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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년여 당직 활동을 모두 마치며 당원 동지들께 드리는 글

 

 

죄송합니다

 

노동위원장 사퇴와 부총장 직의 사표가 수리 되고, 121일을 기점으로 중앙당 상근 활동을 모두 마치게 되었습니다. 당직 활동을 마감하며 무엇보다 먼저 당원동지들에게 너무도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가장 오래 중앙 당직을 수행한 당직자로서 최선을 다해 노력했다는 변명으로 감쌀 수 없는 당의 상황이기에 너무나도 가슴이 아프고 죄송합니다.

 

대선 대응 무산, 민주노총선거 대응 실패, 현 대표단 임기의 핵심 사업 실패에 대한 총체적 책임을 묻기 위해 사무총장과 저의 사직을 수리하는 것으로 결정했다는 내용이 당대표 담화문으로 당게시판에 공지되어 있습니다. 대표단이 당원들에게 약속한 사업들이 연달아 실패한 결과는 그 자체로 엄중합니다. 주요 업무를 맡았던 담당자로서 늦게나마 책임을 지기 위해 사퇴 의사를 임명권자에게 전달하였습니다.

 

사퇴가 처리되고, 담화문이 게시되었지만, 오히려 많은 분들이 더욱 답답한 현실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해괴한 방식으로 실패가 거듭되고 있는데, 실패의 이후에 사태를 수습하는 상황도 도저히 납득하기 힘들다는 것입니다. 국면마다 황당한 소식을 접한 당원들은 실패의 원인은 고사하고 대체 무슨 상황인거냐고 물어왔습니다. 사퇴까지 하게 된 처지에서 당원 동지들에게 가장 죄송한 것은 참담한 현실에 대해 제대로 답하지도 못하고 물러나게 된 무책임과 무능함입니다.

 

당직을 모두 마치고 다시 평당원으로 돌아왔지만, 그래서 더욱 무거운 심정으로 당원 동지들에게 글을 올립니다. 수년 전부터 김선아 동지와 더불어 유이한 진보신당 부대표 출신 당원이었고, 이용길 전 대표의 탈당으로 이제는 유일하게 당에 있는 노동당 1기 대표단이 되어버렸습니다. 당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한 동안 쉬라는 권고까지 받은 처지이지만, 홀로 감당하기 어려운 상태를 벗어나려는 몸부림으로 모처럼 터놓고 벗들을 만나고 있습니다. 무작정 묻고 답하며 주고받다가 상근 당직을 처음 시작하던 시절, 오래된 물음으로 되돌아갑니다.

 

약속한 것들

 

중앙 당직을 처음 맡게 된 때는 2009년 가을입니다. 진보신당 중앙당의 비정규담당 당직자 채용에 관해 갑작스런 제안을 받고, 당시 함께 투쟁하던 투쟁사업장의 동지들과 급히 상의를 하게 되었습니다. 의외로 찬성 의견도 많았지만, 날카로운 반대 의견도 적지 않았습니다. 임무를 어떻게든 해내게 되더라도 그렇게 주변에 적응해나갈수록 저는 더 이상 정진우가 아니게 될 것이라는 동지들의 우려였습니다. 고맙게 가슴에 새겼습니다. 해고자 투쟁, 비정규 운동의 현장에서 혼자 떠나는 것이 아니라 더 크고 강한 투쟁으로 연결하는 역할을 담당해낼 것이라고 약속하였습니다.

 

중앙당은 제가 알던 것보다 더욱 혼란스런 상황이었고, 얼마 되지 않아 통합이니 독자니 하는 진로 논쟁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런 와중에도 당시의 치열한 현장에서 연대운동을 함께 만들어낸 당원들의 전설적인 활약 덕분에 수개월 만에 비정규투쟁의 제1당 담당자가 되었고, 나름대로 꿋꿋하게 임무를 수행할 수 있었습니다. 이후 희망버스 투쟁으로 수배 중일 때, 당 대표와 대다수 당직자들, 유력한 정치인들, 많은 당원들이 탈당하였습니다. 홍세화 대표와 당원들이 당을 다시 추스를 때, 제가 할 수 있던 것은 부산 구치소에서 당원들에게 편지를 내보내며 서로를 연결하고 응원하는 것이었습니다. 출소 후에는 당의 비례대표로 활동하며 당원들에게 보답할 수 있는 기회를 얻기도 했습니다. 부대표로 선출된 후, 박근혜에게 세월호 참사 책임을 묻는 청와대 시위를 주도한 혐의로 보석기간에 다시 감옥에 갇혔고, 옥중 출마한 직후에 국회의원 후보 자격으로 풀려나버려 결국 거리에서 선거운동을 하게 되기도 했습니다. 박근혜 정권과 정치 검찰의 탄압이 극에 달하던 때, 보석취소 재구속에 맞서 사이버 사찰을 고발하며 사이버망명운동을 전개하기도 했습니다. 당조직과 많은 당원들이 정권을 무너뜨린 촛불항쟁의 주체로 나섰을 때, 투쟁활동의 책임자로서 저도 함께 할 수 있었고, 평생 잊지 못할 감동과 감사의 시간이었습니다.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자랑스러운 당원들이 버텨내며 투쟁하는 당을 만들어왔기에 가능한 기회였습니다.

 

8년여 세월을 거치며 세상이 많이 바뀌었다고 하지만, 정작 크게 달라진 것은 우리 자신과 우리를 둘러싼 것들입니다. 연이은 탈당사태로 원외정당이 되고, 당원 수도 많이 줄고, 대선도 참여하지 못하는 정당이 되었습니다. 함께 눈물 흘리고, 아파하고, 치열하게 토론하던 이들이 우리 곁을 떠났습니다. 세상을 바꾸는 주인공이라는 자부심은 남아 있지만, 우리의 미래에 대한 자신감은 사라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적들에게 패배한 것이 아니라, 어쩌면 우리 자신에게 패배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우리 스스로를 승리의 주인공으로, 미래를 바꾸어내는 조직으로 만들어내지 못했습니다. 임무를 수행해왔지만, 장벽에 갇힌 채로 주어진 시공간을 그저 채워내는 것에 급급하였습니다. 더 크고 강하게 연결하겠다는 약속은 무너졌고, 장벽은 오히려 더 단단해졌습니다. 저는 동지들이 우려한대로 바로 그 정진우가 되어버렸습니다.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던 것들

 

사퇴 결정을 하고, 알려진 것처럼 쫓겨나게 되었지만, 바로 사퇴의 변을 올리지 못했습니다. 너무도 너무도 죄송하다는 것 말고는 무어라 글을 남기기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많은 이들이 물었지만, 제대로 답을 하지도 못했습니다. 무엇이 문제였는지, 왜 그렇게 된 것인지조차 혼란스런 지경에 원망과 고통이 커질 뿐이었습니다.

 

뼈를 깎아도 들리지 않고, 추락하여 내려간다고 그냥 보이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가리지 않고, 부서진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자 비로소 하나씩 드러납니다. 내가 같이 부서뜨린 것들, 무너진 관계에 대해, 더 이상 우리가 아닐 수 있는 미래에 대해 보이기 시작합니다. 투쟁하는 당이 되고 있다고 자만에 빠져 있을 때, 세상이 바뀌고 있다고 우쭐거릴 때, 연결은 끊어지고, 관계는 부서지고 있었습니다.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았다는 핑계로 변명하지 않겠습니다. 지금 무엇을 보고 있는지, 무엇이 들리는지에 대해 말하겠습니다. 벽을 만들고 지키는 근무자가 아니라, 빼앗긴 사람들, 진짜로 저항하는 사람들의 하나가 되겠습니다. 미래를 바꾸기 위해 오늘 우리에 대해 제대로 말하겠습니다.

 

의논 없는 조직, 상의 없는 관계에 미래는 없습니다

 

전임 대표단이 사퇴하고, 새 대표단이 들어섰을 때, 중앙당 당직자들이 가장 힘들어 했던 것 중에 하나는 회의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실제로 정기 회의가 사라지기도 하고, 힘들게 진행된 회의는 의논이 아니었고, 그나마도 회의 후에 결과는 뒤집어지는 것에 익숙해져야 했습니다. 총장이 상근을 시작하고, 경험 많은 실장과 새로운 당직자들이 투입된 후에 회의의 형식이 갖추어졌지만, 여전히 실무적인 수준을 넘어서기는 어려웠습니다. 지난 대선을 앞두고, 대표의 대선 후보 출마 여부에 대해 묻는 당원들이 많았습니다. 당직자들에게조차 총장과 제가 나서서 한 역할이라고는 매일 분위기에 따라 달라지는 해석을 해줄 수밖에 없던 상황은 이미 많이 알려져 있는 대로 너무나도 비극적인 순간입니다.

 

모든 조직에 의논이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정치조직에 의논이 없어진다면, 정치는 소멸되고 더 이상 그곳은 조직이 아니게 될 것입니다. 어느 정당이나, 또 우리의 과거 역사에서도 늘 지적되어온 소통의 부재와 권력 갈등의 수준을 반복해 말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정치조직과 정당의 중앙이 중앙일 수 있는 이유는 권력 행사의 집행자이기 때문이 아니라, 스스로 집중적인 의논을 통해 조직 전반의 논의를 이끌어내며 조직활동과 정치운동을 주도하기 때문입니다. 사업이 왜 실패하였는지, 우리가 어떻게 패배하였는지에 대해 답이 없는 이유는 당사자들조차 제대로 알 수 없기 때문이고, 그 시작과 끝은 결국 의논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모든 관계에는 어느 정도의 상의가 필요합니다. 친구, 가족, 직장, 우리가 접하는 대부분의 관계가 그렇게 바뀌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심지어 당을 함께 할 정도의 동지적 관계라면 더 무슨 강조가 필요하겠습니까? 대선에 이어 민주노총선거 참여사업에 대해 실패를 선언한 이후, 더 많은 이들이 묻고 있지만 답변은 잘 보이지 않습니다. 전국위원회에서 사업계획을 채택하고, 노동위원회의 각종 사업과 논의를 거쳐 11월 노동자당원대회에서 참여안을 확정하기까지 전반적인 논의 과정과 사업 집행에 대해서는 노동위원회 전국운영위원회 등을 통해 제대로 평가를 진행할 것입니다. 당은 물론이고, 좌파 전체적으로도 이득이 되지 않는 방식으로 공동대응 협상이 전개되고, 급기야 공동후보선출이 파행으로 치달은 과정에 대해 조사하고, 평가할 것입니다. 위원장직을 사퇴하였지만, 그렇기에 더욱 더 충실하게 평가에 참여하겠습니다. 아직 정황을 파악하며 내용을 정리하는 중입니다만, ‘상의가 완전히 파괴된 가장 비참한 상황으로 보고할 예정입니다. 당의 방침대로 좌파공동대응에 최선을 다하는 이유가 민주노총의 자기 자리를 확보하려는 야욕으로 매도당하고, 113일 전국활동가대회의 그 결정적인 국면에는 당의 공식적인 논의 과정에서 아예 배제되어버리는 상황에 내몰리기도 했습니다.

 

어떤 이들은 타인의 증오를 이용하고, 또 어떤 이들은 자신의 감동을 연결합니다

 

누군가에게 배제 당한다는 것, 상의할 대상조차 되지 못한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순간은 너무도 끔찍한 시간입니다. 무엇이 문제인지 가늠 못하는 사이에 증오는 두꺼워지고 관계는 더 무너집니다. 서로의 관계에 대해 제대로 인식할 때, 비로소 다른 관계로의 변화도 가능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진실은 언제나 통하는 것일까요? 잘 모르겠습니다. 진실하지 않은 것들이 자꾸 통하는 조직에게 더 이상 미래는 없다는 것만큼은 분명합니다.

 

민주노총, 좌파, 선거, 문재인정부 그리고 당. 무거운 주제가 넘치며 치열함과 증오가 구분되기 어려웠던 어느 날, 또 다른 나로부터 감동의 메세지를 받고, 페북 담벼락에 쓴 말입니다. 우리가 또 다른 우리와 관계를 맺고, 서로를 연결해가는 동력은 증오가 아닌 감동의 연대라고 확신합니다.

 

루시아, 유용현, 박남규, 최승현, 이인호, 용혜인, 그리고 또 많은 이들, 감동을 연결해 준 동지들의 이름을 하나씩 잡아봅니다. 동지들 복도 참 많이 받고, 고생길마다 운이 좋았지만, 그 조차 당을 위해 잘 써먹지 못하고 돌아온 것 같아 아쉽습니다. 지키지 못한 약속, 하지 못한 임무, 갚지 못한 동지애는 남은 평생을 나누어서라도 만들고, 풀고, 채워나가겠습니다.

 

글 마무리를 위해 잠시 다녀 온 바깥. 넓은 들판을 가로지르는 바람소리가 더 차가와졌지만, 오늘따라 유난히 파주의 하늘은 파랗고 맑습니다. 삶과 운동의 현장에서 분투하고 있는 모든 당원 동지들의 건강을 기원합니다. 고맙습니다.

 

2017124, 파주에서

정진우

  • 구교현 2017.12.04 18:31
    여러 아쉬움들 풀 날이 올겁니다. 그간 고생많으셨습니다.
  • 양부현 2017.12.05 12:29
    "8년여 세월을 거치며 세상이 많이 바뀌었다고 하지만, 정작 크게 달라진 것은 우리 자신과 우리를 둘러싼 것들입니다."라는 말이 깊은 울림을 주는 군요. 제 자신을 돌아보게 됩니다.

    그간 애 많이 쓰셨습니다. 고맙습니다.
  • 불빵 2017.12.08 20:20
    수고하셨습니다. ^^
  • 들불 2018.02.08 11:29
    "세상을 바꾸는 주인공이라는 자부심은 남아 있지만, 우리의 미래에 대한 자신감은 사라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적들에게 패배한 것이 아니라, 어쩌면 우리 자신에게 패배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운동의 매순간 고민하는 지점인거 같습니다. 정말 그동안 고생하셨습니다. 글을 보며 제 자신의 당에 대한 열정을 되돌아보며 반성하게 됩니다. 현장의 노동조합 활동에 당활동을 못해왔는데...많은 어려움이 있었군요. 힘내시고...조만간 뵙도록 하지요. 정말 수고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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