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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정노동체제를 깨뜨리는 근본적 저항

posted Nov 21,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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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12-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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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9/14일 개최된 “불안정노동자 정치대회”에 진보신당 정진우 사무총장이 제출한 토론문입니다. 


“불안정노동자들의 정치 주체화가 중요하고, 불안정노동운동과 정치운동의 분리를 극복하는 첫 출발로서의 2012 대선투쟁을 시작하자”는 발제문의 주장(결론)에 대해 동의한다. 함께 출발하기 위해서 아직 말하지 못한 것을 “더욱 분명하게” 또는 “다소 다르게” 말하고자 한다.


“불안정노동은 삶 전반의 권리를 박탈하고 있다. (중략) 고용불안으로 인해 생존의 고통에 시달리고 자신의 삶을 풍부하게 하지 못하고, 경쟁 속에서 시달리는 지금 불안정노동자들의 삶은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모든 노동자들의 삶의 문제일 수밖에 없다.” (정치대회 발제문 중)


불안정노동에 시달리는 노동자들의 삶이 더욱 피폐해지고, 그것이 보편적이라고 할 만큼 확대되고 강화되어 모든 노동자들의 문제가 되고 있다고 진단한다. “불안정노동”이라는 문제설정은 노동자들의 “고통의 상태”를 표현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이러한 고통을 표현하거나 저항할 수 없는 (지극히 어려운) 상태에 대한 진단이기도 하다. 노동을 통제하고 노동자를 착취/배제하는 자본의 무기이자 현 체제 자체를 구성하는 주제어이다. 또한, 전 산업적 수준의 수직 계열화와 노동 위계화가 완성되는 과정에 대한 분석이다.


지적한 대로 위계화된 노동체계 내부에서 고통의 크기와 세기가 다른 것은 당연하다. 주목해야 할 것은 노동자들에게 불균등하게 (아직) 허용되고 있는(보장되는) 권리와 원천적으로 박탈당한 권리에 대한 것이다. 우리는 노동권이 조금 더 침해되어 있고, 조금 더 보장받아야 한다는 단계적 접근을 이미 넘어서고 있다. 이러한 위계화와 권리의 제한은 불안정노동체제가 유지되는 조건이기도 하고, 자본이 안착시키려는 목표이기도 하다. 권리의 박탈! 스스로 단결하고 조직할 수 없는, 그래서 투쟁하고 저항할 수 없는 노동자. “노동자이면서 노동자가 아닌 존재의 확산”은 불안정노동체제의 핵심 키워드이자 이 체제의 주된 경향으로 단단해지고 있다.


그래서, “노동자 내부의 차별을 줄이고, 단결해야 하며, 조직되지 않은 노동자를 조직해야하고, 불안정노동자가 앞장서서 투쟁해야 한다”는 결의가 “실현되지 못하는 상태를 다시 확인하는 것”을 넘어 현재의 조건을 극복하는 실천방침이 되는 것은 여전히 어려운 일이다. 산업별, 지역별 등의 새로운 조직화 계획과 공단지역 전략조직화는 앞으로도 더욱 치열하게 더욱 더 많이 시도되어야 한다. 그렇지만, 이것이 실제로 진전되기 위해서라도 “현재의 조건을 극복하는 공동의 시도”에 대한 근본적인 논의와 대안을 만들어야 한다.


씨줄과 날줄로 다양하게 조직화 경로를 모색하고, 불안정노동의 문제를 극복하는 광범위한 네트워크를 구축하며 사회적 연대운동을 진전시키려는 움직임은 이러한 고민의 작은 공감이기도 하다. 단결하고 조직하고 투쟁할 수 있는 조건을 확보하는 운동을 넓고 강하게 추진하면서 불안정노동체제에 저항하는 사회적 전선을 형성해야 한다. 


20120914155944_4468.jpg ▲ 재능교육 투쟁에서 연대사를 하는 안효상 대표, 심재옥 부대표


 

노동권 회복을 위한 사회 연대 투쟁을


사회적 연대와 투쟁 전략은 박탈당한 노동의 권리를 되찾는 투쟁으로 재구축되어야 한다. 간접고용 및 특수고용노동자들이 중심이 된 노조법2조 개정투쟁의 제안은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아직 이것은 법안을 발의하는 수준에서 멈추어 있고, 현장 주체의 투쟁과 사회적 운동이 현실화되지 못하고 있다. 재능투쟁은 여전히 고립되어 있고, 배경 두둑한 사측의 도발은 날로 기고만장이다.


정리해고 사업장을 중심으로 한 연대투쟁을 간접고용과 특수고용 사업장으로 무게 중심을 옮기자는 주장이 아니다. 불안정노동의 끝자락, 맨바닥에 내몰린 노동자들, 그들이 취약계층이고 불만계층이어서 관심을 가져야 하고, 시급히 조직되어야 한다는 것이 아니다. 불안정노동체제의 근본적 이슈에 주목하고, 보편적 노동권을 근본적으로 박탈하고 있는 최전선에서 전열을 가다듬어야 한다는 것이다. 단결하고, 조직하고, 투쟁할 수 있는 조건을 확보하는 투쟁으로 다시 사회적 투쟁을 재구축해야 한다. 제도를 잘 지키(게 하)는 것을 넘어서 새로운 사회적 기준을 만들어내는 투쟁으로 나아가야 한다.


사업장의 영역을 넘는 다양화 조직화의 시도, 불안정노동체제에 맞서는 네트워크의 구현과 함께 노동권을 되찾는 사회적 연대운동을 긍정한다. 이제 보다 거시적인 접근으로 “불안정노동자의 조직화를 진전시키고, 불안정노동체제를 근본적으로 깨뜨리는 사회적 투쟁”을 논의하자. 구호가 아니라 실천계획으로.


이러한 실천계획이 부재하다면, “불안정노동의 문제를 중심으로, 배제된 사람들의 연대와 투쟁을 전개하고, 또 그것의 정치적 결산(성과)으로서 대선투쟁을 건설하는 것”은 허언으로 비쳐질 수 있다. 물론, 실질적인 의미에서 최초의 발걸음을 내딛는 수준에서라도 충분히 시도될 가치가 있다. “모든”은 언제나 내걸야 할 구호일 수 있지만 결정적인 시점까지는 “목표”를 상징할 뿐이다. 지금 여기의 출발선에서 우리가 내거는 요구와 계획을 분명하게 하는 것이 실제로 우리의 출발을 가능하게 할 것이다.


불법파견에 맞서 싸웠던 기륭전자분회, 백프로 비정규직공장의 문제를 사회화했던 동희오토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투쟁을 “절반의 승리”라고 규정한다. 자본주의 체제에서 개별적인 전투가 완전하게 승리하는 것은 근원적으로 불가능할 수 있다. 미완의 과제는 그들만의 숙제가 아니라, 계급적이고 사회적인 연대의 투쟁 목표로 설정되어야 한다.


착취와 배제의 경계를 허물어뜨리는 투쟁, 지금 여기에서 불안정노동체제에 맞서는 사회적 연대의 한걸음을 내딛는 정치투쟁을 준비하자. 자본주의에서 정치는 근본적으로 배제되고 착취 받는 사람들의 연대이고, 현 시기 이것은 불안정노동체제에 맞서는 사회적 투쟁으로 나타난다. 아직 시도되지 못했지만, 우리가 쟁취해야 할 모든 것들의 가능성을 확대하는 운동에 대해 적극적으로 상상하자.


그래서 여전히 답이 없는 투쟁에 대해 이렇게 답하자. 답이 없는, 답이 없다고 단정하는 이유는 답을 구하지 않는 질문을 던지기 때문이 아니던가? 재능투쟁의 “최종 결렬”을 확인하며, 이제 제대로 질문을 던지자. 특수고용 노동자의 노동권을 쟁취하기 위해 어떻게 투쟁할 것인가? 현대차 비정규 투쟁을 둘러싼 장벽을 직시하며, 간접고용/중간착취 없는 세상을 향한 사회적 투쟁의 실마리를 부여잡자.


문제는 여전히 주체이지만, 이것의 불가능과 무기력으로 답을 회피하지는 말자. 연대의 가능성과 연대를 가능하게 하는 조건에 대해 질문하자. 연대할 수 없다면 주체는 조직될 수 없다. 투쟁할 수 없다면 주체는 없다. 답은 여기에 있다.


[ 정진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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