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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원기고] 삼포세대에 비정규직, '백수'가 바라는 대통령

posted Nov 21,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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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12-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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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아래는 박대진 당원이 투고한 글입니다. 앞으로 당원들께서 여러 지역에서 벌어지는 당 활동을 알리거나 당 전체의 고민을 깊게 해줄 글을 기고해주시면(newjinbo@gmail.com)  <정치신문R>에 적극 게재하겠습니다. 메일로 기고하실 때 'R 기고'임을 제목에 밝혀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당원 여러분의 많은 관심과 참여 부탁드립니다. 



백수들에게 신자유주의 종식 이야기할 대통령


30대 중반이 넘었다. 취직을 못 했다. 결혼도 못했다. 아직 부모님 집에 얹혀산다. 요즘 나와 같은 사람을 일컫는 말이 유행이란다. 30대가 넘어서도 부모 주머니 안에 서식하는 캥거루족, 연애-결혼-출산을 포기한 삼포세대, 취업의 의욕 없이 주로 아르바이트로 연명하는 니트족(Not in Education Employment Training)) 등. 씁쓸하다. 내가 뭘 잘못했나? 시키는 대로 공부 열심히 했고 가라는 대학도 가고 나름 영어 공부도 하고.


90년대 중반, 대학에 입학해 2~3학년을 지나고 있을 무렵 IMF라는 놈이 한국을 집어삼켰다. 대학생인 내겐 별 영향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열심히 노력하면 어떻게든 잘 살 수 있다고 생각을 했다. 환상이었다. 어쩌면 IMF가 시작이었는지 모르겠다. 취업의 문은 점점 좁아졌다. 내가 일하길 희망했던 기업들은 줄줄이 도산하거나 다른 곳에 병합되었다. 당연히 신입사원 채용 규모도 대폭 축소되었다.


지나가는 바람이라 생각했다. 본격적으로 취업에 나서는 시기에는 응당 길이 열릴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길은 더 좁아졌다. 몇 번 입사원서를 냈다가 좌절했다. 그래서 공무원 시험 준비를 했다. 경쟁률이 154대 1이란다. 물론 154명 중의 그 한 명은 내가 아니었다. 경쟁에 살아남지 못한 나의 잘못인가? 시험 운이 없어서인가? 아니면 시대를 잘못 만난 탓인가? 아무튼, 계속되는 지원과 시험을 거쳐 난 아직 실업자이다. 아니 직업을 가진 적이 없으니 그냥 백수라고 하는 편이 낫겠다.


생각해보면 지금 이 꼴에 대한 원인은 무능함이다. 좋은 대학을 나오지 못한, 영어점수가 좋지 않은 나의 무능함이 원인인 듯하다. 하지만 2009년 발표를 들으니 정부가 '취업 애로계층'이라고 표현한 사실상 '백수'가 200만에 육박한다고 한다. 2009년 이후로 '취업애로계층'을 발표한 적이 없으니 3년이 지난 지금은 200만보다 훨씬 많은 백수가 있다고 생각된다. 이건 좀 문제가 있지 않나?



백수들이여, 네 탓이 아니다

"우리나라 백수 애들 착해요. 텔레비전에서 보니깐 프랑스 백수 애들은 일자리 달라고 다 때려 부수고 개지랄을 하던데 우리나라 백수 애들은 다 지 탓인 줄 알아요. 지가 못나서 그런 줄 알고 아휴 새끼들 착한건지 멍청한 건지 다 정부가 잘못해서 그러는 건데... 야, 너 욕하고 그러지 마. 취직 안 된다고. 니 탓이 아니니까. 당당하게 살아 힘내!" 박중훈, 정유미 주연의 '내 깡패 같은 애인'이란 영화의 깡패 박중훈의 대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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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 내 잘못만이 아니었다. IMF 이후 한국은 신자유주의의 길로 본격적으로 들어섰고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정부를 거치며 신자유주의는 더욱 공고해졌다. 정규직 취업은 꿈도 못 꾸고 단지 한시적으로 비정규직, 계약직으로만 취업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또 사용자의 구미에 따라 남발되는 정리해고 때문에 그마저도 언제 그만둬야 할 지 모르는 상황이다. 평생직장이라는 말은 사라진지 오래다. 그리고 나 같은 사람이 취직하기는 더 어려워졌다. 국민의 정부, 참여 정부, 경제 대통령 모두 실업에 대한 답은커녕 문제를 더욱 심화시켰다.


내가 백수인 이유가 시대를 잘못 태어난 것이라면 나를 백수로 만든 지금은 어느 시대인가? 다들 지금은 신자유주의 시대라고 한다. 모든 걸 시장에 내맡긴, 심지어 사람이 살아야 하는 이유마저도 시장에 내맡긴 신자유주의. 그 시장에서는 내 취업 따윈 생각하지 않는다. 그리고 백수인 내가 어떻게 사는지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다. 그저 돈 불리기만이 최대 관심사다.


신자유주의 시대에서는 '신용'이라는 이름으로 '사기'를 친다. 재정 혹은 기업 '건전성'이라는 이름으로 나의 건전한 삶을 빼앗아 간다. 또한, 신자유주의 시대에는 인력이 많이 필요하지 않다. 돈 놓고 돈 먹는 카지노판과 같은 세상에는 돈을 따는 사람과 돈을 잃는 사람이 있을 뿐이다. 나 같이 취직해서 돈을 벌고자 하는 사람은 판에 끼지도 못하는 잉여일 뿐이다. 결국, 시대가 바뀌지 않는 한 나는 백수를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최근 다른 시대를 만들겠다며 포부를 밝히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또 선거가 돌아왔다. 이번에는 대통령 선거다. 각 후보가 말하는 대로만 세상이 바뀐다면 한국은 '백수 없는 나라'가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박근혜의 '내 꿈이 이루어지는 나라', 문재인의 '사람이 먼저다', 김두관의 '국민아래 김두관', 손학규의 '저녁이 있는 삶' 등 참 좋은 말들을 잘도 지어냈다. 그리고 저마다 실업문제를 해결하고 양질의 일자리를 많이 만들겠다고 선언한다. 그러면서 이야기하는 것이 '청년의무고용할당제' 또는 '청년 인턴십' 확대, 포괄적 '실업부조' 등 이다. 어떻게 보면 다 좋고 훌륭한 정책인 듯 보인다.


그런데 이렇게 생긴 일자리가 안정된 일자리라 볼 수 있나? 실업부조로만 지속가능한 삶을 살 수 있을까? 사회전체가 불안하고 언제 어떻게 무엇이 바뀔지 모르는 시대에 가당키나 한 정책인가? 선거는 이미지 전쟁이라더니 저마다 '자신이 실업에 엄청 신경 쓰고 있다는' 이미지만 보이려고 노력한다. 그럼 진짜 대안은? 그걸 알면 내가 백수이겠나?


다만 몇 가지 바람은 있다. 다른 사람들이 나에게 일을 나눠줬으면 좋겠다. 또 백수이더라도 최소한 밥은 먹고 살 수 있게 돈을 좀 줬으면 좋겠다. 당연한 말이지만 일이 없으니 돈도 없다. 다시 말해 일도 없고 돈도 없으니 미치겠다. OECD 국가 중 한국이 가장 노동시간이 길고 노동강도가 높다고 들었다. 그 일과 시간을 좀 나눠주면 안 되나?


또 투자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투기 놀음에 약간의 세금을 매겨 나 같은 백수 200만 명에게 주면 안 되나? 다 달라는 것도 아니고 어차피 돈 놓고 돈 먹는 카지노판의 돈인데. 동네에서 도박하다가 경찰에게 걸리면 판돈은 국고로 환수되지 않나? 비슷한 거 같은데. 만약 이러한 생각을 정책으로 만들고 공약으로 하는 후보가 있다면 '좌파'로 비난받을게 뻔하다. 자유시장체제를 부정하는 전복세력이라고 또 북한을 추종하는 세력이라 매도당할지도 모른다. 아니면 현실성 없는 꿈같은 이야기라 조롱당하려나?



신자유주의의 종말을 이야기할 대통령 후보를!

내가 희망한 말도 안 되는 일이 세계 어느 곳에서 실제로 추진되고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심지어 '급진좌파연합'라는 이름을 가지고. 그리스 급진좌파연합은 모든 국민에게 기본소득을 나눠주고 금융자본을 국유화하겠다는 정책으로 제2당이 되었다. 그리고 유럽 곳곳에서 또 신자유주의의 심장부 월스트리트에서도 실업자들과 금융피해자들의 시위가 계속되고 있다. 즉 일할 권리를 행복할 권리를 정부를 상대로 기업을 상대로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세계 곳곳에 실업자와 노동자의 시위를 지지하고 옹호하는 '좌파'들이 있다. 세계 모든 좌파들의 표현 방식은 다르지만, 신자유주의 반대를 주장하며 백수들의 이해를 대변하고 있다.


20120904120832_4063.jpg ▲ 그리스 급진좌파연합의 젊은 리더 알렉시스 치프라ㅡ


나를 일 없고 돈 없는 불행한 백수로 만든 신자유주의와 그 신자유주의에 반대한다는 좌파 중 무엇을 선택해야 하나? 앞서 말한 박근혜, 문재인, 김두관, 손학규 그리고 안철수까지 이들 중 신자유주의자는 누구이고 좌파는 누구인가? 그들에게 '좌파'라는 말은 상대방을 비방하기 위한 말장난에 불과하다. 그리고 신자유주의를 변형하겠다는 사람은 많은데 신자유주의 자체를 반대하겠다는 사람은 없다. 즉 이들 중 속 후련하게 '신자유주의 종식'을 이야기하는 좌파는 없다. 썩은 동아줄이라도 잡고 싶은데 지푸라기도 없다.


네가 백수인 게 네 탓이 아니라고 시원하게 이야기해줄 좌파가 한국에는 없나? 내가 좌파임을 선언하고 대통령 후보로 나서 신자유주의 반대와 백수 해방을 이야기하고 싶지만 움직일 돈도 없고 부모님 눈치도 보여 선뜻 나서기 어렵다. 내 사정이 이러니 누군가 이야기해 줬으면 좋겠다. 나를 만든 신자유주의의 종말과 백수 해방을! 굳이 꼭 '좌파'라는 이름을 달고 나오진 않아도 된다. 그렇게 안 해도 남들이 다 그렇게 부를 테니까. 

[ 박대진 (당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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