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노조(전공노) 기관지 <국가의 왼손> 제63호(2009년 3월 5일자)에 실린 칼럼.
국립대 법인화에 대한 내용인데,
기관지 편집팀이 제목을 "국립대 법인화는 정책이 아니라 폭거"라고 바꾸었네요.
그럼,
----------------
‘좋은 거 끌어내리기’는 정책이 아니라 폭거입니다
송경원(진보신당/ 교육), 090224
개인적으로 국립대를 나왔습니다. 물론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듯이 졸업한 학교를 그리 좋아하지 않는답니다. 찾아가는 건 아예 생각조차 하지 않습니다. 고등학교에 대해서도 그런 걸로 봐서는 다른 이들보다 유독 심할 수도 있겠네요.
하지만 국립대 진학 결정까지 후회하는 건 아닙니다. 대학 다닐 때의 기억이 그리 좋지 않을 뿐이지, 고3 때의 선택을 잘못된 판단으로 보지 않습니다. 국립대는 일단 싸니까요. 등록금이 많이 오르긴 했지만, 그래도 지금이나 예전이나 사립대에 비하면 ‘가격경쟁력’이 있으니까요. 뭐, 그렇다고 ‘싼 게 비지떡’이라는 의미는 아닙니다. 그보다는 동가홍상(同價紅裳), 즉 ‘같은 값이면 다홍치마’에 가깝습니다.
이런 이유로 여섯 살과 네 살배기 딸아이들이 무럭무럭 자라나 국립대에 가겠다고 한다면, 말리지 않겠습니다. 아니 두 손 번쩍 들어 고맙다고 하면서, 아이들의 품에 선물을 가득 안기겠습니다. 거의 20년 전에 부모님이 그러셨던 것처럼 할 겁니다. 십수년이 지난 그 때까지 국립대가 존재한다면 말입니다.
이명박 정부는 국립대 법인화를 계속해서 추진할 요량입니다. 사전포석으로 진행했던 국립학교 공립화가 유보되고, 국립대 재정회계법 또한 진척이 더디지만, 그래도 “국립대의 자율결정에 의거하여 법인화를 추진”할 계획이라고 2009년 업무보고에서 밝힙니다. 역시 잠시 쉴 수는 있어도 포기와는 담을 쌓은 정부답습니다. 역시 타율을 굳이 ‘자율’이라고 강변하는 정부답습니다.
하지만 이걸 정책이라 불러야 할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무릇 교육개혁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조건이 있기 때문입니다. 첫째, 교직원과 학생 등 교육주체의 뜻에 기반하면서 그들과 함께 교육개혁을 추진해야 합니다. 무수히 많은 소위 개혁이라고 하는 것들이 주체와 객체가 뒤바뀌고 엉키면서 실패한 걸 반면교사로 삼아야 하겠죠. 둘째, 연착륙을 기본으로 해야 합니다. 교육이야말로 인간 그 자체이기 때문에, 감수성이나 신뢰이익 등을 우선 고려해야 한답니다. 마지막으로 아래를 끌어올려서 균형을 맞추는 방식이 기본입니다. 즉, 지원과 역차별을 중심으로 해야 합니다. 물론 좋은 걸 끌어내리는 게 더 화끈하고 쉽기는 하지만, 사실 그건 ‘너도 죽고 나도 죽자’ 하는 겁니다.
국립대 법인화는 세 가지 요소 중 어느 하나도 갖추고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성공하기 어렵습니다. 물론 억지로 끼워 맞춰 생색내기는 할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결코 정부가 원하는 결과는 나올 수 없습니다. 대신 어떤 형태로든 더 왜곡되면서 국립대 구성원들에게 씻기 어려운 상처를 줄 겁니다. 예컨대, 법인화는 다들 예상하다시피 등록금 인상을 초래하는데, 학생과 학부모에게 부담을 지우면서 학교 내 반목도 키울 겁니다. 더구나 나중에 법인화를 되돌린다고 하더라도 이미 오른 등록금은 낮추는 건 어쩌면 불가능할지 모릅니다. 기초학문 육성이나 국가 고등교육의 모범 사례로서의 역할 또한 비슷하겠죠.
그래서 국립대 법인화는 정책이 아닙니다. 폭거에 가깝습니다. 당근과 채찍으로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폭력입니다. 학교수 기준으로 14.5%, 학생수 기준으로 18.7%에 지나지 않는 국공립대학은 무조건 늘려야 할 ‘육성 과제’이지 통폐합이나 폐지 대상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명박 정부야 오직 ‘국가 아니면 시장’, 그리고 ‘시장만이 절대선’이라는 단순한 눈으로만 세상을 보니 없애야 할 것으로 인식하겠죠. 하지만 ‘민주화된 국가’나 ‘민주화된 공공기관’이라는 다른 그림도 얼마든지 있답니다. 그러니 국립대 법인화는 정책이 아닙니다.
요즘은 솔직히 능력만 된다면 이민가고 싶습니다. 조금 있으면 큰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는데 자신이 없거든요. 평소 교육을 살피는 걸 업으로 해서 그런지, 이명박 정부 교육정책의 그림이 어떨지 훤하게 그려지기 때문입니다. 맞벌이를 하지만 그 돈으로는 턱도 없다는 걸 알기에 불안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간절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국립대를 바라보는 시각 그대로 학교가 온전하였으면 합니다. 무늬만 국립대가 되지 않기를 기원합니다. 뭐, 좀 더 욕심을 부린다면 사립대를 국공립대로 전환하던 국공립대를 신설하던 간에, 집 근처까지 국공립대가 있으면 더할 나위없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