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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지내셨나요.

참 심난하기만 한 날들입니다.

선거 끝나고 멍때리다가. 이제 좀 생각이 정리가 돼가네요.

이번 선거를 거치면서 들었던 오만가지 생각들.

한번 시리즈로 정리해볼까 합니다.

 

지난 215일자로 임시당직자를 맡았더랬습니다.

보직은 정책홍보팀장이었어요.

팀장이라지만 팀장도 저 혼자, 팀원도 저 혼자. 나홀로 팀장이었죠.

2달짜리 무급 임시직 당직자라 발령공고도 나지 않았습니다.

 

제가 맡았던 일은 우리당의 정책홍보물을 제작, 배포하는 일이었습니다.

특정 주제의 선전물을 다종 제작하여 해당 성향의 유권자들이 밀집한 지역을 분석하여 집중 배포하며 미출마 지역의 당원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참여를 이끌어내서 총선전략에 보탬이 되고자...블라블라.. 뭐 이런 거창한 사업계획을 제출했었군요.

저도 좌파 다 됐어요. 개드립만 늘었네요.

 

시작은 심히 창대하였으나 끝은 쥐꼬리만큼 미미했군요.

세상 일이 쉽지는 않다는 걸 알았지만 언제나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늘 두세배는 어려운 것 같습니다.

그 흔한 웹자보 하나 만들지 못 하는 주제에 홍보물을 만들겠다는 생각을 했으니 지금 생각해보면 진짜 무모한 일이었어요.

 

괜찮은 디자이너만 섭외하면 될 줄 알았습니다.

근데 괜찮은 디자이너가 없더라고요.

섭외과정에서 파토나고 펑크나고 겨우겨우 프리랜서 디자이너를 수소문했어요.

원래 일정에서 일주일 이상 늦어졌습니다.

 

디자이너가 당원이 아니었어요.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들어줘도 모자랄 판에 디자이너를 이해사키는 게 더 힘들었어요.

홍보물을 제작하는 동안 지하철 막차를 타는 건 기본이었고 걸핏하면 새벽에 택시를 잡아타고 날밤을 꼬박 샌 적도 수차례네요.

실무능력이 없어서였습니다.

포토샵, 일러스트레이터는 고사하고 그림판도 사용 못 해서 개발괴발 연습장에 그림그려서 사진으로 찍어보내는 미개한 방법으로 작업을 했으니까요.

 

이렇게 하다 지역 선본에서 연락을 받았어요.

출마지역에 신문 간지 형태로 배포해줄 수 없냐는 제안이었죠.

신문 1부당 간지 비용이 15원 안팎이래요.

맨땅에 헤딩하는 지역 선본을 생각하면 중앙당에서 뭐라도 하나 지원해줘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감행을 했는데..

이 쯤되니 물량이 어마어마해지더라고요. 줄잡아 계산해보니 40만부에요.

기존 광고대행사를 통하면 홍보물 1장당 30원인데 계산기를 두드려보니 금액이 이만저만해야죠.

부랴부랴 지업사(종이 도매상), 인쇄소를 알아봤습니다.

장당 15원 아래로 맞출 수 있겠더라고요.

이 때부터 실무와의 전쟁이 시작됐는데... . 돌이켜볼수록 끔찍하네요.

 

본선 때는 정책홍보물을 돌릴 수가 없대요.

330일 이후에 정책홍보물을 배포하면 불법이랍니다.

45만부를 인쇄해서 5만부는 지역 시도당에 보내고 40만부는 신문지국에 보내고.. 데드라인에 겨우 맞췄죠.

 

331일이 되니 시간이 나더라고요.

놀면 뭐하나. 본선 기간 동안에는 고양의 신지혜선본에 파견을 나갔습니다.

기쁘게도 새누리당, 더민주당, 정의당.. 원내정당의 후보들이 모이는 TV 토론회에 신지혜 후보가 참석할 수 있게 됐다고 하더군요.

근데 그 결정이 토론회를 5일 남겨둔 시점이 돼서야 확정됐죠.

토론회 준비 때문에 꼬박 36시간 동안 잠을 못 잤네요.

고양파주당협에 당적을 가진 당직자와 둘이서 지지고 볶으면서 토론회를 준비했습니다.

 

선거일 전날.

저는 진인사 대천명이란 말을 되뇌이며 비장한 마음이 됐었죠.

어떤 결과가 나올까. 내가 전력을 기울인 이 선거가 어떻게 될까.

 

. 선거일로부터 사흘 동안은 집에 누워서 천장만 바라봤네요.

난 뭐한 걸까.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 다 끝난 건가.

하도 기운이 빠지니까 술도 못 마시겠더라고요.

 

선거 기간 동안에는 세상 모든 게 불만이었어요.

당권파 저것들은 왜 저 모양이야.. 소수파 저것들은 또 왜 저래... 무당파랍시고 하는 꼴 좀 보게나.. 선거만 끝나 봐. 니들 다 죽었어. 내가 머리를 풀고 아주 게거품을 물 거야.

근데 난동도 기운이 있어야 부리는 거지. 이쯤 되니 아무 생각 안 나데요.

 

되는 건 하나도 없고 안 되는 것 투성이인 이 당은 대체 뭐가 문제일까.

뭘 알아야 이제부턴 안 그러겠습니다. 다음엔 잘 할게요.”라고 말이나 하지.

결과가 이 모양이 되니 이게 뭐 누구 하나의 문제일 수는 없더라고요.

뭐 하나라도 잘 돌아가는 게 있었다면 이 결과가 나올 수가 없지.

 

곰곰히 생각했어요.

남들 욕할 기운이 없어요. 나부터 문제였으니 이 지경이지.

진인사를 하긴 했나. 입에서 단내가 나도록 바쁘긴 했는데 그냥 정신없이 바쁘다고 진인사를 한 건 아니잖아.

창당한지 9년째에요. 총선만 보궐 빼고 세 번째고요.

이젠 열심히 했다는 말은 안 통하잖아요. 10년 가까이 됐으면 잘할 때도 됐지.

 

일주일 넘게 지나고 나니 제정신이 좀 돌아오더라고요.

하나하나 복기를 해보니 후회만 남아요.

마감에 쫓기고 실무에 치이다보니 내가 뭘 하는지 큰 그림을 볼 수 없었어요.

시간 내 결과물이 나와야 한다는 생각 뿐, 내가 이 일을 왜 하는지조차 까먹었네요.

5가지 종류의 인쇄물이 있었다는 걸 아는 당원이 몇이나 될까요.

당원들의 참여를 이끌어내겠다는 당초 기획은 온데 간데 없어요.

신문사 지국에 전화돌리고 인쇄 일정 확인하고 대금지불하고 수령증 받고.. 뭐 이런 일에만 정신이 팔려있었거든요.

 

토론회도 그래요.

토론회 당일 방송국에 따라가서 별도로 마련된 모니터룸에 앉아 있는데.

토론이 진행될수록 아주 그냥 벽에 대가리라도 짖찧고 싶은 심정이더라고요.

. 왜 내가 저 생각을 못 했지. 저 부분을 준비했어야 했는데. 저기서 저런 질문이 나올 줄이야. 돌발상황에 대한 시나리오를 준비했어야 했어...

 

홍보물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에요.

시간이 지나고 나니.. 참 조잡한 수준이더라고요.

아. 쪽팔려 죽겠다.

행여나 이걸 받아본 당원들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지역선본에 뿌린 40만부.. 유권자들은 뭘 얼마나 노동당에 대해 알게 됐을까.

.. 이 정도 예산이 집행될 거였으면 디자인에 돈을 좀더 들였어야 했어.

 

그러고 나니... 다음에 또 이 일을 하게 된다면 그 때는 잘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번처럼 허둥대지는 않겠지. 이제 대충 돌아가는 프로세스를 알게 됐으니까 쓸데 없는 시행착오를 반복하진 않겠지. 좀더 나은 아웃풋이 나올 수 있을 거야.

 

근데 다음 순간 이어지는 의문이 있었어요.

왜 난 이렇게 허둥댔지? 이 당에서 총선은 처음이 아닌데.

왜 어떤 매뉴얼도 존재하지 않는 거야. 마치 총선이라는 걸 처음 해보는 것처럼.

하다못해 이사를 가서 전에 살던 사람이 괜찮은 짱개집 전화번호만 남겨놔도 유용하잖아요.

근데 왜 그런 게 없지?

주위에 물어봐도 기억을 더듬더듬.. “글쎄요.. 어떻게 했더라....”

 

문제는 선거의 경험들이 자산으로 축적되지 않는다는 거에요.

선거가 끝나면 결과를 놓고 뜬구름 잡는 분석과 평가만 난무할 뿐이죠.

정세고 지형이고 구도고 나발이고..

활동가가 아닌 일반인 정서가 강한 저 같은 사람 눈에는 가장 먼저 보이는 게 선거를 치르는 데 있어서 당의 실무역량이에요.

 

선거 기간 내내 저는 녹색당이 매우 신경(?) 쓰였는데..

이건 마치 라이벌이라도 만난 것처럼 계속 의식하게 되더라고요.

우리가 당원 수가 모자라냐, 당직자 수가 모자라냐, 돈이 모자라냐, 지역조직이 없길 하냐.

어쩜 이렇게 판판이 밀리는 거야.

단순히 언론이 녹색당에게 우호적이어서?

대중이 접근하기에 녹색당이 한결 편해서?

 

녹색당은 일곱명 남짓의 실무자로 선거 치렀대요.

선거에 투입된 인적, 물적 자원으로 보자면 얼추 우리 당이 녹색당의 2배 이상의 인풋은 될 거에요.

근데 지지율은 녹색당의 반토막.

 

소수 정당에게 언제나 정세는 개떡같고 언제나 구도는 엿같아요.

근데 선거에 참패를 해도 누구는 그래도 최선을 다했고 다음을 기약해 볼 만 하다라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누구는 이래서 이 당으로는 안 되나봐. 이젠 글렀어.’라는 자포자기에 빠져요.

져도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패배가 있는가 하면, 결과 이상의 좌절감과 무력감을 느끼는 패배가 있어요.

 

결혼을 해도 결혼수첩이 있어요.

언제까지 집을 구하고, 언제까지 예단을 준비하고, 언제까지 식장을 알아보고, 여행사는 어떻게 하고 혼수는 어떻게 준비하고 청첩장은 어떻게 돌리고....

근데 없는 집 제사 돌아오듯 돌아오는 온갖 선거에 매뉴얼이 없어요.

그냥 죄다 맨땅에 헤딩하래요.

 

선거? 그냥 지르고 보는 거야.

일단 후보 만들고 뛰다보면 돼.

그럼 어찌됐든 돈은 모이고 참여할 당원들은 참여해.

기획, 홍보. 언론... 뭐 이런 건 부수적인 거야. 깃발 꽂으면 어떻게든 선거는 치르게 돼있어.

결과? 우리가 언제는 좋았냐. 이게 진보정당의 숙명이지. 우리는 길을 이어가는 사람들.

 

아뇨. 이제는 잘할 때가 됐잖아요.

정신승리는 이제 좀 그만 합시다.

하나부터 열까지 주먹구구 무대뽀.

창당 이래 한번도 반등해본 적이 없는, 이건 무슨 작전세력 빠져나간 코스닥 개잡주 주가챠트 마냥 끊임없이 하향곡선을 그리는 이 정당에 당원들은 무슨 팔자에요?

이젠 좀 좋은 꼴 볼 때가 되지 않았어요?

 

우리 스스로의 무능에 관대하지 맙시다.

이 험한 시절에 진보정당의 깃발 붙잡고 버티는 게 장한 건 장한 거고.

일을 못 하는 건 못 하는 거에요.

다른 건 둘째치고 직무능력, 실무역량부터 키웁시다.

언제까지 대학 총학생회 선거 수준으로 총선, 대선, 지방선거 치를 거에요?

 

이쯤 됐으면 더 이상 망할 것도 없는데 체질을 바꿔야죠.

어떤 모험을 해도 잃을 게 없잖아요.

조직개편이고 나발이고 다 필요없어요.

업무능력 개발을 위한 자기학습 계획서라도 받든지.

직무능력 향상을 위한 실무자들 교육프로그램을 마련하든지.

아니면 실무능력이 탁월한 사람 영입이라도 하든지.

사람이 업그레이드 되지 않는 한 이번 선거 이상의 결과, 못 나옵니다.

 

결과를 어떻게 설명할 겁니까.

당원들을 어떻게 설득할 거에요?

전 제가 무능했다는 말 이외에 제가 했던 일들에 대한 평가를 할 길이 없거든요.

 

그래서 어떻게 할 거냐고요?

다음에는 잘 할 겁니다.

잘할 수 있도록 준비하겠어요.

최소한 포토샵, 일러스트레이터, 인디자인은 배워놓겠습니다.

만약 제가 다음 선거 때 똑같은 일을 하지 않을 거라면.

누군가 이 일을, 혹은 비슷한 일을 했을 때 이번 선거의 저보다는 잘 할 수 있도록 기록으로 남겨놓아야겠어요.

 

이렇게 일해서 미안합니다.

지금보다 나아질 게요.

다음엔 잘 하겠습니다.

  • 최종문 2016.05.11 00:23
    그래도 덕분에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고맙습니다.
    동지가 별건가요 이런게 동지겠죠
  • 나무를심는사람 2016.05.11 15:50
    경험많은 실무자가 중요한데 실무역량을 강화해도 실무자가 안정적으로 근무할 수 있는 경제적 토대가 마련되지 않는다면 장기적으로는 다시 어려움이 올 것 같습니다. 메뉴얼 부분은 필요하겠네요.
  • 콩스 2016.05.12 02:33

    포토샵 일러스트 배우시는 건 도움이 안될 겁니다. -0-;;
    돈이 없는 것도 아닌데,
    우호적인 디자이너 네트워크 평소 쌓아두시고,
    선거 때 활용하시는 게 좋을 듯 하구요. 
    그보다 평상시에 디자이너와 협업하는 방법들에 대해서
    익숙해지시면, 훨씬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이런 건 당원 워크숍 같은 걸 좀 하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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