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소개서
이름 : 양석재
정말 몇일동안 몇 번이나 수천 수만 자의 글을 썼다 지웠다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솔직히 지금도 계속 그러고 있지만 마감 시간이 임박하니 이제 그만하고 글을 드리겠습니다. 여러 다른 이야기가 엇갈리고 이 얘기는 왜 나왔으며 저 얘기를 왜 꺼내는지 헷갈리시겠지만, 제 입장에서는 씨줄과 날줄이 엮여서 천이 되고 옷이 되는 맥락을 가지고 있는, 그러한 이야기를 드리겠습니다.
1.
저는 사람은 누구나 비겁하고 치사하고 나약한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저 역시 그러한 인간의 굴레에서 자유로울 수 없구요. 그런데 그 중에 특히 운동권이라 불리는 사람들, 스스로가 역사를 이끌어 나가겠다는 그러한 인간들, 저, 그리고 이 글을 읽는 당신들이요. 이러한 자들은 결코 역사의 주인공이 될 수 없다 생각합니다. 그래서 말해보죠.
예전에 어떤 한 인간이 있었다고 칩시다.
이 사람은 아까 제가 말한 대로 비겁하고 치사하고 나약한 인간의 굴레에 갇혀, 그냥 그렇게 살았어요. 그렇게 살면서 대학을 갔고, 뭘 위해서인지는 모르겠다만 다들 하라고 하니까 하라는 대로 열심히 공부하던 와중에 가슴 뜨끔한 소식을 듣게 됩니다. 전태일이라는 사람이 제 몸뚱아리에 기름을 붓고 붙을 당겨서 죽었는데 그 사람이 평소에 하던 얘기가
“한문으로 된 법조문을 읽기가 너무나 힘들다. 대학생 친구가 있으면 좋겠다.”
심장이 벌렁벌렁합니다. 미안하고, 그런데 내가 당장 할 수 있는 일은 없으니 일단은 접어 두기로 합니다.
일단 접어 두기로 했는데 그게 하루가 되고 이틀이 되고 일 년이 되고 십년이 됩니다. 이렇게 지나는 동안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조차 잊어버렸어요. 그럴 수밖에 없죠. 이 사람이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억하는 순간 그 사람의 비겁하고 치사하고 나약한 일상, 그 ‘평안’이 박살날 테니까요. 그런데
어느 날 박종철이라는 사람이 죽었다는 얘기를 듣습니다. 책상을 사이에 놓고 마주보고 앉아 있다가 그 책상을 탁 치니 억 하고 죽었다는 얘기를. 이게 무슨 일인지 이해도 안 되고 어안이 벙벙합니다
몇 달 뒤에 이한열이라는 사람이 최루탄을 맞고, 머리에서 피를 줄줄 흘리면서 죽어가는 사진을 보게 됩니다. 최루탄이란 건 그냥 기침 나게 하고 숨을 못 쉬게 하는 연기 내는 물건으로만 알았는데 그것이 실제로 인체에 물리적 타격을 줘서 사람을 죽일 수 있는 물건이라는 것을 새롭게 알게 되었습니다.
그는 십여 년 동안 잊고 있었던 일들을 기억합니다. 잊어야만 했던 것들을 떠올립니다.
왜인지는 모르겠는데 자꾸 눈물이 나고 나도 모르게 발길은 큰길로 향합니다.
그리고 아무 약속도 없이 큰 길에 함께 모인 사람들과 목을 놓아 외칩니다.
박종철을 살려내라고. 이한열이를 돌려내라고
네놈들이 빼앗아 간 우리의, 나의 삶을 도로 뱉어 내놓으라고
그 순간이 바로 역사입니다.
비겁하고 치사하고 나약한 삶을 살아온 인간이, 자신의 일상 자체가 평안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고 목소리를 내는 바로 그 순간. 그 비겁하고 치사하고 나약한 인간이 바로 역사의 주인공이 되는 것입니다.
큰 길의 함성이 잦아들고, 흥분이 가라앉았을 때, 그 사람은 또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 비루한 삶을 살아가겠죠. 그 사람이 그 비루한 삶을 다시 되찾고 안심했을 때 비로소 우리 같은 확신범들이 이런 정세보고서를 쓸 수 있을 것입니다.
“당분간 반혁명은 없을 것이다”
2.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인가, 애초에 역사의 주인공도 못 된다며? 그럼 우리는 왜 이렇게 매일 맨땅에 대가리를 처박는 짓거리를 하고 있나?
저는, 명분. 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고등학교 1학년 때, 어느 날 반 애들이 야간자율학습을 많이 튄 날이 있었습니다.
그 다음 날 교감이 찾아와서 우리 담임 선생님을 우리가 보는 앞에서 애들 관리 똑바로 안하냐고 면박을 줬습니다. 담임 선생님은 화가 났습니다.
“오늘 야자 튀는 섀끼들은 빠따 100대 친다.
근데 화가 난 사람은 그만이 아니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담임 선생님을 교감이 공개적으로 욕보여서 저도 못지않게 화가 났거든요. 손을 벌떡 들고 얘기했습니다.
“예! 알겠습니다!”
담임 선생님 얼굴이 일그러지고 그 날 우리 반 전체에서 저 혼자 야간자율학습을 쨌습니다.
다음 날 저는 100대를 맞았죠. 패는 담임 선생님도 제가 소위 말하는, ‘개전의 정‘이라는 게 전혀 없는 놈이란 걸 잘 알았습니다. 패봤자 소용이 없는 새끼. 그리고 평소에 저한테 준 정도 있어서 패기도 싫었을 거예요. 그런데 어쨌든 그가 나를 팰 수밖에 없었습니다.
지금 저를 안패면 다음에 다른 새끼들을 팰 명분이 없어지니까요.
교감이 열 받았고 담임 선생님이 열 받았고 제가 열 받았고 이번엔 우리 반 애들이 열 받았습니다. 제가 빠따 100대를 맞고 하반신 전체를 가누지 못하고 똥도 못 싸러 가면서 꼼짝 못하고 끙끙 앓던 그 날, 우리 반 3분의 2 정도가 야간자율학습을 쨌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날 아무도 안 맞았습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걸로 사람을 패게 시키면 안 되고 패면 안 된다는 그 명분을 제가 나서서 100대를 맞음으로서 세운 겁니다.
이런 것이 운동이고 우리의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3.
정치를 대국적으로 하라고 했는데 그러지 않아서 시국이 대국적인 된 지금, 주말마다 사람들이 광화문에 백만 명씩 뛰어나오고 환희에 벅차하고 이거 정말 대단한 일이지 않냐고 묻는데 솔직히 저는 하나도 놀랍지 않습니다.
2014년 4월 16일 세월호가 가라앉았습니다. 며칠 후에, 그날 탑승자들이 살아보겠다고 세월호 창문까지 기어 올라와서 두들기고 긁는 사진이 여러 중앙 일간지 1면에 실렸습니다.
그 한명 한명을 손가락으로 훑고 쓰다듬으면서 눈물을 펑펑 흘렸어요. 그러지 않을 방법이 없었습니다. 저는 그래도 사람 새끼니까요...
저는 그 당시 1000평이 넘는 큰 장난감 가게에서 판매원으로 일했는데 정말 세상의 온갖 재미나고 기쁘고 신기한 것들이 다 모인 그런 곳이었습니다. 그 날도 사람들이 물건을 사러 왔고요.
“또봇 어딨어요?”
“예. 여기 있습니다.”
“파워레인저 주세요.”
“네 이쪽으로 가서 코너 오른쪽으로 도시면 있습니다.”
“춤추는 뽀로로 마이크”
“네 저 따라오시면 제가 찾아 드리겠습니다.
눈물을 줄줄 흘리면서 손님들에게 세상의 온갖 재미나고 기쁘고 신기한 것들을 찾아 드렸습니다.
그런데 제가 왜 그렇게 눈물을 줄줄 흘리는지 아무도 묻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사실 그 분들도 다 알고 있었거든요. 제가 왜 우는지.
수백 명의 죽음이 짓누르는 지옥 같은 슬픔 속, 제게 왜 우냐고 굳이 묻지 않는 사람들을 보면서 저는 희망을 같이 보았습니다.
우리는 진실을 알고 있다.
진실을 알고 있던 사람들이 그 알고 있는 진실을 집행하러 거리로 쏟아져 나온 겁니다.
저는 우리가 진실을 알고 있다 믿었고 언젠가 집행할 것을 알았기에 매 주말이 전혀 놀랍지 않습니다.
4.
저는 특별히 잘난 사람이 아닙니다. 굳이 제가 아니라 해도 전술하였다시피 수백만 수천만 수십억의 사람들이 지금도 역사의 주인공으로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저 또한 그들을 믿기에 하루하루를 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100대를 친다 했을 때 나서서 100대를 맞고 그 100대 때린 사람이 스스로 겸연쩍어하게 만들어 다음에 못 때리게 만드는 그런 배짱을 가진 사람을 살면서 별 못 봤습니다. 그리고 그런 게 제 천성이라고 생각하고, 노동당의 당직이라는 것을 잘 수행하는데 결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라 믿습니다. 그들이 역사의 주인공이 될 수 있도록 제 역할을 다하겠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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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이 마감이랬는데 글만 며칠 계속 쓰다가 마감 못맞추는줄알고 진짜 고생했습니다^^
됐으면 좋겠어요. 되면 열심히 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