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당원들의 당 내 지위에 대한 우려와 청소년위원회의 재건을 촉구하며 - '우리 아이들' 논쟁에 대하여

by 분노하는패배자 posted Jan 26,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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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이들 논쟁에 대하여

얼굴 한 번 마주하지 않은 사람에게조차 '당원동지'라는 표현을 아무렇지도 않게 쓰는 사람도 유독 청소년 당원에게는 '우리 아이들'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것에 거리낌없이 무비판적 태도를 내비칩니다. 그건 사실 '동지'라는 호칭이 얼마나 허망한가를, 역으로 청소년 당원을 얼마나 얕잡아 보는가를 나타냅니다.

-평등을 지향하는 이의 마음가짐

모든 사람은 완벽할 수 없습니다. 차별주의적 사회에서 교육받고 훈련받은 이들은 차별주의적인 생활을 하기 마련이니까요. 다만 그 차별주의를 넘어서서 인간의 평등을 추구하고자 하는 사람은 문제제기가 나왔을 때 좀 더 진지하게 받아들일 필요가 있습니다.
어떤 담론이 이미 많이 이야기가 진행되었기에 그건 받아들이지만 새로운 담론이 이야기가 많이 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하찮고 비웃어도 되는 것으로 여긴다면 우리는 아무것도 바꿀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 아이들이라는 표현이 전제하는 관계

우리 아이들이라는 표현은 그 자체도 상대를 (미성숙한)(따라서 지도가 필요한)(그리고 내가 지도할 수 있는)'아이들'로 규정짓는데서 문제가 있습니다.
그런 이야기를 하기 이전에 정말로 동등한 당원동지라면 상대방이 싫어하는 호칭으로 부르면 안 됩니다. 저는 나이가 많은 당원들과 술을 마시는 걸 좋아하지만 그들에게 '꼰대'라는 호칭을 사용하지는 않습니다. 그건 상대방이 싫어할만한 호칭이며 저 또한 저와 잘 지내는, 지낼 사람들의 기분을 상하게 할 생각이 없기 때문입니다.

-호칭과 동등한 관계

상대방이 싫어하는데도 그 호칭을 고집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건 상대에게 그 호칭을 강요할 수 있는 권력이 있는 관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관계에서는 토론이 될 리가 없습니다. 보통 저러한 관계에서는 호칭을 강요할 권력을 지닌 이의 감정을 거스르지 않는 한도 안에서만 반론이 허용되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상황에서 동등한 입장에서의 토론이란 힘의 대결을 통해 그 불공평한 관계를 깨고 나서야 가능한 것입니다.

-청소년운동과 우리 아이들, 호칭의 역사성

제가 청소년운동을 시작할 무렵이니 12년 전 이야기지만 아직도 기억은 선명합니다. 우리 아이들이라는 표현을 쓰는 연배 많은 활동가들은 얼핏 청소년을 위하는 척 하지만 청소년을 동지가 아니라 보호의 대상으로 여기면서 보호의 대상이 스스로의 자기해방을 외치는 것을 견디지 못했습니다.
그들(주로 우리 아이들이라는 표현을 쓰는 전교조 교사)은 청소년들이 자발적인 집회나 직접행동에 나설 때마다 학교측에게 투쟁계획 일체를 넘기거나 해서 학생부나 교육청이 청소년활동가를 검거하여 투쟁을 분쇄시키도록 한 다음 자신들이 그 투쟁의 주역을 차지하는 것에 골몰했죠.
그럴 때마다 나온 그들의 구호는 한결같았습니다.

"우리 아이들이 거리로 나오게 되어서 어른들이 미안합니다. 그러니 이제 우리가 나서서 아이들이 본분인 공부만 하고 자랄 수 있도록 해야합니다."

사실 저건 소름끼치는 구호입니다. 역으로 말하면 청소년은 절대 정치적 사건에서 스스로 목소리를 낼 수 없으며 억압당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당시엔 저도 그나마 활동에 참여하는 편이어서 제 전담 장학사가 있었는데 오히려 그들하고의 기만적 식사자리가 더 숨통이 트일 정도였으니까요. 그들은 적어도 '적'으로써 청소년활동가를 대할지언정 그렇게 존재 자체를 무시하지는 않았습니다.

청소년활동가에게 '우리 아이들'이란 호칭은 단순한 멸칭이 아니라 그 투쟁을 분쇄당한 처절한 굴욕의 역사입니다. 누군가 노동자대회에 나가서 노동자라는 호칭이 아니라 근로자라는 표현을 사용해야 한다고 하면 그걸 누가 받아들이겠습니까?
적어도 같은 당원으로써 청소년당원과 그들이 치열하게 하는 청소년운동에 대한 최소한의 존중이 있다면 저 호칭을 사용하면 안 됩니다.
마치 518을 폭동이라고 부르는 것만큼이나 제멋대로일 뿐더러 그 역사적 성격을 완전히 박살내고 지배질서의 시각에서 바라보는 호칭이기 때문입니다.
호칭의 문제는 그렇게 중요합니다.

-덤. 동등한 관계를 위하여

예전엔 청소년위원회도 제법 있었고, 그 청소년위원회에서 학생인권법을 발의할 때 논쟁도 했죠. 학생인권법에서 체벌을 반대하는 조항이 문제였는데 전교조에서는 체벌을 교육자의 권리로 생각하기에 전교조의 지지를 위해 체벌반대를 빼자는 것이었습니다. (교총은 전교조보다 체벌반대 비중이 월등히 높습니다. 전교조 내에서 체벌반대와 학생인권의 구호를 뚝심있게 외치고있는 분들께 경의를) 당시 청소년당원들은 그 부분에서 비타협적인 입장을 관철시켰지요.

위원회가 있고, 그 위원회에 고집스럽게 원칙을 지키는 당원들이 있으며, 형식적으로든 실질적으로든 동등한 관계가 있을 때에 일어날 수 있는 일입니다.
만약 청소년당원이 구색맞추기로만 존재한다면 청소년당원들은 당원모임을 파릇하게 해줄 악세사리로 소모되겠지만 동등한 존재일 때에는 저런 막되어먹은 굴욕적 타협을 막아낼 수 있는 것입니다.

요전번에 기본소득 전국민에게 30만원 공약이 나올 때 청소년에겐 20만원지급. 이 이유를 정책실에 물어보니 '예산의 부족'운운하던데 그 예산부족을 전국민이 함께 짊어질 생각을 않고 청소년을 2등국민화하여 해결하려는 안이하고 반동적인 발상을 한다는 것에 대해 놀랐습니다.
과거 민주노동당때보다도 후퇴하였다는 인상이 드는데 이제는 좀 더 발전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더 선명하게 더 평등하게 토론하며 저들이 상상조차 못한 의표를 찌르며 치고나갈 수 있는 노동당이 되기를 바랍니다.




각 부문위원회의 재건 및 강화와 그 부문위원회를 중심으로 한 당원기본교양교육을 의무화하고, 그 의무교육을 통해 당원 개개인이 어디 가서도 논쟁과 설득을 할 수 있는 실력을 갖추도록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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