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논평
2018.04.04 14:53

[논평] 4.3 사건 70주년을 맞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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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평]

4.3 사건 70주년을 맞아

- 그 이름을 찾기 위한 우리의 노력은 끝나지 않았다



4.3 ‘사건’이 일어난 지 70년이 지나가지만, 여전히 이 ‘사건’은 이름이 없다. 따라서 여전히 새로운 삶을 시작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물론 이 사건의 ‘사실’은 많이 밝혀져 있는데, 이는 이 사건의 성격을 규정하는 주요한 힘인 ‘국가’와 ‘국민’ 사이의 관계가 그만큼 변화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어떤 정치적 입장에 선다 하더라도 최소한 국가가 자신에 속한 국민에게 치명적인 폭력을 가하는 것은 도덕적으로나 법적으로 온당치 못한 일이라는 합의 속에서 이 사건을 드러내는 힘이 작용했다.


사건의 잠정적인 이름처럼 4.3 사건은 1948년 4월 3일 남로당 제주도당의 일부가 무장봉기를 하면서 시작되었다. 하지만 4.3 사건은 1947년 3월 1일 기념대회에 모인 사람들이 경찰 폭력에 항의하고 이에 대해 경찰이 발포하면서 6명이 사망한 사건부터 시작한다. 그리고 저변에는 경제적인 어려움, 미군정 경찰로 변신한 친일 경찰에 대한 분노, 미군정 관리들의 부패 등이 있었다. 남로당의 무장봉기에 대한 우익 조직의 폭력적인 대응은 당시 한반도에서 짙어지고 있던 이데올로기적 대립 그리고 남한과 북한 각각 독자적인 국가 권력을 수립하려던 움직임의 축소판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렇기에 이 사건은 한국전쟁이 끝난 후인 1954년 9월까지 지속되었다.


뒤늦게 만들어진 정부의 공식 보고서에 따르면 이 사건으로 14,000명이 넘는 희생자가 나왔다고 한다. 하지만 정확한 숫자는 사실 알기 어렵다. 이런 인적 피해 그리고 물적 피해만큼이나 컸던 것은 이 사건의 사후적인 삶, 더 정확히 말하면 배제된 삶이었다. 이 사건을 드러내기 위해 소설을 쓴 작가가 정보기관에 끌려간 일이 상징하듯 반공주의라는 이름 아래 철저히 배제되었던 것이다.


이런 일을 감안하면 2000년에 ‘제주 4.3 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을 위한 특별법’이 국회를 통과한 것을 기점으로 해서 ‘4.3 특별법’ 제정, ‘제주 4.3 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명예회복위원회’ 설치를 지나 2003년 대통령이 “국가권력에 의해 대규모 희생”이 이루어졌다는 것을 인정하고 사과한 것은 커다란 진전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상황이기에 4.3 사건을 ‘공산폭동’으로 규정하고 그렇게 함으로써 국가 폭력이 정당했다고 하는 주장은 도리어 논쟁을 위한 ‘건전한’ 문제 제기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국가 폭력의 정당성 여부에 대한 논의를 끌고 가면 과연 국가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그건 국가라는 것이 폭력에 대한 독점권을 주장하는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엄격한 절차와 제한된 ‘필요성’에 따라 조심스럽게 사용하면 되는가? 그리고 이는 어떻게 보장하는가? 현재 우리가 기대하는 것은 시민의 감시일 것인데, 이를 보장하는 공식적, 비공식적 제도 혹은 채널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가 숙제일 것이다.


또한, 국가 폭력은 위계적 구조 속에서 관철되며, 이는 폭력을 포함한 자원의 불평등한 분배 속에서 이루어진다. 이는 사회 구성원들에게 배제와 포함의 다양한 효과를 미치는데, 가시적인 폭력 없이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구조적 폭력이라 할 수 있다. 4.3 사건은 비록 국가 형성기에 벌어진 일이긴 하지만 여기에도 구조적 폭력이 저류처럼 흐르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경제적인 것을 포함해서 이런 구조적 폭력을 약화시킬 수 있는 체제와 연대의 구성이야말로 국가 폭력 없는 국가의 구성과 운영을 위해 필수적인 일이다.


반공과 독재의 시절에는 그 짙은 어둠 때문에 4.3 사건은 잘 보이지 않았지만 도리어 이런 사건들을 일종의 길잡이로 삼으려 애썼다. 하지만 광장과 촛불을 통한 민주주의의 밝은 빛은 도리어 그 강렬함 때문에 4.3 사건과 같은 일들을 흐릿하게 만들 수 있다. 이런 점에서 4.3 사건이 아직 이름이 없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 이름을 찾기 위한 우리의 노력이 끝나지 않았다는 것을 말해주기에...


(2018.4.3. 화, 평등 생태 평화를 지향하는 노동당 대변인 안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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