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일요일, 교섭이 타결되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저 깐깐한 분회는 적어도 객관적으로 패배로 보이는 안은 수용하지 않았을테니, 교섭 타결은 곧 승리, 성심여대에 이은 두번째 승리, 길고 긴 싸움 끝에 얻어낸 값진 승리. 우리는 자축하고, 기뻐하며, 일보 전진을 다짐했을 겁니다.
그러나 교섭은 결렬되었습니다. 배영훈 사장은 "후회할거라"며 으름짱을 놓고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어제밤, 사측은 50명의 인원을 동원하여 농성장을 침탈하였습니다.
저는 현재 기륭 공대위 공동 집행위원장이라는 감투 아닌 감투를 쓰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제 저는 현장에 없었습니다. 꽤 오래 되었네요. 기륭 투쟁 현장에 제대로 결합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공대위 회의 때나 나타나고, 중요한 집회나 문화제 때나 출몰하는... 그렇고 그런 처지가 되버린지...
오늘 사실 몸이 좀 아팠습니다. 그동안 무리를 좀 했는지, 한동안 계속 몸이 안좋았는데 오늘 아침 일어나 보니 정상이 아니더군요. 전화 몇통 돌리고 그냥 뻣어버렸습니다.
밤 10시. 낮에 분명 전화를 한두통 하느라 착신 전화 숫자를 초기화했는데도, 정신을 차려보니 전화가 50통이 넘게 왔더군요. 열몇통의 문자와 함께 말이죠. 가장 급해(?) 보이는 곳 몇군데에 전화를 넣었습니다. 촛불의 하나였으나, 어느새 비정규 싸움터의 동지가 된 이들이 몇 있습니다. 네, 그들에게 제일 먼저 전화를 했습니다. 보통... 가장 정보를 필요로 하는게 그들이니까요. 그리고.. 그들은 정보를 접수하자 마자 바로 움직이는 그런 친구들이니까요. 그들 중 하나가 묻더군요. "기륭이 오늘밤 침탈된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상황을 알려달라. 공지를 올리고, 그쪽으로 이동하겠다"
기륭공대위 공동 집행위원장이라는 저는 알지도 못하는 소식. 인터넷을 뒤져 어제밤 상황을 그때야 알았습니다. 그것도 아고라에서... 몇몇 분회원들과 송경동 집행위원장, 농성장 지킴이 희망님과 통화를 했습니다.
10월 25일, 기륭 공장이 이전을 합니다. 자본자들은 잔뜩 일을 벌려 놓고 아무렇지도 않게 자리를 털고 일어나 떠납니다. 부지를 매각하고, 400억이 넘는 돈을 챙기고 아무 일 없다는 듯 툴툴 털고 사라집니다.
1000일이 넘는 싸움, 94일의 단식. 네, 아무것도 얻지 못했습니다. 아무것도 이루지 못했습니다. 그 눈물겨운 싸움의 현장이 "부지 매각, 이전" 이 몇 글자에 무의미한 공간으로 순식간에 변해버립니다. 3년간 수만의 사람들이 함께 했던 그 싸움의 공간이, 멋들어진 계약서 몇장과 쾅쾅 찍힌 도장 몇개에 "의미 없는 곳"으로 전락합니다.
분회원들은 "이전 저지 투쟁"을 벌이고자 합니다. 혹자는 묻습니다. "그들이 떠나는게 무슨 잘못이 있다고 막는 것이냐?"
네, 알고 있습니다.
기륭 분회가 이전 저지 투쟁을 하려는 것은,
기륭 공대위가 이전 저지 투쟁을 하려는 것은,
자본주의를 걸고 넘어지기 위해 그들의 재산권 행사, 그들의 사적 소유를 문제 삼는 것이 아닙니다.
공장 이전을 저지하면, 그들이 교섭에 나올 것이고, 그래서 교섭을 타결시키겠다는 것이 아닙니다.
3년의 싸움, 94일의 단식, 3년간 함께해온 수만명의 사람들. 그 "싸움의 의미"를 지키겠다는 것입니다. 아직 싸움이 끝나지 않았다고 외치려는 것입니다. 기륭 사태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았고, 너희는 앓는 소리를 하지만 결국 400억 넘는 돈 주머니로 챙기고 여전히 잘먹고 잘살지 않느냐는 문제제기입니다. 아직 우리 여기 눈 시퍼렇게 뜨고 살아 있다는 외침 입니다. 이유가, 논리가 무엇이던 그렇게 해야 신문에 기사 한줄이라도 나오기 때문입니다!
10월 25일, 그날까지 회사측은 끊임 없이 관리직과 용역들을 동원해 농성장을 침탈하고 위협할 것입니다. 분회원들이 이전 저지를 위해 투쟁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설비 이전을 강행할 것입니다.
그렇게 긴장을 높혀서, 그렇게 이전을 강행해서 "분회가 불법을 저지르게 할 것"입니다. 그리하여, 업무방해로 집행유예 중인 김소연 분회장과 윤종희 분회원의 불법 행위를 포착해서, 그들을 감옥으로 보내게할 것입니다. 그것이 목적입니다. 그게 아니라면... 설비 이전을 방해하는 분회의 행위를 언론에 호소하는 것이 낫습니다. 조중동을 출동시키는 것이 낫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고 있습니다. 오히려 50명의 인원을 동원해 농성장을 침탈하고, 긴장을 높이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목적은... 결코 투쟁을 포기하지 않을 분회원들을 제거 하는 것이니까요. 노조의 불법행위를 만들어내는 것이니까요.
네,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분회는 싸우려고 합니다. 멈출 수 없다고 합니다.
당원 여러분께, 또 다시 기륭 이야기를 꺼냅니다. 또 다시 기륭의 싸움을 이야기합니다.
기륭과 함께 했으면 합니다. 기륭 투쟁과 함께 하고 있는 (구)기륭네티즌연대, "함께맞는비"는 농성장 지킴이를 조직해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녀들의 투쟁이 외롭지 않게 해주십시요. 의도된, 사측에 의해 의도되는 불법을 감행해서라도 싸움을 멈추지 않겠다는, 3년간의 투쟁의 의미를 지키겠다는 그녀들의 싸움을... 외롭지 않게 했으면 합니다.
기륭 전자가 교섭권을 경총으로 넘겼다고 합니다. 이른바 중소기업의 노사분규에 감놔라 대추놔라했던 그 경총이 이제 교섭 대상이 된다고 합니다. 국정원이 아니고 경총이라는 것이 웃기는 일이지만, 이제라도 이 싸움의 본질을 자본 스스로가 인정해주니 차라리 마음은 편합니다.
성모 병원에서 어느 촛불 시민이 이런 질문을 하더군요. "아무리 봐도 답이 없다. 어떻게 비정규 투쟁을 이길 수 있다는거냐?" 저는 이렇게 대답했었습니다. "다시 100만이 열흘쯤 거리를 점령하면, 총파업이 열흘 이상 대한민국을 멈추면. 그러면 저들이 협상을 시작하자고 할 것 같다"
비정규직 투쟁에 있어서 "정규직화의 요구는 한계적"이라는 비판은 옳습니다. 그러나 3년, 4년, 5년을 싸워도 고용조차 지키지 못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왜냐하면, 비정규직으로 대표되는 불안정 노동, 이른바 노동 유연화는 현단계 자본주의의 핵심적인 전략이기 때문입니다. 개별 기업에게도, 총자본에게도, 친기업적인 국가에게도, 친기업적인 정당에게도. 그래서 저 독한 투쟁을 하고도 싸움이 끝나지 않는 것에 몸서리를 치며, 고통스러워 하면서도 그녀들은 또 다시 투쟁에 나섭니다. 투쟁의 현장에서 전략이 무엇이던, 이론이 무엇이던, 이념이 무엇이던 무의미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1000개의 싸움에서 단 1개의 승리라도 얻기 위해, 승리의 경험을 쌓기 위해, 그래서 한발이라도 더 전진하기 위해. 그녀들은 또 다시 머리띠를 묶습니다.
혹자는 묻습니다. 멈춰야 하는 것이 아니냐고. 네 멈추게 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고통 속에서 싸움을 결정한 사람들을 어떻게 해야합니까? 싸움을 멈추고, 가정으로 돌아가라고 하면 됩니까? 다른 일자리를 알아보라고 하면 됩니까? 이 싸움은 볼짱 다봤으니 그만 두라고 하면 됩니까? 문제는 그녀들이 멈추면 그것이 곧 패배가 된다는 것을 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직까지는 힘겨울지언정 패배할 수는 없다며 다시 결의하고, 또 다시 머리띠를 묶는 다는 것입니다. 고결한 목소리로 싸움을 말리고, 그녀들을 집으로 돌보내야 한다는 사람들에게 정말이지 딱 하루만 아침 7시 30분부터 밤 10시까지 이어지는 농성장의 일과에 함께 해보라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3년을 싸워온 사람들에게 투쟁이 얼마나 아무렇지도 않은 일상이면서, 동시에 고통스러운 것인지 눈으로, 몸으로 체감해보라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투쟁의 전선을 결정하는 것은 기륭 분회도, 공대위도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고 싶습니다. 전선을, 국면을 결정하는 것은 저들이고, 그렇게 제 맘대로 선을 그어놓고 여기서 싸우던가, 패배를 자인하고 떠나라고 강요하는 것은 언제나 저들이라는 것을...
길고 긴 이야기를 한 저는.. 그러나 아마도 며칠동안은 투쟁 현장에 제대로 결합하지 못할 듯 합니다. 그러면서도 이렇게 긴 이야기를 늘어 놓고야 말았습니다. 죄송합니다. 해야할 일들 몇가지를 정리하고나면 저 역시 그곳에 있겠습니다. 가실 수 있는 분, 기륭 투쟁에 함께 하실 수 있는 분들. 함께 해주셨으면 합니다. 저 역시, 이렇게라도, 온라인에서라도 함께 하겠습니다. 며칠 후에는 현장에서 어깨를 걸겠습니다. 그때, 남아 있는 이야기를 마저 했으면 합니다.
끝나지 않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
기륭 투쟁의 현장에서 또 다시 만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