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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노무현 이후 한국 진보는 죽었는가?(프레시안)

[홍세화의 질문] 다시, '진보 정치'는 가능할 것인가? ①

홍세화 진보신당 대표    기사입력 2012-08-21 오전 10:11:06

    

     

2008년 미국에서 시작된 금융 위기 이후 전 세계는 '진보의 시대'가 되었다. 1990년대 이후 '죽은 개' 취급을 당했던 카를 마르크스와 <자본>이 각광을 받고, 세계 곳곳에서 좌파 정당이 기지개를 켠다. 워런 버핏, 빌 게이츠 같은 자본가가 나서서 '자본주의 위기'를 얘기하고, 한 때 자본주의와 과학기술이 결합된 유토피아를 얘기했던 이들도 다시 '복지'와 '노동'을 입에 올린다.

이렇게 '진보의 시대'로 이행 중인 세계와
한국은 정반대다. 최근 통합진보당 사태는 그 단적인 예다. 지금 한국에서 '진보'는 조롱과 기피의 대상이 되었다. 이렇게 '진보'가 사라진 공백을 '이명박 대통령을 반대하며' '박정희의 딸만은 대통령으로 만들어서는 안 된다'는 이들이 메우고 있다. 2002년 '무상 의료' '부유세' 등을 내세우며 민주노동당 권영길 후보가 당시 노무현, 이회창 후보와 공개 토론을 벌였던 장면을 생각하면 격세지감이다.

왜 이 지경이 되었는가? 하지만 이 질문에는
모두가 침묵한다. 과거 진보 정당에 몸 담았던 이들마저 한 때는 '보수 야당'이라고 딱지 붙였던 민주통합당을 기웃거리는 상황에서 '진보'의 대변인을 찾는 것은 어불성설인가? 이런 상황에서 진보를 위한 최후 변론에 나선 이가 있다. 바로 진보신당 홍세화 대표다.

민주화 15년간 한국의 대표적인 진보
지식인으로 활동해온 홍세화 대표는 최근 나온 <지금 여기의 진보>(이음 펴냄)에 실린 '파국과 절멸, 그 너머를 위한 노트 : 다시 진보 정치는 가능할 것인가'에서 이 어렵고 고통스러운 일을 자처했다. 모두가 '진보'를 외면하는 이때에 '진보' 정당의 깃발을 부여잡고 있는 그의 말에 경청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진보에 대한 예의'가 아닐까?

<프레시안>은 이음 출판사의 동의를 얻어서 그의 글을 두 차례에 걸쳐서 나눠 싣는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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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세화 진보신당 대표. ⓒ프레시안(최형락)

파국과 절멸, 그 너머를 위한 노트: 다시, '진보 정치'는 가능할 것인가

"'정신'의 진정한 속성은 물화物化에 대한 부정이다." (테오도어 아도르노)

소소한 이야기로부터

총선이 끝나고 석 달이 채 지나지 않아 내가 속한 진보신당(지금은 '창당준비위원회'라는 말이 뒤에 덧붙여졌지만)은 여의도를 떠나 다른 곳으로 이사를 했다. 지난해 11월 당 대표가 된 뒤 선거 전 어느 시점엔가 '탈(脫)여의도'의 가능성을 타진해본 적이 있지만, 내부의 반대 의견이 적지 않았다. 어쨌거나 총선에서 '1.13퍼센트'라는 초라한 성적표를 받아 정당 등록이 취소되고 국고 보조금도 끊긴 마당에, 여의도에 남는 것은 현실적으로도 어려운 일이 되었다(내가 탈여의도
실험을 통해 어떤 정당의 상(像)을 그렸는지에 대해선 이 지면에서 생략하겠다).

내가 글머리에 이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는 이사 과정에서 겪었던 에피소드를 언급하고 싶어서이다. 여의도 당사를 비워줘야 할 기일은 다가오는데, 새로 옮길 곳을 찾기가 힘들었다. 결국 한 달 보름이 걸려서야 겨우 계약할 수 있었다. 이유는 한 가지였다. 당 이름을 말하는 순간 건물주가 바로 고개를 가로젓는 일이 허다했고, 심지어 계약을 하고 나서 취소당한 경우도 있었다. 통합진보당 비례대표 경선 부정선거 사태 이후 벌어진 풍경이었다. '우리(진보신당)는 그 당(통합진보당)이 아니'라거나, 구차함을 무릅쓰고 '우리는 당이 아니라 준비하는 단체'라고 해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당사를 구하느라 애쓰는 당직자의 하소연을 듣다가 문득 예수의 말이 생각났고, 쓴웃음이 났다. 예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했던가. "여우도 굴이 있고 하늘의 새도 보금자리가 있지만 사람의 아들은 머리 둘 곳조차 없다"고. 당분간(?) 한국
사회에선 '진보'라는 이름을 달고선 '머리 둘 곳조차' 구하게 어렵게 된 것이다.

하지만 오늘날 진보가 처한 곤경을 이런 에피소드 수준의
현상만으로 다 설명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 글의 동기나 목적은 진보(또는 좌파) 앞에 깊고도 넓게 가로놓인 곤경의 강을 어떻게 건널 것인가를 궁리하는 데 있지 않다. 나는 오늘날 이른바 통합진보당 사태로 말미암은 '진보의 위기'가 특정 정당의 위기가 아니라 한국 사회에서 진행되어온 파국의 결과들 가운데 하나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뒤집어 말한다면, 진보 정치(내가 몸담고 있는 진보신당까지 포함하여)는 자신이 발 딛고 있는 사회에 닥쳐온 파국을 온전히 읽어내지도 못했고, 거기에 대응하는 실천들을 제대로 조직하지도 못한 결과 파국의 거센 파고 앞에 난파선이 되어 곤두박질치고 있는 중인 것이다.

그러면 진보라는 깃발을 단 배들이 심해 아래로 사라지고 난 다음 세상은 어떻게 되는 걸까? 이 물음에 답하기 전에 우선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진보의 죽음'이 정설처럼 유포되는 지금 이 시점에서야말로 마지막 숨을 거두기 전 우리가 한때나마 희망을 걸기도 했던 진보의 육신을 흔들어 물어보아야 할 때가 되었다는 것이다. 우리는 무엇을 진보라고 명명해왔던 것일까? 진보는 어떤 사람들의 어떤 생각을, 그리고 어떤 정치적 행위를 가리키는 것이었을까? 우선 여기서부터 시작해야 할 것 같다.

너희가 아직 '진보'를 믿느냐

1

생각해 보면 한국 사회에서 '진보'라는 말이 처한 상황처럼 굴곡 많고 복잡한 경우도 없을 것이다. 진보는 오랜 시간 금기어였고 지금도 여전히 불온한 것으로 취급되기도 하지만, 동시에 이제는 근사함의 표상처럼 선호되기도 하는 양가적인 이미지를 지니게 되었다. 더구나 진보라는 말을 별다른 두려운 감정 없이 입에 올릴 수 있게 된 어느 시점부터는 참으로 다기한 용도로 다양한 입장에 적용되는, 심지어는 자신이 진보라고 하면 그렇게 되어버리는, 말하자면 아무나 가져다 붙일 수 있는 말이 되어버림으로써 마침내 그 실체가 공허한 개념이 되어버렸다. 오랜 습속을 버리지 못하고 진보가 무슨 범죄라도 되는 양 걸핏하면 옆구리를 찔러보는 거대 언론 자본도 '수구적 진보'니 '진보적 보수'니 하는 말장난을 간혹 즐기는 지경이니 말이다.

그럼에도, 특히 정치 공간에서, 진보라는 이름에 대한 과도하리만치 강한 집착이 존재하는 건 왜일까? 통합진보당이 만들어지기 전 국민참여당의 유시민과 민주노동당의 이정희, 이 두 사람이 만나 이야기한 것을 묶은 책 제목이 <미래의 진보>(민중의소리 펴냄)였다. 그리고 진보신당을 탈당한 사람들까지 합쳐 당을 만들 때, 이들은 진보신당이란 이름의 정당이 엄연히 존재하는데도 불구하고 굳이 진보라는 이름을 고집했고 통합진보당의 약칭을 진보당이라 해달라고 언론에 요청까지 했다.
기본적인 '상거래상의 도덕'조차 무시하는 몰염치를 무릅쓰고서라도, 또 진보신당의 항의에도 불구하고, 진보라는 깃발을 움켜쥐고자 했던 까닭은 대체 무엇이었을까?

본디 '진보(progress)' 혹은 '진보적(progressive)'이란 말은 서구에서 자본주의적 근대와 함께 출현하고 그 의미가 분명해진 개념(내지 이념)이라 할 수 있다. 자본주의 이전에도 과학은 있었으되, 근대의 합리주의에 기반을 두고 진행된 과학의 비약적 발전이 다시 자본주의적 생산력을 급속히 발전시켜 왔다는 사실은 굳이 긴 설명을 보태지 않아도 되겠다. 과학의 발전으로
자연에 대한 지배력이 강화되면서 인류의 미래는 비약적으로 발전할 것이라는 확신이 진보에 대한 신앙으로 굳어져왔을 터이다.

이와는 다른 의미(혹은 차원)를 지닌 진보가 있었다. 그것은 사회적 진보, 혹은
역사적 진보에 해당하는 것이다. 생산력의 증대에 따른 자본주의의 발전이 사회의 다수를 차지하는 프롤레타리아트(노동자 계급, 또는 생산 수단을 갖지 못했다는 의미에서 '무산자(無産者) 계급'을 의미하는)에 대한 착취를 통해 이윤을 추구함으로써 유지된다고 하는 이 근본적인 사회적 모순을 극복하려는 지향을 갖는 것이었다. 20세기를 '혁명의 세기'라 부를 수 있다면, 그것은 바로 자본주의의 모순을 극복하려는 이러한 사회적 진보 이념이 여러 나라에서 혁명을 통해 실현되고 한 사회의 지배적 이념이 되기도 했던 역사적 사실을 두고 일컫는 말일 것이다.

근대 자본주의의 등장 이후 이러한 의미들을 지닌 20세기 진보의 이념은 일찌감치 '내적 파탄'을 노정해왔다. 우선 근대 사회의 핵심적인
가치인 '자유'의 경우에도, 봉건적 굴레에서 벗어난 '자유로운 인간' 역시 그 자유조차도 자연적 필연성 안에서만 발휘될 수 있을 뿐이라는 과학적 계몽주의의 설법에 따라 결국은 '도구적 인간'으로 전락하고 말았다는 점에서 그렇다. 테오도어 아도르노는 막스 호르크하이머와 함께 쓴 <계몽의 변증법>(1944년)에서, 그리고 <부정변증법>(1966년)에서 이미 '진보의 부정적 대가'에 대해 서술한 바 있다.

자유로운 인간의 의지가 전제되어야 근대 시민 사회의 윤리는 작동할 수 있다. 그러나 과학적 맹신주의는 자연적 필연성을 앞세워 인간의 자유 의지에 족쇄를 채운 것이다. 인간은 필연성과 어떤 목적에 자신의 자유를 반납해야 한다. 자유를 몰수당하거나 스스로 포기한 인간에게 도덕적 책임 추궁이 가능할까? 20세기 초를 경과하면서
독일인들은 히틀러가 제시한 국가사회주의의 청사진 앞에 자신들의 이성과 자유를 그런 식으로 반납했고, 파시즘의 시대가 열렸던 것이다.

사회적 진보의 경우는 어땠을까? 인간 사회에 대한 '과학적' 인식의 지평을 연 것은 마르크스주의의 업적이었다. 역사 발전의 합법칙성을 규명해내고 이에 입각하여 자본주의의 모순을 극복할 수 있다고 믿은 과학적 사회주의 이념의 운명은 그렇다면 어찌 되었던 걸까? 생산 수단의 국유화를 통해 부르주아 계급에 의한 프롤레타리아트 착취라는 생산관계의 모순을 철폐하면 억압 없는 인류의 미래를 이룩할 수 있을 것이라던 현실 사회주의 국가들의 실험은, 알다시피 20세기가 끝나기도 전에 초라한 몰락으로 막을 내렸다.

자본주의의 반대쪽에서 진행되었던 '국가 주도의 사회주의
경제'라는 수십 년간의 실험이 만들어낸 사회가, 마르크스가 꿈꾼 공산주의 사회가 아니라 또 다른 전체주의 사회에 불과하다는 견해에 대해서는 여기서 언급할 여유가 없다. 어찌 되었든 오늘날 중국처럼 공산주의를 내걸고 있는 국가조차 경제에서는 자본주의 국가와 다름이 없게 되었다. 그래서 프랜시스 후쿠야마 같은 이는 "역사(진보)는 끝났다!"고 호들갑스런 선언을 했고, 이 말은 한동안 꽤나 그럴듯한 유행어가 되기도 했다.

그렇다면, 이렇게 요약하는 것이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결국 근대와 함께 출현한 진보라는 이념은 인간의 자유든 평등이든 그것들을 실현하는 데 모두 실패했다고. 과학의 진보가 여전히 인간에게 행복과 안락을 보장하는
첨단의 유토피아를 가져다줄 것이라는 굳은 믿음이나, 자본주의의 모순을 극복한 공산주의 사회의 실현은 불가능한 이상으로 판명되었을지 몰라도, 사회민주주의가 자본주의의 대안으로 존재하기 때문에 진보의 이념은 지금도 유효하다는 식으로 주장하는 건 자유다. 오늘날 세계를 전일적으로 지배하는 자본주의가 파국의 징후를 드러내기 전까지는 그러한 이야기들이 설득력 있게 들리기도 했다.

2

지금으로부터 벌써 17년 전인 1995년 겨울의 기억이다. 여전히 기약 없는 망명객으로 파리에 머물 때였다. '불만의 겨울'이라 불리던 그해, 우파 정권의 '연금 개혁'에 반대하는 공공 부문 노동자들의 총파업으로 지하철 등 대중교통 수단은 모두 멈추었고 파리의 거리는 온갖
자동차들과 사람들로 북적댔다. 나는 몇 날이고 행진하는 사람들을 따라 한참을 걷다가 집으로 돌아가곤 했다.

이 파업을 두고
프랑스는 물론이고 서유럽 좌파 진영이 한동안 자신들을 짓누르던 우울과 냉소를 딛고 거리에 나섰다는 의미에서 반(反)신자유주의 투쟁의 전환점이라 말하기도 했지만, 사람들을 움직인 것이 새로운 내일에 대한 낙관인지 오늘의 삶이 주는 불만(내지 불안)인지는 분별되지 않았다. 아마 후자에 가까운 것이었다고 말해야 할 것이다. 자본주의가 몰아붙이는 변화의 파고(공공 부문의 사기업화—한국에서 '민영화'라고 부르는—와 해고, 복지 축소 등으로 나타나는)는 높았고, 사람들의 저항은 일종의 공포에 대한 반작용과 같은 것이었다.

하나의 체제, 혹은 하나의 제도는 그것이 안고 있는 근원적인 모순과 내적 갈등을 지양(止揚)하려는 대립 항을 상실하게 되었을 때, 내부의 모순이 급속히 강화되거나 하나의
방향성만을 추구함으로써 병리적인 현상이 극대화되어 파국으로 나아가게 된다. '자본주의의 모순은 결코 자본주의적 방식으로 극복되지 않는다'는 말의 의미도 바로 그런 것이다. 후쿠야마의 믿음에 의하면, 자본주의와 적대하는 다른 대립 항이 없다면 마땅히 자본주의에는 파국 같은 것이 없어야 하며 대신 인류가 물질적 행복이나마 맘껏 누릴 수 있는 유토피아를 가져다주어야 하는데, 우리에게 다가온 것은 전혀 다른 현실이었다.

1996년에 프랑스에서 처음 발간된 책 <경제적 공포>(김주경 옮김, 동문선 펴냄, 1997년)의 저자 비비안느 포레스테는 자본주의 문명 안에서 대단히
충격적인 격변이 이미 일어났고, 또 그것이 급속히 사회를 파국으로 몰아가고 있다고 경고했다. 우리가 지금 목격하고 있는 자본주의는 최소한의 노동의 권리가 보장되고 성실히 노동의 의무를 다하면 삶을 영위해갈 수 있다고 말해주던 그런 과거의 자본주의가 아니다. 과거의 자본주의에서 '고용'은 자본이 지니는 일종의 사회적 의무 같은 것이었는데, 오늘의 자본주의에선 어떤 정부도 자본에게 그러한 의무를 지도록 강제하지 않는(못한)다. 그리하여 새로운 자본주의에선 '착취당할 기회'도 얻지 못한 사람들이 거리에 넘쳐난다.

그런데 그녀에 따르면, 노동이 소멸되고 수많은 인간들이 잉여적 존재로 전락해 가는(갈 수밖에 없는) 현실을 아직도 대다수의 사람들은 믿으려 하지 않는다. 서유럽의 좌파 (사회민주주의) 정당들은 "이미
효과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는 '처방책'들을 제시"하거나 "지금은 하나의 신화가 되어버린 것들을 아직도 붙들고" 있을 뿐이다. 그것은 '성장과 고용의 신화'이다. 자본의 무한한 자유만이 보장되는 신자유주의 시대에 그것은 이미 자본의 공세로 인해 산산조각이 났는데, 다시 말해 더 이상 자본주의의 프로그램 안에는 일자리 창출 같은 것은 입력되어 있지 않은데, 그들 좌파 정당들은 실현될 수 없는 약속을 되풀이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열심히 부러워해온 유럽의 '복지 국가'는 지속적인 '성장과 고용'이 가능할 때
기능할 수 있는, 더 나아가 기본적으로 정부나 관련 기구들이 복지를 시행하는 데 있어 필요한 비용을 투여해야 하는 '관리 사회형 복지'이다. 고용을 거추장스러운 장애물로 간주하는 자본의 요구에 따라 지금까지 유지되어온 복지 제도를 철회하는 데 있어 우파 정권과 좌파 정권의 차이는 생각하는 것만큼 크지 않다. 속도의 차이만 있을 뿐.

나는 전혀 다른
성격으로 '진화'한 자본주의가 유럽 사회가 오랜 노력으로 이룩해온 사회적 진보—노동권에 대한 존중과 '보편적 복지'를 내용으로 한—의 성과를 뿌리부터 뒤흔드는 바로 그 현실 속에 몸담고 있으면서도, 머지않은 미래에 더 큰 경제적 파국이 다가올 것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릴 도리는 없었다. 사회적 진보에 대한 미련을 던져버릴 수 없는, 제3세계로부터의 망명객이 지닌 귀향의 꿈 때문이었을까? 파리의 거리에서 발 딛고 서 있던, 한 세계가 거대한 지각 변동을 통해 다른 세계로 급속히 바뀌어간다는 사실을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던 나는 그 뒤 1996년 말에 시작된 노동법 개악에 반대하는 한국 노동자들의 총파업 소식을 들었다.

그것은 한국 자본주의의 거대한 전환을
예고하는 징후였다. 1997년 말 한국은 초유의 외환 위기로 1차 파국을 맞이했고, IMF(국제통화기금) 관리 체제가 들어서자 노동에 대한 자본의 전면적인 총공세가 시작되었다. 20세기 말 세계사적 전환기에 한국 사회가 경험한 패러독스는 이 파국이 민주화 과정과 서로 맞물리면서 동시대적으로 진행되었다는 사실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민주주의는, 너무 늦게 도착했다. 20년의 세월이 지나서야 나는 마침내 귀국할 수 있었다. 그것이 뒤늦게나마 찾아온 민주화 덕택임은 분명하지만, 이 '지체된 민주주의'가 경제 위기에 대응한 방식은 다름 아닌 '위기에서 파국으로' 가는 길을 준비하는 것이었다. 우리가 지난 10년 동안 경험하고 톡톡히 실감했던 것이 바로 그것이 아니었던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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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 여기의 진보>(이음 펴냄). ⓒ이음
이 절의 처음 이야기로 다시 되돌아가 보자. 뒤늦게 시작된 한국의 민주화 과정은 그 자체로 역사의 진보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한국에서 민주주의와 진보를 성급히 일치시켜 말하기에는 현실에서의 어긋남의 폭이 너무 넓고 비어 있는 자리 또한 많다. 우리가 경험하는 민주주의가 사회적 진보가 아니라 정치적 자유화로 제한된 데에는 진보의 이념이 너무 오래 억압당함으로써 부재했던 탓이 크다.

평등에의 지향이 거세된 채 자유의 파토스에만 의지해서 추진되는 민주화가 자본주의 세계화 과정에서 강화되는 자본의 압도적인 힘을 제어하기를 기대하는 것은 처음부터 난망한 일이었는지 모른다. 아니다. 이렇게 말하는 것으로는 충분치 않다. 자유화에 한정된 민주주의는 자본이 노동을 일방적으로 공격하는 것을 법과 제도로 허용하는 도구로 기능했다. 자유라는 반쪽 가치로만 존재하는 민주주의의 불구성은 다시 모처럼 찾아온 사회적 진보의 계기를 무산시키고 거꾸로 자본의 자유만 확대시켜준 것이다.

한국의 정치적 자유화 과정에서 진보는 여전히 위험의 경계로서의 의미만 지니는 것이었다. 독재 체제 아래 특권적 이해를 추구해온 기득권 세력은 시민적 자유의 확대를 의미하는 기본적인 절차적 민주주의의 적용에 대해서조차 늘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며, 그것을 위험한 진보라고 공격하기 일쑤였다. 그러한 공격에 대해 자유주의 정치 세력은 '민주 대 반민주'라는 대치 구도로 자신들을 방어하려 했다. 바로 여기서 자유화를 의미하는 '개혁'과 사회적 진보는 혼돈되며, 자본과 노동의 대립과 긴장은 시야에서 벗어난 채 '실체 없는 논쟁'만 지속된다. 나는 이 대목에서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작성한 <공산당 선언>(1848년)의 유명한 첫 단락을 상기하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을 잠시 인용해 보자.

하나의 유령이 유럽을 배회하고 있다. 공산주의라는 유령이. 옛 유럽의 모든 세력들, 즉 교황과 차르, 메테르니히(Metternich)와 기조(Guizot), 프랑스 급진파와 독일의 경찰이 이 유령을 사냥하기 위해 신성동맹을 맺었다.

정권을 잡고 있는 적들에게서 공산주의적이라고 비난받지 않을 반(反)정부당이 어디 있겠으며, 더 진보적인 반정부당과 반동적인 적에게 거꾸로 공산주의라는 낙인을 찍으며 비난하지 않을 반정부당이 어디 있겠는가? (<공산당 선언>(칼 마르크스·프리드리히 엥겔스 지음, 강유원 옮김, 이론과실천 펴냄, 2008년)

진보라는 유령은 오래도록 분단된 한반도의 남쪽을 배회해왔다. 반공 규율 체제인 군사 독재 정권은 걸핏하면 반정부 세력에게 공산주의라는 낙인을 찍어 탄압하고 학살을 일삼았다. 김대중과 노무현 정권의 '민주화 10년' 동안에도 사정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자유주의 정치 세력에게 정권을 빼앗긴 보수(극우를 포함한) 기득권 세력들은 얼마간의 시민적 자유의 확대도 인내하지 못하고 실제로는 자유주의를 신봉할 뿐인 정권의 정책을 '진보적(좌파적)'이라고 공격했다.

여기까지는 <공산당 선언>과 비슷하게 맞아떨어진다. 그러나 바로 그 다음부터는 사정이 달라진다. <공산당 선언>은 다음 단락에서 이렇게 말한다. "이러한 사실은 다음의 두 가지를 의미한다. 공산주의는 이미 유럽의 모든 세력에 의해 하나의 세력으로 인정받게 되었다"라고. 이 점이 다른 것이다. 마르크스가 유령이라고 명명한 공산주의는 정치적 실체를 인정받았지만, 한국에서 진보는 실체가 없는 '유령'으로 그저 떠돌고 있을 뿐이었다. 우리는 이 이야기를 좀 더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분단과 내전으로 이어진 비극적인 역사적 경험이 한국 사회에 오랜 '진보의 공백'을 가져오고 그로 인해 얼마나 긴 시간 동안 가혹한 정치 체제가 유지되어왔는지는 여기서 구구히 되새기지 않겠다. '진보당' 당수 조봉암의 죽음이 말해주듯 진보, 해방, 인민, 혁명이라는 말을 입에 올리는 것은 반공 규율 사회가 지속되는 동안 곧 죽음과 동의어였다. 적어도 그것은 박정희의 유신 체제가 막을 내리는 1970년대 말까지는 그랬다.

그 시대에 20대의 시간을 통과했던 나는 그 얼어붙은 '겨울 공화국'에서 불온한 '해방'의 꿈을 꾸었다('남조선민족해방전선'이라는 비합법 조직의 조직원이 된 것이다). 그것은 너무 위험한 꿈이었다. 그 조직에서 내가 만난 어떤 이는 사형을 당했고, 살아남은 친구들은 다친 몸으로 오랜 시간 감옥에 갇혀 있어야 했다. 고문과 감옥행, 죽음으로부터 벗어난 나는 파리의 이방인으로 긴 세월을 보내야 했고.

나는 자유가 얼마나 소중한지 안다. 그래서 이른바 '민주화 10년'이 열어놓은 자유의 공간이 지니는 가치를 폄하하고 싶은 마음이 추호도 없다. 지금과 같은 수준의 정치적 자유라도 보장되어 있었다면, 그때 나의 동료들은 그처럼 가혹한 운명을 감수하지 않아도 되었을 터이므로(이렇게 말하면 실례가 되겠지만, 북한의 핵무기 개발을 핵 자위권이라 생각하는 국회의원도 있는 현실에 비하면 그것은 얼마나 터무니없는 대가였던가).

박정희의 죽음 이후로도 길게 이어진 군사 독재는 1987년의 6월 항쟁으로 인해 마감되었다. 1980년 5월의 광주 항쟁을 짓밟고 전두환 군사 독재가 들어선 이후 10년 동안은 한국에서 민주주의 운동이 정치적 자유의 요구에 머물지 않고 사회적 진보의 내용을 갖추어가던 시기였다. 우리가 흔히 '1987년 체제'라 부르는 지점에 와서 이 민주주의 운동은 두 가지의 갈림길에 도달하게 된다. 그 중 하나가 정치적 자유화를 추구하는 자유주의의 길이라면, 다른 하나는 노동권의 확장을 기반으로 사회적 평등의 가치를 추구하는 진보주의의 길이었다.

1987년의 6월 항쟁을 '성공한 항쟁'으로 규정하는 자유주의 정치 세력의 집권은 그해 곧바로 이어졌던 7, 8, 9월 노동자 항쟁에 대한 기억을 애써 지우고 싶어 한다. 자유주의 정치 세력의 분열로 집권에 성공한 노태우의 정권은 논외로 하더라도, '3당 통합'이라는 보수주의와의 정치적 타협으로 등장한 김영삼 정권의 시기에는 자유주의 정치 세력이 굳이 노동 사회를 포섭하려는 적극적인 공세를 시도하려 하지 않았다. 한국 자본주의가 근본적인 축적 위기를 맞이하기 전까지는 노동에 대한 자본의 공격도 전면화되지 않았으므로.

1997년의 1차 파국으로 IMF 체제가 강제되고 그와 함께 김대중 정권이 등장했을 때, 자본의 축적 위기를 맞아 한국의 자유주의 정치 세력은 스스로 표방한 '노동 친화적'이라는 수사가 무색하리만치 '친자본적'이고 앞서의 정권들보다 더 적극적으로 자본의 자유를 확대하는 방식을, 거기서 더 나아가 자본과 함께 노동 사회에 대한 전면적인 공세에 나서는 길을 선택했다. IMF의 구조 조정안이 목표로 삼은 '노동 시장의 유연화'는 일차적으로는 1996~1997년의 총파업에 대한 자본의 전면적인 반격이었고, 자본에게 해고의 자유를 포함하는 무한한 자유를 부여함으로써 한국 사회를 이른바 신자유주의적 질서로 변모시켜가게 된다. 나는 이 맥락에서 '인권 변호사' 출신으로 대통령 취임(2003년)을 앞둔 노무현 당선자가 자신의 청와대 입성을 전후해 이어지던 노동자들의 죽음에 대해 했던 말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지금과 같이 민주화된 시대에 노동자들의 분신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투쟁 수단으로 사용되어서는 안 된다."

대통령이 된 노무현의 이 말은 한국 사회에서 자유주의와 진보주의를 분별하는 데 있어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그는 1998년 IMF 구조 조정기 벽두에 발생한 현대자동차 파업에 정부 측 대표로 가서, 노동조합 지도부를 설득하여 식당 노동자 등 비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한 정리 해고를 실현시켰던 당사자이다. 그런 그가 말하는 '민주화된 시대'란 자본의 공세에 대한 노동의 저항을 민주주의로부터 배제시키겠다는 선언에 다름 아니었던 것이었다.

반공 규율 사회에 뿌리내린 보수주의(극우를 포함한) 기득권 세력의 저항을 감당하며 권위주의 질서에 맞서 개혁을 수행하는 자유주의는 진보주의와 친화적일 수 있었지만, 노동에 대한 유연화 공세를 방임하거나 앞장서 촉진하는 한 자유주의는 사회적 진보를 굴절시키고 파괴하는 자본의 든든한 동맹자였다. 자유주의 정치 체제가 수행한 이 이중적 역할이 바로 진보에 대한 인식의 오류(착종 현상이라 말할 수도 있는)를 발생시킨 것이다.

반공 보수주의가 진보를 압살하여 진보의 부재를 강요했다면, 이른바 '개혁 자유주의'는 정치적 자유화의 경계 안으로 진보를 포섭하거나 자본의 공세로 배제되는 노동의 하위 부문을 민주주의 바깥으로 내던져버린다. 그들이 열어놓은 정치적 자유의 공간은 물론 노동에 기반을 둔 진보 정치가 제도 정치 안으로 진입하는 것을 가능하게 하는 '입구'이다. 그러나 진보가 이 좁은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그 문은 닫혀버린다. 노동으로 되돌아갈 '출구'가 차단된 현실, 이것이 다음 절에서 이야기할 노동의 정치 세력화, 즉 진보 정치의 조건이 되었다.

자, 여기 자유를 향한 좁은 문이 열리기 시작한다. 뒤편에선 자본의 대대적인 공세가 진행되면서 노동은 여러 층위로 조각나고 빠르게 수직적인 통합 체계가 만들어진다. 노동의 이러한 분화와 동질성의 파괴는 노동의 단결된 힘을 근저로부터 무너뜨리는 결과를 낳는다. 한국 사회보다 오랜 역사를 지닌 서구 자본주의에서도 역시 그간 자본주의 모순의 체제 내적인 해결책이 되어온 복지 체제마저 무너지고 노동 사회의 붕괴가 심화되고 있는데, 충분히 정치적으로 조직화할 시간을 얻지 못한 한국의 노동 세력에게 정치적 반격의 조건이 제대로 마련되어 있을 리 없다. 그럼에도 자유주의 정치 체제가 마련해준 정치의 공간으로 들어서는 것, 그나마 그것이 자본의 공격으로부터 노동의 권리와 노동의 가치를 지켜내는 유일한 길이었을 것이다.

2004년 총선에서 민주노동당은 열 석의 국회의원을 의회로 진출시켰다. 이것은 신자유주의 질서로 급속히 변화해가는 한국 사회의 가파른 양극화가 진보 정당에 대한 기대를 넓히게 된 현실의 반영일 것이다. 그러나 대의제 민주주의 안으로의 진보 정치의 성공적 진입은 양날의 칼이 된다. '의회 속의 진보 정치'는 파괴되거나 소멸해가는 노동에 대해, 그리고 민주주의 바깥으로 쫓겨나는 버려진 노동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할 것인가?

이제는 대의제 민주주의의 질서 안에서 자유주의와 경쟁(?)하게 된 진보주의가 어떤 과정을 밟아갔는지에 대해 이야기할 차례다. 마르크스는 <루이 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 18일>에서 헤겔의 유명한 역사적 경구를 전유하여 이렇게 말했다.

"역사는 두 번 반복된다. 처음에는 비극으로, 그 다음에는 희극으로!"

슬라보이 지젝은 이 말을 제목으로 삼은 자신의 책(<처음에는 비극으로, 다음에는 희극으로>(김성호 옮김, 창비 펴냄))에 다음과 같은 마르쿠제의 말을 덧붙였다.

"희극으로 반복되는 것이 원래 비극보다 훨씬 더 끔찍할 수 있다!"

이렇게 말해보면 어떨까? "한국에서 진보는 두 번 반복되었다. 처음에는 비극으로 그 다음에는 희극으로!"라고. 그런데 여기에서도 희극으로 반복될 때 비극보다 더 끔찍할 수 있다는 마르쿠제의 말을 절대 빠트려서는 안 된다. 그 이야기를 지금부터 하려 한다. (계속)

 

진보의 죽음, 타살인가 자살인가?

[홍세화의 질문] 다시, '진보 정치'는 가능할 것인가?

 

기사입력 2012-08-22 오후 2:21:08

2008년 미국에서 시작된 금융 위기 이후 전 세계는 '진보의 시대'가 되었다. 1990년대 이후 '죽은 개' 취급을 당했던 카를 마르크스와 <자본>이 각광을 받고, 세계 곳곳에서 좌파 정당이 기지개를 켠다. 워런 버핏, 빌 게이츠 같은 자본가가 나서서 '자본주의 위기'를 얘기하고, 한 때 자본주의와 과학기술이 결합된 유토피아를 얘기했던 이들도 다시 '복지'와 '노동'을 입에 올린다.

 

이렇게 '진보의 시대'로 이행 중인 세계와 한국은 정반대다. 최근 통합진보당 사태는 그 단적인 예다. 지금 한국에서 '진보'는 조롱과 기피의 대상이 되었다. 이렇게 '진보'가 사라진 공백을 '이명박 대통령을 반대하며' '박정희의 딸만은 대통령으로 만들어서는 안 된다'는 이들이 메우고 있다. 2002년 '무상 의료' '부유세' 등을 내세우며 민주노동당 권영길 후보가 당시 노무현, 이회창 후보와 공개 토론을 벌였던 장면을 생각하면 격세지감이다.

 

왜 이 지경이 되었는가? 하지만 이 질문에는 모두가 침묵한다. 과거 진보 정당에 몸 담았던 이들마저 한 때는 '보수 야당'이라고 딱지 붙였던 민주통합당을 기웃거리는 상황에서 '진보'의 대변인을 찾는 것은 어불성설인가? 이런 상황에서 진보를 위한 최후 변론에 나선 이가 있다. 바로 진보신당 홍세화 대표다.

 

민주화 15년간 한국의 대표적인 진보 지식인으로 활동해온 홍세화 대표는 최근 나온 <지금 여기의 진보>(이음 펴냄)에 실린 '파국과 절멸, 그 너머를 위한 노트 : 다시 진보 정치는 가능할 것인가'에서 이 어렵고 고통스러운 일을 자처했다. 모두가 '진보'를 외면하는 이때에 '진보' 정당의 깃발을 부여잡고 있는 그의 말에 경청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진보에 대한 예의'가 아닐까?

 

<프레시안>은 이음 출판사의 동의를 얻어서 21일 게재한 글의 앞부분에 이어서 뒷부분을 싣는다. (☞관련 기사 : 다시, '진보 정치'는 가능할 것인가? ①). <편집자>

 

파국과 절멸, 그 너머를 위한 노트: 다시, '진보 정치'는 가능할 것인가 ②

 

진보의 죽음, 타살인가 자살인가

 

1

 

2002년에 20여 년의 파리 시절을 뒤로 하고 한국 사회로 되돌아왔다. 그리고 그로부터 두 달 뒤 나는 민주노동당 당원이 되었다. 노동자의 정치적 단결과 인간 해방의 가치를 추구하는 진보 정당의 당원으로서 살고자 했지만, 나는 억압적 정치 체제의 잔재들을 청산하고 인간의 기본적 자유를 실현하는 데 있어 기꺼이 자유주의 개혁 세력들의 파트너가 되고자 했다. 자유라는 가치는 강요된 굴종과 추방의 시대를 통과한 내게 너무도 소중한 것이었을 뿐 아니라, 자유의 확장이 사회적 진보의 조건이 되리라 믿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동거는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진보 정치가 간신히 진입한 대의제 민주주의라는 정치 공간은 보수주의와 자유주의 사이의 경쟁과 대립이 지배하고 있었으며, '민주 대 반민주'라는 구도 속에서 여타 정치 세력들을 자신의 정치적 헤게모니 아래 자리매김하려 하는 자유주의 세력에 의해 포섭되거나 주변화되는 처지에 서게 되었다.

 

정치권력을 장악한 한국의 자유주의 정치 세력(특히 노무현 정권에서)이 진보 정치에 가한 모멸은 앞 절에서 이야기한 바 있듯이 노동하는 인간의 절규와 죽음을 경멸하는 것에서부터 분명해졌다. (다시 반복하자면, 노무현 대통령은 "지금과 같이 민주화된 시대에 노동자들의 분신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투쟁 수단으로 사용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차라리 진보주의와 명확한 선을 그었던 김대중 정권에서는 가능하지 않았던 풍경들이 곳곳에서 연출됐다.

 

권위에 대한 저항이 의미 있는 윤리적 가치에 대한 존중의 태도마저 저버리는 모습을 보면, 프랑스 68 세대를 향해 라캉이 던졌던 경고, "너희들이 즐기는 것을 똑바로 보라!"는 말은 노무현과 그의 정권을 채운 386 세대 정치인들에게도 정확히 적용되는 것이었다. '그들'은 정체성을 달리하는 진보 정치와의 경계를 자의적으로 허물어뜨리려 했다.

 

전해서 들은 일화인데, 청와대를 방문한 민주노동당 관계자들과 헤어지는 자리에서 당시 노무현 대통령이 혼잣말처럼 한 말은 방금 말한 지점을 극명히 보여준다. 노 대통령은 민주노동당 버스에 적힌 '일하는 사람들의 정당 민주노동당'이라는 문구를 보더니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그럼, 우린 일을 안 하는 사람들인가?"

 

자신들이 하는 '일'과 진보 정당이 하는 '일'을 한마디 농담으로 섞어버릴 수 있는 정치적 태도는 어떤 상황에서는 자신을 '진보적 자유주의자'라고 규정하다가도, 다른 상황에서는 지역주의를 타파하겠다는 목표로 보수주의 정치 세력에게 '대연정'을 제안하는 모습으로 나타났다. 끝내 "권력이 시장으로 넘어갔다"는 무책임한 선언을 푸념처럼 하고 물러나기 전까지.

 

그들 자칭 진보적 자유주의자들을 비판했던 일로 나는 어떤 자칭 자유주의 지식인에게서 '좌파 근본주의자'라고 비판받기도 했다. 그러나 노무현 정권이 끝나고 이명박 정권이 들어선 2008년 나는 자랑과 긍지로 생각하던 민주노동당을 탈당했다. 탈당이라는 행위는 2002년 입당한 때로부터 6년 동안 일개 평당원으로서의 나의 눈에 비친 민주노동당이라는 진보 정당이 보여준 이른바 '진보 정치'에 대한 판단에 따른 것이었다.

 

열 석의 국회의원을 당선시킨 2004년의 감격으로부터 다음 총선까지의 4년, 그리고 그로부터 다시 4년이 지났다. 이 8년의 시간에는 민주노동당으로부터 탈당한 사람들이 만든 진보신당의 4년도 포함된다. 이 시간 동안 진보 정치를 지배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진보 정당(들)은 무엇을 하지 않았고, 대신 무엇에 열중했던가? 이 질문을 던지려고 먼 길을 돌아온 것 같다.

 

한마디로 작금의 통합진보당 사태는 다름 아닌 지난 8년의 종착점이다. 민주노동당이란 이름은 민주주의와 노동 정치를 연계시켜 자본주의 체제의 모순을 민주주의의 확장을 통해 극복해가겠다는 의지를 표현하고자 붙여진 것일 테다(그렇게 나는 이해한다). 그러나 통합진보당 사태 이후 너나없이 공통되게 지적하는 것은 '노동 (정치)의 실종'이다. 이 비판의 옳고 그름을 따져보기에 앞서, 우선 노동이 실종된 진보 정당이라는 것은 희·비극적인 느낌으로 다가온다. '붕어 없는 붕어빵'처럼.

 

나는 노동 '없는' 진보 정당이란 식의 표현은 현실을 올바로 반영하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아니 정확히 말한다면 이 말은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든 사태의 진실을 감추는 결과를 낳는다. 지난 총선에서 진보 정당(들)이 노동자 전략 지역에서 단 한 석도 당선시키지 못한 사태에 관한 보고서들을 접하면서 이런 생각은 더 뚜렷해졌다. 진보 정당(들)은 '어떤 노동'은 외면하거나 거부하면서 '어떤 노동'과는 이해관계를 돈독히 일치시켜왔다고 하는 것이 현실에 가까운 말이다.

 

전일화된 지구적 자본주의 체제에서 경제적 위기는 항용 강도 높은 구조 조정을 강제하는 이데올로기의 초석을 닦는 데 기여한다. 외환 위기로 시작된 1차 파국과 이 파국의 극복이라는 명분으로 진행된 노동 시장 유연화 과정은 한국 사회를 지탱하는 하부 구조들을 그 근저에서 해체하고 파괴함으로써 총체적인 파국을 준비하는 것이었다. 이 2차 파국이 진행되는 과정의 특징 역시 자본의 단결과 노동의 분열로 나타났다.

 

자본의 총공세가 한국 사회를 '20 대 80', 나아가 '1 대 99' 사회로 양극화시키면서도 굳건히 지배력을 확장해온 비결은 바로 '80' 또는 '99'의 내부를 '포함된 자들'과 '배제된 자들'로 나누고 그 속에서 서로 적대하게 만드는 경계를 만들어낸 데 있다. 그 첫 번째 작업은 노동의 수직적 위계 구조에서 상층을 차지하는 부분에 대한 포섭이다. 가령 '대량 실업을 피하기 위해서는 해고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따위의 궤변이 통할 수 있었던 참된 이유는 대기업 노동 조직들이 그러한 논리를 받아들이며 자발적으로 포섭된다는 데 숨어 있다.

 

대기업 정규직 노동을 중심으로 한 노동 운동 조직의 상층부는 전혀 새로운 성격으로 거듭난 자본주의가 "성장이 고용을 창출하기는커녕 오히려 고용 감축을 만들어내고, 또한 성장이 바로 그 고용 감축에서 비롯하는"(비비안느 포레스테) 작동 원리를 정면에서 직시하려 하지 않는다. 노동 시장의 유연화는 다름 아닌 '생산의 유연화'에 노동을 조응시키는 강제인 것이다.

 

극단적인 예로, 이제 자본은 몇 대의 전화기와 컴퓨터만 있으면 노동을 포함시키지 않고, 실재적인 재화를 생산하지도 않으면서 이익의 단기간 확대가 가능한 금융 게임에 참여할 수 있다. 또한 상층 정규직 노동은 아직 생산 현장에 자신들을 위한 노동이 존재하는 한 현실로부터 고개를 돌린다. 그들은 '알고 싶지 않기 때문에' 모르는 것이다.

 

대기업 노동조합을 중심으로 한 정규직 조직 노동을 대표하는 민주노총은 '포함된 자들'에 속한다. 이에 비해 노무현 정권 5년을 거치며 노동 인구의 절반을 차지하게 된 비정규직 노동자란 어떤 존재를 가리키는 말일까? 단지 정규직 노동자가 아닌 걸 의미하는가? 그것은 버림받은 사람들의 이름이다. 그것도 두 번 버림받은. 처음에는 자본과 권력에 의해, 그 다음에는 정규직 조직노동에 의해.

 

그렇다면, 파견 하청 노동까지 포함하는 광범위한 하층 노동들에 대해 상층 노동 중심의 민주노총이 한 일은 무엇이었을까? '비정규직 철폐!'를 외치지 않았느냐고? 물론 자본과 권력을 향해서는 "비정규직 철폐 투쟁! 결사 투쟁!"을 열심히 외쳤다. 비정규직의 노조 가입이 배제된 현실에 대해서는 침묵하거나 외면하면서!

 

진보 정치의 위기는 여기서부터 시작되고 준비되어온 것이었다. 이를테면 '준비된 파국'이었던 것이다. 민주노총은 통합진보당 당권파의 선거 부정이 드러났을 때 지지 철회 의사로 압박하면서 '노동 정치'의 복원을 요구했지만, 그 전에 이 조직은 먼저 자신들이 어떤 노동을 대표하는지를 밝혔어야 했다. 국민참여당이 포함된 3자 통합 이후에도 통합진보당에 대한 '배타적 지지'를 모든 수단을 동원해 관철하려 했던 민주노총 지도부가 진보 정당을 통해 추구해왔고 또 추구하려 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한마디로 대기업 노조의 경제적 이해를 해결해주는 '대리 정치 기구'로서의 역할이 아니었을까?

 

이 민주노총을 찾아가 탈당 의사 철회를 요청하며 허리를 숙이는 통합진보당 혁신비대위원장의 모습에서 우리는 또 어떤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가? 2004년 대의제 민주주의 제도 안에 진입한 열 석의 민주노동당이 4년 동안 주로 했던 일은 무엇이었을까? 필경 '무상 급식과 무상 교육'을 정책으로 제시하여 복지 담론을 선도하지 않았느냐고 답할 것이다. 유럽 좌파 정당의 전매특허인 복지 정책에서 배운 그러한 노력이 무의미했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관리 사회형 복지 제도가 오늘날의 자본주의가 가져온 사회적 파국에 대처하기엔 역부족이라고 한계를 지적하는 것과 보편적 복지의 근처에도 도달해보지 못한 한국 사회에 그나마 기본적인 복지라도 실현하려고 하는 것은 다른 의미를 지닌 문제이니까.

 

그러면 그것 말고 다른 일은? 자본의 공세로 파괴되고 조각난 노동을 향하는 것이 아니라 정당 정치 게임의 틈바구니에서 살아남기 위해 거의 모든 시간을 소비했던 것은 아닐까? 진보신당을 탈당한 어느 명망가 정치인처럼, 노동 대중 앞에서는 비정규직 철폐를 외치지만 돌아서서는 비정규직은 표가 안 된다고 속삭이면서. 울산의 한 비정규직 노동 운동 활동가가 이번 총선에서 노동자들이 진보 정당으로부터 고개를 돌린 이유를 설명하면서 했던 "자본가는 피를 빨고 진보 정당은 표를 빨았다"는 말이 설득력을 가지는 까닭이다.

 

이런 진보 정치의 현실에 대해 한국의 '진보적' 지식인들이 건넨 '고견'은 대체로 하나로 집약된다. 사회적 갈등을 제대로 반영하고, 실현 가능한 정책을 제시하고, 나아가 집권 능력을 보여줌으로써 책임 있는 정당 정치의 주체로서 인정받으라는 것이다. 이는 대표적인 '진보적 정치학자'라고 불리는 최장집의 지론이다. 그런데 노동 부문의 경제적·사회적 이해를 대변하고 정책으로 이를 실현하라는 주문은 자본주의의 어느 단계에서나 적용될 수 있는 타당성을 갖는 것일까? 이미 하나로 통합되기 어려운 현실에 놓인 각각의 노동의 이해를 모두 충족시킨다는 것이 어떻게 가능할까?

 

신자유주의적 교리에 따른 무한 경쟁의 추구는 발전한 서구 사회에도 극심한 사회적 격차와 모순을 가져옴으로써, 민주주의와 복지 사회의 기반을 내부로부터 붕괴시키고 사람들을 거리로 쏟아져 나오게 하고 있다. 이것이 2008년부터 본격화된 미국발 금융 위기의 세계적 현실이다. "알립니다, 자본주의가 오늘 새벽 마침내 자살을 하였습니다!?"로 시작하는 사회학자 서동진의 글(☞관련 기사 : 나꼼수 보며 '낄낄' '씨바'…"그럼, 세상이 바뀌니?")이 극적으로 일깨워주듯 "2008년의 금융 위기 이후, 우리는 마치 자본주의의 부고장이 조만간 도착할 것 같은 착각이 들 지경이" 된 현실에서, 금과옥조처럼 모든 사회적 모순의 정당 정치로의 수렴을 요구하며 대의제 밖의 저항들을 민주주의에 대한 위협으로까지 간주하는 최장집의 거듭된 주장은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스스로를 '베버리안'이라고 말하는 최장집이 자주 언급하는 글이 막스 베버의 '직업으로서의 정치'(1919년)이다. 그런데 베버의 이 글은 실은 정치적 당파주의로 가득 찬 특정 계급의 입장을 대변하는 정치적 메시지였다. 다시 말해 그것은 1917년의 러시아 혁명은 물론이고 1918년의 독일 혁명의 분위기 속에서 나온 "혁명에 반대하는 국가주의적 수사로 가득 찬" 선동문에 다름 아니었다(알렉스 캘리니코스).

 

한마디로 베버의 이 강연문에서 강조되는 '책임의 윤리'라는 것은 현실에서 벌어지는 사회주의 운동은 물론이고 보다 나은 민주주의를 위해 싸우는 억압받는 인간들의 여러 요구들을 망상에 불과한 것으로 만들어버리는 정치적 효과를 발휘했다. '레짐의 정치학'과 대의제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최장집의 강박적 요구 또한 같은 맥락에서 이해해야 마땅할 것이다. 그의 주장은 벼랑 끝으로 몰려가는 배제된 노동과 아무런 연관도 맺지 못한 진보 정당을 더욱 의회주의에 매달린 채 권력 정치를 추구하는 길로 내모는 역할을 한 게 아닐까?

 

이명박 정권의 등장과 함께 국가 권력 밖으로 밀려난 자유주의 정치 세력과 참담한 노동 현실에서 눈을 돌린 진보 정치 세력이 다시 만나는 계기가 만들어졌다. 그것은 노무현과 유시민이 스스로를 일컫는 데 사용한 바 있는 '진보적 자유주의'라는 다분히 희극적인 개념 조합 아래에서였다. '포스트-민주화 시대 대안 정당을 향한 각축'이란 글을 통해 이 한 쌍의 조합에 이론적 기초를 구축해준 이는 사회학자 조희연이었다.

 

조희연은 이 글에서 '진보적 자유주의'라는 개념을 부활시킨다. 그리고 이것이 기존의 중도 개혁 자유주의(민주통합당 세력의 지향을 의미하는)가 담아내지 못하는 것을 표현하고 있다며 해석의 진화를 꾀한다. "진보적 자유주의는 기존의 중도 개혁 자유주의가 담아내지 못하는 진보적 의제들을 자유주의의 확장 속에서 담아내고자 하는 담론적 노력"이라는 그의 수사학적 노력이, 결국 '비민주 진보 연합 정당론'이란 규정 아래 유시민의 국민참여당과 민족주의 계열이 당권을 장악한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을 탈당한 정치 그룹 간의 3당 통합을 하기 위한 레드카펫의 역할을 했음은 더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앞서 내가 지젝의 글에서 재인용한 "희극으로 반복되는 것이 원래 비극보다 훨씬 더 끔찍할 수 있다"는 마르쿠제의 말을 상기하자. 얼마 전까지만 해도 민주통합당보다 더 오른쪽의 지향을 가지고 있던 자유주의 정치 세력의 한 분파의 정치적 재기 욕심과, 이 세력과의, 그리고 나아가서는 다수파 자유주의 정당과의 '연합 정치'를 숙주 삼아 의회주의 다수파 형성을 도모하려는 특정 진보 정치 세력의 정치적 계산이 결합하여 빚어낸 작금의 통합진보당 사태보다 더 끔찍한 사태가 또 있을까? 2012년 봄부터 진보는 무덤 속에 갇혀 있다. 우리는 물어야 한다. 진보는 타살당한 것일까, 자살한 것일까?

 

2

 

거짓 중에서 가장 해로운 것은 '그럴듯한' 거짓이란 말이 있다. (구)당권파의 당파적 패권주의가 통합진보당 사태의 본질이라고 말하는 게 이에 해당할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은 통합진보당 사태가 '미래의 진보'를 위한 새로운 기회라고 주장하기도 하며, '진보 시즌 2'를 위해 입당 운동을 벌이자고 제안하기도 한다. 그런데 진보에 대한 이들의 변함없는 애정에도 불구하고 통합진보당 내의 권력 정치 게임이 맞부딪혀 내는 파열음은 좀처럼 잦아들지 않는다. 보다 많은 사람에게, 보다 많은 경우에 진보를 적용하면 진보가 확대될 것이라고 믿는 이들은 그러한 과잉이 정작 진보 정치를 질식시킬 수 있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 듯하다.

 

통합진보당 사태 직후에 나온 반응들만 놓고 보자면 앞서 언급한 최장집의 평가가 단연 냉철하고 사태의 본질에 닿아 있는 것으로 보인다(<경향신문> 2012년 6월 4일자). 그는 "대한민국 진보는 이미 4년 전에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의 분당 사태로) 죽었다"고 4년 뒤에 선언하면서, 그 이유로 "현재 위기인 통합진보당은 (지난 4년 동안) 사회적 약자를 대변하고 정치 활동을 하면서 그 자체의 존재 이유를 가진 진보가 아니"었고 "다른 정치적 역할이 있기 때문에 그 형태를 연명해오던 것이 그것조차 더 이상 유지될 수 없음을 드러낸 것이 통합진보당 사태"라고 설명했다. 더 나아가 "통합진보당은 진보의 허구적 존속일 뿐이었다"며, 이는 "총선, 대선이라는 국면에서 주요 엘리트들이 정치적 자원을 증대하기 위해 대의 없이 편의적으로 통합한 현상"이고 여기에 "반MB 전선 형성을 위한 야권 통합의 담론이 정치 환경에 큰 압력으로 작용하면서 민주노동당 당권파, 국민참여당, 진보신당 탈당파가 각기 이해관계를 추구하면서 편의적으로 통합했고 이 과정에서 의도하지 않은 부정선거 사태가 발생했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총선을 앞둔 시점에서 통합진보당의 출현을 두고 "중산층과 노동의 결합"이라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던 사실을 떠올리면 그의 이러한 설명은 현기증을 불러일으킨다. 어느 것이 그의 진심일까? 그가 강조하는 책임의 정치, 책임의 윤리는 자신에게는 적용되지 않는 걸까?

 

통합진보당의 이론적 기초 역할에 동참했던 조희연의 경우도 군색하기는 마찬가지다. 그는 당권파들에게 "전략적 양보"를 요구했지만, 왜 자신의 호소가 받아들여지지 않는지, 나아가 왜 통합진보당의 '새로나기 특위'(당권파의 무력화를 목적으로 하는)가 내놓은 당 혁신안이 당권파로부터 멀어지려 하면 할수록 우경화되는지 그 이유에 대해서는 설명하지 않는다. 통합진보당의 우경화가 일시적인 것인지, 필연적인 경향인지에 대해서도.

 

철학자 김상봉은 언젠가 <르몽드 디플로마티크>에 기고한 '낡은 진보와 이별하라'는 제목의 글에서 이렇게 이야기한 적이 있다.

"아직도 진보 정치와 진보 정당 건설을 입에 올리는 정치인들에게 니체가 기독교인들에게 물었듯이 묻고 싶어진다. '당신들은 아직도 진보가 사망했다는 소식을 듣지 못했단 말인가?' 진보는 죽었다! 하지만 관성은 무서운 것이어서 사람들은 진보의 사망을 믿지도 않고 인정하려 하지도 않는다. 그리하여 오해는 계속되고 우리의 선량한 열정은 부질없이 낭비된다."

 

총선이 다가오기도 반년도 더 전에 쓴 그의 글은 파국을 맞은 진보의 처지에 비추어 서늘하리만치 무서운 예언으로 읽힌다. 그가 단언한 것처럼 진보는 죽었다. 설사 어제의 진보가 무덤 깊은 곳에서 벌떡 몸을 일으킨다고 해도, 그런 진보는 제 숨 고르기도 힘겨울 터여서 오늘 괴물로 변한 자본주의의 털끝 하나 건드리지 못할 것이다. 기껏해야 물신이 지배하는 세계의 어두운 뒷골목이나 배회하는 좀비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3

 

현실 정치에 대한 아무런 경험이나 준비도 없이 진보신당의 대표가 된 지 반년을 지나오고 있다. 선택을 하는 위치에서 바라본 선거와 선택을 요구하는 처지에서 마주한 선거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한 사람의 명망 있는 정치인도 없고 권력 정치의 자장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주변적 위치에서, 내가 생각할 수 있었던 것은 '배제된 자들의 서사'를 정치 공간에 떠오르게 하자는 것 하나였다. 그것으로 상황을 새로운 방식으로 재설정하자는 것, 그러한 기대를 담은 제안이었다.

 

결과는 참담한 패배였다. 노동의 수직적 위계 구도에서 배제된 노동의 하위 주체들을 비례 대표 후보의 앞자리에 배치한다고 해서 당장 새로운 진보 정치의 구성과 내용이 채워지는 것은 아닐뿐더러, 애당초 그것은 짧은 시간에 가능한 목표가 되기도 어려웠다.

 

지금도 나는 총체적인 사회적 파국과 더불어 절멸의 상황에 처한 진보 정치의 새로운 소생이 가능할지, 가능하다면 그것이 어떤 모습일지에 대해서 여전히 잘 알지 못한다. 물론 나는 안다. 내 옆에서 누군가 일러준 그것은 나도 이미 익히 알고 있는 해법의 하나이다. 그것은 자유주의와 타협한 사람들을 제외한 나머지 진보 세력들을 하나로 묶어 새로이 통합한 진보 좌파 정당 건설의 길이다.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떠오르는 생각은 하나다. '아뿔싸, 처음부터 다시 이야기를 시작해야 하나?' (아, 글쎄 이미 '노동자는 하나'가 아니라니까!)

 

"혁명의 과정은 (……) 몇 번이고 시작을 반복하는 운동이다."

 

이것은 슬라보이 지젝이 이 글의 앞에 언급한 책에서 한 말이다. 근본적 질문을 던지는 것에서 완전히 다시 시작하는 것, 그런데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지난 6월 말 한국을 방문한 지젝에게 던진 "당신에게 질문이란 무엇인가? 근본적 질문이 어디에 던져져야 한다고 생각하는가?"라는 내 질문에 "자본주의가 민주주의와 이혼하려는 게 오늘의 위기"라고 그는 답했다. 자본주의가 민주주의의 테두리를 벗어났다는 의미겠다. "그렇다면?" 그에 따르면, "사회–정치적 공간 안으로 '배제된 자들의 침입'을 의미하는 것이 민주주의"이다.

지젝은 대화에서나 글에서나 흥미로운 농담을 통해 역설적인 상황의 내면을 들추어내는 능력을 지녔다. 한국어로도 번역된 그의 글 '상황은 파국적이지만, 심각하지는 않다'(<불가능한 것의 가능성 : 슬라보이 지젝 인터뷰>(궁리 펴냄))의 글머리에 놓인 농담은 단연 인상적이다.

 

그것은 제1차 세계 대전 당시 독일과 오스트리아 군사령부 간에 주고받았던 전보에 관한 것이다. 독일 쪽에서 먼저 전보를 보냈다. "이곳 전방은 상황이 심각하긴 하나, 파국적이지는 않다"고. 오스트리아 쪽에서 답신이 왔다. "이곳 상황은 파국적이지만, 심각하지는 않다"고. 정신분석학자이기도 한 지젝은 후자의 정신 상태를 가리켜 '물신주의적 분열' 혹은 '물신주의적 부인' 증상이라고 했다. 도대체 상황이 파국적인데 심각하지는 않다고 말하는 것은 어떻게 가능할까?

 

나는 그러한 태도는 파국적인 상황에서도 자신은 살아남을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내면에 자리 잡을 때 생겨난다고 생각한다. 우리 사회에 거의 모든 공간에서 수없이 발생하는 배제와 소외가 놓인 간극을 미끄러지듯 스쳐가는 우리의 시선은 그로 인해 생겨나는 인간의 비참과 불행으로부터 벗어난다. 우리가 스스로를 그 적대의 경계와 연루시키지 않는 한, 체제의 희생자들은 숫자로 쌓일 뿐이고 우리는 '별 일 없이' 이 물신의 세계에 적응하며 살아갈 수 있다. 세상은 파국으로 치닫고 있는데, 나 자신이 파국의 희생자가 되기 전까지 '심각하지 않'은 것이다.

 

부끄럽게도 나는 아직 쌍용자동차 대량 해고 이후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죽어간 스물두 명의 노동자와 그 가족의 이름을 제대로 외우지 못한다. '배제된 자들'이란, 지젝에 따르면 '실체성 없는 주체성, 즉 사회적 존재로서 지녀야 할 실체를 박탈당한 주체'이다. 그들은 "사회적 위계의 '사적' 질서 안에 딱히 정해진 자리가 없는 연유로 보편성을 직접 표상하는" 사람(집단)이다. 마르크스가 명명한 프롤레타리아트는 노동자 계급을 직접적으로 지칭하기보다는 사회적 박탈로 인해 비실체적 존재로 전락한 사람들을 가리키는 이름이었다. 바로 배제된 자들이 현대의 프롤레타리아트라고도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정치든 사회적 연대든, 우리들의 목표는 "우리 모두가 잠재적으로 '호모 사케르(homo sacer, 벌거벗은 생명)'이며 그것이 현실이 되지 않도록 예방적으로 행동하는 것"이다. 이 정치를 대의제 안에 가두고 제도 밖의 행위들을 배제하거나 부차적으로 위치 지을 때, 그 정치는 물신주의적 권력을 쫓는 행위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민주주의로부터 달아나자는 말이 아니다. 오히려 민주주의를 재정의하고 재구성하자는 말이다. 그것은 '배제된 자들의 민주주의'를 의미한다. 이것이 가능할까? 지난 총선에서 진보신당이 시도해보려 했던 것은 그 작은 시도였다. 거듭 말하지만 이 시도는 실패했다. 그러나 "다시 시작을 반복하는 것" "다시 출발점으로 되돌아가는 것", 내가 지금 알고 있는 진보 정치의 길은 이것뿐이다.

 

파국과 절멸 저 너머

 

귀국한 지 10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이 10년의 시간은 진보 정당 당원으로 살아온 시간과도 고스란히 겹쳐진다. 짧지 않은 이 시간을 지내오면서 내가 가장 빈번히 들었던 것은 "세상을 바꾸려면 권력을 장악해야 한다"는 말이었다. 그리고 바로 이 권력을 장악해야 한다는 이유로 세상을 바꾸기도 전에 사람들이 어떻게 먼저 바뀌는지를 줄곧 지켜봐 왔다.

 

그리고 진보 정치와 조직 노동의 상층부가 스스로를 '민중 권력'이라 강변하던 그 시간은, 권력과 자본에게는 물론이고 그들에게조차 외면당하고 배제된 노동자들의 숫자가 전체 노동자의 절반을 훌쩍 넘어선 시기와 정확히 일치한다. 민중 권력이란 말은 진보 정치라는 이름으로 권력이 어떻게 물신화되는지를 명확히 확인해주는 증거에 다름 아니다. 과문의 탓인가, 나는 이제껏 민중의 일상이 권력적인 것을 본 적이 없고 권력자의 일상이 민중적인 것을 본 적이 없다. 적어도 이 땅에서는.

 

총선이 끝난 뒤로부터 석 달을 경과해오는 동안 나는 문득문득 오래된 영화의 한 장면을 떠올리고 있었다. 그것은 코스타 가브라스 감독의 <계엄령>이란 제목의 영화다. 영화를 볼 때 주인공보다는 조연이나 엑스트라의 자리에 서보려 하는 나의 습성 때문인지, 줄거리를 온전히 기억하진 못하는 대신 순간순간 포착된 장면이 기억 속에 박혀 있는 경우가 있는데 이 영화도 그렇다.

 

줄거리는 대충 이런 것이다. 중남미 독재 정권의 경찰 조직을 훈련시키는 역할을 하던 미국인(이브 몽탕)이 게릴라 조직에 납치된다. 감옥에 갇힌 동료들의 석방과 몇 가지 민주주의적 조치가 게릴라들의 요구였다. 그들은 잡아온 미국인의 범죄 행위를 입증하기 위해 그를 심문한다. 그런데 그들은 사실을 들이대며 추궁할 뿐 고문은 하지 않는다. 그가 비밀경찰들에게 고문 방법을 전수해주던 자인데도. 마침내 인질 협상은 타결되지 못하고, 미국인 인질은 자신이 죽을 것을 예감하면서 게릴라 대장에게 묻는다. "나는 기독교 문명을 위해 싸우는데 당신들은 대체 어떤 문명을 위해 싸우는가?" 게릴라 대장이 답한다. "우리는 '약하고 무너진 것들의 문명'을 위해 싸운다"라고. '기독교 문명'을 위해 싸운다는 '고문 방법 전수자'와 '약하고 무너진 것들의 문명'을 위해 싸운다는 '고문하지 않는 피고문자'. 그렇지만 고작 '약하고 무너진 것들의 문명을 위해서'라니…….. 보수나 진보를 가릴 것 없이 더 많은 성장과 과실을 약속하는 이 맘몬의 세계에서 그것은 너무 초라한 목표 아닌가? 그 정도의 정치적 비전을 위해 그들은 자신들의 목숨을 거는 것인가?

 

통합진보당 사태가 한참 시끄럽게 진행되던 어느 날 나는 대장암과 어렵게 싸우고 있는 이재영 씨(민주노동당 시절부터 진보신당에 이르기까지 정책과 관련된 일을 도맡아 했던)가 인터뷰를 한 기사를 읽었다. 그의 이야기 가운데 잊히지 않는 것은 내가 알고 있는 것보다 더 자세한 당권파의 비리 따위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었다. 기자가 물었다. 민주노동당을 탈당한 이유가 당권파의 그러한 행패들 때문이었느냐고. 그가 답했다. "그 당이 '가난한 자의 정당'이 될 수 없을 것 같아서"라고. 약간은 쑥스러운 듯, 지나가는 말처럼 허허로운 심정으로 말하는 표정이 글에서도 읽히는 듯했다.

 

나에겐 바로 이 말이, 사위어가는 육체 속에서도 온전히 살아 숨 쉬는 이 감각이, 아주 소중하게 다가왔다. 눈물겹게. 그의 이 한마디가 어쩌면 우리가 정치적 이해관계에 몰두하는 동안 우리 안에서 사라져버렸거나 까마득히 잊고 있었던 어떤 감각과 자각을 일깨워주어야 하는 게 아닐까? 나는 그것이 자본이 인간에게 모멸을 가하는 이 불의의 시대에 분노하고 저항하는 좌파의 영혼이 아닐까 생각했다. 오늘 이 파국과 절멸의 저 너머에서 다시 희망의 빛 한줄기로 떠오르고야 말.

 

/홍세화 진보신당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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