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태'와 '헌신' 사이

by 노정 posted Jun 08,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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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년 가을이었나. 기관지 인쇄 넘어가던 주말, 마감이 한창인데 그 다음호 편집회의까지 겹쳤었다. 사무실서 밤을 새고 눈이 안떠지는 채로 부랴부랴 회의자료를 만들고 회의를 진행했다. 근데 누군가, 출판사를 경영하는 당원이었던 것 같은데, 기관지 찍어내기만 급급하지 말고 유명필자 당원들을 불러 강연도 하고 그 강의록으로 책도 내고 어쩌고 하면서 구름 위에 신선놀음같은 소릴 늘어놓았다. 순간 혈압이 올라서 버럭 소릴 질렀다. "나도 사람인데 잠은 좀 자야 되지 않겠냐"고. 지나고 나서 좀 미안했는데, 지금은 안 미안하다. 1년뒤인가, 그 당원이 경영하는 출판사에서 해고사태가 터졌고, 한참 출판계가 시끄러웠다. 자른 사람도, 잘린 사람도 노동당 당원이었다. 어쨌든.


현 체계에서 감당하기 어려운 높은 기대치를 설정하고 요구한 건 편집위원들뿐만이 아니었다. 당원들은 번듯한 월간지 수준의 기관지를 원했고, 우린 한달에 한권 찍어내기만도 버거웠다. 그들의 기대치에 맞추려면 포멧 자체를 엎어야 했는데, 미친 정정은은 내가 나가고 나서 진짜로 엎고 새 포멧을 만들었다. 정정은의 수명은 그때 또 한 10년쯤 까였을 것이다. 


기관지만 그랬던 것도 아니다. 외부연대단위들은 각종 집회와 회의에 당이 나서주길 원했고, 당원들은 무슨무슨 집회에 당 깃발이 안 보이면 당 깃발 안 보인다고 목청을 높였다. 정작 당 이름으로 기자회견을 열려고 하면 모이는 당원이 없었고, 사무실을 지킬 최소 인원을 빼고 사무처 사람들이 다 나가서 머릿수를 채웠다. 철도노조 파업, 세월호 추모집회 등이 있으면 기관지 마감이고 뭐고간에 다 제쳐두고 사무처가 총동원됐다. 물대포인지 빗물인지를 쫄딱 맞고 씻지 못한 채로 당사에 돌아가 밤을 샌 적도 있다. 


1인 부서, 혼자서 부서원이자 부서장 노릇을 하는 곳이 한두 개가 아니었지만 당 안이든 밖이든 이 당이 민주노동당의 영광스럽던 시절 그 모습이길 바랐고, 못마땅해 했다. 이건 이 정도는 해야지. 저것도 저 수준은 되야지. 왜 못하니. 근태네. 누군가는 자신이 할 수 없는 건 하지 않아 욕을 먹었고, 누군가는 할 수 있는 것 이상을 해도 욕을 먹었다. 할 수 없는 걸 포기한 사람은 '근태'가 됐고, 할 수 없는 것까지 할려고 용을 쓰면 '헌신'이 됐다. 정신치료를 2년을 받으면서 알게 됐다. 할 수 없는 것까지 할려고 기를 썼던, 기대치에 부응하고자 했던 내 마음이 병든 마음이었음을.


당직을 그만두고 1년을 쉬었지만, 글자를 보는 게 징글징글하다. 난독증도 왔다. 타블로이드신문사에 들어갔다가 글을 한 자도 쓸 수가 없어 이틀만에 내 발로 나왔다. 호텔에 캐셔로 일한 지 석달 좀 넘었다. 24시간 일하고 24시간 쉬는데 당에서 일할 때보다 더 많이 잔다. 근데 돈은 두 배로 번다. 당 만한 '개꿀빠는' 직장이 또 어딨냐며, 요즘 시세가 원래 다 그만하다며 이죽거리던 그 입, 다물라. 상근자들한테 고하건대, '근태'건 '헌신'이건 그딴 소리 듣지 말고, 할 수 있는 만큼 일하고 한 만큼 대우받을 직장을 찾으시라. 나랑 같이 호텔을 차리면 더 좋고.


이틀동안 머리푼 미친년처럼 글을 썼는데 열두 시간을 자고 나니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 든다. 당에 대해 글쓰는 건 이 글이 마지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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