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정기당대회에 기본소득 부속강령 제정의 건을 발의했습니다.

by 용혜인 posted Jul 01,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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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7월 7일 예정되어있는 2019년 정기당대회에 기본소득 부속강령 제정의 건을 발의했습니다. 


기본소득정치연대에서 부속강령 TF팀을 구성하여 초안을 준비하였고, 회원들의 많은 피드백이 있었습니다. 아무래도 당대회를 준비하며 부속강령을 수정하고 다시 피드백받고 하는 과정을 진행하다보니 예상했던 것 보다 시간이 지연되었습니다. 


조금 더 이른 시간에 당원분에게 확정안을 공유하고 토론을 진행했었어야 하나, 그것이 진행되지 못하여 매우 송구스럽습니다. 다만 지난 두 달여 시간동안 지금의 기본소득 정치의 방향을 묻고 토론하고, 글을 작성하고, 다시 의견을 묻는 과정 자체를 무로 돌릴 수는 없다고 판단하여 조금 늦었지만 기본소득부속강령 제정 안건을 제출하게 되었습니다. 


당대회까지 우리 당의 기본소득 정치의 방향에 대한 더 많은 토론들이 이어기를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대표발의자 : 대의원 용혜인 (서울 동대문)

공동발의자 : 김준호(기본소득정치연대), 박기홍(기본소득정치연대), 양지혜(기본소득정치연대), 오세한(기본소득정치연대), 정희수(기본소득정치연대), 서태성(경기 수원오산화성), 신민주(서울 종로중구), 신지혜(경기 고양)


<기본소득 부속강령 : 모두의 몫을 모두에게>

 

1. 새로운 사회의 깃발에 우리는 모두의 몫을 모두에게라고 적는다.

 

새로운 사회를 열기 위하여 우리는 깃발을 든다. 우리의 깃발에는 모두의 몫을 모두에게라고 적혀있다. 모두의 몫으로 돌려야 할 것은 무엇인가? 모두의 것으로부터 발생한 수익은 모두의 몫으로 돌려야 한다. 사회가 생산한 부에서 특정한 경제주체의 노력에 배타적으로 귀속시킬 수 없는 모든 것은 모두의 몫으로 돌려야 한다. 모두의 몫을 노동 여부나 자산에 따라 선별적으로 분배하는 것은 정당하지 않다. 그것은 모든 사람 각자에게 무조건적으로 평등하게 분배되어야 한다. 모두의 몫을 모두에게 돌려준 이후에야 비로소 성과에 따른 분배를 논할 수 있다. 노동한 사람들 각자에게 노동한 만큼의 몫을 나눠주려면 무엇보다 먼저 모두의 몫에 대한 무조건적, 보편적, 개별적인 평등분배가 이루어져야 한다.

무엇을 모두의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인가? 지구는 모든 사람의 것이다. 토지를 개간한 사람이 토지가치를 증대시켰는지는 몰라도 토지 그 자체를 창조하지는 않았다. 건물을 지은 사람이 대지를 만들지는 않았다. 역사적으로 전개된 법률적인 소유권 형태와 전적으로 무관하게 토지 그 자체에 대해서는 인류의 개별적인 구성원 모두가 원천적인 공동소유권을 가지고 있다. 그렇기에 토지의 활용으로부터 발생하는 수익을 사적 개인이 배타적으로 전유하는 것은 정당하지 않다. 토지의 활용으로부터 나온 수익의 일부는 개별적인 사회구성원 모두에게 무조건적으로 배당되어야 한다.

 

토지뿐만 아니라 천연자원 또는 생태환경은 원래 인류 모두에 속한 자연적 기초이고, 따라서 인류 모두의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천연자원의 채굴자가 천연자원 그 자체를 창조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법률적 소유권을 누가 가지고 있든 천연자원은 원래는 모두의 것이고 채굴로 발생하는 수익의 일부는 모두에게 조건 없이 배당되어야 한다. 나아가 생태환경은 세대와 세대를 넘어 인류 모두의 것이며, 현 세대의 인류는 무분별한 개발로 생태환경을 파괴하지 않을 책임이 있다. 생태부담을 만든 기업이 생태환경의 사용에서 발생하는 수익을 독차지하는 것은 반생태적일 뿐만 아니라 정의로운 분배도 아니다. 토지 그 자체, 천연자원, 생태환경 등은 모두의 것이며 이로부터 나온 수익의 상당한 부분은 자연적 공유부(共有富)이다. 자연적 공유부는 모든 사람 각자에게 무조건적으로 분배되어야 한다.

 

자연적 공유부가 원래는 모두에게 속한 것으로부터 흘러나온 수익이라면, 인공적 공유부란 누가 얼마만큼 기여했는지를 따질 수 없고 어떤 특정인의 성과로 귀속시킬 수 없는 수익이다. 어떤 경제학자가 말했듯이, 모든 소득의 90%는 이전 세대에 의해서 축적된 지식의 외부효과라고 말할 수 있다. 엄격하게 말하자면, 이와 같은 외부효과는 개별적인 사회구성원 모두에게 무조건적으로 다시 할당될 때에만 비로소 정의로운 분배가 이뤄졌다고 말할 수 있다. 지식은 사회구성원 모두의 공통유산이고 사회구성원 모두는 이러한 공통유산의 수익을 공유해야 한다. 오늘날 플랫폼 경제의 확산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빅데이터의 형성과 활용에 의한 수익도 인공적 공유부라는 사실이다.

2008년 경제위기 이후 OECD 국가들의 초저금리 정책과 양적 완화는 금융수익률의 하락을 낳았고 고수익을 추구하는 위험 자본은 디지털 기술회사로 몰려들었다. 이렇게 몸집을 불린 구글, 페이스북, 아마존 등 플랫폼 기업들은 10년 후인 2017년에 이르면 시가총액 글로벌 5대 기업에 이름을 올리게 될 정도로 커다란 경제적 비중을 차지하게 된다. 플랫폼 기업들의 이윤은 네트워크 외부효과로부터 나온다. 이용자 집단이 크면 클수록 네트워크 효과도 커진다. 더 많은 사용자를 모을수록 플랫폼 기업의 이윤도 커져 간다. 여기에서 핵심적인 것은 데이터이다. 플랫폼 기업의 이윤창출 메커니즘은 물적자원이나 인적자원이 아니라 데이터를 기초자원으로 한다. 더 많은 데이터의 집적은 더 많은 이윤을 가져다주며 네트워크 효과를 증대시킨다. 더 많은 데이터는 다른 기업들과의 경쟁 수단이기도 하며 자율주행, 스마트시티, 전자결제 등 다른 영역의 비즈니스로 진출하기 위한 교두보가 된다. 데이터를 기반으로 하는 가치창출은 플랫폼을 통해 제공되는 서비스의 구체적 형태와 무관하며 오늘날 대다수의 플랫폼 기업들에서 드러나듯이 네트워크 효과가 나타날 수 있는 모든 영역으로 확장될 수 있다. 이러한 경향은 생산과 재생산의 전 영역에 걸친 사회인프라가 플랫폼 기업의 수중에 놓이는 상태까지 나아가고자 할 것이다. 플랫폼 자본주의와 함께 소유의 시대가 종식을 고하는 것이 아니라 플랫폼이라는 사회인프라에 대한 독점적 소유가 등장한다.

 

플랫폼 자본에 대하여 우리는 모두의 몫을 모두에게라는 깃발을 치켜든다. 이는 네트워크 효과로 발생한 수익의 대부분은 모두의 몫이라는 선언이다. 우리의 주장은 빅데이터는 누구의 것인가라는 질문으로부터 출발한다. 플랫폼 비즈니스와 인공지능 개발에서 필수적인 빅데이터는 플랫폼 없이는 형성되지 않으며 플랫폼 기업은 플랫폼을 소유한다. 여기에 대해 우리가 던지는 첫 질문은 플랫폼을 소유한다고 해서 빅데이터를 소유하는 것이 과연 정당한가이다. 농지는 미개간지를 개간함으로써 성립한다. 개간 이전에 농지는 존재하지 않았지만 개간에 의해 토지 그 자체가 창조된 것이 아니다. 빅데이터를 농지에 비유하자면, 빅데이터는 플랫폼에 의해 형성되지만 플랫폼이 디지털 활동을 창조한 것은 아니다. 플랫폼의 가장 중요한 기능은 데이터 인클로저이다. 플랫폼은 디지털 활동을 데이터의 형태로 물질화하는 동시에 울타리치기 하여 배타적으로 활용하기 위한 장치이다. 이와 같은 플랫폼 자본주의에 대항하여 우리는 우리 모두의 디지털 활동의 결과물인 빅데이터는 우리 모두의 공동소유라고 선언한다. 빅데이터에 대한 모두의 공동소유권에 근거하여 우리 모두는 네트워크 효과로 발생한 수익의 일부나 전부를 우리 모두의 몫으로 돌려받을 정당한 권리가 있다.

 

 

2. 기본소득은 공유부의 무조건적, 보편적, 개별적 배당이다.

기본소득은 공유부의 분배정의를 실현한다.

 

기본소득은 자산 심사나 노동에 대한 요구 없이 모두에게 무조건적 개별적으로 주어지는 정기적인 현금 이전으로 정의된다. 이와 같이 현금성, 정기성, 무조건성, 보편성, 개별성의 다섯 기표로 이루어진 정의는 현존하는 복지제도와 기본소득을 구별해 준다. 현금이라는 특성에 의해 기본소득은 교육이나 의료와 같은 공공서비스와 구별되며, 정기성에 의해 기본소득은 성년에 도달할 때 일회적인 종자돈의 형태로 지급되는 사회적 지분급여와 구별된다. 현존하는 복지국가의 공적 이전소득과 기본소득의 차별성을 드러내주는 중요한 지표는 무조건성, 보편성, 개별성이다. 20세기 복지국가의 이전지출은 기여의 원리에 따른 사회보험을 한 축으로 하고 필요의 원리에 따른 공공부조를 다른 한 축으로 하여 가계 단위로 지급되었다. 하지만 기본소득은 노동요구나 노동할 의사에 대한 증명 없이 무조건적으로, 필요 여부를 가리는 자산 심사 없이 모두에게, 가구 단위가 아니라 개별적으로 지급된다.

 

무조건성, 보편성, 개별성은 기본소득과 현존하는 복지국가의 공적 이전소득과의 차별성을 분명히 드러내는 핵심적 지표로 볼 수 있지만 기본소득의 고유한 원천을 드러내지는 못한다. 기본소득을 단지 무조건적, 보편적, 개별적 현금이전이라는 특유한 분배방식 또는 이전방식으로서만 규정하는 것은 매우 기능적일 뿐이다. 그래서 우리는 기본소득을 공유부의 무조건적, 보편적, 개별적인 배당으로 재정의함으로써 기본소득의 원천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드러내고자 한다. 기본소득의 원천이 공유부라는 점을 명확히 하면, 무조건적, 보편적, 개별적 소득이전이라는 특유의 분배방식도 원천에 적합한 분배방식으로서 정당성을 얻는다. 왜냐하면 공유부의 분배에 조건을 달고 선별하는 것은 정당하지 않고, 누구의 몫으로도 귀속시킬 수 없는 것이라면 무조건적, 보편적, 개별적으로 모두에게 동등한 몫으로 분배되어야하기 때문이다. 공유부에 대해서는 기여에 따른 분배가 불가능하며 자산 심사에 따른 선별적 이전소득 형태로 분배하는 것도 결코 정당하지 않다. 각자에게 성과에 따라 분배하라는 분배 원칙이 성립하려면, 특정인의 성과로 귀속시킬 수 없는 모두의 몫은 모든 사람에게 조건 없이 평등하게 분배되어야 한다.

 

우리가 주장하는 기본소득은 국가가 제공하는 공공서비스를 대체하지 않는다. 공공서비스의 확충과 기본소득의 도입은 함께 가야 한다. 공유부의 무조건적, 보편적, 개별적 배당으로서 기본소득은 노동의 성과에 따른 분배와 충돌하지 않는다. 공유부의 평등 배당이야말로 누구의 기여로 배타적으로 귀속시킬 수 없는 공통의 몫에 관한 분배원칙이기 때문에 성과에 따른 분배 원칙을 철저하게 따른 결과라고도 말할 수 있다. 기본소득이 도입된 사회에서 어떤 한 사람의 소득은, 그 사람의 경제적 기여에 따라 크기가 달라지는 조건적 소득과 사회구성원으로서 무조건적으로 획득하게 되는 기본소득이라는 두 가지 구성부분을 가진 복합소득으로 구성된다. 누구에게나 경제활동과 무관한 조건 없는 소득최저선이 보장된다는 점에서 기본소득은 무조건적인 선()분배 소득이라고 볼 수 있고, 반면에 시장소득은 개별적 성과에 따라 추가적으로 획득하게 되는 조건적 소득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와 같은 무조건적 소득의 크기는 어느 정도여야 하는가에 대하여 경제적 효과와 같은 기능적 원칙보다 정당한 분배의 원칙을 먼저 확인할 필요가 있다. 개별적인 성과로 귀속시킬 수 없는 공유부의 크기가 GDP10%라면 10%, 만약 그러한 몫이 엄청나게 커서 거의 90%라면 90%를 모두에게 개별적으로 조건 없이 동등하게 분배하여야 한다. 노동시장에 대한 기본소득 효과와 관련하여 우리는 노동과 무관한 기본소득의 도입은 노동시장에서 임금을 상승시키는 효과를 낳을 것이며 기본소득의 액수가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임금상승 효과도 커지고 이는 더 많은 자동화 압박을 낳을 것이라는 점에 주목한다. 근로장려세제와 같은 노동연계복지가 저임금노동의 고용주에게 보조금을 지급하는 효과를 낳는 것과 반대로 기본소득은 일자리에 대한 선택권과 협상력을 제공하고 임금상승 효과를 낳는다. 그래서 우리는 한쪽으로 산업노동과 전형적인 서비스노동을 자동화하면서 다른 한쪽으로 재생산 영역, 돌봄과 여가, 문화예술을 플랫폼 경제를 통해 상품화하는 오늘날의 자본주의를 넘어설 최초의 열쇠를 기본소득 도입에서 찾는다. 노동의 불안정화와 양극화를 넘어 전통적인 고용관계의 해체와 전면적인 저임금화가 진행되고 있는 현재의 경제적 사회적 위기에 대한 해법은 기술혁신과 함께 늘어나는 공유부를 모두가 평등하게 나누는 것이다.

 

 

3. 공유부의 평등한 배당은 기술혁명을 자본주의적 제약을 넘어 가속시킨다.

 

오늘날의 파괴적인 기술혁신은 사회적 위기를 낳고 있다. 자본주의는 기업 간 경쟁을 통해 기술혁신을 촉진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자본주의가 발생시키는 사회적 위기에 의해 기술혁신이 제약되기도 한다. 디지털 전환과 자동화는 생산성의 향상이 일자리, 임금, 소득과 동조하지 못하는 순환의 위기와 불평등의 증대로 표현된다. 이러한 위기는 기술혁신의 속도를 늦추는 방식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위기는 오히려 자본주의적 제약을 제거함으로써 해결될 것이다. 디지털 전환, 인공지능의 개발, 자동화에 대한 우리의 입장은 기술혁명으로 늘어나는 모두의 몫을 모두에게 되돌리는 길을 모색하자는 것이다. 모두의 몫을 모두에게 되돌려 줄 때에만 기술혁명이 자본주의적 제약을 넘어 더 한층 가속화하며 이러한 과정을 거쳐 희소성의 경제가 사라질 가능성도 생기게 된다.

 

이러한 관점에서, 임금노동 일자리를 바라보는 우리의 입장은 노동이 신성한 것이 아니라 인간이 존엄하다는 표현으로 집약될 수 있다. 비록 매우 방어적인 개입에 불과할지라도 제한된 시공간에서 일자리 지키기가 사회적 의미를 가지는 이유도 임금노동이 신성하기 때문이 아니라 인간이 존엄하기 때문이다. 일자리가 사회적으로 중차대한 의미를 가지는 이유는 무엇보다도 기본소득이 도입되지 않은 사회에서는 대다수 대중의 생계가 일자리와 임금소득에 걸려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공유부의 무조건적, 보편적, 개별적 배당과 더불어 진행되는 자동화와 기술혁명은 일자리를 없애는 재앙이 아니라 풍요의 경제를 앞당기는 축복이 될 수 있다. 기술혁신에 의해 자동적으로 해방된 사회가 등장할 것이라는 낙관은 기술이 사회형태를 결정한다는 잘못된 관점에 서 있다. 우리는 기술은 사회적으로 촉진되거나 사회적으로 제약된다는 정반대의 관점에 입각해, 해방적 기술변화를 위한 개입을 시도하며, 그러한 개입의 단초를 기술혁신에 의해 생산된 공유부의 무조건적, 보편적, 개별적 배당에서 찾는다.

 

 

4. 모두의 몫을 모두에게 되돌리는 다양한 방법

 

모두의 몫을 모두에게 돌리는 네 가지 방법이 있다. 첫 번째는 조세기반 기본소득이다. 20세기에 형성된 조세국가를 활용하여 국가가 공유부를 거둬들이고 모든 개별적 시민에게 기본소득으로 이전하는 것이다. 적어도 두 가지 유형의 공유부에 대해서는 조세기반 기본소득이 가장 합리적인 해결방식일 것이다. 하나는 토지공유부이다. 부동산에 대한 사적 소유자에게 토지보유세를 걷고 모두에게 무조건적 개별적 토지배당을 지급하는 것은 토지 그 자체에 대한 모든 사람의 원천적인 공동소유를 보호하는 길이다. 또 다른 하나는 생태세와 생태배당의 연동이다. 생태세 수입을 개별적인 사회구성원 모두에게 조건 없이 동등하게 분배한다면, 생태세에 의해 자원절감기술의 발전을 강제하면서도 생태배당으로 저소득층의 에너지평등권을 보장할 수 있고, 나아가 에너지평등권의 보장을 통하여 생태세율을 사회적 저항 없이 지속적으로 올릴 수 있는 가능성도 부여된다. 더불어 근본적으로 모든 소득에는 지식의 외부효과가 큰 비중을 차지한다. 따라서 개인소득세를 재원으로 하는 기본소득은 공유부 배당의 기본적 방안이다.

 

조세기반 기본소득과 관련하여 반드시 확인할 원칙이 있다. 그것은 조세로 환수한 공유부는 거둔 액수 그대로 조건 없이 모든 개별적인 사회구성원에게 1/n로 분배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이는 기본소득 재정의 특성이며, 기본소득을 공유부의 평등한 배당으로 이해하는 한에서 반드시 지켜야 할 원칙이다. 공유부의 주인은 개별적인 사회구성원 모두이다. 그렇기에 국가는 조세로 환수한 공유부를 정책적 고려와 무관하게 원래의 몫 그대로 평등하게 나누어 공유자 개개인에게 되돌려주어야 한다. 이를 통해 기본소득은 국가의 시혜가 아니라 개별적 시민들의 권리라는 점이 명확하게 드러난다. 설령 공유부의 일부를 일반재정에 충용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공유부로 환수된 전액을 국가의 재정적 재량권에 맡기는 것은 명백하게 공유부 배당의 이념에 위배된다. 엄격하게 말하자면 공유부 배당에서 국가는 조세추출 기구로서 공유부를 환수하고 재분배하는 기능만을 담당할 뿐이다.

 

동시에 우리는 조세기반 기본소득이 가지는 두 가지 난점에 주목한다. 하나는 생산성과 일자리, 일자리와 소득의 탈동조화가 심각해져서 근로소득 대중과세가 어렵게 된 21세기 자본주의의 현실이며, 다른 하나는 디지털 공유부를 독식하고 있는 글로벌 플랫폼 기업에 대한 법인세 과세가 국민국가적으로 조직된 조세제도에서는 매우 어렵다는 점이다. 플랫폼 기업의 고정사업장이 있는 국가만이 법인세를 과세할 수 있지만 글로벌 플랫폼 기업의 수익은 전 지구적인 네트워크 효과에서 발생한다. 고정사업장의 난점은 단순히 법인세 과세에만 해당되는 문제가 아니다. 플랫폼 기업의 수익도 주주들에게 분해되기 때문에 개인소득세에 과세하면 된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여기에서도 마찬가지의 문제가 발생한다. 플랫폼 기업의 대주주는 어떤 한 국가에 거주하고 그 국가에 배당소득세를 내겠지만 그가 얻은 수익은 전 인류의 빅데이터에서 비롯된다. 소득세 기반의 기본소득은 이처럼 글로벌 불평등으로 이어지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이러한 난점들은 조세기반 기본소득 이외에 또 다른 해법을 요청한다.

 

그렇기에 조세기반 기본소득 이외에도 다양한 방식의 공유부 배당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농업혁명과 토지 인클로저가 진행되던 18세기 말에 토지공유부의 배당은 급진적 사회개혁의 중요 의제로 떠올랐다. 당시에 제안되었던 모델 중에는 조세기반의 배당 이외에도 토지이용권 경매 모델이 있었다. 토지에 대한 공동소유권을 도입하되 토지의 효율적 이용을 위하여 7년 주기로 토지이용권을 경매하고 이로부터 발생하는 수익은 모든 주민에게 무조건적으로 배당하자는 제안이었다. 여기에는 조세를 통해서는 지대의 철저한 환수가 어렵다는 전제가 깔려 있었다. 이용권 경매 모델의 다양한 활용가능성에 대해서도 열어 둘 필요가 있다. 하지만 이러한 모델은 이용권 경매의 대상이 되는 공유재의 고유한 특성에 크게 좌우될 것이다. 따라서 조세기반 기본소득만큼 보편화될 수 있는 또 다른 방법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공유지분권 모델이나 공동소유에 입각한 공유부 배당 방식은 신자유주의와 플랫폼 자본주의로 비롯된 조세기반 침식이라는 난점을 피하면서도 기본소득의 보편적 재원으로 삼을 만한 해법이다. 20세기의 시장사회주의자들은 사회적 총자본의 일정 비율을 공유주식자본으로 전환하고 이를 재원으로 무조건적, 보편적, 개별적 사회배당을 실시하자고 주장했고, 이러한 주장은 오늘날에도 유럽의 급진좌파 이론에서 되풀이된다. 신자유주의 이전의 사회민주주의는 완전고용을 고정적인 상수로 두었고 이러한 전제 위에 전후 복지국가를 형성했다. 전후 복지국가의 핵심적인 제도는 강제적 사회보험제도였다. 그들은 완전고용에 입각한 고임금 고성장이 가능하다면 강제적 사회보험만으로도 충분히 빈곤이 예방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실업, 질병, 사고 등으로 소득능력을 잃거나 또는 퇴직하여 소득능력의 결핍이 생길 때 사회보험으로 소득 보장이 가능하다면 자산심사와 결부된 공공부조는 최소한으로 줄어들 것이기에 지속가능성이 보장된다는 가정이었다. 그러나 1980년 이후 신자유주의 시대가 펼쳐지면서 일자리 양극화, 일자리와 소득의 탈동조화, 저임금화로 이와 같은 가정은 무너졌다. 결과적으로 공공부조의 규모는 추세적으로 증가했지만 사회 전체의 빈곤화를 막기에는 언제나 부족했다. 2008년 위기 이후 현재까지 급속도로 진행 중인 기술혁명은 이러한 경향을 더욱 강화하고 있다. 신자유주의로의 투항이 아닌 새로운 형태의 사회민주주의가 가능하려면, 거기에는 반드시 무조건적, 보편적, 개별적 배당이 필수적 구성요소로 포함되어야 한다. 설령 20세기 시장사회주의자들이 주장했던 것처럼 모든 회사의 주식의 일정 비율에 대하여 공유지분권을 설정하는 것이 아니더라도, 사회구성원 모두가 원천적으로 보유하는 빅데이터 공동소유권을 근거로 하여 플랫폼 기업들의 주식 일부를 공유지분권으로 돌리자는 주장은 새로운 형태의 사회민주주의가 내걸어야 할 최소 강령일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빅데이터에 대한 공동소유권이나 플랫폼 기업에 대한 공유지분권만을 주장할 것이 아니라 네트워크 효과로 발생한 수익 전체를 모두의 몫으로 돌려야 한다고 주장할 것이다. 그와 같은 주장에서 우리는 20세기 사회주의를 넘어서는 새로운 형태의 사회주의를 가늠해 볼 수 있다. 새로운 형태의 사회주의에서는 공유부의 무조건적, 보편적, 개별적 평등배당이 필수적 요소가 되어야 한다. 사회구성원 모두가 공동소유자라고 가정하면, 공동소유의 수익을 조건 없이 모든 개별적인 사회구성원에게 동등하게 배당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이처럼 무조건적, 보편적, 개별적 배당과 결합된 공동소유는 오늘날의 자본주의 사회의 공기업이나 20세기 사회주의 국가의 국영기업과 같은 공적 소유와는 전혀 다른 종류의 소유형태이다. 공적 소유는 사회구성원 모두의 공동소유가 아니라 국가의 소유이고 수익의 분배도 국가의 재량에 따를 뿐 기본소득 방식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20세기 사회주의는 공유부를 배당하지 않았으며 소득분배는 임금의 형태로 이루어졌다. 우리는 공동소유에 입각하여 공유부를 배당하는 새로운 형태의 사회주의가 단지 먼 미래의 일만은 아니라고 선언한다. 현존하는 공적 소유를 무조건적, 보편적 개별적 배당과 연동된 공동소유 형태로 전환하는 것을 포함하여 공동소유형 플랫폼을 발전시키는 방법 등은 지금 당장에도 시작할 수 있는 일이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어떠한 소유형태를 전제하든지 분배되는 것은 공유부이며 그렇기에 무조건적, 보편적, 개별적인 분배방식을 따라야 한다는 점을 재차 강조한다. 현실의 세계에서 공유부 배당의 네 가지 실현형태는 경합적이지 않다. 개인소득세를 중심으로 한 조세형 기본소득을 일종의 기본값으로 둘 수 있으며, 여기에 공유지분권이나 공동소유에 근거한 공유부 배당을 덧붙일 수 있다.

 

플랫폼 기업에 대한 공유지분권이나 공동소유형 플랫폼은 모두의 몫을 모두에게돌리는 분배차원의 문제뿐만 아니라 디지털 전환 시대의 민주주의의 위기에 대해서도 일정한 해법으로 기능할 수 있다. 빅데이터 공유기금은 플랫폼 회사에 대해 일정 지분을 가지고 수익을 배당받을 뿐만 아니라, 프라이버시 문제, 플랫폼 노동통제, 스마트시티의 사회인프라의 운영 등에 대해서도 감시 자본주의적 폐해를 없애는 개입 정책을 적극적으로 펼칠 수 있다. 공동소유형 플랫폼에서는 데이터를 수집하고 활용하는 플랫폼의 전체 과정에 대해 공유자 민주주의를 훨씬 더 깊숙이 관철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변화를 위한 지렛대는 빅데이터에 대한 우리 모두의 공동소유권이며, 따라서 데이터 기반의 플랫폼 자본주의 시대의 가장 중요한 질문은 빅데이터는 과연 누구의 것인가이다.

 

 

5. 사회적 생태적 전환을 위해 기본소득이 필요하다.

 

우리는 위기에 처한 자본주의를 넘어서는 사회적 생태적 전환을 추구한다. 공유부의 무조건적, 보편적, 개별적 배당으로서 기본소득은 이러한 전환에서 지렛대의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우리는 확신한다. 기본소득은 소득불평등에 대하여 가장 탁월한 완화 효과를 발휘한다. 이는 그간 기본소득 운동이 공유해 왔던 전망이다. 공유지분권 모델이나 공동소유 기반의 기본소득은 소득불평등뿐만 아니라 자산불평등도 완화하거나 제거할 수 있다. 기본소득의 원천은 공유부이며, 기본소득은 공유부 분배의 새로운 방식이다. 그리고 이때 분배란 소득분배만이 아니라 자산분배를 포함하며 소유권의 문제까지 연결되기 때문이다.

 

그간 기본소득 운동은 기본소득의 노동시장 효과에 대해서도 다각도로 연구해 왔다. 생계수준 이상의 기본소득은 개별적 노동자에게 강력한 거부권을 부여하고 임금수준을 획기적으로 올리게 될 것이다. 이러한 효과야말로 기본소득이 임금노동에 미치는 효과 중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임금수준의 상승, 임금노동을 넘어선 창조적 활동의 증대, 전체적인 측면에서 지식생산성의 증대에 의하여 기술혁신은 가속화될 것이다. 그렇기에 기본소득이야말로 기술혁신을 촉진하면서도 기술발전의 성과를 자본이 독차지하지 않도록 만드는 중요한 지렛대이다.

 

우리는 기본소득이 단순히 자본주의의 소비기반을 형성하며 자본순환을 돕는 기능만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일자리와 무관하게 제공되는 기본소득은 투자친화적인 재정, 통화, 인프라 정책에 의존하여 일자리를 창출하려는 생산주의적 압박을 감소시킴으로써 생태적 전환에 기여한다. 근본적으로, 분배가 평등하게 이루어질수록 생산주의적 압박도 줄어들고 생태적 전환도 용이해질 것이다. 과세 효과의 측면에서 살펴보더라도, 생태세와 생태배당의 연동은 생태세율을 꾸준히 올리면서 생산기술의 생태적 전환을 강제할 조건이 된다.

 

공유부를 모두에게 무조건적 기본소득으로 분배하는 사회에서 사회구성원 모두는 참정권만이 아니라 소득기반에 있어서도 공통성을 가지게 된다. 모두에게 개별적으로 자유롭게 처분할 수 있는 일정 소득이 부여된다는 것은 자유의 실질적 기초가 생긴다는 뜻이며 민주주의에 실질적 기초를 부여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간 기본소득 운동은 기본소득 도입으로 신자유주의 시대의 대중민주주의의 위기가 해소되고 정치가 재활성화 될 것이라고 전망해 왔다. 우리는 한 걸음 더 나아가 공유지분권 모델이나 공동소유에 기초한 기본소득이 도입되면 재산소유자 민주주의를 넘어서서 공유자 민주주의의 기초가 수립될 것이며, 이러한 변화는 신자유주의 이전 민주주의 황금기의 회복이 아니라 보다 진보적인 새로운 형태의 민주주의로의 전환일 것이라고 확신한다.

 

기본소득은 모두의 몫을 모두에게라는 원칙을 표현한다. 이 원칙 속에서 우리는 새로운 사회의 기초 규범을 읽는다. 또한 우리는 이 원칙에 대해 지금 여기에서의 사회운동의 관점에서 접근한다. “모두의 몫을 모두에게는 새로운 사회를 향한 이행의 경로이자 운동의 원칙이다. 우리는 모두의 몫을 모두에게 돌려줄 때에만 현재의 경제적 사회적 위기가 해소되고 인간의 보편적 해방을 앞당겨질 것이라고 확신한다. 모두의 몫을 모두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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