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원게시판

당원광장 / 당원게시판
조회 수 2018 댓글 5 조회 수 2018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아름다운 '황조가', 그러나......


펄펄 나는 저 꾀꼬리
암수 서로 정다운데
외로운 이 내 몸은
뉘와 함께 돌아갈꼬


떠나버린 애인 차희를 찾다가 허탕을 치고 돌아오던 유리왕[기원전 37(?)~서기 18]이
나무에서 나는 새를 보고 지은 시다.
이 땅에서 학창시절을 보낸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이 유명한 '황조가'를 알 것이다.
자신이 가장 아끼고 사랑했던 여자가 소리없이 사라진 후,
무너져 버린 가슴을 달래며 애인을 떠나보낸 남자의 쓰리고 아픈 가슴을 노래한 연가.
'황조가'

이 시는 우리 역사에 처음 등장하는 연가다.
권력자의 이미지와는 잘 어울리지 않는 인간적인 면면이 느껴지는 시이다.
이별의 슬픔을 노래하고 있지만, 날고있는 꾀꼬리를 보며 서 있는 모습은
한 폭의 그림 마냥 자연친화적인 아름다움을 느끼게 해준다.


이렇게 떠난 여인을 두고 절절한 아픔을 노래한 유리왕이
자기자식을 죽이라고 명했다면, 그것도 죽을 죄를 지은 것도 아닌 아들을
죽이라고 했다는 사실은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사랑을 알고 그 고뇌를 아는 사람인 유리왕이 어떻게 그런 일을 할 수 있었을까.


우리 역사상 자식에게 죽음을 강요한 첫번째 주인공이 된 유리왕.
적개심의 발로인 타자를 죽음에 이르게 하는 행위는
인간자체에게 파괴적 본능이 있다고해서 이해될 일은 아니다.
설령 그러한 것이 무의식의 본능의 결과라 해도 우리는
이성적인 판단으로 자신을 통제하고 죽이고 싶도록 미운 상대를 잊어주거나
마음으로부터 버리므로 본능의 충돌을 억제한다.


그런데 왜 유리는 자신의 둘째 아들이자 장차 왕위 계승자인 해명에게 죽음을 강요했을까?
죽음을 강요할만한 현실적인 이유가 있었을까?
아니면 유리왕 자신이 어떤 문제를 안고 있지나 않았을까?
해명태자가 왕위찬탈을 노려 죽임을 당했다는 후세 역사가들의 말은
신빙성이 없어 보인다.
가만히 앉아 있어도 차기 왕으로서의 승계가 이루어지는 해명이
그런 무모한 짓을 했다고 보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해명의 형으로 태자였던 도절은 겁이 많고 소심한 인물이었다.
유리왕 14년에 부여왕 대소가 화친을 제의하며 인질을 교환하자 했을 때
유리왕은 도절을 보내려고 하였는데 부여의 힘을 두려워한 유리왕의 고육지책이었다.

인질로 갔다가 행여나 죽을까 겁이 난 도절이 이를 거부하자
고구려는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고 말았는데
폭설로 인해 동사자가 속출하자 퇴각한 부여군으로 전쟁이 끝나게 되었지만
유리왕으로서는 장차 왕이될 사람이 자신의 목숨이 아까워
나라꼴을 엉망으로 만들었으니 유리왕은 장래가 암담하게 생각되었을 것이었다.


유리왕 20년에 태자인 도절이 죽자 유리는 3년 뒤에 둘째 해명을
태자로 세웠다.
해명은 용감하고 힘이 센 인물로 형 도절과는 질적으로 달랐다.


서기 3년. 사사건건 자신의 정책에 반기를 들며 대 부여 강경론을 펴던
졸본의 토착세력이 지긋지긋했던 유리는 위나암으로 천도를 했다.
졸본을 그냥 방치할 수도 없었던 유리는 그곳에 해명을 남겨 두었다.
졸본을 효과적으로 다스리는 일은 해명의 몫이 되었다.


유리왕이 부담을 느끼던 지역에서 해명은 많은 민심을 얻었고
그의 이름이 황룡국이라는 주변국까지 알려지게 되었다.
황룡국에서 그의 힘을 시험하려고 보낸 화살을 보기좋게 꺽어버린 해명은

"내가 힘이 센 것이 아니라 활이 약한 것 같소"라며 자신의 힘을 과시하였다.
한창 혈기왕성한 해명으로서는 황룡국왕이 얕잡아 보지 못하도록 힘을 과시한 것인데
이를 안 유리왕은 엄청나게 화를 내었다.
외교상의 실례를 범해 이웃나라의 원성을 샀다며
유리는 황룡국왕에게 불효막심한 자기 아들을 죽여달라고 했다.


이는 아주 기이한 해결방식이었다.
외교상의 잘못을 범했다면 그 처벌은 유리왕 자신이 하고
외교적사과는 후에 황룡국왕에게 유리왕이 하면 될 것인데


그러나 해명을 죽이려고 초청했던 황룡국왕은 해명의 사람됨됨이에 반해
예의를 갖춘 뒤 돌려 보냈다.
해명이 죽이기엔 너무나 아까운 인물이었다는 반증이기도 하겠다.

이렇게해서 황룡국과의 문제는 일단락이 되었음에도 유리왕은
태도를 바꾸지 않고 칼을 보내 자결하라는 엄명을 내렸다.
참으로 이해할 수 없는 유리왕의 처사였다.


왕위찬탈이 두려워서 그랬다고 한다면 역모의 죄를 씌워 합법적으로 죽이는 방법도
얼마든지 있을텐데 유리는 옹색하게도 불효라는 올가미를 씌워
아들을 죽이려 했다.

해명은 스물 하나의 꽃다운 나이에 스스로 죽음의 길을 갔다.


불효를 구실로 아들을 죽인 유리왕은 대체 어떤 인물이란 말인가.
유리왕이 말한 불효의 의미란 무엇이었을까.
왕의 자리를 이을 태자에게 왜 그토록 모진 죽음을 강요했을까.

이것은 유리왕의 어린 시절부터 껴안고 있던 평생의 고통이었다.


유리는 태어나면서부터 아버지를 보지 못했다.
아버지 주몽은 대소에게 위협을 느껴 졸본으로 도망을 갔기 때문이었다.
그리움과 증오의 대상이었던 아버지.


장난이 심했던 어린 유리는 새를 잡다가 남의 부인의 물동이를 깨트리고 말았따.
그 때 아비없는 자식이란 말을 듣고 무척이나 상처를 받았고
이 사건을 계기로 어머니에게서 아버지의 존재를 확인하고
징표가 어디있다고 전해 듣게 되었다.
사춘기시절을 온통 자기정체성확보에 쏟으며 징표를 찾아 해매였으나
쉬이 찾지를 못한 유리는 자신과 어머니를 버리고 홀로 살겠다고
도망간 아버지를 증오하기 시작했다.


우여곡절 끝에 집 주춧돌 밑에 있던 아버지의 부러진 칼을 찾은 유리는
이미 십대 후반의 나이가 되었고
그의 보호막이었던 사촌 금와왕이 죽기에 이르러 금와의 아들 대소가 왕이 된다면
대소에 의해 유리는 목숨이 위태로울 지경에 이르렀다.

어머니 예씨와 필사적인 도망을 하여 졸본으로 갔으나
아버지 주몽은 죽음을 맞고 있었다.
아버지는 야속하게 세상을 떠났고 아버지의 유일한 소생이었떤 이유로
주몽의 부인이었던 소서노의 자식들인 비류와 온조를 제치고 왕이 되었다.


그렇게 떠난 아버지.
유리는 비감과 원망이 교차하였을 것이다.
아버지를 원망한 긴 세월을 보상하고 그리움을 보상받을 기회를 얻지 못한 유리는
아마 죄책감으로 갈등하였을 것이다.
그로인해 자신을 벌하고 싶지나 않았을까.


효를 행하는 일은 아비있는 자식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도구였을 것이다.
해명의 행동에 상식 밖의 화를 낸 유리왕의 내면에는 이런 자신의 과거가 숨어 있었을 것이다.

평생의 죽음의 위협에 시달려 주변국과의 화해로운 관계를 유지하고픈 마음도 있었겠지만
자신의 힘만 믿고 아버지의 뜻을 거역한 해명에게서 자신의 모습을 보게된 것은 아니었을까.


유리왕은 그런 자식을 죽임으로써 자신의 효를 대행했다고 여겼을 것이다.
그는 문제를 정면에서 다루기보다는 피하고 도망가는 쪽이었고
문제의 원인을 자신에게서 찾기보다는 남에게서 찾는 미숙한 인격의 소유자였다.
유리왕의 성격이 얼마나 미숙했는 지는 그의 인생 행로를 따라가 보면 쉽게 알 수가 있다.


예술적 기질의 소유자였으며 히스테리칼했던 유리왕.
'제사에 쓸 돼지를 상하게 했다는 이유로 자신의 은인이었던 탁리와 사바에게
죄를 뒤집어 씌워 죽여버렸다.
탁리와 사바는 토착세력으로 그들의 도움으로 왕권을 강화할 수 있었던 유리왕으로선
배은망덕한 행위였다.

그리곤 유리왕은 병이 들었다.
탁리와 사바의 해원굿을 해주자 병이 나았다는 것으로 보면
불안정한 심리상태가 병의 원인이었던 것같다.


극도로 자기중심적인 유형의 사람들은 육체적병이 아닌 심리적 공황에서
자주 병변을 일으키지 않는가.
탁리와 사바를 죽이고 나도 편치 않으니 날 내버려 두라는 암묵적 시위였지나 않았을까.


민심이 흉흉해진 졸본을 떠나 위나암으로 도읍을 옮긴 유리왕은 정사는 돌보지 않고
사냥으로 소일하며 닷새나 왕궁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정사를 돌보라는 대보 협보가 충고를 하자 그의 관직을 삭탈하고
관가의 정원을 지키라고 할 정도로 타인의 충고를 받아 들일 수 있는 아량을
갖지 못했던 유리왕은 열등감과 자아가 불안정하여 매사에 예민했고
유리왕과 해명의 비극은 고구려왕실에 연이은 비극을 자아내었다.


그가 바로 호동왕자라 불리우는 유리왕의 손자이다.


다음 편에 계속 ~

  • 아나레스 2.00.00 00:00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이 글의 용도를 여쭈어봐도 될까요?(조심스럽게 ㅎ)
  • 오디세이 2.00.00 00:00
    심오하게 읽었습니다.^^ 저는 고사(故事)를 싫어하는데, 그 속에서 우리 자신의 고태적 원형을 대면할까 두려운가 봅니다.
  • 로자 ☆ 2.00.00 00:00
    아나레스 / 오늘 늦잠을 자버렸어요. 빌리 홀리데이를 쓸려다가 제 홈에 잊을 수 없는 사람들이란 인물에 관한 코너에서 길어올린 거야요. 노상 그런 인물에 관한 이야기라면 죄다 수집하거든요. 근데 제가 책으로 쓰기 전에 고종석씨가 먼저 연재를 하더군요. 온 라인에. 문단의 카스트에 제가 또 한 번 진거죠. 뭐. ^^
  • 아나레스 2.00.00 00:00
    그렇군요...부지런하시네요. 또 하나의 카스트를 깨는 로자...!
  • 왼쪽눈물 2.00.00 00:00
    당 게시판에서 늘 느끼는 점은 좋은 이야기들이 많다는 것 입니다. 아직 배우고 느껴야 할 게 많다고 항상 생각합니다. 재미있게 읽고 있습니다. 고맙습니다 로자님.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노동당 후원 안내] 노동당을 후원해 주세요 노동당 2017.11.08 83330
76852 「진보의 재구성 사수!」 중재안을 제안합니다. 함께 고민해 주십시오. 10 강상구 2011.06.14 4864
76851 「진보의 재구성 사수!」 중재안에 대한 당원 여러분들의 의견 정리 2 강상구 2011.06.16 3981
76850 [진중권]탄핵파동을 잊었는가? 35 찔레꽃 2008.06.08 4992
76849 [진중권교수]'독도괴담'의 실체는 이렇습니다 4 찔레꽃 2008.07.28 4001
76848 [진중권 교수께]욕먹더라도 할 말은 하고 살자!! 31 찔레꽃 2008.07.17 6122
76847 [진중권 강연회 참가후기] 그래, 우리는 남이다! 6 파비 2008.09.04 5753
76846 [당대변인〕고 최진실씨를 사이버모욕하는 당대변인 논평 19 찔레꽃 2008.10.07 4324
76845 [노회찬 강연회 참가후기]이명박, 히틀러가 되고 싶은가? 5 파비 2008.09.05 5846
76844 <정치의 발견>(박상훈 지음) 만화와 함께 보는 소감문. ㅎㅎ 3 file 철이 2012.02.24 6221
76843 <사람과공감>새집맞이 개소식에 여러분들을 초대합니다!!! file 박수영 2014.09.29 3354
76842 <백만송이 요양보호사들의 아우성에 힘을!> 2 최현숙 2011.07.30 3854
76841 <두리반 문학포럼 네 번째> 심보선 시인_ 우리가 누구이든 그것이 예술이든 아니든 다큐지오지야 2010.10.20 4058
76840 <동영상>르몽드 디플로 주최 - 지젝 콜로키움 / 최진석 수유너머 대표 헛개나무 2014.05.27 4257
76839 <당원이 라디오> 5+4, 조선일보, 노회찬 대표 인터뷰 다시듣기 1 @如水 2010.03.09 3829
76838 <노동당 청소년위원회(준) 위원장직을 공동사퇴하며> 신원 2014.11.10 3971
76837 < 대전의 화약고, 한화 대전 공장 폭발사고 진상규명과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촉구 긴급 기자회견 > 대전광역시당 2019.02.18 2349
76836 못자리를 돌보며: 욕망과 싸우면 필패한다 이기연 2012.06.01 5823
76835 나는 희망을 본다 1 이기연 2012.03.16 4158
76834 비 바람이 부는 수원공장 중앙문 앞 부당해고 369일째! 2 삼성부당해고자 2011.12.01 3870
76833 진주의료원을 폐업시키려면 정부와 8대 공기업, 13개 국립대병원 먼저 폐업시켜라! file 이근선 2013.04.20 4000
76832 [트윗토크] "다들 너무너무 잘나서 탈이다" 1 김오달 2010.10.13 4227
76831 [토요평학] (평택역 쌍용차천막); 이번엔 19시. 장석준,"신자유주의의 탄생"(책세상) 저자도 참석예정! 안길수(수원오산화성) 2013.02.20 3374
76830 [토론회] "한 평 반의 휴게권리" file 홍원표 2010.12.07 3180
76829 "제2의 용산, 전주참사를 막아주세요" 김오달 2010.10.14 3237
76828 "이 지옥같은 시간 지나면 좋은 날 올거란 믿음으로" 2 김오달 2009.10.11 3059
76827 "비정규직은 대학졸업후 당신의 미래" 6 김오달 2010.11.03 3229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 2956 Next
/ 29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