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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잘못된 기대에 대한 반성

저는 꽤 오랫동안 청년진보당-사회당 당원이었고, 사회당 상집이 성폭력 2차 가해에 대해서 인정하지 않는 것을 보고 탈당해서 진보신당으로 합류했습니다.
꽤 오랜 시간이 지나고 사회당과 진보신당이 합당한다고 했을 때, 저는 이를 반겼습니다. 한 가지 기대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저 스스로도 2000년대 초반에 가졌던 생각과 지금의 생각이 많이 다르듯이, 그들 역시 달라졌으리라는 기대를 했기 때문입니다. 활동근거지가 영등포당협이었지만, 안효상 씨가 은평에서 후보로 출마했을 때 은평구로 선거운동을 돕기 위해 나가서 옛 동지들과 재회하기도 했습니다. 저는 사회당과 진보신당이 합당해서 “한국 유일의 좌파 정당”이 될 수 있기를 바랬습니다.
제가 그 운동에서 너무 존경했던 선배가 “달라지고 있는데 표현할 방법이 없다”고 했던 말을 믿었습니다. 앞으로 서술할 것이지만, 이 기대는 완전히 틀렸습니다. 죄송합니다.


2. “다름”에 대해서

저는 지금 당명 개정에 관한 논쟁(기본소득당 VS 노동당)에 대해서 “다름”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사회당계의 최고 어른 중 하나인 김태호 선배에게 “자본”을 배웠고, 노동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든다는 노동의 인간학과는 거리가 먼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한 번도 “노동당”이라는 당명의 지지자였던 적이 없고,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고, 여전히 노동의 인간학을 신봉하는 분들도 노동당 안에 있구나 하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틀림”의 문제가 아니라 “다름”의 문제입니다.

그러나, 제가 노동의 인간학을 전혀 신봉하지 않는다는 전제 하에 지금의 기본소득당 주장에 대해서 살짝 이야기해 봅시다. 노동해방을 “노동으로부터의 해방”이라는 것으로 해석했을 때, 설명해야 할 것들이 참 많습니다. 산업화, 기계화가 진행되면서 인간이 해야 하는 노동의 총량이 줄었지만 사실 그것은 노동시간 단축으로 연결된 것이 아니라 초과 착취와 대량 실업으로 연결된 것이 자본주의의 역사입니다. 총량이 줄어든 노동을 소수에게 집중시켜서 초과착취하고 나머지를 잉여인구로 만드는 자본의 방식이 아니라, 모두의 노동의 양을 줄이고 실업의 위협이 생존의 위협이 되지 않도록 하는 것. 즉 노동시간 단축. 그리고 그 과정에서 생성된 부를 분배하고 사회적 안전망을 확보해 나가는 것. 저는 그 맥락 위에서 주장되는 기본소득에 대해서 찬성합니다. 생존의 위협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남으로써 자본에 대한 종속성을 줄여나간다는 의미에 대해서도 충분히 동의할 수 있습니다. (사실, 어제도 주변 사람들과 토론하다가 보니 전 주로 기본소득에 찬성하는 입장이더군요)

그러나, 로봇이 들고 있던 "일은 우리가 할테니 여러분은 쉬세요" 피켓은 기본소득을 과연 이 맥락에서 주장하고 있는지에 대해 의구심을 가지게 만듭니다. 좌파가 주장하는 것이 과연 “일 안 해도 돈 줄께”일까요? “기본소득”을 승인하는 좌파가 노동자들이 투쟁하는 곳에서 내야 할 목소리는 생산력의 향상에 따른 총노동량의 감소가 실업으로 연결되지 않도록 하는 것, “기본소득”의 형태로 모두의 것이 될 수 있도록 하는 것, 생존에 대한 사회적 안전망이 될 수 있도록 하는 “투쟁”을 주장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요?  “일을 하지 않아도 돈을 준다는 데 솔직히 싫어하는 사람이 있겠습니까?”라는 서태성 부대표님의 무리한 언급. 저는 의심을 확신으로 바꾸어 갑니다. 내부적으로는 기본소득 운동을 새빨갛게 칠한 문건을 돌리면서 외부적으로는 “이재명보다 더 시혜적”인 것만 주장하는 것. 이런 경향은 이후에도 계속 드러납니다. 플라스틱(!!!!!) 부채에 찍혔던 “No work, yes money”. 안 그래도 이재명이 하는 기본소득과 노동당이 주장하는 기본소득이 어떻게 다른지 설명하고, 기본소득이 권력과 자본의 시혜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설명하기도 숨가쁜 마당에, 저런 카피들은 그냥 “우리가 이재명보다 더 시혜적이야!”라는 것을 주장하는 것으로 밖에 안 보이지 않을까요? “공유부 배당”으로서의 기본소득이라는 의미는 도대체 어디서 찾을 수 있는 건가요? 대중화라는 것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문제의식을 설명할 “대중적 언어”를 찾는 과정이지, 내부적으로 가지고 있는 문제의식과 외부적으로 보이는 모습이 완전히 다른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본이 광고하는 “4차 산업혁명”의 장밋빛 허상에 대한 편승, 획득해 나가는 과정에 대한 계급투쟁적 성격의 탈색. (내부적으로 돌리는 문건“만” 새빨간 것은 무효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것이 굉장히 기묘한, 아주 좋게 봐도 유토피아적 사회주의 이상으로 보이지 않습니다. (개인적인 평가는, 실제로 대중들을 만나고 선동하는 부위, 내부적인 토론이 이루어지는 부위, 이론을 생산하는 부위가 소통하지 않으면서 생기는 현상으로 보입니다. 그냥,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정치노선이 없던 조직이 한 분의 입국과 함께 너무 급박하게 통일된 정치노선을 “외부로부터 도입”했기 때문이 아닐까요?) 스스로는 기본소득은 반자본주의적이라고 이야기하면서 외부를 향해서는 최대한 “시혜성”을 강조하는 전략. 民을 토론하고 조직하는 대상이 아닌, 단순히 “표”로 보는 이런 경향을 역사는 “개량주의”, “계몽주의” 등으로 불러 왔습니다.

이 체계의 창시자들이 많은 점에서 혁명적이었다 할지라도,
그 제자들은 번번이 반동적 발전을 마주하여 스승들의 낡은 견해를 붙들고 놓지 않는다.
- 공산주의 선언, “비판적-유토피아적 사회주의와 공산주의” 中. 박종철출판사의 번역에 따름

여기까지, 기본소득 운동 자체보다는 그것이 전개되는 양상에 대한 생각의 “다름”을 잠시 지적했습니다. 그러나, 다름은 다름대로 두어도 좋고, 논쟁을 통해 통일된 시각을 가질 수 있다면 그것도 그것대로 좋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혹시 기억납니까? “여성주의자들이 전학협을 깼다!”는 소문을 후배들에게 퍼뜨릴 때, 그 전학협의 여성주의자들이 함께 하던 조직의 이름은 “차이가 힘이 되는 여성연대”였습니다. 그리고, 그 때 선배들은 그 “차이”를 힘으로 만들지 못하고 배격했습니다.

이제는 “틀림”에 대해서 이야기해 봅시다.


3. “새로고침”하지 못한 “틀림”

제가 오래 망설인 끝에 해산안을 지지하게 된 계기는 두 대표님들의 편지였습니다.

“잘못을 인지하고도 시정하지 않는 관례는 언젠가 사회변화를 주장하는 우리의 오점이 될 수도 있기에 ‘봉합’을 선택할 수는 없었습니다.”

2개 지역 광역당부 선거관리위원회 구성에 문제에 대한 단호한 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에 대한 언급입니다. 저는 여기에서 “봉합”조차 되지 않은 우리의 가장 큰 오점을 떠올렸습니다.
노동당 비선사태. 2000년대가 시작된지 한참이 지난 후까지도 “혼전 순결”을 룰로 하고 성소수자를 차별하는 “비선”이 노동당의 주류임이 밝혀진 사태. 위계에 기반한 운동의 질서가 노동당의 주류였다는 것이 만천하에 공개된 사건. 그리고 아무도 책임지지 않고, 당대표 선거 공간에서조차 모두가 침묵했던 그 사건. 노동당이 세간에 가장 유명해진 사건임에도 사실상 아무런 후속조치조차 없었던 비선사태. 당기위에 제소된 이들도 철저하게 나이주의에 입각하여 “선배”들이 배제된 채 “젊은이”들로만 구성되었고, 그조차 유야무야된, 새로고침은 커녕 봉합조차 하지 못했던 그 사건. 이것보다 더 큰 오점을 진보정당의 역사에서 남긴 일이 있을까요? 정의당 간 사람들이 배신자? 천만에요. 그들은 그저 생각이 “다른”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진짜 배격해야 할 사람들은 진보의 가치를 배신한 사람들이지 않을까요? 게다가 정의당 간 사람들에 대한 배신감에 기생하여 이 당에 대한 모든 정당한 비판을 “정의당 좋으려고?”로 몰아가서, 그들이 이 당에서 떠나게 만든 사람들이 진짜 비판받아야 하는 사람들이지 않을까요?

저는 노동당이 앞으로 지지율이 반등될 기미가 없어서 노동당을 해소해야 한다는 주장에 단호하게 반대합니다. 이 공간에서, 한국 사회의 가장 왼쪽의 정치를 선택한 사람들이 “버틸” 수만 있다면 노동당의 존재 가치는 충분하고도 남습니다. 노동당이 잘 되지 않은지 꽤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자리를 지킨 사람들이 바로 작년부터 떠나가기 시작한 것이 노동당의 지지율이 낮아서라는 분석은 전혀 과학적이지 않습니다. 반례가 필요한가요? 게시판에 다른 동지들의 이름을 남기는 것이 실례인 것 같아 남기지 않습니다. 저는 이 당의 지지율과 관계없이 남아있을 사람들이 비선 사태에 노동당을 진보정당답게 하고자 싸우다 떠난 예를 꽤 댈 수 있습니다. 그들이 이 당을 떠난 이유는 우리가 택한 공간이 사실은 위계와 차별로 얼룩진 공간이었다는 것이 까발려지고도 그에 대한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는 자괴감입니다. 이건 “다른” 것이 아니라 “틀린” 것입니다.

“지난 일”을 또 왜 까발리냐구요? 이것이 "지난 일"이 되기 위해서는 그 일에 대해서 평가하고 책임지는 과정이 있었어야 합니다. 그러나, 노동당은 그러지 못했습니다. 저는 이 공간을 사랑했던 사람들이 이 사건들로 인해 하나하나 자기의 자리를 잃어 나갔던 것을 잊지 못합니다. 노동당이 비선으로 얼룩진 것을 이기지 못해 “비판”한 사람들에게 “정의당 가려고 저런다”고 몰아붙이며 배신자 취급하던 사람들, 그리고 그에 하나하나씩 지쳐 나가 떨어지던 동지들.

게다가, 여전히 이 경향은 지속되고 있습니다. 알바노조 사태가 있은 후에, 현 당권파와 생각이 다른 한 활동가를 (대의원대회에서 통과된 사안임에도 불구하고) 상근비를 명목으로 배임/횡령으로 몰았으며,(그렇죠, 활동가의 생계비는 당원에게 나오는 것이 아니라 “다른 곳”에서 나오는 것이 너무 당연했을 테니까) 예결위에서 논의된 바를 다른 당원들과 토론했다는 것을 이유로 예결위원을 당기위에 제소한 후, 스스로는 한 달 뒤에 일어날 전국위원회 예결위 문서를 떡하니 공개하기도 올리기도 합니다. 유권무죄, 무권유죄 말고 어떤 설명이 가능한가요? 이것은 “다름”의 영역이 아니라 “틀림”의 영역입니다. 

우리가 “새로고침”했어야 할 것은 바로 이것이 아니었을까요? 그리고 우리는 그 시기를 놓쳐도 너무 놓쳤습니다. 노동당이, 혹은 좌파가 운동사회 내에서조차 다수파였던 적은 80년대 중반 이후 한 번도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의 무기력을 득표율, 혹은 지지율에서 찾는 것이 이상합니다. 저와 제 주변이 무기력해진 것은 비선 사태가 이만큼 불거졌는데 그에 대한 “전무한” 후속조치 때문이었는데 말입니다. “새로고침”하지 않은 “틀림”.

이전에 제가 경험한 그 조직은 책임자에게 “책임자의 의견이 관철되지 않는 일이 한 번도 없게 하라”고 주문했습니다. 며칠 전에 올라온 용혜인 대표님의 글에서 이런 경향이 계속됨을 알았습니다. 민주주의란 “민중이 주인되는 참세상”이라는 추상적 미래지향 말고도, 民을 끊임없이 주체로 조직해 나가는 과정으로서의 의미를 가집니다. 당대회를 앞두고 당명을 놓고, 해산을 놓고 일어나는 수많은 논쟁들을 “혁신과 해산”으로 단순화시킴으로써 노동당 당명 유지를 주장하는 의견을 애써 무시합니다. 그리고 순식간에 기본소득당은 혁신과 등치됩니다. 이 당에서 진작 했어야 하는 혁신, 비선과 관련된 완전한 청산, 비선과 관련된 모든 평가들, 그것을 평가하고 새롭게 노동당을 건설해 나가는 과정으로서의 지난 대표단 선거... 이 당이 적어도 진보정당이기 위해서 반드시 했어야 하는 모든 혁신들이 혁신이 아니라, “기본소득당”이 “혁신”. 논쟁을 촉발하고 그 과정에서 더 많은 사람들을 주체로 조직해내기보다는 논쟁을 억누르고 “지도부 원안”을 “혁신”과 등치시켜 반드시 통과되어야하는 것으로 포장하는 것. 그래서 부르주아 정당조차 하는, 당명에 대한 공모 한 번 하지 못했습니다. 다시, 민주주의는 民을 주체로 형성하는 과정이며, 그것은 더 많은 사람들의 의견이 토론되고 반영되는 “과정”에 있습니다. 단순히 다수결로 표 많이 얻는 것이 민주주의가 아닙니다. 돈 내고 지지해 주는 객체로 당원을 파악하는 순간, 이 당의 민주주의는 부르주아 정당과 하등의 차이가 없습니다.


4. 노동당의 해산을 지지합니다.

노동당의 해산을 지지합니다. 단, 노동당의 “지지율”, 혹은 “당명”과 관계없이, “틀림”을 “새로고침”하지 않은 노동당이 더 이상 진보정당이 아니라 생각해서 해산을 지지합니다.

한국 사회 유일의 좌파 정당이 위계와 차별로 얼룩진 역사를 청산하지도 않고 그 자리에 버티고 있는 것은 한국 진보정치의 발목을 잡는 일입니다. 우리가 이제 진보정치에 남길 수 있는 가장 긍정적인 교훈은 “자유와 평등에 대한 약속을 스스로 지키지 못한 것”으로 노동당의 해산 이유를 명확히 하는 것이요, 우리가 남길 수 있는 가장 큰 “오점”은 “진보정당답지 못함에도 ‘돈과 조직’의 힘으로 이름까지 바꾸며 유지되었다“는 기록입니다.

자본주의를 지양하고자 하는 집단에서 나타나는 이러한 자본주의적 분업적 조직관계의 수용은 하나의 아이러니다. 
우리에게 최대의 무기가 ‘조직’인 바에야 더욱 그렇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본주의를 지양한 사회에서 구현되는
그러한 분업을 현재의 상태에서 부분적으로 先取하자는 것이다. 미래 사회의 부분적 선취!!
- 팜플렛, 자유로운 인간들의 공동체를 향하여 中

저는 이제 노동당이 설사 정치권력을 접수한다 하더라도, 이 당의 운영원리로 운영될 미래 사회를 지지하지 못합니다. 그것이 해산을 지지하는 가장 큰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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