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모

by 진중권 posted May 29,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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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필요한 논쟁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엄정한 수사를 요구하는 당의 논평이 정치보복에 가까운 수사를 하라는 뜻도 아니고, 물증 없이 주변을 저인망식으로 뒤져 자백을 강요하라는 뜻도 아니고, 빨대를 통해 혐의사실을 마구마구 언론에 흘려 재판이 열리기 전에 여론재판부터 하라는 뜻도 아니었으니까요. 

어차피 장례식이 끝나고 조문의 분위기가 가라앉으면 인간 노무현은 곧바로 좌우의 반대자들의 손에 의해 냉정한 역사(history)의 평가에 맡겨질 것이고, 그의 열렬한 추종자들의 손에 의해 감동적인 이야기(mythos) 속으로 들어갈 것입니다. 어차피 서사(narrative)라는 면에서 역사도 신화만큼이나 허구적이기는 마찬가지지요.

역사나 신화나, 어원으로 보면 '스토리'지요. 각자 제 속 편할 대로 자기들의 스토리를 구성합시다. 기억은 끝없이 재조직되는 것이고, 그 기준은 결국 자기 정당화니까요. 그의 죽음에서 미안함을 느끼는 사람도 있고, 죄송함을 느끼는 사람도 있고, 불편함을 느끼는 사람도 있고, 그리하여 각자 다 열심히 자기 스토리를 써야 할 이유들이 있겠지요. 

기억을 재조직하는 것은 동시에 미래를 위한 것이지요. 물론 그 미래 역시 모든 사람에게 공유되는 것은 아니죠. 모든 이들은 각자 자기가 좋아하는 미래를 꿈꿉니다. 한나라당은 한나라당 대로, 민주당은 민주당대로, 진보신당은 진보신당 대로... 그렇게 각자 자기들 편할 미래를 위해 기억을 다시 조직하겠지요.

한나라당은 형식적인 조문이 끝나면 다시 노무현을 부패사범으로 되돌려 놓으려 할 것이고, 한때 노무현을 지우려 했던 민주당은 다시 그것을 정치적 자산으로 삼기 위해 노무현에 대한 역사적 재평가를 시도할 것이고, 진보신당은 짧은 조문 기간이 끝나면 다시 당 안으로는 이른바 정체성 확립 캠페인을 벌이면서 당 밖으로는 친노세력의 결집을 견제해야겠지요. 언론이야 뭐, 굳이 말할 필요도 없구요.

진보신당 내에서도 각자 정당화해야 할 과거와 각자 꿈꾸는 당의 미래가 있지요. 각자 자신들이 과거에 한 짓과 미래에 할 짓이 있지요. '싱크레티즘'이라 하던가요? 서로 생각과 이념은 달라도 공통의 목표를 위해 하나가 되는 것. 어차피 자신의 이념, 자신의 철학, 자신의 감성을 당의 '정체성'이라는 이름으로 모든 이에게 받아들여져야 할 가치로 강요할 수 있는 시대는 지났으니까요. 

이게 당게에 올리는 나의 마지막 글이 될 겁니다. 인터넷에 뻘글이나 올리는 별 볼 일 없는 나도 저들의 공격 대상이 되었고, 그 치졸하고 유치하고 집요한 공격으로부터 이제 나 홀로, 내 자신을 지켜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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