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광장 첫날 후기] 광장으로 튀어!


"평등은 어느 선량한 권력자가 어느 날 아침에 거저 내준 것이 아니야. 민중이 한 발 한 발 나아가며 어렵사리 쟁취해낸 것이지. 누군가가 나서서 싸우지 않는 한 사회는 변하지 않아."

오쿠다 히데오 - <남쪽으로 튀어!> 中


 10일 오후 6시, 기대보다는 걱정이 앞섰다. 서울광장에서는 이미 낮 일찍부터 큰 행사가 있었다. 후쿠시마 사태 1주년을 맞이하여 수많은 시민사회단체들이 탈핵 행사를 진행했다. 아이들 손을 잡고 삼삼오오 모인 시민들은 재기발랄한 부스 행사들을 보며 웃음지었다. 브라스 밴드를 앞세운 탈핵 행진도 '가투'에만 익숙했던 나에게 낯설지만 새로운 경험이었다. 그러나 탈핵 행진을 끝내며 서울광장으로 돌아오면서, 슬슬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딱 봐도 사람이 많이 보이지 않았다. 이번 '희망광장'에 참여하기 위해 전국에서 모인 장기투쟁 사업장 동지들이 실망하지나 않을까, 마음을 졸였다.


 쌍용차 공장 3차 포위의 날이 있던 새벽, 옹기종기 모여 앉아 동지들과 술잔을 나누다가 '희망광장' 이야기를 처음 들었다. 비정규직, 정리해고 문제를 걸고 대규모로 서울광장을 점령하자. 얼큰히 취한 와중에도 가슴이 뛰었다. 모든 사람들의 관심이 총선에 집중될 3월, 하지만 투쟁은 멈춰서는 안된다. 결국 서울에서 승부를 봐야한다. 권력과 자본의 심장부인 서울에서, 그 한복판인 서울광장을 우리의 요구를 내걸고 점령한다. 멋진 계획이었다. 희망버스의 성공, 희망뚜벅이의 의미를 이번에 더욱 확장시켜서 펼쳐낼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서울로 올라온 다음에도, 꾸준히 '희망광장' 기획단 회의를 눈팅(?)하며 한달을 기다렸다.


 그러나 막상 당일이 되자 꽃샘추위가 만발했다. 어렴풋이 밤그늘 깔리고 본 행사가 시작될 시간에도, 광장에 모인 사람들은 생각보다 적었다. 이백 남짓한 사람들만이 사전 행사를 진행했고, 공사 때문에 흙먼지로 덮인 서울광장은 너무나 비어보였다. 오늘이 출발인데, 중요한 순간인데, 하고 발만 동동 굴렀다.


 하지만 '꽃들에게 희망을' 콘서트가 시작하자 어느새 걱정은 저멀리 날아갔다. 비록 기대만큼 많은 이들이 모이진 않았지만, 그 열기와 폭발력은 수만이 모인 집회보다 더했다. 작년 여름, 영도에서 차벽에 가로 막혀 더 나아가지 못하던 희망버스 승객들을 앞에 두고 '전설의 무대'를 펼쳐냈던 <무키무키만만수>의 수줍은 멘트와 흥겨운 공연은 추위를 잊고 모두를 웃음 짓게 만들었다. 곧 이어 무대에 오른 <와이낫>은 '미친' 무대 매너로 좌중을 광란의 도가니로 만들었고, 수많은 사람들이 무대 앞에서 춤을 추기 시작했다. 이미 많은 투쟁 현장에서 함께한 바 있는 <김반장과 지구잔치>는 "비정규직 철폐하라! 정리해고 철회하라!"는 구호에 맞춰 모두가 하나 되는 레게 한마당을 만들었다. 사람들은 무대 앞에서 몸을 흔드는 것에 그치지 않고, 직접 무대로 올라가 춤을 추었다.

 

몸을 가만히 둘 수 없게 만드는 레게 리듬 속에서 흐느적 거리며, 이런 생각을 했다. 우리가 희망을 말하며 싸우고 있는 것은 이 사회가 절망을 만들어내고, 그 절망이 점점 더 많은 이들을 삼켜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절망에 삼켜져 가는 이들이 더욱 늘어날 수록, 절망에 맞서 함께 싸울 이들은 줄어만 갈 것이다. 비정규직과 정리해고라는 절망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는 현실을 멈춰야한다. 그러나 이것을 어떻게 멈춰낼 것인가?

 

압도적인 존재감을 보여준 허클베리 핀의 무대를 마지막으로 콘서트가 끝나고, 투쟁하는 노동자들의 '희망토크쇼'가 시작되었다. 이때 백기완 선생님은 이런 말을 남겼다. "지금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싸움은 자신의 몸을 깨뜨리며 자본을 깨뜨리는 바윗돌 같다. 하지만, 가루가 된 이들은 자기 장단에 맞춰 다시 살아나 일어날 것이다"

 

'가루가 된 이들의 장단'은 어떤 것일까? 나는 희망버스, 희망텐트, 희망뚜벅이, 그리고 오늘의 희망광장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방식으로 새로운 투쟁을 만들어나가는 과정이 바로 '가루가 된 이들의 장단'을 맞춰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한번은 <무키무키만만수>의 장구 장단으로, 어떤 때는 <와이낫>의 펑키 리듬으로, 오늘은 <지구잔치>의 레게 그루브로 춤추듯, 우리 역시 계속해서 또 다른 방식으로 우리의 요구를 알려내고, 자본과 권력의 폭압에 맞서 즐거운 투쟁을 만들어 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때늦은 추위 속에서 벌벌 떨면서, 경찰의 방해로 텐트도 반입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노숙을 불사하며 서울광장을 '희망의 광장'으로 바꿔낸 것은, 그러한 노력에 더 많은 이들이 동참하고, 더 많은 아이디어로 함께 싸울 수 있는 동력을 만들어내기 위해서이다.

 

 우리는 '희망의 광장'을 열어냈다. 이제 남은 순서는, 이 열린 광장으로 사람들이 모일 차례다. '희망광장'에서, 각자의 춤을 추며 각자의 희망을 키워내자. 그러니 모두, 광장으로 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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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 김정도 진보신당 당원은 동국대 총학생회 연대사업국장이다. 일방적인 학교 구조조정에 반대하여 투쟁을 벌이다가 학교의 표적 징계로 퇴학 조치를 받았다. 퇴학 철회, 구조조정 반대 투쟁에 바쁜 와중에도 비정규직-정리해고 없는 세상 만들기에 동참하기 위해 희망 콘서트를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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