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정치위원회] 다섯 번째 릴레이 칼럼 - 무결함에 부쳐

by Magenta posted Aug 20,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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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성정치위원회에서는 넥슨 성우교체 사태와 관련한 릴레이 칼럼을 게시하고 있습니다.


[ 첫 번째 칼럼 - 이건 시작에 불과하다. (http://www2.laborparty.kr/bd_member/1695736)

  두 번째 칼럼 - 한남과 대화하기 (http://www2.laborparty.kr/bd_member/1696014)

  세 번째 칼럼 - 시인과 소녀의 천명 (http://www2.laborparty.kr/bd_member/1696134) 

  네 번째 칼럼 - 메갈리아 만세 (http://www2.laborparty.kr/bd_member/1696307) ]


다섯 번째 칼럼의 제목은 '무결함에 부쳐'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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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성우가 특정 문구가 적힌 티셔츠를 입은 사진을 SNS(사회관계망서비스)에 게시했고, 게임 사용자들의 항의가 이어졌다. 성우는 녹음을 다 마친 상태였으나 실제 시판되는 상품에서 그이의 목소리는 삭제되었다. 회사의 대처에 대한 비난, 그 옷을 입은 성우에 대한 비난이 뒤엉켰다. 어떤 사람들은 그이의 하차를 결정한 회사 앞에서 시위를 진행했다. 성우의 행동에 대한 지지를 밝힌 사람들은 자신의 계약이 해지당하기도, 다른 사람들에게 끝없는 비난을 받기도, 지지를 받기도 했다. 


 성우의 하차 결정은 법적으로 하자가 전혀 없다고 했다. 왜냐면 특정 업무에 대한 계약 관계이기 때문에. 성우는 목소리 녹음을 하고, 그에 대한 댓가로 이미 임금을 받았기 때문에. 다만 목소리가 실제 게임에서 나오지 않는것 뿐이지, 이 성우가 게임회사와 근로계약을 맺은 것이 아니니까. 


 누군가의 노동은 그 대가로 '돈만 받으면' 되는 일인걸까, '돈이라도 받았으니 다행'이라고 판단을 내릴 수 있는걸까. 법적으로 아무런 하자가 없으면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걸까. 그렇다면 왜 이렇게 끊임없이 계속해서 글이 쏟아져 나오고, 말이 쏟아져 나오고, 의견들이 계속해서 충돌하고, 합의점을 찾지 못하는 걸까.


 특정한 활동의 모금을 위한 티셔츠를 입음을 증명하는 행위 혹은 그 행위를 한 사람에 대한 지지 의사를 밝히는 행위가 자신의 임노동 계약이 갑작스레 중단될 수 있다면, 생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임노동이 필수불가결한 사회에서 누가 자신의 생각을 자유롭게 밝힐 수 있을까. 사실 고용주 입장에서는 자신의 생각을 계속해서 말 하는 피고용인은 피곤한 상대일 수 있으니, 오히려 더 바라는 일이 되는걸까. 그 티셔츠는 어째서 특정 집단을 그토록 화가 나게 만들었을까, 자신이 선량하고 옳으며 남에게 피해를 준 적이 한 번도 없다고 한 치의 의심 없이 믿는 그 모습들을 언제까지 봐야 하는걸까. 나는 도대체 언제까지 너의 까닭모를 무결함과 억울함을 이해해주는 아량 넓은 역할을 해줘야 하는걸까. 


 왕자님이 필요하지 않다는 티셔츠에 화가 난 어떤 사람들은 공주님이 필요하지 않다는 티셔츠를 만들었다. 차라리 자신들이 원할 때 언제든지 그리고 어떤 방식이든지 섹스할 수 있고, 언제든지 자신의 말을 들어주며 지지해주는 감정노동과 자신의 안락한 삶을 지탱해줄 수 있는 돌봄노동을 해줄 수 있는 노예를 원한다는 티셔츠를 만들었으면 참 솔직하단 말 한마디는 해줄 수 있을 것이다. 


 어떤 날에 피 한방울 섞이지 않은 사람의 상갓집에서 일을 도와야 했다. 머리가 드문드문 빠진 60대 이상으로 추정되는 어떤 남성이 밥을 갖다주는 나를 잡으며, "젊은 아가씨랑 밥을 먹으면 참 맛있을 것 같은데, 혼자 먹기 적적하네."라고 했다. 나는 생글생글 웃으며 "이미 밥을 먹어서요, 어쩔 수 없네요." 라고 이야기했다. 냉장고 옆 일하는 사람들 자리에 앉아서 애꿎은 식혜만 벌컥벌컥 들이켰다. 상주는 이미 슬픈 와중인데, 내가 겪은 일에 대해 굳이 이야기하고 싶지 않았다. 


 운전학원을 다닐 때에는 항상 무릎 아래로 오는 하의를 입었다. 운전 강사는 매일 바뀌었다. 강사는 내 허벅지를 만지고, 손을 잡으면서 "아가씨가 예쁘니 주차하는 법을 가르쳐준다"고 했다. 운전면허증을 발급받던 날에는 학원 피드백을 써달라는 종이를 받았고, "X월 X일 XX시에 도로주행 했던 XXX선생님이 허벅지를 만지고 손을 계속 잡는 등 원치 않는 신체적 접촉을 했다"고 적고 나왔다. 


 나는, 무슨 잘못을 한 걸까? 이 일들은 물적 증거가 남지 않아 현재 시점에서는 이 일들을 겪게 해준 이들에게 그 어떤 법적 책임도 물 수가 없다. 그렇다면, 전혀 문제 없다고 이야기할 수 있는걸까. 



노동당 성정치위원회

운영위원 나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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