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례대표와 관련한 이런저런 이야기들이 나오고 있군요. 이번 총선에서 비례대표 의석을 많이 기대하기가 힘들다는 판단에서인지 더더욱 이야기들이 무성한 것 같습니다. 그 무성한 이야기에 저도 몇 마디 보태볼까 합니다.
들어가기에 앞서 우선 한 가지를 환기하고자 합니다. 그것은, 비례대표 명부 1-3-5..로 이어지는 모든 홀수 번호는 무조건 여성이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이건 선거법이 강제하는 사항이니까요.
지난 확대운영위에서 일단 재확인된 (여성)장애인-비정규직 우선 원칙을 놓고 여러 말이 오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이야기들을 듣다 보면, 뭔가 아니다 싶은 생각이 계속 드네요.
장애인-비정규직 비례대표를 세우는 것이 일종의 '생색내기'로 전락할 수 있지 않느냐는 우려도 있고, 장애인-비정규직 비례대표를 세우는 것이 본질이 아니라 장애인-비정규직의 이해관계를 잘 대변하는 게 본질이 아니냐는 이야기도 나오네요.
이런 이야기들이 틀렸다고 할 마음은 없습니다만, 일단 이렇게는 지적을 해야겠군요. 하다못해 '생색내기'가 되더라도, 장애인-비정규직 비례대표가 없는 것보다는 있는 게 낫겠지요. 그리고 장애인-비정규직의 이해관계를 잘 대변하기 위해서도, 다른 조건이 모두 같다면 역시 장애인-비정규직 비례대표가 없는 것보다는 있는 게 낫겠지요.
게다가 이런 이야기들이, 말 그대로 어느 정당처럼, (여성)장애인 후보가 없어서 바로 석 달 전에 정동영 지지선언을 했던 사람까지 영입해야 하는 이런 정당에서 나온다면 그나마 이해를 하겠습니다만, 진보신당이 과연 그런 정당인가요? 민주노동당 시절부터 당 운동을 열심히 해 왔고, 바로 지금 논란 대상에 오른 (여성)장애인 우선 원칙을 만들어 낸 장애인 운동이 지금 진보신당에 함께 하고 있지 않나요? 당의 트레이드마크인 심상정-노회찬과 함께, 중증 장애 여성 운동가인 박김영희 동지가 '공동대표'를 하고 있는 당이 진보신당 아니던가요?(아마 이거.. 한국 정당사상 처음이지 않을까 싶은데 말이지요) 또, 비정규직의 경우도, 당장 작년 비정규직 투쟁의 상징이었던 이랜드 노조에서, 이미 진보신당으로의 후보출마를 결의하지 않았나요? 그것도 전비연에서 민주노총 부위원장 후보로 출마시킨 적까지 있는 이남신 동지를 말이지요.
이렇게 당내 운동도 있고, 사람도 있는데, 도대체 '생색내기'를 왜 걱정해야 하는 겁니까. 정말로 '생색내기'가 걱정된다면, 이런 후보들을 비례대표에 출마시킨 책임을 지고, 이후 당 운동을 정말로 치열하게 만들어 가야 할 책임으로 그 걱정을 전화시켜야 하는 것 아닐까요?
또다른 한 편으로 이른바 '능력론'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물론 현실적으로 4년 동안 진보신당의 얼굴이 될 가능성이 높은 사람들이니, 가능한 대로 "제2의 심상정-노회찬"이 될 수 있도록 해야 하는 것은 당연할 겁니다.
그런데.. 이왕 "제2의 심상정-노회찬"이란 이야기가 나왔으니, 이렇게 묻고 싶습니다. 4년 전, 비례대표 선거에 처음 나올 때의 심상정-노회찬이, 지금의 심상정-노회찬만큼의 '능력'을 갖고 나온 것이었습니까? 특히 심상정 의원의 경우, 지금의 '능력'은 4년 동안의 국회의원 활동 동안, 그 활동을 감당하기 위해서 '개인적으로' 쌓아올린 것 아니던가요?
물론 민주노동당에 있던 10명의 국회의원 모두가 심상정 의원처럼 '개인적으로' 능력을 쌓아올릴 수 있었던 것은 아니지요. 그렇지만 거꾸로 보자면, 그것은 당이 국회의원을 지휘할 능력을 상실한 채, 국회의원 개개인에게 능력쌓기와 활동을 떠맡겨 버린 결과이기도 하지요.
무슨 말씀을 드리고 싶은 거냐면, 진보정당이라면, 당이 국회의원을 지휘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그 능력을 국회의원에게 심어 주는 방향으로 나가야지 바람직하지 않느냐는 겁니다. 특히나, 정말로 국회의원 숫자가 1~2명에 그칠 상황이라면, 더더욱이나 그렇게 해야 하지 않을까요?
게다가, 그 '능력'이라는 게 뭔가도 진보정당이라면 다시 생각을 해 봐야겠지요. 흔히들 교수-전문가 등으로 생각되는 그런 '능력'만이 아니라, 자기가 살아오고 투쟁해 온 삶의 지혜를 바탕으로 하여 다른 사안들도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그런 '능력'도 진보정당이라면 필요한 것 아닐까요? 사실 심상정-노회찬도 교수나 전문가가 아니라, 바로 앞에 쓴 '삶의 지혜'를 바탕으로 한 능력을 지금까지 발휘해 온 것 아니었습니까.
제목에도 썼지만, 지금까지 쭉 읽어 오셨다면 제 입장을 대충 짐작하셨으리라 생각합니다. 예. 제 입장은 "1번 장애 여성-2번 비정규직" 원칙을 그대로 유지하자는 겁니다. 한 가지 덧붙이면, 만약 이걸 변경하면, 분명히 "니네들이 포기한 민주노동당도 하는 걸 왜 니네가 못 하냐?"라는 말, 반드시 들을 거라고 생각하기도 하구요.
그리고 그 원칙 하에서 비례대표를 "1번 박김영희-2번 이남신"으로 짰으면 좋겠습니다.
박김영희 동지는 아까도 언급했지만, 현재 공동대표이지요. 그리고 아시다시피 장애여성운동 단체 '공감' 대표를 오랫동안 역임했고, 우리에게 박경석 동지로 흔히 상징되는 지난 몇 년간의 장애인차별철폐운동에서, 가장 열심히 일했던 여성 운동가 중의 한 분이기도 하구요. 게다가 박김영희 동지를 1번으로 놓는다면, 장애 여성, 특히 중증 장애 여성 최초의 정당 공동대표라는 점을 최대한 활용하는 선거운동을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이왕 1번을 여성으로 놓는다면 여성 '비정규직'이 되어야 하지 않느냐는 의견도 충분히 일리가 있습니다. 그러나, 진보신당이 새로운 노동정치를 하고자 한다면, 그 노동정치는 '비정규직'과 같은 노동 내부의 차별을 적극적으로 극복하는 정치가 되지 않으면 안 된다면(그래서 '비정규직' 우선 원칙이 나오는 거겠죠), '장애' 역시 그런 노동 내부의 차별 요소가 된다는 점에서, '장애인'을 비례대표로 놓고 이런 방향의 적극적인 노동정치를 4년 동안 해 나가는 것이 진보신당의 길일 수 있지 않을까요?
2번 이남신 동지의 경우는 아까도 언급했지만, 이랜드노조가 직접 추천했다는 점만으로도 충분히 자격이 있다고 봅니다. 그리고 이것도 역시 아까 언급한 것이지만, 전비연에서 민주노총 부위원장 후보로 추천한(결국 낙선하긴 했지만) 경력도, 비정규직 운동 전반과의 관계맺음에도 도움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물론, 저는 민노당 시절부터 '일반' 명부가 사실상 '남성' 명부가 되어 버리는 것에 문제의식이 있던 사람이라서, 1번이 여성이 되면 2번은 자동적으로 '남성'이라는 고정관념도 깰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만약 2번으로 적당한 여성 비정규직 후보가 있다면, 그 후보를 2번으로 세웠으면 좋겠습니다. 이랜드노조와 이남신 동지도 이런 경우라면 수용하지 않을까요? 그러나 그런 여성 비정규직 후보가 없다면, 이남신 동지를 2번으로 세워서 이랜드 투쟁을 선거 기간 중에 다시금 힘차게 벌이고, 그 힘을 진보신당의 선거에 실을 수 있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