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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가 밝은 지 어느덧 일주일이 훌쩍 지났습니다. 잘들 지내고 계신가요? 원더 키디의 해가 낯설기만 한 이 때, 헤어진 지 얼마 안 된 2019년의 기억을 불쑥 언급하려 합니다. 구차하게 변명하자면 원래 작심이 삼일이고, 시작은 반이 아니며, 실행은 늦게 마련이니까요. 이-음에서도 조금 늦었지만 2019년 문화예술계 결산을 진행해보았는데요. 언급된 내용은 이-음 편집진이 2019년 한 해 동안 보고 향유한 것으로, 꼭 2019년의 컨텐츠가 아닐 수도 있습니다. 공감하시는 부분은 댓글이나 좋아요로 표현해 주시고, 소박한 바람이지만 글을 읽는 어느 분께 추천의 기회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나쌤이 기억하는 2019년 묘한 영화 다섯만– <스탈린이 죽었다> <두 교황> <시크릿 세탁소> <조커> <기생충>

봉건시대 국가에서 집단사냥은 놀이이자 군사훈련이었다. 지금 우리시대 놀이랄 수 있는 정치·전쟁영화는 무엇일까, 어쩌면 정치도 놀이가 되고 전쟁도 스펙터클이 되었을까.

여기에서 잠시 구로사와 아키라의 <요짐보>로부터 <황야의무법자> 그리고 <라스트 맨 스탠딩>으로 이어지는 ‘공인’된 관계, 그리고 샘 레이미의 어처구니없는 <이블데드 – 암흑의 군단>과 피터 잭슨의 화려한 <두 개의 탑> 사이에 존재하는 분명하기 짝이 없는 ‘비공인’된 연결(두 영화의 전투장면들이 거의 똑같다는 사실을 아시나)을 밑밥으로 깔며 썰을 풀어보기로 한다.

 


<스탈린이 죽었다!>(2019)는 스탈린의 어처구니없는 죽음과 측근들의 소동을 그린 블랙코미디다. 흐루쇼프 역을 맡은, 어쩌나 이렇게 나이든 스티브 부세미를 보는 것만으로도 반갑지만, 사회주의자를 자처하는 나쌤으로선 소비에트 권력 핵심을 바라보는 일각의 시선이 그러할 수 있겠다 싶기도 했고, 학살자이거나 학살 생존자의 면면이니 한국으로 치면 <그 때 그 사람들>과 유사한 영화로 보아도 될 법하다고 말할 수 있겠다. 권력자들을 희화하는 것, 그러면서 진짜-얼굴-모습, 즉 진면목을 잡아채는 것이 예술의 몫 아니었나. 미국 부시2세 시대 딕 체니를 주인공 삼은 <바이스>도 우리 ‘태극기 어버이들’께 보여드리고 싶지만.



그러고 보니 권력지향형 인간들이 반면교사로 삼을 법한 <다운 폴>에서 ‘베를린 천사’이신 고 브루노 간츠 선생은 히틀러보다 더 히틀러스럽지 않았나! 동시대 맞수 윈스턴 처칠(게리 올드만)의 <다키스트 아워>와 비할까. 승자와 패자로 나뉠 뿐 둘 다 제국주의 악당인 건 매한가지, 처칠의 말 한마디에 죽어나간 식민지 인민의 수는 내 평생 달력 펼쳐놓고 깎아 버린 손발톱 수와 비교되지 않을 만큼 많고, 그 가족의 수까지 헤아리기란 가능치도 않다. 그런 악당들 소재 영화들과 달리 <두 교황>(2019)은 화합이나 화해, 어쩔 수 없는 공존을 인정하고자 노력했다는 면에서 기억해두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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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망가질 대로 망가진 중국 선생님 장이머우가 그나마 근자에 보아줄법한 <삼국-무영자>를 만들기 전, 일본에는 <세키가하라 대전투>라든지 <노보우의 성>이 있었다. 그런데 동북아시아에서 선거결과로만 보면 우리가 더 나은 게 도대체 무언가? (제발 다들 자기가 제갈공명이라 착각하지 맙시다, 우리는 태반이 수십 만 중 그 수십만이 죽어나간 이름 없는 병사와 가족이거나 노예들이라고요!)




사회의식과 영화 완성도를 담보해온 스티븐 소더버그 감독은 <시크릿 세탁소>(2019)에 명배우들을 불러 모았다(이름 다 적기도 귀찮다). 금융 사기꾼의 행태를 담은 영화야 참 많은데 이렇게 계속되는 이유는, 전혀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열심히 사는 마이클 무어 선생의 <화씨 11/9: 트럼프의 시대>가 너무 착하게 보이는 이유도 상식 하나 인정받기 험한 세상, 비유로나 쓰일 논리가 정치에 적용되는 세상, 상품카피로는 그럴듯해도 논리 따위 무시하는 세상, 반면에 그럴듯하지만 그럴 수 없는 세상을 말하는, 그 격차 때문이다. 극장에서 보고 집에서도 재밌게 본 <기생충>(2019)이 이렇게나 히트하는데 왜 우린 그대로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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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에 흉터를 지닌 배우 호아킨 피닉스를 기억한 지 꽤 오래 되었다. 그는 흥행작, 예를 들면 <글래디에이터>의 끔찍한 황제 퇴임 이후에도 열심히 일했고, <조커>(2019)에 등장할법한 자격이 충분한 사람이었다. 간략하게 ‘계급충돌 vs 분노합리화’로 보이는데, 잘 생각해보니 그게 우리 처지 같기도 하다. <다운 폴>과 같은 시간대에 독일군대에서 탈영했다가 가짜 신분으로 학살자가 된 ‘일그러진 청년’을 그린 <더 캡틴>은 무서운 경고였다. 이 건조한 영화를 화려하기 그지없는 <조커>와 함께 보아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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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케묵고 고리타분하며 비현실이라 생각해온 것들이 당장의 이야기란 현실을, 여전히 케케묵고 고리타분하며 비현실이라고 생각하는 대안이 살아있다는 사실을, 우리가 티격태격하는 동안, 지구는 공전과 자전을 거듭하고 있다.

 

p.s

–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지지자일 뿐만 아니라 당원이었던 봉준호 감독과 <기생충>의 각종 수상을 축하하며.

– 12월 25일을 성탄절로 지정한 것은 예수 탄생 후 무려 300년이나 지난 후였다는 역사를 기억하며.

– 2020년은 조금이라도 나은 세상이길, 노동하다 죽는 사람이 덜하길 바라며. 부디, 해피 뉴 이어.



 


 

B-사감이 뽑은 2019

영화 : 레볼루셔너리 로드(2009) – 우리도 사랑일까(2012) – 결혼 이야기(2019) 변화 3부작


안정과 불안, 좌절과 성취를 겪을만큼 겪었다. 모험과 변화를 갈망하면서도 관성에 몸을 맡기는 것이 쉬워진다. 그 속에서 권태로움과 환멸이 때때로 동시에 치고 올라오기도 한다.  세 편의 영화는 인생의 반 이상을 걸어온 여성이 그 무렵 지닐만한 고민과 문제의식을 주요 주제로 삼고 있다. ‘나’보다는 ‘너’를 위한 ‘나’로 살아온 시간이 더 길었음을 느낄 때(레볼루셔너리 로드, 결혼 이야기), 일상의 권태로움을 끝내 이기지 못하게 되었을 때(레볼루셔너리 로드, 우리도 사랑일까) 그녀들은 ‘변화’를 꿈꾸었다. 그리고 과감히 변화를 위해 몸을 움직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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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편의 영화가 변화의 과정과 결과를 그리는 방식은 제각각이다. 1950년대 중산층의 부유함과 유쾌함이 밝게 그려지던 <레볼루셔너리 로드>는 중반 이후부터는 채도가 점점 낮아지더니 결말에선 지독하게 선명하고 뒷통수가 저릿할 정도의 충격을 안겨준다. 타이타닉 연인에서 부부로 임한 두 배우, 특히 케이트 윈슬렛의 연기에 혀를 내두를 지경이다. 변화의 과정과 결과를 가장 잔잔히 그린 <우리도 사랑일까>의 결말 역시 아주 인상적이다. 이 영화에서 두 번 등장하는 실내 놀이기구는 감정의 상승과 하강 곡선의 최고점과 최저점을 보여주는 중요한 장치로 작동한다. 더불어 사이다 같은 시원한 명언들도 아낌없이 나와주신다. (“인생에는 빈틈이 있기 마련이야. 그걸 미친놈처럼 일일이 다 메꿔가면서 살순 없어!”, “새 것도 결국 헌 것이 돼. 헌 것도 처음에는 새 것이었지.”) 이혼의 과정을 아주 섬세하고 현실적으로 그려나간 <결혼 이야기>는 변화의 과정을 촘촘하게 이루어 가는 두 배우의 티키타카가 매력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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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가 그녀들에게 남긴 것은 무엇일까. 한 가지는 확실히 안다. 한 번 나오면 다시는 들어갈 수 없는 풍경이 있다는 것. 우리는 그걸 지켜볼 따름이다.

 


한국 드라마 : 멜로가 체질, 동백꽃 필 무렵

정해진 요일과 시간에 무언갈 챙겨보는 것이 힘들어질 무렵부터 한국 드라마를 안 보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애청한 드라마는 응답하라 1988이었다. 2019년, 여기저기서 심심찮게 풍문이 들려오기에 봤다. (내가 멜로 드라마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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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는 이해가 안되는 낮은 시청률로 회자되고 하나는 수긍이 갈 수 밖에 없는 최고 시청율로 회자되는 두 작품은 지금까지 이어져 온 정형화된 드라마의 문법에서 살짝 벗어나 있고, 찰진 극본과 연기력, 호감도 높은 배우들이 등장한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본방 때는 당연히 못봤지만 종방 후에 단 몇일만에 클리어해버릴 정도로 몰입도가 높았다. 한 가지 아쉬운 건 에피소드가 너무 적다는 것 뿐. 시즌제를 강력히 요구한다.

해외 드라마 : 체르노빌, 킬링 이브

왓챠 무료 서비스의 혜택을 제대로 본(아니 실은 두 개 보려고 가입했던…) 작품. 웰 메이드로 소문 난 두 드라마야 말해 뭣하리. 이미 다른 매체들에서 입이 닳도록 칭송하였으니 이름만 올려둔다.

 


책 : 잊기 좋은 이름, 경애의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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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려라 아비>, <두근두근 내 인생>의 작가 김애란이 처음으로 산문집을 냈다. 특유의 재미난 입담으로 어머니가 20년 넘게 손칼국수를 팔고 8년 넘게 가족이 살았던 국숫집 ‘맛나당’의 추억과 국수 판 돈으로 세 딸의 학비와 방세, 생활비를 모두 대셨던 어머니의 이야기, 등단 소식을 처음 접했던 날의 기억 그리고 문학과 여행에 관한 이야기들을 술술 풀어나간다. 책에서 밝힌 작가의 습관대로 연필로 밑줄 치고 싶게 만드는 문장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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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혀 연관이 없을 것 같던 두 남녀, 경애와 상수가 서로를 알아가고 마음을 향해 가닿는 과정을 그린 따뜻하고 재미난 소설. 상수의 ‘비밀’을 일찌감치 알아채고 지켜보는 동안 둘의 연결고리가 밝혀질 순간을 기다리며 책을 놓을 수가 없었다. 둘뿐만 아니라 등장인물들의 다양한 삶이 펼쳐지는 이 책에는 여러 마음들이 켜켜이 쌓여있다. “마음을 폐기하지 마세요. 우리는 조금 부스러지기는 했지만 파괴되지 않았습니다.”(경애의 마음 中에서)

 


규과장이 뽑은 <2019년 사필귀정> – MNET ‘프로듀스 시리즈’ 담당 프로듀서 안준영

워낙 ‘방송국 놈들’의 악명이 자자하다지만, 이 사람은 도를 넘어도 너무 넘었다.

꼭 오늘날 알려진 프로듀스 시리즈 투표 조작 사건 때문만이 아니다. 그는 십 년 동안 열 개가 넘는 연출작을 거의 다 오디션 프로그램만으로 채웠다. 그가 조연출이 아닌 PD로서 연출진에 처음으로 들어간 ‘슈퍼스타K2’에서 ‘악마의 편집’이라는 말이 생겨난 건 우연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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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준영의 의도, 그러니까 ‘극적이고 재미있는 방송’을 위해 악역으로 편집되어 희생된 가수나 연습생들이 수없이 많다. 그가 뭉개버린 게 그들의 인격뿐이라면 모르겠지만, 더해서 그들은 재능을 피워보지도 못하고 쏟아지는 악플 세례에 꿈이 꺾였다. 슈퍼스타K2의 최초 희생자 김그림은 ‘싸가지 없는 팀장’이었고, 프로듀스101의 허찬미는 ‘연습생을 업신여기는 소녀시대 최종 데뷔조’ 따위로 만들어졌고, 초반 시청률만 견인한 채 버려졌다. 물론 이런 사례들은 말했듯 수없이 많다.

그 정도까지는 ‘연출진의 의도’ 정도로 뭉개고 넘어갈 수 있었다고 치자. 그는 순진한 시청자들의 보내는 응원까지도 문자 그대로 ‘헛된 것(도저히 다른 표현을 찾을 수가 없다)’으로 만들었다. 그 순위 조작을 위해 유흥업소에서 접대를 받은 것도 40여 차례라고 하니 더 할 말이 없는 셈이다.


다들 몰랐던 것은 아니다. 오디션 프로그램의 한계도, 그리고 그들을 피 말리는 경쟁 속에 내모는 잔인한 속성도 모두 알고 있었다. 그러나 붙잡을 것이 없는 연습생들에게는 그것이나마 마지막 희망이었음을 알고 있었기에 시청자들은 ‘다 알면서도’ 그들에 이입하던 것이다. 그리고 안준영은 투표 조작을 시인하며 그들 나름대로의 소중한 기억들을 모두 짓이겨놓았다.

그가 수갑을 차고 구속되었으니 사필귀정이라고 할 것이다. 물론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는 CJ가 잘라낸 꼬리의 편린일 뿐이다. 향응을 제공한 소속사도 똑같을 것이다. 무엇보다 그 자극적인 오디션 프로그램을 즐긴 시청자들 역시 안준영을 힐난하며 자극적인 다른 프로그램들을 즐길 것이다. <트루먼 쇼> 이후 20년이 지났지만 우리는 아무것도 배우지 못했다.

다만, 그에게 희생되어 또 언제일지 모르는 TV 출연이 악몽같은 기억으로 남았을 연습생들의 속이나마 조금 풀어졌으면 한다. 2019년의 사필귀정, 안준영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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