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논평]
더 나쁜 후보를 골라낸 미국 45대 대통령 선거
- 미국 대통령 트럼프 당선에 대하여
지난 11월 9일 치러진 미국 45대 대통령선거에서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ke America Great Again)라는 구호를 내세운 부동산 재벌 출신 공화당 도널드 트럼프 후보가 당선됐다. 선거인단 270명이면 당선되는 선거에서 트럼프는 290명을 확보해 232명에 그친 힐러리에 압승했다. 그러나 특이한 미국 선거제도에 의해 59,926,386명(47.7%)표를 얻은 힐러리가 59,698,506표(47.5%)를 얻은 트럼프보다 227,880표를 더 얻고도 선거인단에 뒤져 패배했다. 12년 전 민주당의 앨 고어가 조지 부시에 40만 표 앞서고도 패배한 것과 같은 모양새다.
- 트럼프 승리는 미국의 선거제도 탓 : 득표에 이기고 선거인단에 진 힐러리
미국은 선거제도는 매 시기마다 등록한 유권자만이 투표할 수 있는데 등록자격이 있는 사람 수는 231,556,622명이다. 그런데 이번 선거에서 전체 유권자의 63.2%인 146,311,000명이 등록했고 그중 88%인 128,843,000명이 투표했다. 총유권자 대비 투표율은 55.6%이다. 선거등록이 어려운 처지에 있는 유권자들은 투표할 수 없는 한계가 있다. 트럼프는 총 유권자의 25.8%, 선거등록자의 40.1%, 투표자의 46.3%를 득표했다. 형식적 민주주의로서 대표성을 획득했다고 할 수 없다.
CNN의 출구조사(24,537명)에 따르면, 남성은 트럼프 53% : 힐러리 41%, 여성 트럼프 42%: 힐러리 54% 투표했다. 연령별로는 18~29세(19%)에서 트럼프 37%: 힐러리 55%, 30~44세(25%)에서 트럼프 42% : 힐러리 50%, 45~64세(40%)에서 트럼프 53% : 힐러리 44%, 65세 이상(15%)에서 트럼프 53%: 힐러리 45%였다. 트럼프는 남성과 고령층에서. 힐러리는 여성과 젊은 층에서 지지가 높았다.
- 여론조사는 밑바닥 민심을 반영하지 못했다
선거가 시작되기 직전까지 미국의 대표 언론인 CNN, New York Times, ABC News 등은 여론조사를 근거로 힐러리의 승리를 예측했다. 지난해 이스라엘 총선, 영국 하원의원 선거, 금년의 영국의 브렉시트 투표 그리고 한국의 20대 국회의원 총선 등 여러 나라에서 선거예측이 어긋나고 있다. 미국도 한국과 같이 여론조사의 표본이 1000여 명 내외로 실제 투표하는 미국 유권자 1억2~3천만 명의 0.00001%에 불과해 표심을 반영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선거 시작부터 트럼프의 승리를 예측해 온 우종필 세종대학교 빅데이터 MBA(BD MBA) 주임교수는 구글 트랜드 검색률 등 빅데이터 분석을 통해 트럼프가 훨씬 앞서 있었다고 주장한다.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한 트럼프는 미국 주류 정치에서는 ‘아웃사이더’이다. 그는 선거 전후로 인종차별·성추문ㆍ탈세ㆍ막말ㆍ무지 등으로 대통령 후보 비호감이 역대 최고인 70%에 육박했다. 그러나 기성정치에 지친 미국 유권자들의 상당수가 트럼프를 지지했다. 거기다가 1870년대부터 미국 산업의 중심지였으나 1970년대부터 쇠락해 간 펜실베이니아, 웨스트버지니아, 오하이오, 인디애나, 일리노이 등 러스트벨트지역(사양화된 공업지역)의 백인 남성들도 트럼프를 지지했다. 거기다 북미자유협정(NAFTA) 등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가져온 산업 공동화, 노동자들의 고용불안과 임금삭감 등의 불만도 한몫했다.
- 빈부 격차와 양극화로 치달은 미국사회
신자유주의 종주국 미국의 불평등은 상상을 초월한다. 2012년 뉴욕 월가 점령시위에서 ‘1:99% 사회’가 구호로 외쳐졌다. 한국에서 ‘10:90’의 사회를 말할 때였다. 월마트를 소유한 월턴 가의 6명이 미국 인구 42%보다 많은 1,500억 달러 이상을 소유하고 있다. 1200만 명의 밀입국자를 제외하고도 3000만 명이 넘는 국민들이 의료보험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다. 아프리카계 미국인 아동의 절반이 빈곤에 시달리고, 전체 아동 5명 중 1명이 음식 부족으로 고통을 받고 있다.
미국의 실업률은 공식적으로는 5%이지만 단시간(파트타임)노동자를 포함하면 20%를 상회한다. 이번 대선에서 트럼프도 실질실업률이 20%라고 주장했다. 임금은 물가를 감안할 때 실질적으로 감소하고 있다. 미국 전역에 1,800만 채 이상의 빈집이 있지만 수백만 명이 노숙을 하거나 좁고 유해한 환경에서 살고 있다. 2015년 1200명 이상의 국민들이 경찰 총에 맞아 사망했다. 사망자들은 아프리카계, 라틴계 미국인, 원주민에 집중되어 있다. 240만 명 이상이 투옥되어 있다. 아프리카계 미국인인 오바마가 대통령인 나라에서 투옥된 국민 중 아프리카 미국인이 백인의 6배에 달한다.
- ‘더 나쁜 후보(트럼프)’를 골라내는 선거
한편 패배한 힐러리는 트럼프가 ‘사기꾼 힐러리(Crooked Hillary)’로 공격했듯이 주류 정치 20년 동안 ‘부패한 기성 정치의 화신’으로 몰렸다. 빌 클린턴 때도 그랬지만 민주당 오바마 정권 시절 국무장관으로서 제국주의 침략 전쟁을 벌인 호전주의자이다. 장관 시절 보안 지침을 어기고 사설 이메일 계정을 통해 기밀 사항을 주고받은 의혹 특히, 이메일 중 일부는 한국의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처럼 ‘비선 실세’라 불리는 후마 애버딘의 개인 노트북에 저장한 것이 드러나 FBI 수사를 받기도 했다. 그 외에도 입으로는 금융규제를 말하고 뉴욕 월가로부터 고액 강연료를 받았고, 빌 클린턴 아칸소 주지사 시절에는 지역 토지개발 사기 사건으로 수사를 받기도 했다.
이번 선거는 ‘트럼프’와 ‘힐러리’라는 역대 최고의 비호감을 가진 두 후보 중 ‘더 나쁜 후보’를 골라내는 선거였다고 평가하고 있다. ‘○○에게 투표한다(Vote for)’가 아니라 ‘○○에게 투표하지 않는다(Vote against)’는 식이었다. 한국의 보수정치판에서 둘 다 나쁠 때 ‘덜 나쁜 이’에게 투표하는 ‘차선(차악)’을 선택하는 것보다 더 나쁜 조건의 선거였다. 이번 선거에서 미국 유권자들(등록한)은 ‘트럼프를 뽑은 것이 아니라 힐러리를 뽑지 않은 것’이라고 말할 정도다. 그러나 주별 승자독식 선거제도가 아니라면 힐러리가 승리했을 것이다.
- 트럼프의 장밋빛 ‘경제성장과 일자리’ 말고는 반노동, 반인권, 반평화, 반환경 공약
트럼프의 부문별 선거공약을 살펴보자.
- 미국경제 : 성장률 3.5%, 10년간 2500만 명 고용 창출하겠다고 한다. 이 공약이 ‘러스트벨트’를 중심으로 한 백인 남성들의 지지를 끌어냈다. 그러나 신자유주의 정책으로 인한 전 지구적 경기침체가 단기간에 극복되어 경제성장과 일자리가 늘어날 것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 무역 : 미국 우선 무역협상, 국익 보호하지 못한 무역협정거절, TPP 반대, NAFTA 등 재협상 추진을 추진하겠다고 한다. 그렇지 않아도 슈퍼 301조 등을 통해 국제조약조차 미국 국내법으로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강제해 왔는데 트럼프의 공약대로라면 한미FTA 조문을 미국에 유리한 방향으로 개정할 것을 강요할 것이다.
- 의료보험 : 오바마 케어를 폐지하겠다고 한다. 오바마가 한국의 의료보험제도를 평가한 적이 있는데, 오바마 케어를 실시할 경우 현실적으로 의료보험료가 인상될 것이고 노동자들의 정서를 파고든 트럼프가 표를 결집하는 데 이용했다. 그러나 마이클 무어 감독이 영화 <시코>에서 지적했듯이 공공의료보험 제도가 불비한 미국의 민영의료보험제도는 많은 문제를 낳고 있다.
- 세제 : 법인세율 35%→15%, 최고소득세율 33%로 인하하겠다고 한다. 자본이 세제 혜택으로 투자를 늘려 일자리를 만들고 소비가 늘어나는 낙수효과(trickle-down effect)를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재벌과 부자들에게 세금을 더 깎아주면 서민들을 더 쥐어짜는 효과를 초래할 것이다.
- 일본·한국 등 해외 미군 주둔 : 주둔지역 국가에 전액 부담시킬 것이라고 한다. 한국은 연간 1조 원에 달하는 주한미군 주둔비도 모자라 세계에서 가장 많은 액수의 미국 군사무기를 도입하는 나라이다. 더 강요하겠다는 의미다.
- 북한 : 중국이 북한 문제를 해결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북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남북 당사자 사이에 대화와 협력이 가장 중요하다. 중국에 맡긴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한반도 주변 4대 강대국과의 대화도 동시에 추진되어야 한다. 복잡한 정치군사외교적 문제로 다루어야 한다. 부동산 투자하듯이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 중국 : 환율 조작국 지정, 동·남 중국해에서 미군 전개를 강화하겠다고 한다. 전 세계 G2 국가인 중국과 미국은 어느 한쪽이 일방적으로 경제적, 군사적인 선택할 수 없는 처지다. 특히 대중국 포위전략의 일환으로 미 해군력의 증강이나 사드, MD 체제 강화는 심각한 긴장을 불러올 것이다.
- 테러대책 : IS 관련 러시아와 협력, 테러관련국에서 이민 금지, 테러리스트 물고문 허용 등을 공약했다. 반인권적인 공약을 천명하고 있다. 이대로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만약 공약 그대로 행한다면 국내외적으로 엄청난 비판에 직면할 것이다.
- 이란 : 핵 협약 파기를 선언했다. 이는 매우 위험한 일이다. 2009년 오바마가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이유가 ‘핵 없는 세상을 향한 비전 제시’ 등이 이유였는데 이란 핵 협상을 파기한다는 것은 핵확산을 막으려는 노력과 배치된다.
- 이민 : 멕시코 국경에 장벽, 오바마 정부의 불법 이민자 사면 철회, 불법 이민자 추방군 창설, 원정출산 원천봉쇄, 속지주의 국적제도 폐지, 무슬림 미국 입국 금지, 출입국 심사절차 강화 등을 제시하고 있다. 쇄국정책을 펼 태세다. 폭력적으로 불법 이민자를 추방하겠는 주장이다. 미국 자체가 이민의 나라다. 추방하려면 자신도 독일계 이민 후손이니까 아메리카 원주민만 남기고 자신을 포함해 거의 대부분의 미국인들이 추방되어야 한다.
- 총기규제 : 개인이 무기를 가질 권리 지킬 것이라고 한다. 미국은 매우 넓은 나라이고 오랜 전통상 자신의 안위를 위하여 총기를 소유하는 것을 전통으로 하였다. 그러나 가장 큰 이유는 총기업자들의 이해와 관련된다. 그리고 엄청난 총기사고로 인명이 살상되는 현실에서 총기소유를 줄이고 나아가 금지시켜야 한다.
- 환경 : 국가안보 문제와 거리, 화학연료 개발 확대, 파리기후 변화 협정 탈퇴 불사하겠다고 한다. 반환경, 반지구 입장이다. 미국 자신을 위해서도 결코 올바른 선택이 아니다.
트럼프의 공약을 보면 실현 여부가 불투명하지만, 귀로 듣기에는 달콤한 ‘경제성장과 일자리 창출’ 외에는 하나같이 반노동, 반인권, 반평화, 반환경 공약이다. 미국 국민들이 이번 대선에서 트럼프를 선택한 것은 매우 잘못된 그리고 매우 위험한 일이었다. 물론 노동자 시민들의 저항에 부딪히면서 자신의 공약대로 되지 않겠지만, 지지자들이 동의한 경제성장과 일자리는 트럼프 같은 부동산 자본가가 해낼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이 또한 헛공약이 될 가능성이 높다.
(2016.11.10.목, 노동당 대변인 허영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