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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버스는 무엇이었는가?”

석방된 후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이다. 경찰과 검찰의 조사에서 쏟아진 질의와 수천 페이지의 증거자료라는 것은 “결국은 희망버스는 무엇이다”라는 결론에 답하라는 강요받은 대화의 흔적이다. 85크레인의 동지들이 다시 땅을 밟은 후에도 숱하게 언론의 지면을 채웠던 것들. 그리고 상당기간 지속될 희망버스 관련 재판에서도 주제는 동일하다.

물론, 범죄의 구성요건을 확보하려는 자들과의 불편한 대화를, 게다가 그것의 결론이라는 것이 형벌의 유무와 크기로 답해지는 살벌한 토론장의 주제를 생각할 때 그 풍경이 너무도 처절하고 아름답겠지만.

재판정에서 목격한 검찰의 몸부림을 떠올려 본다. 굳이 그럴 필요까지 있냐는 판사의 권유를 마다하고, 비디오를 틀어대더니 “원시시대로 돌아간 거냐?”고 호통치며 제발 주동자들을 구속해달라고 부르짖는다. 조남호 회장 등이 주동한 한진중공업 정리해고사태, 그리고 피해 당사자들과 시민들의 자발적인 연대. 이 상황을 인지하는 검찰의 태도는 애처로울 정도로 비장하다.

“회사의 이익을 위해 정리해고와 비정규직을 사용하는 것이 법과 제도로 충분히 보장되어 있다. 이를 제대로 활용한 사측에게 복종할 길을 찾던지 아니면 혹시 모르니 법적 절차를 찾아보던지... 이런 방법이 있는데도 위력적인 힘과 행동으로 저항을 한다고? 승리했다고 환호성 올리며 회사 경영진의 정당한 조치를 되돌려 놓은 것은 일개 회사 차원의 문제가 아닌 전 사회적인 심각한 범죄행위이며 원시적인 폭력에 다름 아니다.”

시민들의 자발적인 힘으로 새로운 연대운동을 만든 역사적 과정에 대한 분석과 토론이 다양하게 시도되었다. 그러나 법적 논란은 이 집단적 행위의 법적책임자, 즉 기획자와 주동자를 가려낼 수 있느냐는 수준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이른바 공동공모정범의 이론이라는 것이 끼어들면서 이에 대응하는 논리로 기획자나 주동자가 따로 없거나 우리 모두가 기획자이고 주동자라는 주장이 변호인단에 의해 자주 언급된다. 애초에 이것은 재판을 위한 수사라기보다 희망버스운동의 성과에 대한 참가자들의 자긍심을 표현하는 외침이었다.

주동자로 몰려 구속까지 당하고, 재판정에서는 그들이 선택한 주동자로서 피고인이 되어버린 처지이지만, 법적 대응과 변론의 논지는 변호인단의 판단을 존중한다. 그렇지만, 저들은 이미 알고 있고, 아직 우리가 충분히 말하고 있지 않은 것들에 대해서 더 많은 ‘말’이 필요하다. 우리가 무엇을 넘어서고 있는 지에 대한 성찰과 무엇에 가로막혀 있는 지에 대한 자백은 여전히 우리의 몫이다.


누가 우리에게 후퇴를 명령하는가?

희망버스에 대한 경찰의 폭력탄압을 상징하는 그 장면. 수천의 시민들이 행진을 한다. 85크레인을 향해. 그러나 이미 도로는 장벽으로 막혀있고, 길을 열라는 시민들의 외침에 대한 답변은 물대포가 대신한다. 몇 시간 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마이크를 직접 잡고 다양한 외침을 이어간다. 심야의 어느 순간, 새까맣게 쏟아져 나오는 전투경찰, 비명소리와 전투화 발자국 소리에 섞인 채 잔잔한 울림으로 선명하게 파고든 외침. “지금 이 자리를 지키겠습니다.”

공격을 명령하거나 또는 후퇴를 명령할 수 있다면, 그러한 행위에 대하여 참가자들을 지휘하고, 통제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다면, 그러한 자(들)를 주동자라고 또는 지도부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광화문으로 향하던 행진이 을지로를 거쳐 명동의 한 성당주변에서 무사히 마무리되는 것.

이렇게 수만 명의 귀향버스 시간을 절묘하게 맞추어주는 것은 시청광장에서 생일잔치를 주최할 수 있는 조직의 지도부가 필수적으로 보유해야 할 능력이다. 귀향 시간이 정해져있다는 것은 참가자들이 지도부의 능력을 신뢰한다는 것이기도 하다. 후퇴를 명령하는(해주는) 주동자! 집에 갈 시간을 지켜주는 지도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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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동자를 추방하고, 크레인으로 날아가다!

6월 어느 날, 공장의 담벼락을 수백의 시민들이 함께 넘어간 그 행위와 사진들이 저들이 만든 기소장에 주거침입의 방법과 증거물로 제출되었다. 담장 저편에서 갑작스레 내려진 그 낯선 사다리에 오르며 느끼는 불안과 공포, 그러나 함께 담을 넘고서 느끼는  놀라움과 환호성. 그것은 무엇이었는가? 기획될 수 없는 것이 기획되고 있다는 것, 막는 자들과 타협할 수 없는 것들이 시도되고 있다는 것, 그래서 더 이상 희망버스에는 시나리오가 없다는 것을. 나의 행동과 실천이 기획이고 함께 손을 잡아주고, 같이 넘어서는 것이 투쟁이라는 것을 온몸으로 깨닫는다.

이제 공포는 저들의 것으로 넘어간다. 기획하지 못하던 것을 기획하는 기획자, 통제하고 관리할 수 없는 시위대의 등장. 저들을 소름끼치게 하는 것은 단지 예측 불가능한 시위의 양태가 아니다. 모의하는 자리에서 추방당하고, 투쟁의 공간에서 배척당하는, 그래서 더 이상 공모자가 될 수 없는, 결국은 억압하는 자들까지도 날 것의 상태로 까발려진 ‘불편한 진실’.

인도로 걸어가는 시민들의 통행을 막고, 도로 한복판에 장벽을 세우고, 그렇게 거의 모든 것을 통제할 수 있는 자들을 상대로 수천의 승객을 대표하여(대신하여) 희망버스의 진로를 기획하고, 후퇴를 명령할 수 있는 자는 존재하지 않는다. 투쟁을 멈추게 하는 명분이라는 것을 만들어주는 역할, 지도부라는 것은 애초부터 없었다. 지도부의 부재를 입증하고 참가자 스스로가 주동자의 추방을 선언한 그 시점부터 투쟁은 새롭게 확대된다. 물대포와 차벽을 넘어서지 못한 시민들이 새가 되어 나비가 되어 85크레인으로 날아가는 기적!


희망은 누가 어떻게 만들어갔나?

담벼락 밑에서 7박8일을 혼자서 서성거리며 버틴 사람. 유럽 유학중에 귀국해서 크레인을 먼저 찾는 풍경. 계단에 쪼그리고 앉아 비를 맞으며 밤을 새는 시민들과 72시간 연속 정당연설회를 개최해 투쟁의 공간을 확보한다는 구상. 경찰청 건물 주변을 돌아 줄지어서 버스에 승차해보겠다는 이상한 발상. 영도가 워낙 좁아서 일만이 모여 공연 할 장소가 없으니, 차라리 차벽을 설치해주면 신나게 놀아보겠다는 가수들.

뒤집는다는 것은 방향의 전환이지만, 뒤틀린 것을 바로 잡는 것이고, 돌려놓는 것이다. 광화문까지 8차선 행진을 허락받을 수 없으니, 4차선이나마 을지로로 향하는 것을 합리적인 타협의 기술이라고 말해지는 것. 걸었지만, 도착했지만, 그러나 결국은 가지 못 하고, 앞으로도 영원히 갈 수 없는 길. 그 길을 거부한 사람들은 말 할 수 있다.

우리가 살려내고자 하는 것, 우리가 함께 만들고자 했던 것, 우리가 욕망하는 그것은 결코 거래될 수 없다는 것을. 정치인도 담을 넘을 수 있고, 노조 대표자도 마이크를 잡을 수 있지만, 그 누구도 우리의 욕망을 대리할 수 없다는 것을. 


합리적인 욕망과 비합리적 실천

동희오토 노동자들이 현대자동차 본사 앞에서 문화제를 할 때는 유난히 장대비가 많이 왔다. 쏟아지는 비를 배경으로 한 명의 노동자가 외치고 있다. 동희오토 해고노동자 박태수. 현장으로 돌아간 그는 그때의 그 곳을 바라보며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우리의 운동은 합리적인 욕망과 그것을 위한 비합리적인 실천으로부터 시작된다. 자본주의를 깨뜨리려는 합리적인 욕망은 장대비를 버텨내는 비합리적인 실천에 의해서만 실현된다.”

항의서한 들고 기념촬영하고서 불태우고 끝낸다면, 맞지도 않고 벌금도 없을지 모른다. 구태여 직접 전달하겠다고 정문으로 들어서다 용역경비들에게 무차별 폭행당하고, 눈물과 섞인 이상한 웃음을 짓는다. 재작년 여름, 서울 양재동에서 동희오토 해고노동자들의 비합리적인 실천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집회를 돈 주고 사는 재벌을 옹호하면서도 법적절차를 준수하고 있다는 경찰의 합리적 답변을 깨뜨리고, 이미 허가된 재벌의 유령집회를 무효화한 첫 번째 사례는 ‘서초서 집회신고 점거투쟁’이었다. 그러나 뒤늦게 개입한 자들이 약속위반을 통보하자 추석 귀향을 포기하고 집회신고 투쟁하겠다는 신청자가 폭주한다. 경찰서에서 데이트하겠다는 연인들, 합동으로 차례를 지내자는 시민들이 넘쳐나면서 경찰과 사측의 꼼수는 실패한다.


우리는 어떻게 승리하였나?

동희오토와 기륭전자 노동자들의 투쟁은 비정규투쟁의 헌신성과 확장이라는 면에서 다양한 조명을 받는다. 투쟁은 사업이 아니고, 행사도 아니라는 것. “몇만이 단결하여 OO투쟁 승리하자”라는 구호가 얼마나 허망한 치장인지를 제대로 보여주었다. 퇴근시간 후에 집회 잡으면 오지 못하는 같은 노조의 간부들과 퇴근해야 올 수 있는 시민들의 간극은 무엇인지. 비를 쫄딱 맞으며 울고 웃던 그 사람들이 뜨거운 여름과 한겨울 거리농성을 버텨내며 기어이 해내고 만 것에 대해서. 우리는 어디에서 어떻게 승리하였는지에 대해서 계속해서 물어야 한다. 기획자도 없고 주동자도 없다고 하는 것을 넘어서. 더 솔직하게 말해야 한다. 억압자가 공모자가 되는 것을 우리의 힘으로 거부하면서, 우리는 모두가 기획자가 될 수 있었다. 후퇴를 명령할 수 있는 주동자마저 추방시킨 그 현장에서 우리는 어떻게 승리하였는가?

어느 시민이 트위터에 남긴 다음의 주장은 단지 은유가 아니라 명쾌한 진실을 담고 있다. “그가 구속된 이유는 …가 아니라 항상 그 곳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 곳은 어디인가? 장대비를 맞으며 동희오토 노동자들이 문화제를 하던 곳. 72시간 연속으로 계단에 앉아 크레인을 쳐다보며 구호를 외치던 영도의 어느 아파트 앞. 방송차는 후퇴를 명령하는 장치가 아님을 선언한 그 깜깜한 새벽의 길거리.

지금 우리가 서있는 이곳이 투쟁의 자리이기에, 이곳에 함께하는 것이 김진숙을 살리고 우리가 승리하는 길이라는 것을 그 많은 사람들이 온 몸으로 증명해보였던 바로 그 곳. 비탈길과 골목길을 돌고 돌아 지친 몸으로 도착하고서 밤새 신나게 놀고 떠들고, 울고 웃던 그 곳. 비합리적 실천의 현장!

거창하게 희망버스가 승리한 이유에 대해 말하는 것은 여전히 쑥스럽다. 그렇지만, 왜 희망버스를 탔는지는 말 할 수 있다. 진짜로 가는 것이니까, 장대비와 물대포를 맞으면서도. 어디까지 갈 수 있고, 무엇을 넘어설지 알 수 없지만, 나는 정말로 갈 것이고, 부딪힐 것이다. 승리할 수 있다는 확신? 우리에게는 후퇴를 명령하는 주동자가 없다!


정진우 · 진보신당 비정규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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