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1일은 민영이의 백일이었습니다. 6월 24일, 민영이가 태어난 날은 신기하게도 우리 집 꼬마가 태어난 날과도 같습니다. 그래서였을까요. 막 백일이 지난 민영이를 만나고 싶었습니다. 실은 민영이가 쑥쑥 자란 백일만큼이나 일상이 훌쩍 바뀐 민영이 엄마를 더 만나고 싶었습니다. 자신을 스스로 허술한 초보엄마라고 말하며 부끄러워하지만, 세상의 모든 엄마와 닮은 그녀, 바로 권영지 당원입니다.
▲ 막 백일이 지난 민영이와 격하게 포옹하는 권영지 당원 (사진: 서울시당)
- 먼저, 민영이 백일을 축하합니다.
“고마워요. 이렇게 축하를 받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찾아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 간략한 소개를 부탁합니다.
“어떻게 소개하죠? 어색하네요. 성북당원 권영지입니다. 노력은 하지만 허술한 육아로 좌충우돌 초보엄마입니다. 난 참 늦되는 사람이구나 싶어요. 늦되어도 너무 늦된 거예요. 요즘 그런 생각이 참 많이 들었어요. 남들보다 늦게 결혼을 하고 늦게 아이를 낳았잖아요. 사람들은 제가 나이도 있고 하니까 뭔가 더 잘해낼 거로 생각하세요. 조리원에서 만난 친구들도 나이 많은 언니니까 막 의지하려고 하는 거예요. 웬걸요. 내가 더 모르는 거예요. 얼마나 철이 없었으면 나이 사십이 되어서야 남들 이십 대에 하는 것을 할까. 더 어설픈 거예요. 20대 친구들이 오히려 더 또릿또릿하고 빠릿빠릿하고 영리하게 잘하는 것 같아요. 늦되는 사람은 뭘 해도 늦되는구나”
- 생각했던 것보다 건강해 보이셔서 좋아 보입니다. 전 출산 후 6개월이 지나서야 제 몸이 회복된 것 같았습니다. 백일 때까지도 멍한 상태였거든요.
“수술로 아이를 만난 것치고는 몸의 회복속도는 빠른 편인 것 같았어요. 병원에서도 조리원에서도 다른 산모들에게 비하면 꽤 안정적이었죠. 다만 뭘 해도 어설프고 잘 몰라서 충격의 연속이었습니다.
- 추석 연휴 기간에 백일을 맞이해서 가족들의 축하가 많았겠습니다.
“시골에서 친지들과 조촐하게 실하나 올려두고 백일상을 차렸습니다. 이웃들에게 백일떡도 돌리고요. 수수팥떡은 집으로 가지고 왔는데, 추석 연휴라 돌아오는 길이 6시간이나 걸린 덕에 그만 상했어요.”
- 아이에게도 백일이 중요한 의미가 있지만, 엄마에게도 백일이 갖는 의미가 큰 것 같습니다. 백일을 지나고 어떤 생각들이 스치시나요?
“아~ 백일이 오기는 오는구나. 요 아이 무서워서 안지도 못하고 했는데 이렇게 안고 다니게 되었구나. 앞으로 백일은 또 언제 흘러가나. 하루하루가 충격이 나날들이었죠. 아기 낳는 모습을 텔레비전을 통해서 보면 ‘아~ 아가야. 아가야.’ 하면서 감동의 눈물을 흘리잖아요. 저는 아무렇지도 않은 거예요. 딱 봤을 때, ‘아 저렇게 생겼구나. 생각했던 것보다 예쁘진 않구나.’ 그냥 무덤덤했어요. 병원에서부터 일상의 모든 것이 너무 충격의 연속이어서 적응하기 바빴던 것 같아요. 진짜 아이를 낳으면 다들 ‘힘들긴 힘들어.’라고 이야기만 하시지 자세한 말씀은 없으시잖아요. ‘밥 먹을 시간도 없다’는 말이 ‘바쁘다는 것을 그렇게 표현하는구나’라고만 생각했지 이렇게 붙어서 살아야 하고 밤낮 구분 없이 한 시간에 한 번씩 깼다 자기를 반복하고, 워낙 잠도 많은 사람인데 한 시간도 깊게 잠들지 못하고, 좀 잠이 들려면 수유해야 하고, 이런 일상이 한 달 이상이 지속하니까 너무 충격적인 거예요. ‘왜 아무도 이런 이야기는 안 해주는 거야.’ 사출현상도 처음엔 당혹스러워서 ‘옷은 왜 자꾸 젖는 거야.’ 싶었죠. 뭐라고 하나 한동안은 너무 우울해서 온종일 울기만 한 적도 있었어요. 백일이 지나니, 이제 그런 충격들이 가시는 느낌? 이제야 생활하면서 웃음도 나오는구나 싶어요.”
- 출산이야기도 좀 들려주세요.
“일주일 정도 계속 가진통만 오는 거예요. 책에서 말하는 진통주기와는 상당히 거리가 멀었어요. 도대체 병원은 언제 가야 하는지. 그런 가진통이 일주일을 넘어가니 걱정이 되더라고요. 민영이는 오후 5시 40분에 태어났어요. 병원에 가기는 오전 9시에 갔는데,아이가 내려오질 않는다고 하시더라고요. 거의 60%까지 분만이 진행된 상태였고, 촉진제도 맞았죠. 그때가 오전 11시였어요. 같이 분만실 들어가신 분들은 모두 출산을 마치고 회복실로 가시는 거예요. 분만실까지 가서도 60%에서 더 진행이 안 되니까 병원 측에서 수술하자고 하시더라고요. 나이가 있어서인지 겁도 좀 났습니다. 아쉬운 마음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건강하게 만난 것을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 그래도 많이 버티신 것 같으세요. 전 너무 아파서 제가 오히려 수술해달라고 먼저 외쳤어요.
▲ ‘우리 엄마 만세’ 자세를 취하는 민영이와 인터뷰 중인 권영지 당원
- 우리 당과의 인연은 어떻게 시작되었나요?
“민주노동당에서 나와서 진보신당이 새롭게 만들어질 때부터라고 할 수 있을 거 같아요. 민주노동당에서 분당하기 직전에 민주노동당에 입당해서 지금까지 함께입니다. 당시, 제가 일했던 직장에 함께 일하시는 분들이 민주노동당 당원들이 좀 있으셨어요. 지난 시절의 진보정당의 한계와 오류를 반성하고 새롭게 진보정당을 열어보자고 입당제의를 받았어요. 마냥 운동권정당으로만 인식하고 있었는데 다르게 다가오기 시작했고, 새로운 것이 눈이 보이는 것 같았어요. 물론 그 당시 심상정 국회의원에 대한 기대가 큰 것도 있었고요.”
- 현재 출산·육아휴직 중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제가 듣기로는 지역자활센터에서 일하시는 것으로 들었습니다. 하시는 일도 궁금합니다.
“현재는 종로지역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성북지역에서 일하다가 일 년 전쯤 이직을 했어요. 당 사람들은 지역자활센터를 싫어하실 텐데. 처음에는 빈민운동 차원에서 시작했어요. 자활후견기관을 목적으로 저소득층 사람들이 자립경제를 갖기 전에 어느 정도 지원을 해야 한다는 것을 지역에서 시험하고 있었어요. 김대중 정권 때, 국민기초생활 보장법이 만들어져서 그동안에 영세민이라고 생계비를 받으셨던 분들에게 일하는 조건으로 생계비를 드리고, 그분들의 일을 만들어 내는 것이 지역자활센터에서 하는 일이 되었습니다. 당연히 그 생계비를 받아야 하는 분들이셨는데 강제노역처럼 조건을 달면서 일을 시키게 되고, 초기 자활취지에 견주어보아도 이미 노동 현실에서 탈락하시고 실패를 경험하신 분들에게 일을 제공하면서 시장경쟁을 통해서 살아 남아라는 식의 일이 되었습니다. 안타깝죠. 어쨌거나 시장에서 성공해야지 자립으로 인정해주겠다는 것이죠. 이곳을 찾는 주민들은 이미 건강 등 여러 이유로 조건을 충족시킬 수 없습니다. 억지로 일을 해야만 하는 환경으로 내몰립니다. 물론 그중에 성공 사례들이 한 두건이 있기는 해요. 하지만 2~3년 자활 운영하면 한 분 또는 두 분 정도 성공해서 나가시는 경우예요. 원초적으로 될 수 없는 구조임에도 그런 구조를 계속 만들어내야만 하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초기에는 정부와 함께 지원 및 사업에 관한 얘기들을 함께 나누며 풀려고 노력했었어요. 하지만 노무현, 이명박 정권으로 이어져 오면서 하부의 복지전달체계의 역할만을 바라는 것 같아요.”
- 그럼, 앞으로 자활센터가 어떻게 되었으면 하세요.
“지금은 최하부의 사회복지전달체계 하나일 뿐입니다. 자활센터의 역할도 시대에 따라 조금씩 달라지기도 했고요. 일자리를 통해서 여러 형태의 주민운동들과 만나고 일상의 삶과 가장 밀착해서 삶 속에 함께 끼어든 사람들이 저희라, 책임 있는 역할을 해야 할 것 같아요. 여러 가지 가치들을 시험할 수 있는 공간이자, 우리가 만나야 하는 중요한 저소득층 분들을 밀착해서 만날 수 있는 만큼 그런 장점으로 새로운 대안 가치를 주민과 나누는 공간이 되고 싶습니다.”
- 개인적인 고민과 주어진 일을 수행해야만 하는 것 사이에서 조금은 힘이 드실 것 같아요.
“자활센터에서 돌봄센터를 부설로 운영하는 곳이 많아요. 우리 지역도 그렇고요. 당에서도 돌봄 노동자들에 대한 조직 등에 노력을 기울이시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 활동에 동의하는 사람으로서 저도 당에 가입하고 지지를 하지만 실제로 영향을 미치는 활동을 하기엔 부담스러운 것이 현실입니다.”
- 활동하시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분이 있으신지요.
“당연히 있어요. 그분은 제 결혼식의 주례까지 서 주셨습니다. 개인적인 사정으로 힘든 시기를 보내시긴 하셨지만, 자활센터를 통해서 함께 일하시면서 용기를 내시게 되셨어요. 워낙 주민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이 일품이신데다, 젊은 시절의 활동 경험들을 잘 녹여내는 멋진 분이십니다. 결국, 현재는 지역자활센터 부설 돌봄센터의 센터장으로 일하시고 있으세요. 또다시 이런 인연이 제게 있을까 싶습니다.”
▲ 꼼지락 꼼지락 민영이의 발
- 육아휴직 중으로 쉬고 있으신데 불쑥 직장이야기를 꺼내서 곤혹스럽게 한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남이 뭐라 하건 육아에 대한 본인의 소신이 있으시다면?
“우리 엄마처럼 잘할 수 있을까 싶어요. 우리 엄마는 제가 싫어하는 기색만 딱 느껴져도 시키지 않으셨어요. 막상 ‘이거 좀 해라.’ 하셨는데 제가 ‘싫어요.’ 라고 말하면 ‘그렇구나, 싫은 것은 하지 말아야지.’ 하시니 마음에 찔려서 또 하게 되고요. 뭐 그런 일들이 많았어요. 이 아이도 나와 그런 관계였으면 좋겠어요. 아직은 ‘싫은 것은 억지로 시키지는 말아야지’ 하는 정도의 생각만 지니고 있어요. 밝게 까불이로 자라주었으면 좋겠습니다.”
- 만일 어린이집에 가야 하는데 가기 싫다고 한다면 어쩌죠. 전 요즘 울며불며 등원을 거부하는 아이로 마음이 아픕니다. 이제는 혼자 집에 있을 수 있다며 사무실 다녀오라고까지 합니다. 싫지만 해야만 하는 것이 있을 때가 있을 텐데요.
“저는 못 보낼 것 같은 생각이 들어요. 닥치면 또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요. 우리 조카를 친정 엄마가 돌봐줬어요. 결혼 전에 조카가 우리 집으로 왔었죠. 언니는 딱 매몰차게 ‘엄마랑 약속했잖아. 넌 여기 있는 거고, 엄마는 가야 해.’하고는 우는 아이 뿌리치고 출근을 했단 말이죠. 근데 전 조카가 너무 안쓰러워서 오히려 제가 휴가, 월차 써가며 조카랑 놀아 주었어요. 너무 안타깝잖아요. 엄마 퇴근하기만을 기다리며 할머니랑만 놀고 있어야 하잖아요. 그랬던 제가 이 아이에게 어떻게 할 수 있겠어요. 벌써 복귀할 게 걱정입니다. 모르겠어요. 결혼도 안 하려다가 닥치니까 하게 되고, 애도 안 낳으려다가 무서우니까 마흔 넘어가기 전에 낳아야 하나 싶어서 낳게 되고, 막상 닥치니까 상황마다 남들을 따라가게 되는 것 같아요. 지금 생각으로는 아이 스스로 감당하고 책임질 수 있다면 뭐가 되었건 억지로 싫은 것들을 시키고 싶진 않아요.”
- 충격이 가시는 과정이지만, 여전히 육아에 많은 역할을 하는 엄마가 지치는 건 어쩔 수 없는 것 같기도 합니다.
“아이에 맞춰서 나의 모든 일상을 맞춰야 하고 조금은 메여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는 없어요. 그게 모성애고, 엄마의 몫이라고들 하지만 저도 사람인지라 힘든 건 어쩔 수 없더라고요. 여러 육아 정보들을 보다 보면 ‘엄마니까 전 즐겁게 해요’라는 분들이 있다. 전 하나도 즐겁지 않거든요. 그냥 해야 하니까 하는 건데. 아이가 예쁘고 사랑스러운 것과 육아가 즐겁다는 것과는 다른 것 같아요. 때론 엄마들에게 인권이 있나 싶을 정도입니다.”
- 모든 것을 떠나서 지금 제일 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무엇인지요.
“많이도 안 바라고 연속해서 5시간 만이라도 자는 거. 그거 하나면 충분할 것 같아요. 아이마다 다르겠지만, 수유습관이 잘못되어서인지 아이도 깊게 오래 잠을 자지 못해요. 저만큼 이 아이는 얼마나 더 힘들겠나 싶어요.”
- 자신만의 독특한 일이 있었다면 어떤 것이 있으세요?
“별다른 건 없었지만, 임신 전보다 만삭 때 몸무게가 더 작았다는 정도? 실은 제가 그리 날씬하지는 않았어요. 임신하면 체중이 늘어나는 게 당연한데, 오히려 임신 초기에 입덧으로 체중이 많이 빠지는 바람에 만삭 때 몸무게도 출산 전보다는 작더라고요. 친구들이‘성공했다’며 웃으며 말하기도 해요.”
- 경험해보지 않았던 일들이 펼쳐지게 되면 충격만큼이나 감동적인 일들도 많았을 것 같습니다. 어떠세요?
“진통 올 때부터 들었던 생각인데. 엄마 생각만 나는 거예요. 이렇게 아픈 일을 이렇게 힘든 일을 어떻게 겪었을까. 엄마는 넷이나 두었는데, 네 번이나 어떻게 반복했을까. 어휴~ 계속 엄마 생각만 나는 거죠. 친정에 가면 우리 엄마는 예쁜 손녀지만 다 늙은 딸이 애 낳고 고생한다고 ‘너 왜 안 자서 나이 든 엄마 고생시키니.’ 하십니다. 참 무뚝뚝한 딸이었어요. 위로 오빠 셋에 막내딸이었어도 세 아들보다 더 밖으로 나다니고 말도 없고 그랬었어요. 그저 엄마 생각만 나죠. 고생했다고 저를 위한 백일상을 차려주시는 건 엄마밖에 없었고요. 엄마들은 참 대단한 것 같아요.”
모두가 그렇겠지요. 막 출산을 하고 그저 엄마 생각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이제는 아이를 키운다고 말보다 함께 살아가는 한 사람으로 서로 바라보며 부대끼며 의지하며 같이 자란다고 말합니다. 모르면 배워야 하고, 잊으면 다시 떠올리며 품고 있는 생각대로 살아가기 위해 노력합니다. 다른 듯 모두가 닮은 세상의 모든 엄마에게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