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시인이 물었다.
“내가 시를 쓰는 이유? 시는 연필 한 자루, 종이 한 장만 있으면 되거든. 하하.”
지금은 전남의 바닷가 고향으로 내려간 시인은, 내가 아는 바로는 클래식기타와 수채화에 남다른 조예가 있었다. 클래식기타는 일터에서 오른손 검지 한 마디가 잘려나가면서 포기했고, 수채화 역시 재료비 문제로 청소년 시절 일찌감치 접어야 했다. 중학교 시절 전국의 여러 사생대회에서 수상을 밥 먹듯이 하던 친구가 있었다. 대전의 한 달동네에서 살던 그 친구는 고1 때 그림을 포기하면서 끝내 학업까지 포기했다. 그 해 겨울이었던가. 술에 취한 우리는 부둥켜안고 울며 이를 갈았다. 가난은 꿈을 포기하게 하는 것을 넘어 인간을 파괴하기도 한다. 우리에게 남은 것은 대상을 알 수 없는 분노였다. 친구는 제대 후 일용 잡부 아르바이트와 학업을 병행하며 대학을 졸업하긴 했지만, 꿈을 접어야 했던 그 상처는 지금까지도 지울 수 없는 흉터로 남아 있는 듯하다.
공부를 가난의 유일한 탈출구로 인식하던 나도 그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학창시절 늘 궁금한 것은, 별이 지기 전에 일터로 나가시고 별이 총총해서야 귀가하시는 부모님은, 누구 못지않게 열심히 일하시는데도 불구하고 우리는 왜 가난할까, 였다. 어떻게든 탈출하고 싶었던 가난. 그러나 혼자만의 탈출로 해결될 문제는 아니었다. 나만 가난한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모두가 학비 걱정, 생활비 걱정 없이 사는 것만이 해법이었다. 그게 중요했다.
학원에서 수학 강사노릇을 할 때였다. 까까머리 중학생 하나가 휴게실 창가에 기대 담배를 피우는 내게 다가와 말을 건넸다. 평소 다른 강사들이 좋아하지 않는, 다소 불량기 섞인 표정과 말투, 반항기 어린 표정을 숨기지 않은 채.
“쌤. 오늘 포장마차를 부숴서 싣고 가는 걸 봤는데요. 그 사람들도 장사를 해야 먹고 살 텐데, 왜 그렇게 못하게 하는 건가요?”
가난은 개인의 문제이기 전에 사회 구조의 문제다. 사회가 건강해지지 않는 한 가난은 치유할 수 없는 질환이 된다. 진보신당을 택한 이유, 민주노동당 분당 이후 진보신당 당원이 된 이유는 평등과 연대의 힘을 믿기 때문이다. 질환을 치유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덧셈의 능력을 믿기 때문이다. 합병증으로 시달리는 한국 사회를 치유해 건강하게 만들겠다는 그 신념과 가치를 신뢰하기 때문이다.
나는 그 시인이 시를 쓰면서 여전히 수채화를 그리기를 바라고, 내 친구가 다시 그림을 시작할 수 있기를 바라고, 어린 학생이 상처받지 않기를 바란다. 그 상처는 이미 충분히 족하다. 자라는 모든 아이들이 자유롭게 꿈을 꿀 수 있기를, 어떠한 제약도 없이 그 꿈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할 수 있기를, 건강하게 자랄 수 있기를 바란다. 그래서 나는 진보신당이다.
이정섭 1970년 대전 출생. 2005년 《문학마당》으로 등단. 시집 『유령들』. 한국작가회의, 대전작가회의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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