서는 융합되지는 않았던 거 같아요. 이제 융합되어야 될 상황에 와 있다. ‘녹색노동당’ 식의 정당이 앞으로 만들어야 할 정당이 아닌가. 노동자가 실제로 녹색 사회주의와 융합된 상을 가지고 출발을 해야 되지 않은가 생각합니다.


김현우 : 새로운 진보좌파정당이 녹색사회주의 정당이 되어야 된다는 것은 잘 정리가 되었는데, 누구를 기반으로 어떻게 녹색사회주의 정당을 만들 것인가에 대한 얘기가 안 나온 거 같습니다. 지금 진보좌파정당 건설 관련 연석회의 얘기도 나오고 단체들 접촉도 되고 있는데. 이 녹색사회주의 정당으로서의 어떤 기반, 어떻게 연결을 해서, 누가 녹색사회주의 정당을 만들 것인가? 기반과 과정에 대한 의견, 아이디어. 그리고 녹색노동당 얘기도 나왔는데. 받아들여질 수 있겠는가? 그런 질문 드리고 싶습니다.


서형원 의원한테는 진보좌파정당이 오늘 들었듯이 녹색정치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진정성이나 신뢰가 가는지. 두서 없이 던져보고요.


배현철 동지에게는 고민은 많이 전달되는데. 제2노동자 정치세력화가 얘기되고 있고 활발히 얘기되고 있는데. 그런 노동정치 재구성 과정에서 녹색가치의 고민은 어떻게 담기고 있는지, 혹은 어떻게 담아져야 된다고 보는지 질문을 드립니다.


이명희 동지는 지역 사회에서 진보정치운동에서 녹색정치의 의미와 과제, 진보좌파정당 운동에서 녹색정치의 디딤돌과 걸림돌을 꼭 집어서 말씀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이명희 : 이명희입니다. 본의 아니게 (19대 총선 비례대표)출마를 하게 되고 나서, 토론회에 오면 당직자분들이나 진보정당운동 오래 하셨던 소위 리더분들하고 얘기를 하게 되는데요. 그분들이 살아온 삶이나 고민의 맥락과 소통하면서 늘 염려가 있습니다.
제 별명이 마을에서 살 때 ‘민들레’였는데 요즘 제 별명이 ‘좋아요’가 되었어요. 제가 왠만하면 잘 공감하고 잘 알아들어요. 제가 이런 얘기를 하는 이유는, 앞서서 어떤 발제를 하셨든지 간에, 토론자가 어떤 토론을 하셨든지 간에, 웬만하면 못 들었지만 ‘좋아요’ 했을 거예요. 이견을 가지고 격정적인 토론을 할 게 별로 없어요. 그런데 동의가 잘 안 되는 게 있어요. 우리가 할 수 없고. 도저히 알아 들을 수 없을 때는 질문을 하거나, 그거를 내 걸로 해서 움직이기 힘들기 때문에. 그런 건 있지만, 제가 지금부터 얘기하는 것도 맥락이나 여러 가지 진보정당 건설의 맥락에 함께 동의하고 고민하면서 풀어 놓는다고 여겨주세요.



마을운동, ‘돈 있고 여유 있어서 하는 거 아니냐’ ?


저는 공동육아를 통해서 마을운동을 시작했어요. 10년을 성미산 마을 관련해서 일을 하고, 지금은 평택에서 마을이 파괴되거나 마을이 이주되는 것이 어떤 것인지 연구하고 관찰하는 일을 하고 있어요. 성미산 마을을 떠나면서 ‘국가’라는 개념이 확 들어온 것 같아요. 성미산 마을에 있을 때는 우리는 국가라는 말을 별로 쓰지를 않고 관심이 없었던 거 같아요. 근데 나와서 보니까 내가 살아왔던 다른 관계나 삶 속에서는 대단히 국가와 충돌하고, 국가와의 관계 속에서 무엇이 해결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 있구나.


세 가지의 질문을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성미산 마을에서 재밌게 살면서. 왜 재밌었냐 하면, ‘야, 이거 할래?’ 하면 진짜 하는 거예요. 예를 들어서 서너 명만 모이면 협동조합 만들고, 학교도 만들고, 어린이집도 만들고. 그러면서 ‘우리는 국가에 저항하는 운동이야!’, ‘우리는 변혁운동 하고 있어’ 이러지는 않았거든요. 관심이 없었던 거죠. 우리끼리 ‘이거 되는구나, 재밌다’ 이러고 있는데 밖에서 토론회 오라고 불러요. <생명평화결사> 그런 데서 주최하신 토론회였는데, ‘마을이 세계를 구한다’는 책을 가지고 하는 토론회에서 마을 얘기를 하라고 해서 마을 사람들 서너명이 모여서 갔어요.


저희는 지나가다가 5분에 한 번씩 사람들을 만나면 눈인사를 해요. 그런 게 되게 재밌다고 생각했고, 적어도 반경 2km 이내 살고 있는 아이들 이름을 다 알아요. 안녕, 민들레, 안녕 짱구 하면서 지내요. 그리고 외상도 가능하고. 아이들 학교 끝나고 동네 돌아다녀도 별로 걱정을 안 해서 좋고. 우리가 살면서 좋은 점들을 얘기했던 거 같아요. 신났는데. 어느 분이 막 흥분하셔서 일어나셔가지고. 그게 뭐하는거냐? 나도 해볼려고 하는데, 정말로 어렵다. 그거 다 너희들 돈 있고, 여유있어서 하는거 아니냐, 그거 안된다. 이러시는거예요. 그러게.


그래서 우리 돌아와서 뒷풀이 하면서 ‘야, 우리 뭐 잘못 얘기한거 아니냐?’ 그 중에 몇 분이 대학원을 진학하셨어요. 그때 처음으로 우리 마을을 객관화시켜서 사회문화적 의미라든지 정치경제학적 의미랄지 이런 것들을 공부하셔서 논문을 쓰고, 책을 내시더라고요. 그것이 계기가 되어서 우리도 스스로 객관화시켜 보기도 하고, 저렇게 20가구가 10년동안 살면서 했던 게 도대체 뭐야, 하면서 많이 생각하게 됐던. 저를 고민하게 했던 질문 하나였고요.



마을살이, 파편화된 개인들이 공존하는 새로운 준거집단 될 수 있다


또 하나는 마을하면서 생협을 했는데. 생협하면서 저는 너무 좋았어요. 마을 사람들 300명이 모여서 만들었어요. 낮에 마을 안에 있는 고용되지 않은 여성, 전업주부, 노인, 일할 수 없는 약한 분들, 아이들이 낮에 있단 말이에요. 낮에 동네에 누가 있는지를 보면서, 그분들과 어떻게 살까? 고민한 결과가 생협이었어요. 근데 이런 얘기를 하면 (토론회 같은 데서) 사람들이 또 화를 내시는 거예요. ‘그거 해보려면 동네에 살아야 되지 않나. 그 동네에. 살아야 되려면 돈이 있어야 되는데 나는 못하겠더라’.


늘 그런 질문을 받으면서 사는 것 같아요. 그 동네에서 살 때엔 ‘내가 국민이다’ ‘반제반미에 수탈받고’ 뭐, 민족, 민중 이런 거 잘 모르고 살았는데 평택에 와서 보니까, 미군부대가 있어서인지 반미 민족의식이 있는 분들이 많더라구요. 또 밀양이나 대추리나, 용산이나, 쌍차를 보면, 국가폭력에 대해서 대단히 고통받는 국민들이 계시고. 의외로 밀양 어르신들 보면, ‘국가가 나한테 이럴 수 있느냐?’ 국민으로 생각하시는 거잖아요. 그런데 저는 ‘국민’이라는 개념으로부터 우리 스스로 노력해서 벗어난 게 아니라 이미 저절로 해체되고 있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우리의 힘으로 스스로 해방된 게 아니라, 신자유주의와 글로벌 시장주의에 의해서 국민이라고 할 수 없는 또 다른 실체에, 어떤 소비자, 소비의 욕망으로서의 주체로서의 소비자, 시민, 또 다른 파편화된 개인이 되어가는 거잖아요. 국가에 저항하는 것은 국민일 수 있어야 되고, 자본에 저항하기 위해서는 노동자일 수 있어야 되고. 무엇으로 우리가 어떤 주체를 통해서 새로운 사회를 설명할 것인지 고민을 하게 되요.


실은 국민도 아니고, 자신이 노동자일 수도 없는. 홍세화 선생님은 배제된 자라고 표현하지만. 저는 ‘탈선’해 가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탈선해 가고 있는 사람들이 신뢰할만한 준거집단을 가지고 있지 못할 때, 거대한 고도관리체계로 휩쓸려 들어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던 거죠.


마을살이는 인간의 자존과 삶의 원형으로서 예부터 인류가 역사를 이루면서 살면서 몸 안에 담고 있던 상호호혜와 협동과 공존의 양식을 갖고 있는 거잖아요. 도시에서 마을을 이루면서 살아보니, 이런 정도 규모에 이런 준거집단을 갖지 못하면 지속가능하게, 행복하게 공존할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을 많이 하게 됩니다. 그렇게 하려면 그런 결핍이 있는 사람들이 결핍을 충족하려고 하는 연대 지점을 만나야 되는데. 저는 그래서 그렇게 탈선하는 이들의 어떤 인간적 규모의 공동체가 필요하다고 보는 거고요. 그것을 가로막고 못하게 하는 것들이 있으니 어렵죠. 산업화된 사회에서 파편화된 개인이 공존할 수 있으려면 기존의 문화와 기존의 몸으로는 어려우니까, 새로운 문화와 몸을 가져야 하겠죠. 그래야 되지 않겠나 생각하고 있습니다.


김현우 : 여기까지 하고 또 나중에 보충하실까요? 새로운 진보좌파정당 어떻게 할 것인가? 하면 될 거 같은데. 제가 아까 질문 던진 거에 대해서 5분 정도 답변 부탁드리겠습니다. 장석준 의장님.



녹색사회주의, 누가 만드나? 또는 누구와 함께 할 것인가?


장석준 : 어려운 질문인데요. 두 가지는 구분해서 봐야 할 거 같은데. 제가 발제한 녹색 사회주의를 추구하는 사람들의 결사가 있을 것이고. 뭘로 표현되든. 협회가 되든, 연구소가 되든. 그게 곧바로 당이 되면 전위정당 비슷하게 되겠죠. 그런 결사가 있을 거고요. 그런 녹색사회주의를 실현시키기 위한 사회적 토대가 있을 겁니다. 그리고 그 사회적 토대를 정치적으로 표현하는 정치세력이 있을 수 있겠죠. 그때의 정치적 세력은 분명히 자기의 사회적 세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대중정당이겠죠. 제가 이 말씀을 드리는 이유는, 지금 전자는 반드시 있어야 되고. 그런 조직은 만들 수 있다고 봅니다. 지금 한국 사회의 지적 풍토에서는. 그런데 후자는 쉽게 만들어질 수 없을 거라고 봅니다. 특히 그것을 하나의 정당으로 표현하고자 한다면, 지금 현재 상황에서는 제가 봤을 때 통합진보당 식으로 ‘날림정당’이 아니면 만들 수 없다고 봅니다. 제 얘기가 너무 심했나요? (웃음)


저는 몇 달 전에 김종철 부대표랑 같이 쓴 글에 ‘노동녹색블럭’이라는 표현을 썼는데요. 그러면서 그게 하나의 정당으로 표현될 수도 있지만, 정당 간 연합으로 표현될 수도 있다고 단서를 달았는데. 지금 우리 수준에서는 정당간 연합으로 일단 틀을 만들어 가는게 가장 현실적인 게 아닌가 생각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제대로 된 녹색노동당이건, 녹색사회당이건, 녹색좌파당이건 생기려면, 녹색도 많이 변하고, 사회도 좌파도 많이 변해야 되는데. 사실 변하자는 당위성에 대한 인식만 있을 뿐이지, 그것이 체화되서 구체적으로 나타날 단계는 아니라고 보거든요. 제 생각에는 지금 단계에서는, 넓은 의미에서의 연대를 고민하는 녹색당과, 녹색사회주의적 지향을 가지고 있는 노동당 내지는 좌파당이 일상적인 연대를 통해서. 요즘 쓰이는 통상적인 용어로 하면, 진보 블록이라고 할 수 있으나. 지금 진보라는 용어가 워낙 똥값이 돼서. 노동녹색블럭일 수도 있고, 무지개 좌파블럭일 수도 있고. 아무튼 블록을 형성하는 게 바람직하겠다 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더군다나 저는 장래에 한국 정치가 제대로 발전하려면 현재의 대통령제가 아니라 내각책임제로 발전해 가야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더더욱 내각책임제를 염두에 둔다면, 지금 식으로 대중이 가장 쉽게 자기가 지지하는 정당의 승리를 얻을 수 있게 해주는 정당 구조. 이건 대통령 중심제로 특화된 정당구조이고. 그게 아니라 대중이 자기가 선택한 정당, 내가 이걸 선택함으로써 무엇을 선택하는지 가장 분명하게 알 수 있는 정당구조. 이게 내각책임제에서 가장 특화된 정당구조라고 보고. 후자를 염두에 둔다면 저는 전체적으로 협력을 해서, 높은 수준에서 연립정부를 구성할 수 있을 정도로까지 제휴관계를 맺는. 하지만 한 정당은 좌파의 뿌리를 분명히 하고, 혹은 노동계급의 뿌리를 분명히 하고. 또 한 정당은 녹색을 분명히 하는. 그런 정당들이 분립해서 협력하는 게 당분간은 적당하지 않을까. 다만 저는 열어두고는 있습니다. 한국 상황이 역동적이기 때문에, 가령 합쳐져서 녹색좌파당이 될 수도 있는 거고요. 그리스의 급진좌파연합과 같은 모델이 될 수도 있다고 봅니다. 급진좌파연합은 사실은 한 정당이 아니에요. 그 안에 여러 정당이 있습니다. 여러 정당이 있으면서 선거가 있으면 한 정당으로 등록해서 같이 활동하는데. 그 안에 의사결정구조가 다르게 있는 여러 정당들이 있을 수 있고요. 그 부분은 열어둬야 된다고 보고요.


다만, 제 뿌리가 노동당, 내지는 사회당에 있기 때문에 뿌리를 염두에 두고 말씀을 드리면요. 대단한 자기변신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수사적인 의미의 녹색화가 아니라, 사회적 토대를 재구성해야 된다고 보고요. 사회적 토대를 재구성한다고 했을 때는, 현재 존재하는 노동조합이라는 토대 외에, 다른 토대를 의식적으로 만들 수밖에 없다고 봅니다. 한국 운동이 그 토대를 만드는 데 실패하거나 혹은 그 토대를 염두에 두지 않았기 때문에. 저는 그 핵심을 협동조합이나 민중의집으로 최근에 표현되는 바로 그 축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을 의식적으로 스스로 만들어 나가는 노동당 내지는 좌파당이어야만 녹색당과 긴밀한 협력이 될 것이고, 전체적으로 녹색좌파당이 될 것이라고 보고요.


한마디만 더 보태면. 제가 최근에 작업을 해왔고. 발제문에 인용되어 있는 G.D.H 콜이라는 영국의 사회주의자가 있는데, 그 사람이 쓴 <영국 노동운동사>가 책으로 나올 거거든요. 그 서문에 분명히 하고 있어요. 이 책의 주인공은 셋이다. 주인공은 원래 노동운동 하난데. 히드라처럼 머리가 세 개가 있는 노동운동이죠. 처음부터 분명히 하고 있어요. 머리 셋은 뭐냐? 첫 번째는 노동조합운동, 두 번째는 협동조합운동이고, 세 번째는 노동자 정치운동이다. 처음에 영국 노동운동의 출발부터 그랬는데. 우리는 거기서 축이 빠져 있는거죠. 이 부분을 분명히 의식하면서 해나가는 좌파정당운동이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생각합니다.

‘녹색’이 누군가의 전유물이 될 수는 없다


서형원 : 진보신당의 녹색의 진정성에 신뢰가 가는가가 질문해줬던 건가요? 녹색은 누구의 것도 아니기 때문에. 뻔한 얘기죠. 너네가 정말로 녹색인지 까봐라 하는 것은 성립이 불가능한 이야기라고 생각을 하고요. 내심은. 그 말씀을 듣고 나니까 녹색이라는 말을 당명으로 쓰겠다고 그러셔가지고 우리 당이 좀 긴장 좀 했으면 좋겠다. 이런 생각도. 어떻게 녹색당이라는 당명이 남아있었는지 모르겠어요. 그게 더 신기한 일인데. 스스로 녹색이 되기 위해서는 해야 될 일이 많거든요. 넘어서야 될 산이 많고, 입증해야 될 것이 되게 많은데. 제가 아까 그 중 하나로서 우리는 풀뿌리 운동도 하고, 뭣도 하지만, 우리가 녹색당인가? 당원 가입은 했지만, 그냥 녹색당이라는 당명을 차지하고 앉아가지고 녹색이라고 그러는 건 웃기는 일인거 같아요. 그래서 누가 누구에게 진정성 운운하는 건 웃긴 거라고 생각하고요. 활발하게 진짜 녹색자 넣어서 당명을 지으면 어떠냐? 활발하게 논의해 보세요. 우리 당 사람들이 어떻게 나오나 보게. (웃음)


결국은, 아까 저도 말씀드렸지만, 나는 누구인가? 라는 거에 답하는 문제라고 생각해요. 장석준님께서 두 가지를 말씀하셨는데. 녹색사회주의 이거를 추구하는 결사, 사람들. 그리고 이것을 실현하는 사회적 토대. 그게 따로따로 만들어져서 만나는 건 아니잖아요. 어떤 토양 속에서 성장하고 일해 온 사람들. 일하면서 그 토양을 만들어 온 사람들. 이어야 녹색이 된다면 너무 빡빡한 이야기인가요? 예. 그런데 사실은 그렇죠. 생태주의자들은 그렇게 얘기하잖아요. 지구라는 토양에 여러 생명이 살아온 게 아니라, 지금의 이 환경과, 대기와 토양 조성 자체(?) 생명체 자체를 만들어 왔다고 그러잖아요? 대체로 사실이라고 그러더라고요. 그 토양을 함께 만들어 온 사람들이 녹색인 거고. 그 사람들이 정치를 하겠다고 맘을 먹으면 녹색이 되는거. 그래서 저는 녹색당에 있는 우리들이 그런 점에서는 참 좋은 주체들이다. 그러면 진보신당의 녹색은 누가 만들어 나갈 것인가? 녹색을 표명한다는 게 진정성이 있느냐 없느냐를 다른 차원에서 따질 수는 없고. 이데올로기라든지 어떤 결사라기보다는 그런 토양을 만들어 온 사람들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까요? 풀뿌리 운동에서 환경 이야기하는 것도 우스운 이야기예요. 섞여 있는 거지. 그런 일을 해온 사람들이 여기 있는 두 분, 이런 분들과 함께 녹색당이라는 명칭을 쓰든 안쓰든 정치적 결사를 지향해 간다? 그러면 우리는 긴장을 하겠죠. 같이 하든지, 뭔가 그런 문제가 있는 거라고 생각이 들어요.

진정성 얘기를 하셨는데. 사람들이 그런 건 있는 거 같아요. 가끔씩. 녹색을 하려는 것인가? 
예를 들어서 하나 기억나는 거는. 지난 선거때 ‘탈탈탈’ 탈핵, 뭐 있었는데. 한겨레신문에 정치광고 낼 때는 환경, 생태, 에너지 다 빠졌더라고요. 아 이럴 수도 있구나. 선택 가능한 문제인가? 이런 게 너네들 본질이다 이런 뜻이 아니라. 아, 이게 선택 가능한 문제였구나. 저희는 선택 가능하지 않거든요. 그런 차이는 있겠다. 그런 생각은 했어요.


녹색사회주의, 현장/지역정치로의 재구성 과정에서 사업으로 반영되어야


배현철 : 노동정치 재구성 이런 말씀을 하셨는데. 저희가 고민했던 거는 뭐냐하면. 포스터도 붙여 있던데요. 고민했던 게 뭐냐 하면. 노동운동이 어떻게 다시 자기 자리를 잡아갈 것인가 고민을 했던 것이고요. 그러기 위해서는 실천의 영역에서 주요하게 활동하는 사람들. 예를 들면 비정규직 활동가라든지. 비정규직 활동가들은 상당히 좌파 동지들이 많은데. 극좌파까지 널려 있어요. 그런 걸 묶어 내는 작업이죠. 이런 부분들을 실천 단위로 묶어 내는 작업을 몇 년동안 해왔습니다. 비정규직 투쟁본부라든지 그런 것을 금속노조 내 설치하고. 같은 공동실천을 해보면서 그런 과정을 거쳐서. 그런 과정에 민주노동당이 분당되고 하는 과정이었죠. 대선 이후에. 그런 과정을 겪으면서 정치도 변하게 되고. 고민이 들었던 것은. 어떻게 현장이 재구성될 것이냐. 이런 고민을 했던 것이고요. 앞으로는 현장이 지역을 틀로하는 정치조직화가 되어야 된다. 그런 고민을 나누다 보니까 실제로는 정파가 달라도 이해의 문제나 고민이 상당히 최근에는 비슷했어요 다들. 이대로는 안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죠. 예를 들어 좌파현장조직은, 중앙파와 노동전선이 양대산맥인데. 나머지는 민주노동당 안에 있는 것이고. 토론도 해보면 고민도 비슷해요. 그렇게 만들어져서 금속의 현장 활동가의 재구성, 재조직화를 통한 민주노총의 혁신의 흐름을 만들어 내는 것. 그런 고민을 했던 것이고. 그 중심은 비정규직 동지들이 되야된다는 고민이 있었던 거죠. 그런 것은 정치조직화로 실현이 되어야 하고요.


내년 대선. 작년부터 그런 고민을 했는데. 비정규직 후보를 내면 어떨까? 그런 고민을 했었고. 그런 고민들이 연결되면서 확산된 게 뭡니까? 지금 현재 보니까 대부분의 좌파들, 그리고 여기 이런 토론을 함께 하고 있는 사람들. 잘 진전되는 것 같지는 않은데 토론 모임에서 함께 하고 있고. 중앙파는 따로 하고 있는 것이죠. 엊그저께 보셨겠지만, 양경규 동지가 ‘그동안 노력을 해봤는데, 어려운 거 아니냐. 지역 조직부터 같이 해보자.’ 제안을 내셨던데. 어쨌든 간에 그런 고민이 진행 중에 있다 보여지고요. 그런 게 정치로서는 어떻게 수렴될 수 있을지는 남은 과제라고 생각이 들어요. 이런 데가 통합해서 하나의 당으로 갈 수 있을 것인지. 그런 전제 속에서 얘기되고 있다고 보여지는데요. 보다 더 원래 문제의식은 현장의 재조직화, 지역정치로의 재구성, 이런 부분들이 컸었던 거죠. 왜냐하면 울산이나 창원을 보면서 할 일이 굉장히 많았을텐데 안되어 왔던 지점들은 대상화되고 이런 부분에서 생겨났었기 때문이예요.


할 수 있는 일들이 많죠. 예를 들면, 현대중공업에서는 자동차에 도장을 하면서 지역에 환경오염을 많이 시키는데 지역에 돈을 많이 뿌려요. 페인트가 엄청난 독성물질이 많아요. 따개비가 붙지 않게 하려면 뭘 섞어야 하고. 발암물질 덩어리죠. 이런 것처럼 지역에서 할 일이 널려 있어요. 자동차공장도 마찬가지죠. 울산이 다른 데보다 암 발병률이 두어 배 높다는데. 그런 실천들이 활동 내에 들어와야 된다고 생각하거든요. 발암물질 문제를 가지고 암 예방 특별법을 얘기하면, 이 특별법 내용도 복잡하게 얽히게 되죠. 화학물질 관리의 영역부터, 예방의 개념에서 출발하는 거니까 그러려면 규제도 되야 하고, 복잡하게 엮일텐데. 자본의 활동도 어떻게 할건지 규정하게 되는 거겠죠. 그런 실천들이 노동조합으로 들어와야 된다는 것이고, 그게 녹색으로 표현되든 어떻게 되든지 간에. 농업 문제와 관련해서도. 토론으로서는 개별적으로 하는데. 노조가 지역농산물을 급식에서 사용하도록 교섭을 통해 강제해 들어가고, 조합원 가족들이 수십만 명이잖아요. 이런 틀거리가 실천 영역으로 옮아오게 만들고. 사업으로 계획되어야겠죠. 그런 과정들이 필요합니다. 여러 가지가 있겠죠. 그런 과정들에 대한 사업으로 반영되도록 해야 된다고 봅니다. 여러 영역이 있다고 봅니다.



방청객 토론


김현우 : 플로어에서 좀 간절한 의견들이 있을 거 같아요. 왜 어떤 새로운 진보좌파정당 건설은 녹색이어야 하는지. 나온 얘기와 관련 있어도 좋고, 관련 없어도 좋으니까. 최소한 세 분 이상의 이야기를 듣겠습니다.


성남 당원 박** : 녹색 의제들을 시민들이나 대중들은 어떻게 받아들일까 하는 고민이 있습니다. 평창이 동계올림픽 유치하려다 실패했을 때 민주노동당 강원도당에서 동계올림픽 떨어진 게 다행이다, 환경문제 더불어서 얘기를 했었는데 그걸 보고 친구가 보고 경악을 했었거든요. 강릉에 있는 친구가, ‘니네 얘기 너무 쎈 거 아니냐. 그거. 지금 강릉이든 평창이든 시민들은 떨어져가지고 그것 때문에 발전이 안된다면서 심란해하는데 잘됐다 하면 어떻하냐’ 비난을 한 적이 있었어요. 그 외에도 강원도는 원자력 발전소 문제도 있고, 골프장이 300개가 넘게 있고. 정선에는 활강 경기장 만든다고 난리가 났고요. 저희 아버지부터도 이거 만들어지면 경제발전 되고 좋지 않으냐 하는 논리가 있죠. 강원도가 특히나 더 외면되었던 지역이기도 하고. 특히, ‘동계올림픽 개최 못하면 원주에서 강릉까지 전철이 만들어지지 못해’ 이런 식으로 정부가 알게 모르게 위협한 것도 있고요. 경제발전, 경제발전 해가지고, 환경파괴를 외면하게 만드는, 발전이 우선이라는 식으로 만드는 분위기가 있거든요. 강원도처럼 개발에서 외면받은 사람들한테, 녹색의 목소리라든가 개발이 아닌 다른 대안을 어떻게 얘기해야 될까 그런 고민이 있습니다.


기** : 진보신당이라는 정당이 앞으로 녹색정당으로 갔을 때 어떤 녹색이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제가 환경운동을 하면서 계속 들었던 고민이고, 당원이기 때문에 계속 들었던 고민이고. 그리고 진보신당이라면 환경문제와 관련해서 환경단체들과는 뭔가 달라야 되지 않겠냐 그런 고민을 했었어요. 예를 들어서 우스운 비교일 지도 모르지만. 환경단체의 회원들은 대체로 제가 볼 때 중산층이에요. 먹고 살만하고 여유있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진보신당 같은 경우에는 하루하루 먹고 사는 거에 치여 사는 사람들을 대변하는 사람들이라고 알고 있기 때문에. 진보신당이라면 환경문제에 대해서는 다른 데와는 달라야 된다. 그게 뭐냐 하면, 저도 잘 모르겠어요. 케이블카 운동을 하면서, 진보신당 은평 당협에서 적극적으로 결합해서 계속 산 꼭대기까지 지지방문을 은평당협이 했었거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쉬운 거는. 사실은 당협에서는 그 정도의 활동이 최선이라고 생각해요. 더 중요한 거는 당이 당으로서 국회의원도 있고, 뭐 있어야 정책이나 제도도 바꾸는 역할을 해야 되는데. 사실은 그런 역할들은 저희가 민주당을 찾아가야 되거든요. 민주당을 찾아가서 상의하고 이 문제를 해결하려 하는데. 아시다시피 민주당 같은 경우 지역개발과 관련해서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에 한계가 있죠. 그런 부분에서 오는 아쉬움도 많았고.


환경단체와 뭐가 다르냐. 환경단체도 지역으로 내려가서 지역주민들과 함께 하려고 끊임없이 프로그램을 만들거든요. 앞으로 녹색정당이라고 하면, 당은 그러면 환경단체와 다른 게 뭘까 하는 생각이 들었고요.


문** : 저는 당원은 아니고요. 녹색에는 여러 가지 의미가 있는 거잖습니까? 지난번에도 느꼈지만 농촌에 대한 고민은 별로 없어 보입니다. 대안이 됐건, 신자유주의가 됐건, 자본주의가 됐건 그런 폐해에 대한 대안이 됐건, 현재 어차피 농촌을 안지 않고 갈 수는 없거든요. 잘 사는 나라가 되려면. 실제로 농촌을 버린 나라 치고 잘 사는 나라가 없어요. 그런데 그 부분을 안고 가야 되는데. 그런데 너무 도시 위주로 생각이 되는 거 같고요.


그 다음에 드는 생각은. 정당 정치를 하시는 분들인지는 몰라도, 항상 이거를 했을 때 저 끝에 가서 어떻게 할 것인지 고민을 하다 보니까 너무 방향성이 없는 거 같아요. 그 부분에 대해 아쉬움을 느끼고 있고요. 녹색 같은 것도, 가령 주변의 생협이나 지역공동체 운동 하시는 분들도. 아까 이명희 위원장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개개 공동체가 잘 되면 누군가가 억지로 네트워크 연결 안해도 잘 될거라는 희망이 보이는데. 그 전에 ‘야, 이걸 우리가 어떻게 내려가서 다 하고, 조직하냐’ 고민하다 보면 시작을 못한다는 거죠.


그리고 배현철 국장님께서 말씀하신 부분인데. 저는 공장하고 반대쪽 side 에서 일하는 쪽이라 그런 쪽에 대한 정보는 많은데. 한계점은 뭐냐면, 끄집어 내오시는 주체들은 절대 동의를 안하신다는 거죠. 제가 이해하는 측면에서는. 그분 스스로들 돈 때문에 자기 생명을 바치고, 발암물질에 노출이 되고 뭐하고, 반대를 하시는 분들인데. 과연 그 분들을 끄집어 내오는 게 가능할 지 의아합니다.


김현우 : 오늘 주제 쟁점과 관련해서 기** 동지가 얘기하신 거는 장석준 동지가 얘기한 것과 약간 좀 상충되거나 해설이 좀 필요한 거 같아서. 제가 다시 질문을 드리자면. 기** 동지는 어떤 녹색인지 진보좌파정당이 분명히 해야된다는 측면이었는데. 장석준 의장님은 제가 듣기로는 진보좌파정당은 노동중심으로 재구성하고, 녹색정치는 녹색당이 주로 하면서 연대를 하는 게 현실적이지 않느냐 그렇게 얘기를 들었어요. 오해인지 아닌지. 아니면 우리의 녹색정치의 녹색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는 질문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을 하시는지.


장석준 : 그래서 제가 말씀드릴 때 말미에 협동조합, 민중의집 말씀을 드렸는데. 단순히 기존 관성속에서 움직이는 좌파정당이나 노동자정당이라면, 사실은 선거 때 녹색당과 협력을 한다 하더라도 굉장히 공학적이거나 상층 중심이게 되겠죠. 그렇게 되지 않을 자기 혁신을 의식적으로 추진하는 좌파정당, 노동자정당이어야 한다는게 분명히 강조되어야 할 것이고. 그때 저는 핵심이 협동조합이나 민중의집이라고 사례를 말씀드렸는데. 사례의 밑바탕에 있는 거는 결국은 노동자가 공장 안의 강제노동에서 벗어난 자율적 의식과 자율적 삶을 얼마나 복원하는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당분간은 노동자정당, 좌파정당에 있어서 녹색의 핵심은 노동자가 강제노동으로부터 한 발자욱이라도 벗어난, 어떤 자신의 자율적 삶의 공간을 스스로 협력해서 어떻게 만들어내는가? 한국에서 과연 만들어낼 수 있는가? 그걸 보여주고 확산시켜 나가는 게 핵심이라고 보고요. 그게 이제 구체화해서 얘기하는 게 사회적경제니, 협동조합이니, 민중의집이니 그렇게 나오는 거라고 봐요.



생태적 관심 자발적으로 형성될 것: 그 토대는 당이 적극적으로 만들어야


물론 녹색이라는 것 안에는 이것이 한 부분에 불과하지만 지금은 우리는 여기서 출발해야 되겠죠. 만약에 그것이 잘 되고, 몇몇 선구적인 활동가들의 문제의식이 아니라, 대중들이 ‘저 당은 저런 걸 하는 것이구나’ 인지될 정도로 확산될 정도라면 바로 그 거점을 중심으로 해서, 상당히 활동적인 노동자들이 누가 시키지 않아도 사회적 관심이나 정치와 생활을 연결시키는 것이나, 좁은 의미의 생태적 관심도 그야말로 자발적으로 형성될 수 있을거라 보거든요. 다만 그 토대가 형성되어야 하는 건데, 그거를 당이 의식적으로 해야 된다는 것이고요. 그렇게 부연 강조를 드리겠습니다.


그렇게 봤을 때 먹고 사는 문제에 봉착해 있는 서민들이 중산층과 다른 것은. 중산층은 개별화되서 자신들이 여유가 있는 것이기 때문에 환경문제에 접근하는 것이지만, 우리가 대변하려는 사람들은 그 틀을 통해서, 지역의 공동체적인, 지역의 커뮤니티적인 공간을 통해서 접근한다는 것입니다. 그게 가장 커다란 차이가 되지 않을까? 그 정도의 가설적인 고민을 가지고 있고요.


농촌 문제 굉장히 중요하죠. 그래서 제가 끝날 때, 제가 몇 가지 같이 말씀드리면서 끝맺겠는데요. 그래서 도농관계의 전환 이런 부분들을 말씀드렸던 건데. 사실은 아직도 많이 추상적이어서, 이런 부분들 저도 계속해서 고민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데. 이미 한국 운동 내에서는 지나친 도시중심적 시각과 지나친 농촌회귀적 시각으로 이원화되고 있다고 봅니다. 그래서 20대 청년들의 운동 속에서는 지나친 도시중심성이 이미 나타나고 있는 거 같고. 생태운동, 특히 귀농운동 형태로 나타나는 속에서는 지나치게 기존의 도시문명의 성과들을 부정하는 흐름도 없지 않아 있다고 보는데. 이런 것들을 치유하는 것 자체가 좌파정치의 과제라고 보고요. 제가 아까 한국에서의 녹색 사회주의는 어떻게 보면 박정희 혁명에 대한 ‘치유혁명’이 아닐까 이런 말씀을 드렸는데. 그러한 문제의식에서 가장 중심된 축이 말씀하셨던 농업문제라든가, 농촌과 도시의 새로운 관계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는데. 저도 숙제로 가지고 있는 것이고요.



체제변혁의 전망을 가진 '노동자 자주경영'이라면


한 마디만 더 말씀을 드리고 싶은데. 배현철 동지께서 산업 현장 내에서의 환경문제 말씀을 하셨고. 그거를 제기하는 방식이 공장 바깥에서 캠페인 하는 방식. 노동자는 일면 타협하고 일면 문제제기 하는 거죠. 사실 그 생산과정에 참여함으로써 자신이 임금을 확보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타협을 하는 것이고. 그게 사실은 말이 안되는 거지만. 일정 수준을 넘어섰을 때에는 공장 바깥에서 지역 사회의 힘을 빌려 업고 문제제기를 하게 되는. 모순적인 그런 건데. 그런 거를 타파해 나가는 노동운동을 만들 생각이 있느냐, 만들 수 있느냐? 그게 녹색노동당의 자기 시험이라고 생각해요. 여기서 참고될 만한거는. 제가 아까 노동자 자주경영이라고 말씀드렸는데. 이게 추상적인 노동자 자주경영이 아니라. 노동자가 공장을 경영했을 때는 어떻게 달라질 수 있다, 달라져야만 한다는 전망을 가진 노동자 자주경영을 고민해야 한다면. 이 부분이 충분히 노동운동이 자기내화해서 고민할 수 있고, 추진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닌가.


예컨대 70년대 영국 루카스 비행기 회사에서 비슷한 자주경영 실험이 있었거든요. 이 회사가 만드는 상품은 전투기였습니다. 그런데 영국이 전투기가 안팔리니까 공장 구조조정하게 되고, 노동자들을 짤라내게 됐거든요. 거기에 대해서 노동자들이 대안적인 구조조정 계획을 제출한 거죠. 그러면, 신종 전투기를 설계해서 만들자고 제안을 한 것이냐? 그게 아니라 전투기를 만드는 주된 금속이 알루미늄이기 때문에, 알루미늄을 활용한 다른 제품을 생산하자. 대표적인 게 유모차. 이런 설계를 제시하고. 이 계획에 따르면 노동자들 안 짤라도 된다. 생산 라인만 바꾸면 된다. 물론 채택되지는 않았습니다. 그 기업이 자본주의 기업이기 때문에. 하지만 이런 식으로 고민했을 때 노동운동의 녹색화가 실현될 수 있는 거 아닌지. 이런 것들을 고민하는 장으로서의 좌파정당이라면, 가장 높은 의미에서의 녹색과 적색의 만남을 실현하는 정당이 될 수 있지 않겠는가? 그런 단상을 말씀드리고 끝맺겠습니다.


서형원 : 평창 동계올림픽 같은 문제가 벌어졌을 때 어떻게 할 것인가? 전형적인 문제죠. 첫째. 욕을 먹더라도 반대한다는 성명을 내는 것이라면. 아마 신념을 가진 지식인들의 실천일거나, 신념을 가진 지식인들의 정치적 결사의 발언이거나 주장일 수 있겠죠. 환경단체는 좀 다를 거 같아요. 저 같은 경우 환경단체 처음에 들어가서 하는 일이 파견가는 거거든요. 거기서 먹고 자면서 주민 조직화하고, 교육선전 하고서, 주민들과 함께 싸워 이기고자 하고, 주민들이 그것에 대해서 성장하기를 바라고. 이렇게 실천을 하죠. 환경단체가 이렇게만 한다는 것은 아니지만. 환경단체는 조금 더 현장에 근접해 있지만 사실은 현장 그 자체는 아닙니다. 지역조직이 있어도 그래요. 지역조직이 있어도 거기서 주장하거나 거기서 주민들과 같이 싸우기는 하지만 주민 자신이 되지는 않아요.



진보신당의 녹색은 환경단체 중산층의 녹색과 다르다? 자기위안적인 컨셉


저는 그게 되게 한계가 있어 보였어요. 굉장히. 다람쥐 쳇바퀴 도는 거 같았어요. 이거 하면 동강 터지고, 동강 되면 뭐 터지고, 동강은 댐 막으면, 다른 걸로 (?) . 그러니까 그게 되게 싫었던 거예요. 그래서 정치를 해야겠다고 생각한 거거든요. 그게 뭐냐하면 그 주민들이 해결을 봐야 한다. 이거는. 근데 그게 왜 정치라고 생각했는지 모르겠어요. 근데 하여튼. 정당이 녹색이라고 한다면, 그게 어느 정당이든지 간에. 그 지역 주민들이 거부하고 새로운 대안을 갖는 주민들이 성장해 가도록 하는 거. 근데 사실은 그런 주민들이 있어요. 대체로. 정부 청사 이전으로 떠들썩하고 다 반대하는 거 같은 과천에서도 찬성하는 상당수의 사람들이 있어요. 전혀 정치화되어 있지 않은거죠. 전혀 그 목소리가 조직되어 있지 않은거죠.


그러니까 우리가 필요한 거잖아요. 어떤 시민을 만들 것인가? 우리가 어떤 시민이 될 것인가? 저는 결국 그 문제라고 생각하거든요. 정치는 모든 사람이 하는 거잖아요. 무식하든 돈이 있든 없든, 모든 사람이 하는 거라고요. 신념을 가진 특정한 집단의 사람들이 그 뜻을 실현하기 위해 운동을 하고 성명을 내는 거랑은 굉장히 다른 거라는 거죠.


흔히 진보신당이나 진보정당의 녹색은 환경단체 중산층의 녹색과 다르다고 컨셉을 잡아 가시는데. 이거는 굉장히 자기 위안적이에요, 제가 보기에는. 굉장히 자기 위안적이고요. 사실은 그 정치를 담지하는 그 시민들을 만들어가고 있는가? 우리 스스로 그런 시민이 되가고 있는가가 핵심이예요. 저는 그걸 어디서 제일 크게 느꼈냐면. 레미제라블 읽으면서 제일 크게 느꼈는데. 이 사람들이 그 당시에 새로운 시민이 혁명과정에서 탄생했다는 거에 대해서 얼마나 큰 자부심을 가졌는지 몰라요. 놀라운, 새로운 정치가 열렸다는 자부심. 녹색 일을 하는 사람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소통방식, 우리가 생각하는 의사결정방식, 우리가 주장하는 방식과는 완전히 새로운 방식으로 대화하고 의사결정하는 사람들이거든요. 그걸 만들어내야 세상이 바뀌는 거잖아요. 아까 말씀하신 대로 박정희의 몇 십 년 한국식 자본주의를 뒤집어 엎을 녹색정치를 하려면 전혀 새로운 시민이 만들어져야 되는 겁니다. 저도 환경단체에서 일하다가 이쪽으로 왔지만, 그걸 주장해서 망치로 때려가지고 뜯어고치는 걸 넘어서 그런 사람들이 되고, 그런 사람들을 만드는 게 되야 그게 정치운동이고 당의 녹색이 아니냐 그런 생각을 합니다.



녹색정치를 담지하는 시민, 새로운 몸, 새로운 문화 만드는 것이 녹색정치


이명희 : 장석준 선생님하고 서형원 의원 말씀에 동감이 많이 되고요. 제가 말씀드리려고 했던 ‘마을’이라고 하는 시공간도 그런 것들을 담고 있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었는데. 자세히 말씀 못 드렸는데. 저는 아까 질문하신 것 중에 환경운동은 중산층들이 많이 여유 있어야 하는 거다 일면 맞지만, (?)선생님 말씀하신 것처럼. 중요한 거는 그것을 지키고자 하는 사람. 생태계, 자치구, 나의 환경과 나, 서로 상호작용, 그걸 지키고자 하는 시민이 만들어지는 게 가장 근본적인 힘이잖아요. 저는 제도의 변화로 물론 됐으면 좋겠지만. 그것보다 모두가 그것을 지키고자 하면 지켜지는데. 그것을 지킬 수 없는 몸. 생명에 대해서 무감각해지는 그런 몸으로 변해가는게 더 괴롭습니다. 실제 중산층. 소위 말해서 직접적으로 자연과 노동을 통해서 관계 맺고 하는 분들이 정말 지키고 있나? 생각해보면 그렇지 않다고 보였어요. 뭐냐하면, 실제 흙을 만지고, 실제 노동하고, 내가 그것과 나의 관계가 된 주체에 의해서 지켜진단 말이에요. 그거 없이, 의식 있는 단체든 정당이든 이거는 근본적이지 않을 거 같아요. 그래서 환경단체에서 투쟁하는 사람들은 중산층이고 의식있는 사람들이다 얘기하는데 실제 그렇지는 않다고 봐요. 끝까지 투쟁의 현장에서 누가 그것을 나의 몸처럼 여기고 투쟁을 하는지 보면, 결국은 그게 민중이고, 농민이고, 그걸 직접적인 관계를 맺고 있는 주체입니다. 그런 분들과 좀 더 연대하고 만나고 그런 사람으로 되는 것이 아까 제가 말씀드린, 새로운 몸이 되고, 새로운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했던 것들입니다.


‘마을’의 민주주의는 어떻게 구현되어야 하고. 새로운 마을에서는 어떤 사람들이 주체가 되어야 하는지에 대해 할 말은 많지만 실제로는 제일 주체가 되고자, 열심히 하는 사람이 주체가 되어야 되겠죠. 저는 민중의집도 궁극적으로 하나의 마을이라고 생각해요. 그 안에서 먹고 사는 문제. 나의 노동. 나의 육아. 나의 삶을 나눌 수 있는 신뢰할 수 있을 만한 준거집단- 인간적 규모의 준거집단을 갖는데 그 안에 민주주의를 어떻게 구현할 것이고, 누가 거기서 주도권을 가질 것이고, 어떻게 서로 교환하고 어떻게 서로 상호호혜하는 관계를 만들지를 이야기하다 보면, 그게 작은 사회의 상일 것입니다. 진보정치가 구현하고자 하는 그런 작은 결사체들이 연대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새로운 진보정당이 나아갈 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배현철 : 노동자들이 어떻게 실천에 나설 수 있겠냐. 요약해서 말씀드리면 그런 거 같은데요. 몇 가지 있을 거 같아요. 전제가 되는게. 조직이라고 하는 것은 조직이 이루고자 하는 상만 있어가지고 되는 게 아니고, 실천으로서 담금질 될 때 비로소 변화가 시작되는데 당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하거든요. 상이 있는데. 그것들을 어떻게 현실 실천의 무기로 만들어 내서, 다수로 만들어 나가느냐 이런 것이 아니겠어요? 노동조합도 마찬가지라고 얘기할 수 있겠죠. 사실은 그런 지점들에 대해서 아프게 다가옵니다. 고용만 보장되면 모든 걸 갖다 바치는 이런 노동자들이 실천에 나설 수 있을까? 그런 의구심이 충분히 들 수 있고. 저희들도 의구심이 있습니다.

그런데 한편으론 상당히 달라지고 있는 게 보여요. 예컨대 주간연속 2교대제의 경우, 노동자들이 노동시간 감축에 합의를 이루어낸 것이거든요. 워낙 노동강도가 심하고 잠도 못자고, 우리 나라 평균 노동시간이 연간 2,100시간이라고 하는데 자동차 공장은 2,700시간입니다. 어마어마한 거죠. 상당히 견디기 어려운 상황에 와 있는 것이 저는 야간노동을 줄여나가는 원동력이라고 생각해요. 기아자동차에서 올해 주간연속 2교대제를 시범실시해 왔어요. 한 500명쯤 일하는 소규모 부품사업장에서도 2년째 실시해 오고 있는데 조합원들이 자기시간을 확보하게 되면서 변해가는 과정을 얘기해주더라고요. 그런 것들이 조직의 의식적 실천과 변화과정을 통해서 어느 순간에 터질 계기가 있을 거라고 보여집니다. 지금 보면 전혀 안보이기도 하는데. 복수노조 하면서 무너지고 하는거 보니까, 노동조합이 꼼짝도 못하고 이런 것처럼 보이는데. 그런 과정들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 의식적 실천이라고 생각이 들거든요. 그런 과정을 통해서 하나하나 변해가지 않겠나 저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김현우 : 서형원 의원은 새로운 시민 얘기를 했고, 이명희 동지는 새로운 몸, 새로운 사람 얘기를 했는데. 새로운 정당만 되면 되는거죠. 그런데 이게 관념이나 아이디어만 되는 건 아닐 거예요. 조직노동의 지반, 노동과정에서 벗어나고. ‘이게 사는 건가’가 아니라 좋은 저녁이 있는 삶. 민중의집에서 함께하는 저녁이 있는 삶을 살려면은. 다른 경험, 다른 계기를 만들어내는 여러 가지 프로그램이 가능하겠죠. 매개는 노동시간 단축, 기본소득, 환경적인 부합, 어떻게 단체협상이나 사회적 테이블로 가져가는 그런 것들이 될 수 있겠죠. 그게 궁극적으로는 적색의 소비자, 녹색의 노동자 이런 존재들을 만들어내거나 바꿔내고. 우리들이 그 일원이 되는 걸 텐데. 그런 것이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거고, 사회를 바꾸는 게 될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 정당운동이 필요한 것이겠죠. 우리가 정당운동을 계속 한다고 한다면 그런 것을 해야 되는 건데. 제 의견을 드리자면. 제가 고민스럽거나 아쉬운 거는. 죄송한 얘기입니다만, 녹색당도 0.5% 밖에 득표를 못했다는 게 문제가 아니라, 한국 사회에서 그렇게 불온하게 안느껴진다는 게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보면, 진보신당 안에서는 녹색정치를 주장하는 게 별로 불온하지 않아요. 더 문제는, 적색정치도 불온하지가 않아요. 그냥 그런가보다 하는 거죠. 에너지가 없다는 건데. 그건 결국 자기 정치, 자기 호명이 너무 없다는 것, 그게 궁극적인 문제라는 거죠. 정당, 정치를 하겠다는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자기 입장과 발언을 표명하고 이를 자기 중심으로 삼고서 상대방에게 ‘너는 이런 생각, 나는 저런 생각, 조정하고 같이 해보자’ 그렇게 말을 걸어야 하는 건데. 그런데 ‘우리는 고립되면 어떡할까?’ ‘우리는 버텨나갈 수 있을까?’ 눈치만 보고 있으니 점점 자신의 입장과 발언이 없어지는 게 제일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이렇게 말하면 ‘그럼 넌 뭘 했냐’ 하실까봐 이야기 마무리 하도록 하겠습니다. (웃음)


오늘의 토론이 충분하지는 않았지만, 새로운 진보좌파정당 건설에서 일정한 자극과 도움이 되기를 바라면서, 참석자 여러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끝)

[ 양솔규 (경남당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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