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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노당에서 갈라져 만들어진 진보신당은 두 번의 이탈(재편)을 경험했다. 이 두 번의 고난에도 난 다른 당으로 옮기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단순하다. 아직 다른 진보정당들에 대한 평가와 현 노동당의 주류 세력에 대한 평가를 제대로 해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야 할 지 말아야 할지를 결정하지 못했고 마찬가지로 남아 있을 이유도 (적어도 아직은) 찾지 못한 것 같다.


두 번의 재편 과정을 통해 내가 배운 것은 다음과 같다.

첫째는 우리에게 진보정당운동에 대한 컨텐츠가 없거나 고갈되었다는 점이다. 내용이 없으니 토론은 끝없이 겉돌았고 이탈하거나 남아 있거나 그 정당성을 제대로 설명할 수 없었다. 내게는 모두 그냥 편한 사람끼리 모여 각자 잘해보자는 얘기로 들렸다. 이론과 컨텐츠가 없다는 말은 평소에도 지인들에게 노동당에 가입해야 할 이유를 설명하기 곤란하다는 의미도 된다. 그리고 지금의 네 개의 진보정당의 차이는 정책도 이론도 아니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실제로 겉으로 드러나는 정책적인 차이는 거의 없거나 미미하다. 그렇다면 무엇 때문에 우리는 분열 되어야 하는지가 진지하게 논의되어야 한다.

둘째는 당의 노선과 운동방향을 결정하는 의결기구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특히 당원민주주의가 정파 정치에 의해 실질적으로는 완전히 봉쇄되었다는 점은 또 다시 지적되어야 한다. 이 과정에서 당원들이 만든 제도나 규칙은 그야말로 제구실을 못하게 되었으며 정파에 소속되어 있지 않는 일반 당원들은 당의 정치에 개입할 수 있는 방법도 의지도 없었다는 점을 지적해야겠다. 이 결과는 당원들을 배제한 채 진행되는 선수들만의 리그이다.

셋째, 한국의 정파나 정당의 위상에 맞는 운동이론이 없다는 사실이다. 여기서 운동이론은 거장들의 텍스트에서 나온 학문으로서의 이론과는 구별되는 운동주체들의 노선, 전략과 전술을 가리킨다. 따라서 운동이론은 국면에 대한 분석이며 이 국면에서 집중해야 할 지점에 대한 조직적 합의를 필요로 한다. 이론은 학자가 생산할 수 있지만 운동이론은 조직에 의해 생산된다. 특히 조직 내부의 민주적 토론을 통해 합의되는 – 자연과학처럼 발견되는 것이 아니라 의미가 부가되고 해석된다는 점에서 – 이론이다. 그래서 현재의 우리 운동에는 전략과 전술이 분명하지 않다. (이 문제는 여기서 다루지는 않겠다)


이제부터 좀 자세히 뜯어 보겠다.

정당운동이 아니더라도 컨텐츠 부족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지만 당의 향방에 관계되는 두 번의 재편 내내 어느 세력도 자신의 판단에 대한 설득력 있는 설명을 보여주지 못했다는 점은 분명 “이론”의 빈곤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론의 빈곤은 여기서는 자세히 다루지 못하겠지만 대체로 다음의 두 가지 원인에서 기인한다.

하나는 학문적 분야, 즉 정치정당이론을 다루는 분과학문의 위축이다. 이는 인문사회학 전반에 걸친 기능주의, 실증주의화와 관계 있고 더구나 이러한 이론의 자폐적인 경향, 즉 현실 운동과 경험에서 자신의 이론을 추출하고 만들어 가는 것이 아니라 서구 이론을 수입하고 거장들의 텍스트를 자신의 학문적 대상으로 삼는 포스트주의적 경향과 밀접하게 얽혀 있다.

둘째는 우리 운동 전반에 걸친 반지성주의적 경향(이는 앞의 내용에 크게 기인한다)과 함께 급진적 이론을 검증하고 평가할 대중 조직의 쇠퇴에서 비롯된 토론문화의 상실이다. 토론은 이론적인 부족을 직접적으로 보강한다. 여럿이 머리를 맞대면 좋은 얘기가 쉽게 나온다. 그러나 머리를 맞대기가 힘들기 때문에 민주적 조직문화도 쇠퇴하는 것이다. 물론 그 반대로 성립한다. 또한 이는 한국의 조직운동이 민주적이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8~90년대 만들어진 정파들이 그렇듯이 위계적인 조직문화는 대중의 참여동기를 떨어뜨린다. 조직내의 영향력이 고착화되어 있기 때문에 상층부의 몇몇 만 열심히 할 뿐 나머지는 의무감에서 참여하게 된다. 토론을 통해 자신의 주장이 경청 되고 반영될 수 있다는 조직에 대한 믿음 없이는 어떤 조직도 활성화되기 어렵다는 것은 분명하다. 한편으로 학문적 성과를 현장의 경험과 연결할 수 있는 능력, 즉 이론이 제안된 후(혹은 서구 이론이 유입된 후) 그 이론이 현실정치, 즉 현실 경험의 맥락을 확보하고 현실의 사건을 다시 이론에 반영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한국의 연구자의 이론이 현장과 결별하면서 이론의 맥락화 되지 못하고 현장 없는 이론으로 앙상하게 남아 있는 것이다. 즉 수입이론은 수입만 되고 소화는 되지 않은 채로 연구자들만의 관념의 유희로만 남아 있게 되는 것이다.


두 번째 문제(당 기구의 문제)는 더 현실적인 문제이다. 당의 제도와 규칙이 사실상 원래의 취지와는 다르게 해석되거나 무효화되거나 제 구실을 못한다는 점이다. 특히 당원중심주의 혹은 당내민주주의와 관련된 제도는 민노당 이후 지금까지 거의 사문화된 상태이다. 심지어는 당내 의결제도는 정파의 독식체제를 유지하는 데 이용되고 있다고 해도 되겠다. 
정치정당 내부에 의견그룹과 정파 가 만들어 지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현상이다. 문제는 각 세력간의 갈등을 당 내부에서 어떻게 조절하느냐이다. 여기서 제도적 장치는 정파간의 상시적 의견교환과 토론장을 비롯해서 일반 당원의 참여를 보장하는 여러 형태의 규범적 장치적 장치를 일컫는다. 대표적인 예가 정파등록제나 정책명부비례대표제이다. 물론 이 제도들의 부작용으로 정파 정치를 강화할 수도 있으므로 더욱 비례성을 높이는 제도가 연구되어야 한다는 점도 지적된다.

그러나 우리 운동에서 이런 제도가 제안되었던 거의 없다시피 하고(2008년 민노당에서 소수파에 의해 제안되었으나 거부당했다.) 당권을 잡은 다수파는 진보정치의 발전을 염두에 두기보다는 현실에 안주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이러한 제도는 실효적으로 제안되고 채택되기 쉽지 않다. 그래서인지 우여곡절 끝에 새로운 정당이 탄생하더라도 패권주의적인 정파정치는 반복적으로 재생산되는 경향이 있어왔다. 같은 얘기이지만 민노당 이후의 정당정치 역사를 통틀어 한국의 진보정당의 역사는 정파간의 역사로 과잉대표 되어왔다. 의결기구를 장악한 정파가 집행부나 운영위원회를 장악하여 자신의 의지에 반대하는 소수파의 의견을 조직적으로 무효화시키는 이른바 패권주의 정치는 해마다 반복되는 경향이 있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일반당원과 소수파의 의견은 그야말로 무시되고 조직적으로 봉쇄되어 왔던 것이 사실이다. 

정당운동에서 분열은 소수가 당 내에서 자신의 의지와 행위를 당의 의지로 표현하지도 조직하지도 못하는 상태를 극복하고자 하는 자연스러운 행동이고 따라서 당의 분열의 책임은 일차적으로 패권주의적인 당운동 문화에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 1등만을 알아주는 구조에서 소수파의 의견은 일종의 사표와 같이 의미 있는 행위로 연결되지 못한다. 일종의 낭비적인 요소가 당운동 내부에 있는 것이다. 패권주의는 소수파의 존재 이유를 없애고 당의 분열을 촉진한다. 정책적으로는 거의 차이가 없는 네 개의 진보정당의 현실은 민주적 합의 정치가 불가능한 승자독식구조의 결과이다.

2011년, 2015년에 진행된 진보정당의 재편은 패권주의에 대한 분석과 대안 없이 진행되었다. 재편, 혹은 통합은 동시에 분열이기도 하다. 이는 결국 충분한 토론과정 없이 상층부의 정치엘리트들의 합의만으로 진행되었다. 이탈자들을 보내고 더욱 주변화된 나머지 진보정당들과 통합정당과의 관계는 더욱 악화되며 전체 운동에 좋지 않은 결과를 나을 뿐이었다. 통합정당은 소수정당이 주변화될수록 활성화되는 정당이다. 다시 말하면 자기가 버린 정당이 죽어야만 잘되는 것이 지금의 통합정당이며 이는 분명 당운동 내부의 적대의 정치이다. 통합정당에 배제되는 다수의 정당과는 언제든 불필요한 경쟁을 할 것이며 선거연대는 번번히 실패할 것이며 정책적으로 동일하다 할지라도 사람이 싫어서 거절하는 갈등관계가 끝없이 재생산 되게 된다.

이 문제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합의 정치를 가능하게 할 것인가?

우리의 당면의 과제는 패권주의라는 승자독식구조를 무너뜨리는 것이다. 이것을 민주적 합의정치로 바꾸는 것이다.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진보정당 내 외부에 그에 관련한 광범위한 토론을 조직하는 것, 그 토론과 연구의 결과로 각 정파가 과잉되는 현상을 막을 수 있는 실질적인 제도와 규칙을 설계하는 것, 당원참여, 당원 중심정당을 만들기 위한 제도를 연구하는 연구소와 연구소를 중심으로 하는 지식인 연대를 만드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겠다. 진보정당이 주장하는 비례대표제가 정당성을 가지려면 적어도 당 내부의 정파들이 의결기구를 장악하여 소수파를 배제하는 지금의 현 정당체제를 바꾸려고 노력해야 한다. 정파라고 불리는 조직 형태와 그 대안 형태에 대해서도 논의되어야 한다. 정파와 대중정당과의 관계에 대해서도 엄밀하게 규칙을 정해야 한다. 그래서 가장 시급한 것은 이러한 산적한 과제를 해결할 주체를 구성하는 것이다.


우리에게 진정 필요한 것은 스스로가 이 시급한 문제를 해결할 주체임을 인정하는 것이며 모두가 함께 좌파라는 이름을 가진 지식인 연대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 은리 2016.04.15 22:14

    득표율을 보며 참 지리멸렬하다는 생각을 다시한번 해봅니다.
    누구든 아직 여기에 남아있어야할 이유를 알아듣기쉽게 얘기해줄 사람은 없을까요?
    이런 생각 자체가 어리석은 거겠죠?
    분명한 한 가지는 참 재미없다는 사실입니다.

  • 나무를심는사람 2016.04.15 22:18
    현 시점에서 가장 염려되는 부분은 "신좌파" 그룹과 "당미래" 그룹의 비생산적인 당내 권력 투쟁입니다. 과거 민노당과 통합진보당이 왜 정점에서 무너질 수 밖에 없었던 당내의 극단적인 패권주의와 분열이 우리 안에도 꿈틀대고 있습니다. 결국 민주주의가 문제네요. 많은 이야기들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컨텐츠나 노선의 문제는 우리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세계 진보운동이 직면한 문제이고, 맑스가 살아돌아온다해도 단칼에 해결하기는 어렵지 않을까 하네요. 노동계급 내부의 스펙트럼이 맑스 시절보다 훨씬 다양해서 노동자는 하나라는 이야기가 씨알도 먹히지 않은지가 벌써 10년도 넘었나 봅니다~
  • 게으른 부엉이 2016.04.17 05:46
    세계 경제의 침체나 재편. 그로 인한 노동현실의 변화. 일자리의 소멸과 그 질적 하락인 비정규직화. 생계를 이어나갈 길 없는 실업의 발생원인과 그 해결책. 과열되는 내부적 일자리 경쟁과 이에 따른 교육의 부패 내지는 타락. 은행의 노예가 되길 강요하는 주택 소유 정책과 무대책으로 일관하는 주거권의 문제 등등. 해결할 문제가 많고 알아야 할 문제도 많은 데 당내에서나 다른 당에서도 이런 전 세계적 차원른 그만두고라도 국내의 문제에 대한 지속적이고 진지한 연구와 당원 교양 따위가 존재하지 않는 현실.
    맑스나 레닌을 말하지 않더라도 지식인 연대로 공부 좀 하고 생각 좀 하고 사는 당.정치운동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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