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번 당대회가 역사적인 당대회가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 당헌개정안에 대한 무관심 혹은 오해에 대해
나는 이번 당대회가 노동당 역사에서 중요한 당대회로 기억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당의 활동방식에서 중요한 변화가 시도되고 있기 때문이다. 어떤 이는 (철회되었지만) 당명 개정, 혹은 강령 개정을 중요하게 생각하겠지만 나는 당헌 개정이 우리 당의 체질을 바꾸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
당대회에서 해당 개정안들이 큰 무리 없이 통과될 것으로 예상하고는 있다. 그러나, 당대회를 앞두고 조금 우려되는 점이 있다. 해당 당헌 개정안들에 대해 공론화가 부족한 것은 아닌가 하는 염려 때문이다. 하긴, 원래 시스템의 변화라는 게 충분한 공론화를 거치기 힘들기는 하다. 특정의제나 당의 진로를 놓고 논쟁을 벌일 때는 당원들 간에 찬반이 확실하지만, 시스템의 변화라는 주제는 쉽지 않은 토론거리이다.
그렇긴 해도 당헌개정안에 대한 공론화 과정에서 세심한 배려나 노력이 부족했다는 점을 부인하기 어렵다. 한편, 당헌개정안의 문제의식과 같은 방향에서 일찍이 비슷한 방안을 주장해 왔던 나로서는 어느날 갑자기 누군가의 음모라도 있는 듯이 주장하는 일부의 관측이 불편하기 그지 없다.
당헌개정안에 대한 무관심, 오해 혹은 토론 부족 등에 대한 대응으로 나름대로 두서 없지만 몇 가지 점을 이야기하려 한다.
1. 문재인 정부 들어 과거 10년의 지형이 근본적으로 달라지고 있다.
- 개량의 시대, 쁘뜨부르주아의 시대다. 당분간 우리가 제기했던 거의 모든 의제를 민주당 정부가 주도할 것이다. 우리의 주장은 다만 속도의 차이로만 느껴질 뿐이다. 기존 대중운동은 개량의 길로 들어설 것이고, 우리는 이미 매일 뉴스를 통해서 이 점을 확인하고 있다. 정의당은 민주당에 편승하고, 녹색당은 고유의 영역을 지킴으로써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노동당에는 위기의 시대다.
- 북미 간에 금방이라도 전쟁을 벌일 것 같은 거친 말폭탄의 이면에는 미중간의 경제전쟁이 있다. 이처럼 첨예해지는 신자유주의의 모순과 함께 불철저한 문제인 정부의 개혁도 결국은 한계에 도달할 것이고, 대중의 분노와 직면할 것이다. 따라서 노동당은 불철저한 문재인정부와 달리 신자유주의체제 종식, 그리고 더 근본적으로는 자본주의 극복이라는 목표를 분명히 하고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지향점을 분명히 하는 것과 함께 어떻게 활동할 것인가에 대한 해법을 제시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런 점에서 포데모스와 시리자의 사례를 참조하여 사회운동정당으로 자리매김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시도가 아닐 수 없다. 준비가 안 된 조직에게 시간은 그의 편이 아니다. 기존의 방식과 다르다고 낯설어하고 거부감을 보일 것이 아니라 사회운동정당에 대한 고민과 천착이 필요한 시점이다.
2. 골간조직 재편은 지난 시기 진보정당운동의 한계를 극복하는 것이다.
- 보수정당이 취하고 있는 골간조직체계(소선거구제에 대응한, 국회의원선거구 단위의 당협체계)를 고수할 이유가 없다. 민노당과 진보신당을 비롯한 과거의 진보정당은 선거제도 개혁을 최우선 과제로 상정한 적이 없으며 단지 그에 적응해 왔을 뿐이다. 골간조직체계 역시 답습하기만 했으며, 소위 '지역'을 신성시하는 신화도 바로 이런 역사적 한계를 보아야 깰 수 있다. 솔직히 그동안의 진보정당의 지역활동은 출마를 결심한 사람 하나만 있으면 활발하게 진행할 수 있었다. 그러나 나머지 당원은 선거운동원이 되거나 선거자금을 대는 등 수동화되었다. 출마자가 아니면서 지역운동에 참여한다는 것은 시민사회단체에서 활동하지 않는 한 거의 불가능하다.
- 정주성이 강한 봉건시대와 달리 현대인은 이동성이 강하다. 현대인은 정주성이 부족한 대신 이사를 가도 직업은 잘 바뀌지 않는다. 정주성은 지역활동의 자산이라면, 이동성이 강한 현대에는 자신의 직업적 전문성이 다양한 의제조직에서 활동할 수 있는 토대가 된다. 이러한 현대인의 라이프스타일에 기반을 두어야 당원의 참여를 조직할 수 있고, 당원에 의한 당 운영이라는 이상을 실현한 수 있다. 과거처럼 지역에 국한된 시야를 의제, 부문, 직업 등으로 돌려서 당원의 활동지평을 넓혀주고, 그것을 당 체계 안으로 흡수하고 보장하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이렇게 할 때 당원의 자발성은 물론 당의 전문성과 활동성을 증대시키고, 이 어려운 시기를 돌파하는데 없어서는 안 되는 중요한 자산을 확보할 수 있다.
- 우리는 선거제도를 개혁해서 지역구를 축소하고 비례대표를 늘려야 한다고 주장하면서도 우리 내부의 당 조직에서는 이러한 주장을 적용하지 않고 있다. 소수자에게 할당을 하는 제도는 있지만 미미한 수준에 불과하며, 비례대표라고 할 수 있는 ‘부문’에 대한 할당에는 인색했다. 그 결과 지역 중심의 골간체계가 집행체계 뿐 아니라 대의기구도 이중으로 장악하고 있다. 우리 내부부터 바뀌어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부문위원회’보다 진일보한 개념인 ‘사회운동기구’를 당의 골간조직과 대의기구에서 포괄하려는 시도는 많이 늦어진 것이지만, 그나마 다행이 아닐 수 없다.
3. 집행기구와 의결기구의 개편방향을 잘 연동시켜서 보아야 한다.
- 집행기구 개편방향은 당대표 중심체계에서 상임집행위원회 중심체계로 무게 중심이 이동하는 것이다. 당대표 2인, 부대표, 의원단 대표, 사무총장 등으로 구성된 상집이 집단지도체제로 기능하는 셈이다. 그러므로 사무총장의 권한이 커지는 것에 주목하거나 간선으로 선출된다는 점에 주목하는 것은 일면만 보는 것이다.
- 사무총장은 대의기구(당대회와 전국위원회)에서 결정된 일상적 당무를 총괄한다. 즉, 사무총장 독재가 아니며 당의 사업의제를 결정하는 단위가 더 근본적 역할을 한다. 당헌개정안에 의하면, 당의 사업의제를 논의하는 것은 의결기구(당대회, 전국위원회)다. 따라서 의결기구에서 사업의제를 충실히 논의하도록 설계하는 것이 중요하다.
- 의결기구에 관한 당헌개정안을 살펴보면 매 2년마다 열리는 정기당대회에 사업의제 결정권을 부여함으로써 당대회가 실질적으로 정책당대회로 기능하도록 하고 있다. 사업계획은 당대회에서 결정한 사업의제에 따라서 대표단이 작성하여 제출하고, 전국위원회에서 심의하도록 하고 있다.
- 결론적으로 집행기구는 효율적인 집행을 할 수 있도록 했고, 의결기구는 당원들의 토론을 더욱 활성화하고 당원의 참여를 보장하는 방식으로 개편되었음을 알 수 있다.
4. 이상의 개편안이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은 아니다.
- 이상의 당헌개편안들은 사실 나로서는 낯설은 것이 아니다. 대부분의 내용들이 이미 여러 사람들이 2014년의 정책당대회, 전국위원회와 당대회 등을 통해서 주장한 내용과 궤를 같이 하기 때문이다. 다만, 그 취지와 정당성에 대해서 전당적으로 공유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그래서 이 글을 쓰고 있기도 하다.
- 골간조직체계의 변경은 주장된지 꽤 오래된 것이다. 2014년 정책당대회의 참여섹션에서는 지역과 부문을 1:1 비율로 구성하는 것으로 제안했는데, 이번 당헌개정안에서는 ‘부문’ 대신 사회운동기구로 확장해서 도입하고 있다. 애초의 구상보다 더욱 발전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 획일적인 상향식의 사업계획 수립 방식, 대표에게 과도하게 집중된 권한에 대한 비판도 낯설지 않다. 집행체계와 의결기구의 전반적 개편, 전국위원회 의장 신설 등에 대해서도 그동안 주장된 것이다. 다만, 대표체제를 상집체제로 바꾸는 방안은 예상하지 않았던 것인데, 대표의 권한을 축소하면 결국 논리적으로 집단지도체제로 갈 수 밖에 없으므로 불가피한 귀결이라고 생각한다.
- 그동안의 의결기구는 사업과 의제를 논의하고 결정하기보다 정파간 경쟁의 장으로서의 성격이 강하고, 집행부 역시 권한에 비해 재정과 인력 부족으로 당 사업이 잘 안 되는 측면이 있었다. 토론하는 의결기구로, 스마트한 집행기구로, 양자를 조화롭게 개편하는 것이 필요했다. 정책당대회를 통해 당원에게 사업의제를 결정하도록 하고, 대표단이 이것을 토대로 사업계획을 수립하고, 전국위에서 심의한 후, 상집을 중심으로 이것에 근거해서 집행하도록 당헌개정안이 마련되었다. 평소 나의 문제의식이 잘 반영된 당헌개정안이라고 평가하고 싶다.
<마치며>
글이 길어졌다. 내용이 방대하기 때문이다. 좀 더 서둘렀다면, 그래서 하나하나 쟁점마다 글을 썼더라면 좋았을 걸 그랬다.
노동당은 늘 위기다. 당 밖에서는 노동당에 대한 기대가 사라졌고, 내부의 당원은 지쳐서 활력을 찾아보기 힘든 처지다. 그래서 그동안 여러 번 성장전략을 채택했지만, 실천은 요원하다. 성장전략을 현실화하기 위해서는 실행주체를 어떻게 만들고, 어떤 사업을 할 것인지, 이를 위해 당의 작동방식을 어떻게 혁신할 것인지 해결해야 한다. 즉 사업의 내용, 사업하는 사람, 사업하는 방식을 바꾸어야 한다. 사업자체의 내용과 사업하는 사람을 바꾸는 것은 장기간의 연구조사와 실행의 축적이 필요한 일이지만, 당장의 시도로서 당의 작동방식을 바꾸는 것도 방안의 하나로서 유효하다. 이번 당헌개정안이 바로 당의 작동방식을 바꾸는 것이다. 무수하게 이야기하던 당 혁신이 비로소 이제 시작된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번 당 대회가 역사적인 당대회가 될 것으로 확신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