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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0.03 11:45

많음과 옳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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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음과 옳음 (퍼온글입니다)


*

백만 아니라 천만이 모여도 조국은 옳지 않다.

백만 아니라 백 명이 모여도 톨게이트 노동자는 옳다.

백만 아니라 한 명이어도 김용희가 옳다.


*

어제 백만 촛불 집회에 대한 해석이 분분하다. 백만이란 숫자에 대단히 고무된 지지자들이 오늘 아침 더 힘차게 '나는 조국이다'를 외친다. 심지어 어떤 지식인들은 조국과 과열 지지 현상을 비판하는 이들을 향해, 민중의 목소리를 듣지 못하는 자들이라 짐짓 준엄하게 꾸짖기도 한다. 그 와중에 어떤 사람들은 헷갈린다. 백만의 힘은 이렇게 크다. 어떻게 봐야 할까. 어제 모인 사람들의 '나도 조국이다' 라는 목소리도 들어야할 소리지만, 나는 조국이 민중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자라 생각하지 않는다.


정치적 힘은 벡터와 스칼라를 구분한다. 방향을 가진 힘 벡터와 양적 크기만 나타내는 스칼라는 질적으로 다른 것이다. 어떤 장소에 수많은 사람이 운집한다고 해서 그것이 곧 정치적으로 올바른 방향을 향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물론 어제 집회에 나온 사람들이 방향 없이 모인 사람들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 속에는 여러 방향의 힘들이 작용한다. 어떤 이들에게 검찰 개혁과 조국 수호는 일치를 뜻하는 구호지만 어떤 이들에게 검찰 개혁과 조국 수호는 모순된 말이다. 왜냐하면 '검찰 개혁'이란 말은 특권 해체에 대한 열망을 표현하는데, 조국은 바로 그 해체되어야할 특권의 상징이기 때문이다. 지금 이 나라에 검찰 개혁을 염원하는 사람들은 아마 백만보다 훨씬 많을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개혁의 적임자가 왜 조국인지 이해할 수 없는 사람도 그만큼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폐 청산과 개혁에 대한 열망을 교묘히 정권 지지의 동력으로 흡수하는 괴이한 논리가 바로 '검찰 개혁 = 조국 지지'라는 논리다. 이 논리 조차 앞뒤가 바뀌어 이제는 '조국 지지 = 검찰 개혁'이라고 말한다. 검찰 개혁을 위해 (흠결이 있어도) 어쩔 수 없이 조국을 지지한다던 논리가 조국을 수호하는 것이 곧 검찰 개혁인 것처럼 되어버린 것이다. 스칼라가 커질수록 벡터는 점점 더 후퇴하고 있다.


그러나 개혁을 향한 열망과 조국을 지지하는 열광은 모순되며, 적폐 청산을 향한 염원과 문재인 정부에 대한 지지는 명백히 반대된다. 그것은 입으로는 개혁을 외치면서 반개혁 정부를 지지하고, 반개혁적 정부가 자신이 원하는 개혁을 추진해주기를 바라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러니 이제 촛불을 들려면 '조국 수호'는 조국 팬클럽에게 주고, 개혁을 열망하는 시민들은 필요한 개혁 요구를 외치면 된다. 지금 노동, 인권, 환경, 교육, 등 개혁할 곳이 한 두군데가 아니다.


수십억대 자산가에 서울대 법대 친구들을 정계 요직마다 두고 있는 사람을, 마치 수난당하는 약자처럼 비유하며 '나도 조국이다'를 외치는 것은 넌센스다. '나도 00이다'는 아무도 그 옆에 서주려고 하지 않는 가난하고 힘없는 이들 옆에 서겠다는 연대의 구호이며, 그 사람과의 동일시를 통해 그가 겪는 고통과 두려움에 공감하고 함께 하겠다는 각오이고, 공표하여 말함으로서, 자신도 같은 위험에 처하게 될 것을 감내하겠다는 용기의 발언이다. 이를테면, '나도 무슬림이다, 나도 레즈비언이다. 나도 불법체류자다. 나도 비정규직 노동자다' - 이런 문장을 통해 약자와 하나되는 언어를 발견하고 사용했던 것이다. 그런데 지금 '나는 조국이다'는 구호는 그런 약자의 연대 선언마저 빼앗아 변질시키고 있다.


조국이 될 수 없는, 조국이 되지 않고자 하는 많은 사람들은, 검찰 개혁과 조국 수호를 함께 외칠 수 없다. '조국 수호'는 '기득권 수호'이며, '특권 수호'의 다른 이름이기 때문이다. 노동자 민중에겐 검찰도 조국도 개혁의 대상이며, 해체해야할 특권의 이름이다.


소수와 약자는 다수와 강자의 방식으로 싸울 수 없다. 나는 어제의 집회가 소수와 약자들의 집회였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것은 세력을 과시하는 강자들의 집회였다고 생각한다. 그건 자랑스럽게 인증샷을 찍을 수 있는 시위였다. 작은 목소리들을 덮고 지워버리는 집회였다. 그렇게 싸울 수 없는 이들에게, 그래서 너희는 이만큼이라도 모을 수 있냐는 조롱은 참으로 비열하다. 어제 보여준 것이 민심이었다 말하지만 그 민심에 노동자와 민중의 마음, 소수와 약자의 마음이 얼마나 들어있는 것인지 모르겠다. '깨어있는 시민'이라는 호명은 여전히 오만하며, 그 호명 집단에 들어갈 수 없는 이들을 배제한다. 386시민들은 광장의 민심까지 대표한다. 인정한다. 약자들에겐 힘이 없다. 진보정치는 고사 직전이고, 좌파 세력의 영향력은 미력하다. 그러나 힘이 없으면 따라 오라는 것은 얼마나 강자의 언어인가. 힘이 없으니 어쩔 수 없다는 말도 마찬가지다. 강자의 언어로 말하면서도 그것이 강자의 언어라는 것을 모른다.


그럴수록 나는 '많음'에 굴하지 않고 '옳음'에 대해 말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약자의 언어까지 빼앗아가는 강자의 언어에 대해 '아니다'라고 말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제도정치 지형 속에 좌파가 없으면 없는 것이고, 진보정당이 없으면 없는 것이다. 진보를 포함하는 보수, 좌파까지 대변하는 우파 정부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노동 존중을 내세운 자본가 정권에 이만큼이나 속아왔으면 충분하다. 없으면 없는대로, 한 명 부터, 열 명 부터 시작해야 한다. 힘 있는 자들의 조력은 그들의 이해관계가 멈추는 곳에서 언제나 중단된다. 지금 옳은 것을 말하는 한 사람, 열 사람, 백 사람들이 있으면, 그 존재가 소중한 것이다. 톨게이트 노동자의 '우리가 옳다'를 누가 부정할 수 있는가. 삼성 처벌하라는 김용희의 요구가 갖는 정당함을 아무도 부정할 수 없다. 법원의 판결이 옳고 그름을 가려주었기 때문이 아니라, 노동자들이 스스로 옳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싸우는 사람만이 자신의 언어를 가질 수 있다. 약자는 약하지만 옳다는 힘이 있다. 그 옳음을 버리면 우리는 싸울 수 없다.


나는 묻고 싶다. 스스로를 '촛불 시민'이라 부르는 분들은 과연 어떤 개혁을 원하는지. 촛불의 시작으로 돌아가서 물어보자. '이게 나라냐'라는 피켓을 들었을 때, 당신은 어떤 나라를 원했던 것인가. 2016년 촛불 광장에서 김용균을 닮은 청년으로부터 들었던 말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내가 지금 촛불을 들면, 정말 세상이 좀 나아지는 거냐고, 잘릴 걱정 없이 일하고, 잔업 야근 줄어서 밤에 책도 좀 볼 수 있고, 지하방 탈출해서 해 드는 집 구하고, 사랑도 하고 결혼도 꿈꾸어볼 수 있는, 그런 세상 오는 거냐고, 그렇게 묻던 청년. 조국을 지키고 윤석렬을 날리면, 그 청년이 원했던 세상이 좀더 가까이 오는 것인가? 하지만 그렇다고 말했던, 조국의 말은 그와 함께 촛불을 들었던 청년들과 다른 많은 이들의 믿음을 배반하지 않았나? 문재인 정부는 촛불 광장에서 나왔던 모든 개혁 의제와 정치의 약속을 후퇴시키지 않았나? 그 끝에 청년 김용균을 잡아 삼킨 자본주의 지옥도가 지금도 날마다 펼쳐지고 있는 것 아닌가? 그런데 그 많은 '진보 어른', 깨어 있다는 시민들이 나서서, '나도 조국'이라니, 이 거대한 모순의 말들을 도대체 어떻게 이해 하란 말인가.


'나, 김용균', 화력발전소에서 석탄 설비를 운전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는 이렇게 물었다.


"문재인 대통령, 비정규직 노동자와 만납시다."


"노동악법 없애고, 

불법파견 책임자 혼내고, 

정규직 전환은 직접고용으로."


비정규직 노동자와 만나지 않고, 노동악법 사수하며, 불법파견 책임자 재벌 기업 비호하고, 정규직 전환 약속은 자회사 꼼수로 회피하는 '당신, 조국'과, 문재인 정부에게, 수많은 김용균들은 오늘도 묻고 있다. 거기에 '나도 조국'이라고, 답할 수 있겠는가?


나는 어제 그 많음 가운데서, 옳음이 무엇인지 묻고 싶다. 검찰 개혁 요구는 정당하며 분명 옳음이 있다. 그러나 '조국 수호'는 그 옳음을 훼손한다. '조국 수호'를 위해 외친다면, 검찰 개혁의 요구도 더 이상은 옳은 것일 수 없다. 그건 한 쪽의 특권을 지키기 위해 다른 한 쪽의 특권을 빼앗는 싸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 싸움에 동원되는 것은 거부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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