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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살기 고달픈 나도 당원이다

posted Nov 20,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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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12-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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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밤 12시다. 바람은 약간 차가운 기운이 있으나, 그리 기분 나쁘지는 않다. 나는 내일 아침 7시에 퇴근을 하며, 일한 대가로 6만 원 정도가 임금명세서에 누적될 것이다. 이런 식으로 밤과 낮을 번갈아가면서 한 달을 근무하면 세금을 제한 후에 대략 140만 원 정도를 손에 쥘 수 있다.


직장 생활을 한 이후로 때로는 많이 벌기도 하고, 때로는 적게 벌기도 하였지만, 최소한 이 정도로 열악한 임금을 받는 적은 없었을 것이다. 임금은 시간당 최정 임금이 적용되고, 그 외 시간 외 수당이 더해진 금액일 가능성이 있다. 정확한 금액의 산출 근거는 잘 모르겠다. 어떨 땐 3개월이나, 6개월 만에 계약서를 다시 쓰는 경우가 있고, 그때마다 총액은 비슷한데, 그 내용이나 근무조건에 대한 계약이 조금씩 바뀌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이 직장을 선택하게 되기까지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겠지만, 구질구질하니 생략하기로 한다.


대신 내가 이 직업을 선택하면서 몇 가지를 버린 게 있다. 첫째-자동차를 버렸다. 대신 걸어 다닐 수 있는 곳에 직장을 얻었다. 둘째-결혼을 하는 것을 포기했다. 물론 나는 처음부터 이런데에 그다지 큰 관심이 없었지만, 이젠 완전히 접었다. 셋째-부자가 되는 걸 포기했다.이건 두말하면 잔소리다. 넷째-될 수 있는 한 사람들과 어울리지 않는다.즉 만나고 싶은 사람만 만난다. 이 기준이 직장 선택에 작용했다기보다는, 이 기준을 받아들일 수밖에 달리 방법이 없었다고 하는 게 맞는 말이다.


이 정도 수입으론 가능성도 희박하지만, 결혼이나, 가족을 유지하기 위해서 인생을 허비(언짢아 길 말길 순전히 내 기준이며, 위로이니)할 수만은 없지 않겠는가? 물론 내 수입이 충분하다면야 달리 생각해 볼 여지는 있었을거다 . 결혼한 친구들은 내가 이런 식으로  객기를 부리면 자유로워 좋겠다고 하는 이들도 있지만, 난 절대 자유롭지 못하다. 그 흔하다는 여행 한 번 가지 않는다. 이곳에서 벌써 2년째 근무 중이고 아파서도 안 되고 휴가를 내는 것도 사실상 힘이 든다. 물론 나는 다른 이들에 비해 노동강도는 훨씬 작다는  게 위로라면 위로다. 


지금보다 60만 원 정도를 더 벌 수 있다. 대신 자동차를 구매하여 조금 먼 거리 출근을 해야 할지도 모르고(생태주의 때문이 아니고, 나의 산수에 의하면 이득 될 게 없다), 아니면 하루 12시간씩 일주일 단위로 주야 맞교대하는 곳으로 가면 된다.아니면 정말 운이 좋아 더 나은 직장엘 갈 수도 있겠지만. 사실상 희박하다.


내가 좋아하는 선배는 주야 맞 교대를 1주에 6일을 하여 월 200정도를 집에 가져간다. 선배는  토끼같은 애가 둘이고, 사랑스런 각시도 있고, 자동차도 있고, 대출을 끼고 산 집도 있다(비록 지방의 허술한 아파트지만),더군다나 정규직이다. 하지만 내 선배는 그런 것들을 지키기 위해서 집에서 떨어진 곳에서 기숙생활을 하고, 차비가 아까워 한 달에 한번 밖에 집엘 가질 않고, 담배도, 술도, 전화도 절대 발신 전화는 안한다(특히 이 점이 난 심하게 거스르지만 어쩔 수 없다).


나는 이런 전략을 '고립 전략'이라고 부른다. 그람시가 말했다는'진지전'이 아니라, 참호에서 식량을 최대한 아껴서 파멸의 시간을 최대한도로 늘리는 전략이다. 이런 걸 전략이라고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서도 그래도 생존의 한 방법이니 전략이라고 하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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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배는 2년동안 직장을 세 번 옮겼다. 첫번째는 지금보다 훨씬(?) 대우가 나았는데 부당한 일에 항의을 자주 했던 모양이더라. 회사에서도 왕따, 같은 직원들 사이에서도 왕따라 이직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동료 직원들은 이렇게라도 벌어먹고 살게끔 가만 놔두라는 요구였다한다. 두번째 직장에서는 잔업과 특근과 야간 근무가 없었지만, 임금으로 백이십만원을 주더란다. 비록 몸은 편했지만, 생활을 할 수가 없었다고 한다. 그리고 지금 이 일을 하고 있고, 한시라도 야간 근무나 잔업이 없으면 다른 직업을 찾아야한다. 왜 백이십만원을 받고 편하게 살 수는 없으닌까.


'고립 전략'의 대가 답게 선배는 신문도 방송도 보질 않고, 사회활동이나, 정당활동 등 일체의 사회적 활동을 하질 않는다. 오직 외부와의 소통은 일본 방송을 듣고, 일본 프로야구를 보는 것외엔 없다. 사실 내 선배는 일본어 시험성적이 1%에 드는 실력자이긴 하다. 하지만 최대 단점은 사람들 사이의 '정치'에서는 거의 제로에 가까워 형수가 '사회부적응자'라고 별명을 지어주었다.


선배는 하루종일 공장에서 볼트를 박을지언정, 사람들 사이에서 가식적인 웃음과 경쟁을 하고, 서로 속이고 속는 그런 짓을 못하는 쑥맥이다. 아마 하루종일 고고학 박물관에 쳐박혀 유골의 점을 찾는 일이라면 아주 유능하기는 할게다.


가끔 선배에게 전화를 하여,이런저런 정치애기를 하고, 내가 속한 진보신당 애길 할 때면 선배는 이렇게 애기한다. '난 이 나라를 통째로 들어서 바닷물에 한 30년 담갔다가 꺼내야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하지만 그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이쯤해서 "그럴수록 싸워야하지 않느냐"하고 말하는 바보가 없기를 바란다


내 성격도 사실 일반적인 것은 아니지만, 선배는 그야말로 사회부적응자이다. 나뿐 아니라, 선배도 안타깝다. 하지만 선배는 게으름뱅이인 나와 달리 한시도 일을 멈춘적은 없다. 늘 먹고 살기 위해서 바둥거렸다.   


나와 선배는 출세하기를 바라지도 않고, 명예나 사람들의 평가를 받기를 바라지도 않는다. 우리는 굳이 일을 해야한다면, 7시간동안만 공장에서 볼트을 받고(얼마나 단순하고 아름다운 일인가?), 많지는 않지만 인간으로서 품위를 유지할 정도의 돈을 받고.더 바라지도 않는다.


나머지 시간을 선배는 창고에 쳐박혀 유골의 점이나 찾고,아니면 책 속에 틀린 받침법을 찾고, 나는 값 싼 술을 먹고, 산책을 하고,  빈둥거리며 살기를 원할 뿐이다. 선배는 나보다 가진 게 많다. 나이도 많고,집도 있고,애들도 있고, 각시도 있고, 정규직에다. 월급도 나보다 많다. 하지만 가진 게 그렇게(?)많으니, 숨을 쉴 수가 없나 보더라.  그는 이 초라한 소유를  지키기 위해 너무 지쳐있다. (아마 모르긴 몰라도 숨을 쉬는 것도 계획적으로 할 지 모르겠다). 그는 누구보다 급진적이지만, 너무 무거워 저항할 힘이 없다.


나는 자의든 타의든 가진 게 적다보니, 그보다 조금 가볍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런 건 모르겠다. 선배 본지가 3년이 넘었다. 좀 더 가벼워져  같이  막걸리도 먹으러 가고, 담배도 같이 피고, 유골의 점의 위치와 인간 진화와의 관계들에 관해 밤새 토론을 해보는 기회가 꼭 있기를 바래본다.


그게 내가 진보신당을 하는 이유이다.  모든 노동자들이 정규직으로 일하길 바라지만,반드시 내가 정규직 노동자가 되는 것을  바라지는 않는다.사회부적응자든, 소수자든 외국인이든 가난하든 그가 평균적인 인간으로 강제되지도 않고, 인간 그 자체로서 존엄을 존중받는 사회가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 김윤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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