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달장애법 제정과 기초법 부양 의무제 폐지를 위한
균도 부자의 걷기는 오늘도 계속된다 


부산에서 서울까지 세 차례를 두 발로 걸으며 세상을 만나온 아버지와 아들이 있다. 지난 10월 초에 다시 배낭을 꾸린 그들, 이번에는 강원도를 거쳐 서울까지 800여 km를 걷는다. 자폐성 장애 1급 이균도 당원과 그의 아버지 이진섭 부산시당 장애인위원장이다. 발달장애인법이 제대로 만들어지도록, 부양의무제를 없애야 한다고 이야기하면서 두 부자가 이제까지 걸은 거리만도 수천 km에 이른다.

균도와 균도 아빠가 국토 대장정에 나선지 33일째, 양양 버스 터미널에서 그들을 만났다. 국토 대장정 발대식을 기장군청에서 할 때는 얇은 잠바를 입었으니 벌써, 한 달이 지나 있었다. 식당에서 아침식사를 한단다. 그 식당도 장애인 부모회 회원인데, 자녀를 시설에 보내고 있단다. “시설에만 의존해서는 안됩니다. 기초법 의무부양제를 폐지해야 우리가 죽은 뒤에도 아이들이 살아갈 수 있습니다.” 이진섭 당원은 틈만 나면 기초법 의무부양제 폐지를 힘주어 강조한다.


장애인 부양 의무를 개인과 가정에만 전가하다니

지금 장애인 부모회에서 추진하고 있는 발달장애인법은 ‘발달장애인 지원 및 권리보장에 관한 법률 안’이다. 우리나라에 있는 18만 3천여명에 이르는 발달장애인이 다른 장애인과 달리, 혼자 외출이 어렵고, 개인소득 및 소득액도 적으며, 지역사회와 분리되어 살아가기 때문에 장애인 가정에게는 제대로 된 발달장애인법이 절실하다. 장애인 부모회는 기존 장애인복지법이 신체장애인 중심으로 만들어져 있으며 발달장애인의 특성과 욕구를 고려하지 않고 있는 점을 개선해야 하며 나아가 전체 장애인의 이권을 증진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애타게 외치고 있다. 

이 법의 최대 쟁점은 최저임금을 가구소득과 관계없이 지원하고 의무고용 및 주택할당을 하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국민기초생활보장법 제2조 5항 부양의무자와 상충되고 있다. 기초법의 부양의무자는 복지의 책임을 가족에게 전가한다. 장애인 개인의 필요에 따른 전달체계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부양 의무제가 폐지되어야 하는 것이다. 

9시 40분 양양터미널을 출발하여 국도 44번길을 따라 걷고 있다. 주유소를 지나가자 화장실을 찾아 균도가 뛰어간다. 균도아빠가 함께 뛴다. 아직 5살 지능을 가진 균도는 화장실 볼일을 볼 때에도 아빠의 도움이 필요하다. 다시 균도와 균도아빠는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면서 걷기 시작한다. ‘서면’이라는 표지판이 보이자 균도가 사진 포즈를 취한다. “이제 알아서 사진찍기를 한다니까요..,” 껄껄 웃는 균도아빠의 얼굴에는 아들에 대한 대견함이 묻어난다.


20121116133300_2494.jpg ▲ 양양군 서면 표지판에 다다르자, 자연스럽게 포즈를 취하는 균도 (사진: 민은주)



오색약수터를 찾아간다고 하니, 지역주민들이 가는 길을 알려준다. 도로 공사를 하던 인부들이 몸 벽보를 알아보고 인사를 건넨다. 지나가는 차량들에게 균도 아빠는 일일이 손을 흔들어 준다. “다른 장애인들에게도 사람들이 관심을 보여주었으면 좋겠어요. 균도는 TV에도 나오고 해서 알아보는 사람이 많은데, 균도 말고도 다른 장애인들에게도 관심을 가져달라는 거지요”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일일이 손을 흔들어 주는 이유다. 


균도 말고도 다른 장애인들에게도 관심을 가져줬으면

길가에 과일 파는 리어카들이 몇 개 눈에 띈다. 농민들이 이제 판로를 개척해야 하는 때인가 보다. 걷기 시작한 지 1시간 30분 정도 지나자 5km를 넘어선다. 스마트폰에서 앱을 다운받아 일일이 거리를 체크하면서 걷는 균도 부자! 부산에서 강원도를 지나 서울까지 가는 800여 km를 가기 위해 하루에 20km를 걷는다. 이번 4차 국토대장정 걷기는 이전과 달리 15일 정도가 더 길다. 그러다보니 지난 3차례의 걷기를 통해 한 달동안 걷기에 익숙해져있던 몸은 이제 ‘그만 걷자’는 신호를 보내온다고 한다. 그래서 택한 방법이, 오전 10시에 시작하고 오후 4시경에 마쳐 하루 20km 정도를 걷는 것, 무리를 하지 않는 전략이란다. 

에너지 음료를 좋아하는 균도, 한번씩 컨디션이 좋지 않을 때는 콜라를 10개씩 먹기도 해서 아빠를 걱정하게 만든다. ‘추울땐 커피를 마셔요. 까페라떼를 먹어야 해요. 운동할 때는 게토레이.., 균도아빠 피자 먹고 싶어요..,’ ‘어린이 대통령은 뽀로로, 균도는 노무현 대통령을 좋아해요.’를 읊으면서 다시 걷기를 이어간다. 노무현 대통령이라..,? “우리는 다른 대통령을 지지하는데” 그러나, 다른 사람의 말에는 관심 없고 ‘어린이 대통령은 뽀로로..,’를 계속 반복하기만 하는 균도! 계속 듣기만 하고 일일이 대꾸 하면서 손 잡아주면서 걷기에 집중하는 아빠! 때때로 균도는 ‘뽀뽀’를 요구하고 아빠는 두말없이 뽀뽀를 해준다. 영락없는 5살 어린아이의 모습이다.


20121116133343_1960.jpg ▲ 뽀뽀하는데 익숙한 균도 부자. (사진: 민은주)



눈 앞에 들판을 넘어 높은 산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자 이윽고 ‘남설악 터널’이 눈에 나타난다. “이전에는 터널을 들어가기가 싫어 2-3시간 더 걸리더라도 산으로 돌아가곤 했어요. 터널에는 소리가 너무 크게 울리니까 균도가 싫어하기도 하구요.., 이젠 좀 익숙해졌어요.” 터널은 생각보다 위험했다. 차들이 쌩쌩 달리기도 하거니와 보행로가 별도로 마련되어 있지 않기도 해 위험하기도 하였다. 차로 가면 1,2분이면 통과했을 700m 길이의 터널은 10분 이상이 걸렸다. 그래도 익숙해진 균도는 앞장서서 잘도 걸어가고, 균도 아빠는 그래도 걱정이 되는지 균도에게서 눈을 떼지 못한다.


“부산에서 설악산까지 걸어서 왔다고요?!”

터널을 빠져나오자 한길 낭떠러지 다리로 이어져 있다. 아래를 내려다보니 아찔하다. 그래도 주위에는 단풍이 울긋불긋하게 산을 물들이고 있어, 보는 이로 하여금 감탄을 자아낸다. 잠깐의 휴식 후, 다시 걷기 시작한다. 12시는 벌써 지나 있는데 도무지 식당으로 보이는 곳이 나타나지 않는다. ‘휴게소’라고 적혀있는 곳을 발견하자, 지친 다리를 이끌고 반가운 마음으로 달려가 보았지만, 텅 비어있다. 국도변의 휴게소는 운영이 어려운 모양이다. 

1시반에 도착한 ‘백암 식당’! 몸 벽보를 부착하고 깃발을 휘날리며 무장한 세 사람이 식당에 들어서자, 식당주인은 놀란 듯 쳐다보지만, 부산에서 여기까지 걸어왔다는 것이 영 믿기지 않는 모양이다. 친정이 부산 대연동이라는 주인 아주머니는 맛있게 산채 비빔밥과 순두부를 차려 내 오신다. 아, 순두부가 이렇게 맛있는 줄이야.., ‘황태’를 택한 균도는 밥 한공기를 게눈 감추듯 비우고 또 한 공기를 더 먹고 나서야 길을 나선다. 균도 부자에게는 이미 익숙한 듯하다.


20121116133513_9564.jpg ▲ 구비구비 단풍길을 한참 걸어 도착한 식당. 친정이 부산 대연동이라는 주인아주머니가 상다리가 부러지도록 차려주신 맛난 밥상. (사진: 민은주)



설악산으로 보이는 높은 산들이 눈 앞에 펼쳐져 있다. 걷고 걸어도 아름다워 보이는 산은 우리 가까이에는 다가오지 않는다. 굽이 굽이 흐르는 개울물을 따라 이어져 있는 굽은 국도 한 켠에는 ‘수해 복구’ 표지판이 나타났다. 몇 년 전엔가 큰 홍수가 있었고 자원 활동가들의 지원 손길이 끊이지 않았던 뉴스가 떠오른다.  

4시! 드디어 오늘의 숙박지에 다다랐다. 이진섭 당원은 짐을 풀자마자, 하조대 장애인 시설건립을 둘러싼 분쟁에 대해 설명해 주신다. 원래 계획은 대관령을 넘어 춘천으로 가는 것이었는데, 하조대에 장애인 여름 휴양시설을 설치하고자 하는 캠페인을 하느라 양양으로 다시 오게 되었다는 설명이다. 


하조대 장애인시설 건립, 지역갈등의 불씨 돼

하조대의 장애인 휴양시설은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계획을 세워 추진하다가 유야무야되고 현재, 박원순 시장이 다시 추진하고 있는 사업이다. 도립공원인 하조대에 국가 보조금 22억원, 시비 22억원을 들여 휴양시설을 짓고자 하는 것인데, 민주당 소속인 군수가 이를 반대하고 나서 2심까지 행정소송이 벌어져 있단다. 2심에서도 양양군이 졌지만 또 항소를 하는 모양이다. 양양군 인구는 2만8천명인데 식당을 하는 사람들은 시설건립에 찬성하고, 펜션과 민박 등 숙박시설을 운영하는 사람은 유치를 반대하는 등 갈등이 점차 커지고 있다. 

특히, 유치반대위원장은 장애인들에게 국밥을 팔았다고 그 국밥집 사장을 왕따시키고, 설상 가상으로 하조대 장애인시설 건립 부지에는, 인근 지역 주민들이 콘테이너 박스를 설치하고 공사를 못하도록 지키고 있는 상황까지 연출되고 있다. 더군다나 12월 3일까지 완공하지 않으면 국가보조금을 반납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하니 걱정이 아닐 수 없다. 군수는 이렇게 사회 갈등이 고조되고 있는 상황이지만, 표를 의식하여 지역 유지들의 눈치만 보면서 소송을 계속하고 있으니 답답한 노릇이 아닐 수 없다. 

다음 날, 김치 반찬 하나에 카레 라이스로 아침을 해결하려는데, 균도는 거기에다 짜파게티 2개를 더 먹는다. 대단한 식욕이 아닐 수 없다. 해발 300m 정도 되는 국도 44번길을 다시 걷기 시작한다. 우리 숙소에서 설악산 대청봉까지는 왕복 8시간이면 가는 거리이지만, 우리는 대청봉 길을 뒤로하고, 한계령을 넘어 인제군 원통면으로 향한다. 


20121116133557_6089.jpg ▲ "아이고 다리야...." 잠시 길가에 앉아 쉬고 있는 균도 부자. (사진: 민은주)



점점 오르막 경사로가 심해지지만, 균도부자는 잘도 걷는다. 굽이 굽이 44번 국도 길에는 자가용과 버스가 쌩쌩 달리고 있고 우리는 한뼘되는 보행로에 한 줄로 나란히 서서 걷는다. 갈수록 걷기보다는 자동차로 움직이고들 있으니 보행로가 잘 마련되어 있지 않다는 지적부터, 굴곡진 우리네 인생 이야기까지 이어진다. 진보신당이 대선후보를 내지 않게 된 데서 시작된 정세 토크는 지난 총선 때까지로 거슬러 올라가더니 다시 당의 진로로 방향을 바꾸면서 계속된다. 당의 어려움이나, 나 개인의 삶의 어려움이나, 한달 넘게 집 떠나 길 걷고 있는 균도부자나 어렵기는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내가 죽더라도 균도가 사회 공동체의 일원으로 살아야”

더구나 발달장애가 있는 균도와 이진섭 당원에게는 지난 20년이 싸움의 연속이자, 균도를 아니, 발달장애를 이해해나가는 나날이었을 것이다. 대학원까지 졸업한 균도아빠가 다시 학부생으로서 복지학과를 졸업하고 ‘장애인 부모회’ 활동을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내가 죽더라도 균도가 시설로 보내지지 않고 사회에서 활동하면서 공동체의 일원으로 살아갈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발달장애인법을 제정하고 기초법 의무 부양제도를 폐지하기 위해, 오늘도 균도부자가 걷는 이유이다.  

3시간여를 굽이굽이 국도를 산자락을 따라 걷고 나니, 드디어 한계령 휴게소가 보인다. 해발 920m 한계령 표지판도 나타난다. 말로만 듣던 한계령, 언젠가 차로 10분만에 넘었을 한계령을, 3시간 걸려 숨이 턱에 차 헉헉거리면서 올라섰다. 사방이 뽀족한 바위산으로 에워싸 있다. 구름도 쉬어간다는 한계령의 너무나 아름다운 자태에 힘든 것도 잠시 잊게 된다. 

한계령 휴게소에는 균도를 알아보는 사람들이 제법 있다. 방송을 통해 다큐멘터리를 보았다면서 균도를 위해 응원하는 한마디씩을 건넨다. 이진섭 당원은 부산에서 강원도를 거쳐 서울까지 800km를 걷는 의미를 설명하기에 여념이 없고, 으쓱해진 균도는 발달장애인 징후를 마구마구 드러낸다. 창문을 두드리고, 채소를 안 먹겠다고 투정 부리고, 소리도 크게 지르고.., 그래도 주위 분들은 참을성 있게 균도를 보아내고 싫은 소리대신 응원과 격려의 말씀을 전해준다. 


20121116133639_2636.jpg ▲ 설악산 국립공원 입구, 대청봉이 아니라 한계령으로 향한다. (사진: 민은주)



“오늘 하루만 걷는다 생각 해야 돼요. 그래도 힘들면 한 시간만 걷는다. 아니, 지금 이순간만 걸어가자.., 그러다보면 30일이 되고, 600km를 걷더라고.., 이번 4차는 좀 멀지만 순간 순간 걷다보면 60일이 되고 800km를 걷게 되겠죠..”

인생을 살아가는 것도 이와 이치가 같을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 오늘날과 같은 고령화 시대에 어찌 80평생을 살아낸다 말인가. 하루하루 충실히, 순간순간을 열심히 살아가다보면 즐겁기도 하고 행복하기도 하다는 것을 배우게 된 여정이었다. 

마지막으로, 다시 길고긴 대장정에 나선 이균도 부자께 응원의 박수를 보내주기를 부탁드린다. 발달장애인의 복지권과 그 가족의 고통을 국가가 책임지도록 하기 위해, 균도부자는 오늘도 걷는다. 발달장애인과 그 가족의 목소리를 대변하고자 하는 균도부자의 바람이 꼭 실현되었으면 좋겠다. 네 번째 세상걷기의 마지막날, 보건복지부 앞에서 건강한 얼굴로 만날 수 있기를 기원한다.

[ 민은주 (진보신당 부산시당 정책국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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