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 2만도 안되는 작은 시골동네인 전북 장수에서 준비하고 있다. 바로, 농촌형 민중의집인 '장수 농민의 집'이다. 세상을 바꾸지 않는 이상, 시골살이도 무릉도원일수 없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모였다. 잘난 사람도 없고, 출중한 활동가 한 명 없다. 2012년 초부터 함께 토론하고 현장견학도 가고, 간담회, 강연회 등을 열어 공감대를 넓혔다. 그렇게 1년의 준비기간을 거쳐 2013년 초 출범을 앞두고 있다.


시골살이 10년, 다가올 10년

서울 살다가 2003년에 고향인 전남 화순으로, 2005에 이곳 전북 장수로 왔으니 시골생활 10년째. 만만치 않은 시골살이에 적응하느라 30대 초반이었던 젊은 귀농인이 이제는 40대를 훌쩍 넘겨버린 아저씨가 되었다. 마음만은 아직도 첫사랑과 교정을 거닐던 스무살 청년이고, 꽃병 들고 백골단과 맞서던 열혈청년인데. 늘어나는 주름살에 거울을 보기가 점점 싫어진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왜 세상은 거꾸로 돌아갈까? 아이들에게는  이런 세상 물려주지 않겠다고 했건만 간난아이가 유치원에 가고, 초등학생이 되었어도 이렇다 할 변화를 만들지 못했다. 

눈 한번 깜빡이면 또 10년인데 뭘해야 할지 걱정이다. 아이들이 다 커서 노동자가 되거나 대학생이 될 때까지 이런 세상을 물려줘야 하나. 아이들에게 부끄럽다. 대선이 끝나고 죽음의 행렬, 절망의 행렬이 이어진다. 남의 일 같지가 않다. 

시골에 와서 어느 정도 농사일에 익숙해지고, 겨우 입에 풀칠할 정도는 됐지만, 세상이 자꾸만 거꾸로 돌아가니 답답하다. 농부로 살며 세상을 바꿔보겠다고 시골로 왔고, 농사일로 바쁜 와중에도 이리저리 뛰어 다녔지만, 진보운동은 갈수록 힘을 잃어 간다. 도대체 10년 동안 뭘 한 건지 아쉬움만 남는다. 다가올 10년, 어떤 계획으로 헤쳐 나가야 할까, 고민이 많다.

20130102173219_2008.jpg ▲ 농업위원회(준)는 투쟁현장과 각종 연대단위에 농산물 후원운동을 하고 있다. (사진: 김재호)



10년 그거, 돌아서면 금방이다 

이번 대선 끝나고 올라온 페이스북 친구의 글이 마음에 와 닿는다. 

“어차피 하루가 5년을 바꿀 거라는 기대는 애초에 없었어. 오히려, 변화를 바라는 우리가 자신의 하루를 바꾸는데 5년을 쓴다면 어쩌면 우리에게 희망이라는 것도 생기지 않을까, 싶어져. '강철 새잎'을 듣고 있어. 예전엔 이 노래를 들으면 엄혹한 겨울을 뚫고 나오는 새 이파리만 그려졌었는데, 이젠 씨앗을 준비하고 씨를 뿌리지 않으면 잎이 돋을 일도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 긴 호흡으로, 꼭 한 걸음씩, 뚜벅뚜벅......걸어가야지.” 

긴 호흡으로 씨를 뿌리자는 말에 공감이 간다. 특히, 진보신당 당원으로서 지역기반이나 연고 없이 귀농해 보수적인 시골살이를 겪어본 나로서는 더더욱 그렇다. 특별한 활동 없이 선거결과만으로 실망하기엔 애초부터 뿌린 씨앗이 많지 않고, 열매를 맺기까지 노력한 게 별로 없다. 선거결과에 낙담하기엔 그동안의 활동이 한없이 부족하다. 애초부터 진보의 열매는 뿌리를 강하게 내린 나무에서만 수확이 가능하지 않던가. 굳이 농사꾼이 아니어도 다들 잘 알지 않는가 말이다. 

늦었지만 이제라도 씨를 뿌려야겠다. 튼튼한 지역활동을 일구어내지 않으면 진보정당도, 세상변화도 한낱 모래성에 불과하다. 최소한 10년은 뿌리내려야한다. 그것조차 길지 않다. 10년 그거, 돌아서면 금방이다.  


지역에서 부는 조용한 바람, 장수농민의집!

긴 호흡으로 씨를 뿌리는 일, 인구 2만도 안되는 작은 시골동네, 전북 장수에서 준비하고 있다. 바로, 농촌형 민중의집인 [장수농민의집]이다. 

장수는 진보신당, 녹색당, 통합진보당 당원을 다 합쳐봐야 채 100명도 안된다. 자본주의가 망쳐놓은 세상을 조금이라도 바꿔내기 위해 지역주민과 진보정당 당원과 지역단체, 노조활동가들이 힘을 모으고 있다. 시골에서 뭔가라도 해보자는 생각으로 뭉쳤다. 사실, 거창한 거 별로 없다. 

지난 지역운동의 10년은 장수중학교 교장으로 계셨던 故김인봉선생님이 이끄셨다. 허름한 자전거 한 대 타고 다니면서 진보정당운동, 교육운동, FTA반대운동을 이끌어 오셨다. 그런 분이 2010년 일제고사반대운동에 온몸으로 맞서시다가 간암으로 돌아가셨다. 지역운동의 구심이 사라진 것이다. 

그렇게 2년을 보내다가 사람들이 하나 둘 모이기 시작했다. 그냥 이대로 농사만 짓고 살기엔 마음 한구석이 허전한 사람들, 시골에 살면 행복할 줄 알았더니 꼭 그런 것도 아니라고, 세상을 바꾸지 않는 이상, 시골살이도 무릉도원일수 없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모였다. 잘난 사람도 없고, 출중한 활동가 한 명 없다. 2012년 초부터 함께 토론하고 현장견학도 가고, 간담회, 강연회 등을 열어 공감대를 넓혔다. 그렇게 1년의 준비기간을 거쳐 2013년 초 출범을 앞두고 있다. 

20130102173534_1510.jpg ▲ 2012년 8월에는 진보신당 농업위원회 주최로 귀농전략토론회/수련회도 열렸다. (사진: 김재호)



농촌형 민중의 집, 장수 농민의 집

장수농민의집은 세상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다양한 교육과 토론을 진행하는 농민학교다. 자본주의의 삶의 방식을 넘어 행복한 대안문화를 확산시키는 생활문화공동체다. 지역 내 운동단체들과 수평적 연대를 이루어내는 진보네트워크를 지향한다. 도시형 민중의집과는 달리 진보적인 귀농인들이 장수로 귀농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도 한다. 노동자 농민들의 농산물 교류를 이어주는 통로역할도 할 계획이다. 

침체된 농민운동에 활력을 불어넣고, 진보정당의 지역기반도 다져가면서 연대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 계획이다. 더 이상 시골이 주도권 다툼이나 하는 침체된 농민운동의 황망한 사막이 아니었으면 한다. 

농민의집을 통해 세상을 바꾸는 행복한 시골살이에 많은 도시당원들이 참여할 수 있기를 꿈꾼다. 평등, 생태, 평화, 연대의 정신으로 함께할 젊은 일꾼들이 농촌사회에 넘쳐나고, 위기의 농민운동에 새로운 바람이 불기를, 그래서 농민운동의 세대가 바뀌기를 기대한다. 세상을 바꾸는 행복한 시골살이, 장수민중의집이 시작한다. 


지역거점활동가 워크샵에서 많이 배우다 

지난 12월 15일 괴산 청양청소년수련원에서 개최된 ‘진보신당 지역거점 활동가 워크샵’에 참석했다. 전국에서 민중의집 / 도서관 / 카페 / 연구소 등 다양한 형태로 지역거점활동을 하는 동지들이 한 곳에 모였다. 이미 당내에서 거점공간을 운영하고 있거나 만들어 가고 있는 곳이 30곳이나 된단다. 예상하지 못했던 숫자였다. 많이 반가웠다. 고민도, 겪고 있는 어려움도 비슷했다. 이미 활동하고 있는 지역의 경험도 나누고, 서로 도움이 될 만한 이야기도 많이 나눴다. 지역주민과 미조직 노동자 조직방안, 지역거점과 당의 관계, 각 유형별 활동사례도 알 수 있었다. 

지역은 달랐지만 많은 분들이 장수농민의집에 관심을 가져주었다. 농민의집이 장수뿐만 아니라 다른 농촌지역에도 만들어지기를 바라는 분들도 많았다. 농촌여성, 이주여성들이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꼭 필요하다는 조언도 해주었다. 10년의 중장기전략으로 농촌사회에 진보의 씨앗을 뿌리는데 농민의집이 그 역할을 충분히 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격려해주었다. 

20130102173756_0736.jpg ▲ 작년 12월 충북 괴산에서 열린 지역거점 활동가 워크샵. 김재호 농업위원장의 '농민의 집' 전략 발표에 많은 활동가들이 감동받았다. (사진: 진보신당)



지역거점 활동가 워크샵에서 느낀 아쉬운 점도 있다. 지역거점을 만드는 일을 다소 기능적으로 접근한다는 느낌이었다. 지역거점전략은 우리당의 양적인 성장뿐만 아니라 자본주의적 삶을 뛰어넘는 새로운 관계망을 만드는 일이다. 그 새로운 관계망은 활동가의 일방적인 헌신과 희생으로 만들어져서는 안되며 함께 힘을 모아 서로가 행복한 공동체적인 방식이어야 한다. 함께 행복해야만 지치지 않고 오래도록 힘을 발휘할 수 있다. 

지역거점을 준비하는 활동가들이 ‘조직화 전략’과 함께 ‘행복공동체’의 관점에서 접근했으면 좋겠다. 홍세화 전 대표가 인용한 나오미 울프의 말이 떠올랐다. “우리가 저항하고 싸우는 과정은 저항을 통해 획득하고자 하는 사회의 모습을 닮아야 한다”는 그런 정신, 그에 걸맞는 운영시스템이 마련되었으면 좋겠다.  


지역거점운동, 당차원에서 힘있게 조직해주길

이번 워크샵에 참가하면서 지역거점활동에 대해 당차원의 관심과 지원이 절실하다고 느꼈다. 장수만 해도 농민의집을 만들기 위해 좌충우돌을 많이 했다. 워크샵에 가서 얘기해보니 다른 거점공간이 준비과정에서 겪은 시행착오를 반복하는 경우도 많았다. 이번 첫 워크샵을 시작으로 거점공간끼리 교류를 많이 해보고 싶다. 수련회와 워크샵, 공동행사를 기획해 보는 것도 좋은 방법 일 것 같다. 

각 거점공간이 중장기적인 전략속에 만들어져야 하고, 전략지역 선정과 각 유형별 조직화전략, 당 정책역량과의 연계방안 등 체계적인 지원과 관리가 필요하다 하겠다. 새 대표단이 구성되면 거점사업단 활동이 중단되지 않도록 방안을 마련해주시기를 부탁드린다. 중앙당의 관심과 지원이 뒷받침 된다면 장수 시골동네에서도 즐겁게 농민의집을 만들어 갈수 있을 것 같다. 

[ 김재호(진보신당 농업위원회 위원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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