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박 4일간 '배 따러 가세!' 농활을 다녀오며

by 나늘 posted Oct 07, 2016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14591738_574553456086475_6905950624816476164_n.jpg



14463087_574554039419750_5781668985190962885_n.jpg


농활 후기

 

김서윤

  노동당 여성위에서 진행한 여성주의 농활 배따러 가세는 내 인생의 첫 농활이었다. 대학에 입학하고 난 이후에는 학교, 각 단대별, 동아리 등 여러 단체들이 주최하는 농활에 대해 접했었다. 그러나 무수한 농활을 지금까지 가지 않았던 건 그곳에서 느껴지는 반페미니즘적 문화와 권위적인 선배들의 모습이 불편했기 때문이다. 농활에 가게 되면 직접적인 것에서부터, 간접적인 것까지 성별 이분화가 이루어지는 것을 느끼게 된다. 출발하기 전부터 우리가 거주하는 숙소에서 점심 혹은 새참을 준비할 여성들을 선발한다. 꼭 여성이 하라는 직접적인 강요는 없지만 으레 그렇듯 여성에게 기대되고, 부여되는 노동이다. 이 역할에 자원하는 사람이 없으면 농활을 주체하는 사람이 일일이 물어보게 되는데, 거의 여성에게만 묻는다. 대게 농활을 주체하는 사람은 단대장이거나, 동아리 대표이기 때문에 권력을 가진 나이 많은 선배일 확률이 높고, 이들이 어린 여성에게 의사를 묻는 것은 원치 않아도 수용해야 하는 강제성을 띄게 된다. 또한, 이것이 여성이 해야 하는 이유로 남성들은 밭에 나가 무거운 것을 들고 힘든 일을 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자주 언급되는데, 내가 이번 농활을 통해 들은 여성 농민의 삶은 이 반대였다.


농촌에서 힘들고, 고된 일은 여성이 도맡아하고, 지친 몸을 이끌고 집에 가서 밥을 하는 것도, 자식을 양육하는 것도 떠안게 된다고 했다. 이런 여성 농민의 삶을 듣는 것은 귀중한 경험이었다. 여성농민과의 간담회에서 한 여성 농민이 당신이 젊을 적에 갓난아이를 다라이에 실어 와 옆에 두고 밭일을 했었다는 말을 들었다. 하루는 밭에서 딴 고추를 팔려고 갓난아기를 집에 두고 장에 갔다고 하셨다. 가는 길에도 아이가 눈에 아른거리더니 장에 도착해서는 아이가 너무나 걱정되어 공판장에 헐값으로 고추를 팔아넘기고 헐레벌떡 집으로 돌아 온 적이 있다며 일화를 들려주셨다. 눈물이 핑 돌았다. 이제야 하게 된 이야기라며 가슴 속 깊이 묻어 두셨던 이야기를 꺼내시는 모습이 그간 얼마나 마음아프셨을지 상상도 되지 않았다.

14484827_574553812753106_936157603563687334_n.jpg


  나의 할머니께서도 어렴풋이 그런 이야기를 했었던 기억이 난다. 야채를 팔러 나가야 하는데, 추운 겨울에 아기를 데리고 갈 수 없었다고 하셨다. 젖을 먹고 잠든 아기를 책상과 함께 포대기로 묶어 두시고 떨어지지 않는 발을 이끌고 장에 가셨다고 했다. 아기가 혹시라도 다칠까봐, 밖에 나갈까봐 묶어둘 수밖에 없었다고 하셨다. 그때는 다 그렇게 했다고 하시면서도 코가 시큰해지셨다. 여성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도시든 농촌이든 과거든 현재든 여성의 이중노동은 어디나 존재하는 것 같았다. 우리는 일터를 퇴근하면, 또 다른 일터인 가정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래서 이번 농활이 더 신선했고, 좋았다. 우리는 함께 노동하고, 함께 휴식하고, 함께 식사를 준비하고, 함께 즐겼기 때문이다. 비록 내가 아파서 첫날은 많이 쉬었지만, 농활 대원들은 나의 상태를 이해해 줬다. 다른 농활이었더라면 내가 모두가 인정할 만큼 아프지 않고서야 내가 쉬는 것을 보장 받지 못했을 것이다. 밭에 가서 풀을 매는 것도 우리는 아무렇지 않게 해냈다. 그리고 나는 아무 생각 없이 풀 뽑는 것이 좋아서 흙을 주무르며 일하는 것에 심취했었다. 비닐하우스에서 좋아하는 빗소리를 들으며, 동지들이 좋아하는 노래들을 틀은 채 노동한다는 것은 참 좋은 경험이었다. 이 감성이 밤까지 이어져 서로 시를 읽어주며 문학의 밤을 보낸 것도 참 따스웠다. 평생 볼 배는 그곳에서 다 본 것 같았다. 무게에 따라 분류되는 배들을 보며, 컨베이어 벨트의 위대함(?)도 깨닫고, 인간소외 현상(?)도 겪었지만, 함께하는 동지들이 있어서 외롭지 않았다. 농민 가족과 함께 배를 선별하고, 포장하는 작업은 농촌에서의 추억으로 자리매김 할 것 같다.

 

이번 농활을 계기로 나는 노동당에 입당하기로 했다. 노동당 여성위가 진행하는 일들이 나에겐 너무나 소중하고,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일상 생활에서 숨 쉬면 살 수 있다. 그간 여성위에서 하던 사업들을 많이 참여했었다. 그 일들은 나로 하여금 새로운 세상을 보게 해주었고, 새로운 언어로 말하게 했었다. 그런 노동당 여성위를 믿는다. 앞으로 노동당과 함께 내가 서있는 곳들은 여성이 살기 좋은 곳으로 바꿔나가고 싶다. 노동당이 더 여성주의적인 정당이 되길 기대해 본다. 14470567_574553986086422_7269549077048534379_n.jpg



Articles

2 3 4 5 6 7 8 9 10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