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정치도 그렇지만 국제정치나 외교도 그런 오해의 소지가 참 많은 것 같습니다.
디 디 마이어라는 빌 클린턴 정부의 참모가 책을 냈는데, 80만명이 학살된 르완다
사태 때 백악관은 학살이란 표현을 쓸 수 없어서 외교적으로 학살의 행동이란 단수로
표현을 했다고 합니다. 외국의 행동에 함부러 간섭할 수 없어서 그랬다는 건데 그런
발표를 했던 자기가 참 부끄럽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와 관련해서도 미국의 테오도르 루즈벨트 대통령은 세계평화를 위해서 러일
전쟁의 강화를 중재하면서 한국과 필리핀의 분할점거를 약속하게 됩니다. 전쟁을 중재
한 행위는 평화적인 것인데 그 한쪽에서 피해를 입은 우리의 입장에선 좋은 얘길 듣질
못할 것입니다.(이하 미국과 관련된 것은 앙드레 모로아의 미국사에서 인용합니다.)
다음으로, 3.1운동을 언급할 때 나오는 교수출신인 미국의 윌슨 대통령의 민족자결주의
나 이상주의인 자유주의(좌파 자유주의)만 해도 딱 떨어질만한 평가가 쉽지는 않습니다.
1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이 참전하지 않는 대신 유럽에 군비를 지원하고, 다시 독일이
배상금을 물어야 할 때, 그 배상금을 빌려주어, 오늘날 달러가 국제통화로 발돋음하는
고리를 만들었습니다. 독일과 유럽에서 모두 이자를 받으면서 국제금융시장을 만든
것이지요.
그런데, 세계평화를 위해 국제연맹안을 만들어 적극 이끌었던 윌슨 대통령은 정작 미국
시민들에겐 인기를 잃어 국제연맹안이 미국에서 부결되게 됩니다. 시민들의 동의없이
미국 군대가 자동으로 전쟁에 참여하게 된 규정이 문제가 된 것이었지요.
국제연맹이 만들어지면, 세계의 국경선은 그대로 고정되고, 어느 누구든 국경선을 침입
하면, 국제연맹의 가맹국들이 자동으로 참전하여 전쟁을 방지하겠다는 이상주의적인
평화안이었습니다. 세계평화라는 관점에서 보면 참 이상적이고, 실리나 이득만을 추구
하는 보수주의 혹은 현실주의에 비해 좌파적인 자유주의이긴 하지만, 당시 일본의 식민
지였던 한국의 입장에선 반길 수가 없는 안입니다. 국경선이 고정되면, 식민지인 한국은
독립전쟁을 할 수가 없는 것이니까요.
정치라는 것이 한쪽에서 보면 정의로운 것이, 강자이든 약자이든 사회구성원 하나하나의
입장이 되면 불공평한 것이 될 수도 있기 때문에, 박사님이 장점만 보는 관점도 큰 강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 전공인 공학에서 보면, 되는 것 같기도)원자 배열을 크리스탈 구조에소 볼때 불순물일경우 그 배열에 효율은 에너지 손실이 줄어 듭니다.
에너지에 보존 법칙 1장을 설명하자면
모든에너지는 사라지는것이 아니다" 입니다. 이런것을 효율적으로
하고, 도무지 잘 조화될 수 있는 것 같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자유와 권리를 연결짓고
다시 평등과 의무를 연결지어 생각하면 좋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권리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행사할 지는 자유라서 약자 혹은 타인을 배려해서 양보하거나 자율적인
권리자제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의무는 평등이라서 그 누구도 의무를 회피(이것은 대법칙 물리학에서 보아도 말이 안됩니다" 서로에 존재를 가까이 느끼고 안정된 상태에서만이 효율과 오류를 수정이 가능 합니다.
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미국에서는 현실주의를 우파 보수주의라고 하고, 시장 경제 자유주의를 좌파라고 하고,
자유주의라고 칭합니다. 한국에서 흔히 신자유주의라고 하는 것중에는 뉴욕타임즈
컬럼니스트인 토마스 프리드만의 저서 "렉서스와 올리브 나무"에서 인용되는 시카고
학파의 신경제학을 혼동해서 부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죄수의 딜레마 등으로 인용되는
수학자의 확률이론에서 파생된 신경제학 이론으로, 남미의 한 국가에서 대통령이
시카고 대학유학을 거쳐 도입한 신경제학 이론으로 경제가 파탄되면서 신자유주의라고
잘못 불리게 된 것입니다.
국제정치학이나 미국의 네오콘 등으로 불리는 신자유주의 혹은 신보수주의는 죠셉
나이 교수의 정의에 따라서, 과거 보수주의나 신현실주의를 이끌었던 군사적 힘이나
경제적 힘이 아니라 문화적 힘(법제도, 헐리웃이나 미국의 음악 등 문화에 의한 세계
경찰 국가역할)으로 세계의 다른 나라가 나쁜 짓을 못하게 미국이 통제를 해야 한다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나라 대학들이 최근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시카고 학파들의 이론을 대거 가르치
면서, 심지어 행정 고시 준비 목적으로도 많이 가르치는 맨큐의 경제학이라는 신경제학
이론이 인기있는 이론이 되었고, 따라서 이것을 신자유주의라고 잘못 부르게 된 것입
니다. 케인즈나 고전경제학과는 달리 확률이론에 근거해서 경제주체가 모두 이기적인
행동을 할 경우를 가정하고, 국가가 경찰국가가 나쁜 행위를 하는자를 규제해야만 공정
한 경쟁이 이루어진다는 것을 말합니다.
암튼 국제정치학 혹은 외교학에서 말하는 신자유주의는 바로 국제연맹안을 창안하고
이끌었던 미국의 윌슨 대통령의 자유주의(좌파 이상주의)에서 문화를 교류함으로써
세계가 협력할 수 있다는 이상주의에서 "문화"라는 요소만 빼왔다고 해서 신자유주의
라고 붙여진 것이긴 하지만 실체는 윌슨 대통령의 반대쪽 입장인 미국이 국제경찰
역할을 해야한다는 현실주의, 보수주의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에 네오콘 즉 신보수주의
라는 애칭을 가지게 됩니다. 이처럼 한사람의 외국 정치인이 한국을 비롯해 세계에
미치는 영향을 참 큰것 같습니다. 일장일단이 있는 것이겠지요.
참고로, 한국은 일본식으로 번역된 유럽사상 체계를 가지고 있어서, 사회주의 혹은 공동
체 책임주의를 좌파라고 하고, 미국의 경제학에 따르는 시장자유주의를 우파라고 생각
하지만, 미국에서는 시장 자유주의를 좌파, 도덕주의, 종교주의, 그리고 주의 권리,
개인주의 혹은 개인책임 주의를 중요시 하는 현실주의를 우파, 보수주의라고 합니다.
사회주의나 민족주의 등은 급진파라고 분류되지요. 용어의 혼동이 많은 오해를 낳고
있는 것이지요. 언론기사나 식사자리에서의 상식얘기만 듣고, 별도로 원전을 찾아서
평생 공부를 별도로 하지 않으면 잘못된 상식에 사로잡혀 살게 될 수도 있겠지요.
마지막으로 50년, 100년이 지나도 잘못된 상식이 절대로 바뀌어 지지 않는 예를 하나
들어 볼께요. 오전 11시 59분 다음엔 몇시 몇분이 되나요? 한국이나 일본은 오전 12시
1분 등으로 진행이 되겠지요. 그래서 영어로 표시할 때도, 11:59 AM 12:00 AM 이렇게
쓰지요. 일본과 한국만요. 외국은 11:59 AM 12:00 PM이 됩니다. 정오가 지났으니
오후라고 표현하는 것이지요. 유학생이 영어로 시간을 표시할 때 흔히 범하는 오류이
기도 합니다.
이처럼 우리가 흔히 상식으로 알고 있는 것중엔 선생님한테 배워서 그대로 따라하는
제자가, 다시 선생이 되어서 100년이 넘어도 원래의 사실과는 다른 잘못된 상식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제자를 기르기 때문에 시간이 아무리 지나도 알아낼 수 없는 진실
들이 참 많다고 생각합니다. 열심히 공부해서 잘못된 상식을 파괴해가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한마디로 기득권에 코에걸면 코걸이식에 좃까는 소리들을 사실로 받아 들이면 안된다는 겁니다.
2008.06.14 14:39
'신자유주의'용어의 혼동과 잘못된 상식 파괴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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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유주의정책 멀리 있지 않습니다. 김대중, 노무현정부에서 일부 봤고, 이명박정부에서는 노골적으로 보고 있습니다. 줄푸세라고 하지요. 한나라당 경선때 박근혜가 얘기했고 이명박이 고대로 받아들였죠. 재벌대기업만을 위한 규제완화, 극단적인 민영화, 재벌과 특권층을 위한 법인세 소득세 인하, 노동자와 서민의 저항을 때려잡기 위한 강력한 공권력 행사(법질서 확립, 사회기강 세우기)가 바로 신자유주의 정책입니다. 일단 워밍업 차원에서 본질에 관한 논문을 소개한 다음 앞으로 구체적인 사례와 정책을 가지고 얘기해보겠습니다. 건강한 논쟁이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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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정토론문】 강 상 구(신자유주의의 역사와 진실 저자) 1. 하이에크 재등장의 배경 1940년대 이후 케인즈 경제학에 의해 완전히 비주류의 자리로 밀려났던 하이에크가 이른바 ‘세계화’시대에 다시 재등장하게 된 원인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1) 장기불황의 시대에 부르주아의 선택 - 하이에크의 ‘신자유주의’는 1950-60년대의 장기호황이 끝나고 세계적인 불황이 시작된 후 케인즈주의적 전통이 가장 약했던 나라에서부터 정부정책으로서 도입되기 시작한 것이었다. - 따라서, 하이에크의 사상은 우선적으로 ‘불황극복’이라는 목표에 충실한 사상이었다. 곧, 그 전 20년 간 지칠 줄 모르고 성장하던 경제가 주춤하면서 불황국면에 접어들었을 때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 도입된 것이 하이에크의 사상이었던 것이다. - 불황을 극복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으나, 70년대의 불황은 잉여가치 창출을 위한 새로운 생산방식이 만들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닥친 것이었으므로 부르주아로서는 ‘비용을 줄이는 방식’으로 불황극복전략을 짤 수밖에 없었다. - 비용은, 힘없는 부문, 그러니까 사회적으로 혹은 개별 기업 안에서 비용을 줄여도 별 저항이 없을 노동자, 농민들에 대한 복지부문에서 주로 감축되었다. 그리고 그 부담은 세계체제 안에서 지속적으로 주변부로 전가되었다. - 이런 배경 속에서 채택된 경제사상이 바로 하이에크식 신자유주의이므로, 하이에크의 주장이 어떠한 내용인지는 쉽게 짐작할 수 있다 - 게다가, 세계적인 불황이 70년대 이후 90년대 말까지 이어지는 가운데 각 나라는 단순히 경제적인 측면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적으로도 신자유주의적 시스템으로의 보다 철저한 전환을 필요로 하게 되었고, 이에 따라 단순히 경제이론이 아니라 사회철학적으로 신자유주의적 논리를 체계화한 사상가가 더욱 부각되게 된 것이다. - 하이에크 사상의 본질은 “하이에크, 자유의 투사인가? 독재자의 앞잡이인가?”에서 적절히 설명하고 있는 바와 같다. 2. 하이에크의 사상1) ■ 하이에크가 노골적으로 유산자의 자유를 옹호하는 것은 분명해 보이나, 그 논리를 조금만 더 짚어보도록 하겠다. ○ 자생적 질서, 시장경제, 발견적 절차, 문화적 진화, 열린 사회, 자유 - 인간이 살아가면서 알게 되고 활용하는 지식은 불완전하므로, 인간의 특징은 구조적으로 무지하다 - 그런데도 인간들이 사회를 이루고 살 수 있는 것은 도덕규칙, 전통, 법 등의 행동규칙이 있기 때문이다. - 행동규칙은 인간이 어떤 행동을 하면서 고려해야 할 복잡한 상황에 대한 정보를 이미 내포하고 있다. 마치 ‘신호등’과 같은 존재라는 것이다. - 따라서, 인간은 행동규칙을 지키면서 사회질서를 형성할 뿐이며, 누군가가 목적의식을 가지고 사회질서를 만들어 낸 것은 아니다. 이것이 바로 ‘자생적 질서’다. - 자생적 질서 속에서 인간은 서로 ‘자유’롭게 다양한 삶을 추구할 수 있고 평등하다. 반면에 자생적 질서와 반대되는 ‘인위적 질서’ 속에서는 누군가가 통제를 하기 때문에 인간은 자유롭지 못하며 불평등하다. - 자생적 질서의 대표가 바로 ‘시장경제’다. - 시장 경제는 ‘가격 시스템’을 통해서 성공하는 인간과 실패하는 인간을 판정해 준다. 따라서 그 속에 속한 개인은 실패를 딛고 더욱 현명해지게 되며 성공적인 지식은 계속 확산된다. 이를 ‘발견적 절차’라 한다. - 반면 오류 투성이의 지식을 가지고 경제를 통제하려는 시도는 인위적 질서로서 이 때 경제질서는 몰락할 것이다. - 자생적 질서의 기초인 행동규칙은 후천적으로 습득되고 문화적으로 전달된다. 이 때 여러 가지 행동규칙들 중 인구의 증가를 가능하게 하는 규칙들이 선별되는데, 이것이 ‘문화적 진화’다. - 이 과정에서 연대, 정의 같은 원시사회의 도덕은 도태되고, 소유권 모럴, 계약의 충실성 등과 같은 규칙들이 생성된 것이다. - 자생적 사회는 열린 사회이다. 열린 사회의 도덕은 자본주의의 윤리이고, 닫힌 사회의 윤리는 사회주의의 윤리이다. 따라서, 복지국가적 시도는 반동적인 것이다. ○ 법, 법의 지배 원칙 - 자유롭기 위해서는 법이 필요하다. - 이 때 법은 자생적 질서의 기초를 형성하는 ‘정의로운 행동규칙’의 성격을 가진 법이다. - 법규칙은 첫째 그 적용에 있어서 일반적이어야 하며, 둘째, 금지된 행동만을 기술해야 하고, 셋째, 확실해야 한다. - 반면 특정의 행동을 강요하는 법치국가적 법은 잘못된 것이다. 이러한 ‘처분적 법’은 법의 지배 원칙을 위반한 법이다. - 법의 지배 원칙은 특히 개별 경제주체들의 행동자유 및 사적 영역을 확립하는데 그 취지가 있다. 민법, 형법이 그러한 것인데, 반대로 사법이 아닌 공법, 곧 처분적 법률은 자생적 질서를 폐쇄된 조직질서로 전환시키는 법률이다. 공법은 정부조직들과 구성원들을 주어진 과제를 달성하기 위해 인위적으로 조정하는 기능을 한다. - 사법은 재판관들의 개별적인 의사결정 과정의 결과 형성된 것이다. 재판관들은 언어로 표현되지 않는 암묵적인 사회적 행동규칙에 의존하고, 과거의 사례들의 추론과 그 결과를 응용하는 훈련된 직관에 기초하여 판단한다. - 그러나 복지국가가 등장하면서, 사법의 시대가 ‘입법의 시대’로 전환되었고, 공동체 구성원들의 행동이 인위적으로 조작되었으며 이들 간의 거래가 규제되기 시작했다. ○ 민주주의, 법치국가, 부패된 민주주의, 이상적인 헌법 모델 - 자유주의는 법이 정의로운 행동규칙의 성격을 취하고 있을 때, 그 법을 법다운 법으로 간주한다. 반면, 민주주의는 법이 주권자로서 다수의 유권자들의 의지로부터 비롯된 것이면, 그것이 무엇이든 법으로 인정한다. - 국가의 기능은 보호국가적 기능과 서비스 기능이 있다. 실질적 의미의 법치국가는 개인규칙의 심판자로서의 기능을 행사하기 위해 필요한 때에만 강제를 행사하며, 서비스를 행사하기 위해 엄격히 제한된 형태로 자원을 이용해야 한다. 그러나, 형식적 의미의 법치국가는 무제한적 권력을 갖고 있다. - 법치국가는 사회적 정의를 실현할 수 없으며 실현하려고 해도 안된다. 다만, 개개인들의 자유를 보장해줌으로써 자생적 질서의 ‘창조적 힘’을 키워야 할 뿐이다. - 그러나 현대민주주의는 다수가 결정한 것이면 무엇이든 정부가 행해야 한다는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원래 민주주의는 제한된 민주주의였고, 의회의 입법활동이나, 그 밖의 활동은 사법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만 허용되었으나 주권재민사상이 등장하면서 형식적 의미의 법치국가가 전면에 등장한 것이다. - 그래서 현대민주주의는 무법적이고 부패했다. 부패된 민주주의는 유권자들과 이익집단에게 특혜를 주고 대신 표를 얻는다. - 따라서, 정부의 권력을 행사하는 사람들의 권력남용을 막아야 하며, 민주주의의 무제한적 권력을 제한할 이상적인 헌법모델을 만들어야 한다. 3. 하이에크는 옳은가? ■ 하이에크는 자유헌정론 서문에서도 밝혔듯이 기본적으로 사회주의권에 대항해서 서구의 가치를 옹호하겠다는 의사를 분명히 밝히고 있다. 따라서, 자본의 이해에 충실한 사상가이다. 그러므로, 발제문에서 지적했듯이 노골적으로 자본주의를 옹호하는 논리가 도처에서 발견된다. ○ 시장시스템은 구성원들의 성공과 실패에 대한 판정을 토대로 성공적인 지식을 확산시키는 ‘발견적 절차’를 가지며, 그 과정에서 구성원들은 점차 현명해진다. - 우선 이 주장은 부분적으로 옳다. 실제 시장시스템의 ‘발견적 절차’란 경쟁메커니즘을 설명하는 표현으로 이해되는데, 다만 그로 인해 구성원들이 현명해진다고 볼 수는 없다. ‘발견적 절차’를 통해 경쟁은 격화되겠지만, 그것 때문에 구성원들이 ‘전체적으로’ 현명해져서 자신의 처지를 개선시키는데 모두 성공하지는 못한다. 자본주의 탄생이래 계속되는 빈부격차가 이를 증명한다. 가격시스템에서 실패한 구성원들은 현명해지기 이전에 ‘도태’한다. 다만, 이와 관련해서 특이한 점은 자본주의 하에서 살았던 사람들이 사회주의 하에서 살았던 사람들 보다 일반적으로 훨씬 더 영악하다는 점이다. 구성원들이 현명해진다는 건 이런 정도 아닐까. - 시장시스템에서 판정하는 성공은 옳은 것인가. 동아시아 위기의 원인 중 하나였던 조지 소로스의 금융투기는 한때 대단히 성공적이었는데 그렇다면 우리는 이를 옳은 것이라고 칭송해야 하는가. ○ 자본주의는 열린 사회이고 사회주의는 닫힌 사회이며, 사회주의, 복지국가, 분배적 정의 등은 문명의 진화에 역행하는 것이다. 또한 시장경제라는 자생적 질서가 진화과정을 거치면서 점점 더 경제성장을 이룰 것이고 그 과실은 가난한 자에게도 돌아갈 것이다. - 우선 자본주의사회는 형식적으로는 몰라도 실질적으로는 전혀 열려있지 않은 사회이다. 게다가 신자유주의가 창궐하고 있다는 현 시점에서도 실제 유럽의 복지는 그렇게 많이 후퇴하지 않았는데, 하이에크의 말대로라면 유럽은 여전히 반동적인 사회이다. - 또한 신자유주의는 실패하고 있다. 신자유주의가 세계 거의 모든 나라에 도입됐지만, 불황은 계속되고 있다. 오직 다른 나라의 불황을 토대로 호황을 누리고 있었던 미국 마저 불황의 짙은 징후에 싸여있다. WTO 출범으로 미국과 초국적 자본은 전 세계의 완전한 신자유주의화를 꾀하고 있으나, 그 성공 여부는 미지수이다. 또한, 설사 세계경제가 호황에 들어선다고 해도 그것이 미국 및 제3세계 국가의 일부 지배자들을 제외한 세계 민중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 현대민주주의는 무제한적인 민주주의이며 부패한 민주주의다. - 하이에크가 비판하는 민주주의는 의회민주주의 곧 부르주아민주주의이다. 따라서, 이 속에서 관철되는 무제한적인 힘의 지향은 곧 자본가에게 유리한 것이다. 그러므로 민주주의가 실제로 민중들 전체를 대변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오히려 민주주의의 힘은 전혀 무제한적이지 않다고 봐야 한다. - 의회민주주의는 실질적인 의미의 민주주의로 강화되어야지 결코 축소되어서는 안된다. 하이에크의 논의 안에서는 민중을 구성하는 개인의 자유를 좀더 보장함으로서 부르주아 민주주의로부터 각 개인의 의사가 보다 존중되는 민주주의로 넘어가자, 그러기 위해서 의회민주주의의 전횡을 견제할 필요가 있다는 정도의 긍정적 힌트를 얻을 수는 있다. - 다만 하이에크의 주장은 무제한적인 민주주의를 견제하기 위해서 이상적인 헌법을 만들어 입법의회의 법제정권력을 제한해야 한다는 것인데, 그렇다면 헌법이 규정하는 범위 밖의 내용은 과거처럼 사법을 만드는 재판관이 만들어야 한다는 뜻인가. 만약 그것이 사실이라면, 이는 그나마 한계가 많은 의회민주주의 마저 부정하는 발상이다. 사법재판관들이 옳을 것임을 어떻게 보장할 것인가. 제3세계에서 IMF가 도입될 때 의회민주주의가 무시되었던 과정이 반복되었던 것은 우연이 아닐지도 모른다. 4. 한국에서 하이에크의 ‘좌충우돌’ ■ ‘하이에크’와 신자유주의는 분명 보수적인 사상임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 신자유주의는 한때 진보적 외양을 띠고 출현했었다. 또 하이에크의 사상은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의 토대로서 그리고 철학적으로도, 진보성을 띤 것으로 인식되었다. 반면, 현 정부의 몇 안 되는 ‘개혁입법’들이 하이에크적 해석에 따르면 지극히 ‘반동적’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 한국에서 신자유주의의 도입 - 한국에서 신자유주의 도입은 ‘국가’와 ‘재벌’이 주도하는 경제시스템을 ‘민간의 자유경쟁’을 추구하는 시스템으로 바꾸자는 시도로서 시작되었다. - 새로운 정권의 출범과 ‘개혁’에 대한 대대적인 선전 앞에서 위와 같은 시도는 ‘부패한 국가’와 ‘독점적인 자본’을 개혁하자는 의미로 이해되었다. - 그래서, 과거 한국사회를 ‘국가독점자본주의’로서 규정한 진보세력의 입장에서 신자유주의는 개혁적이고 진보적인 사상으로 이해될 소지가 충분했다. - 또, 하이에크는 자생적 질서 속의 삶은 평등하고 다양하나 인위적 질서 안의 삶은 불평등하고, 지배종속관계라고 주장했는데, 이는 장기간 군사독재를 경험했던 한국 민중들에게는 진보적인 주장으로 이해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김영삼 정권 시절 이후 과거 진보세력의 이탈이 커지고, 시민운동세력이 대대적으로 등장했던 이유의 일단을 여기서 찾을 수 있다. ○ 진보세력의 혼란 - 과거에 진보세력은 ‘국가’에 대해 명백히 반대입장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신자유주의의 문제점이 점차 드러나면서 현재는 마치 국가시스템을 옹호하는 듯한 슬로건을 내세우는 경우가 많다. 한가지 예로, 과거에는 공기업을 비난했으나 현재에는 민영화 반대를 외친다. 물론, 이 과정에서 공공성의 회복을 주장하긴 하나, 진보세력 내에서 입장이 아직 완전히 정리되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 진보세력이 신자유주의를 앞장서서 옹호하는 정부에 반대해서 마치 국가시스템을 옹호하는 듯한 주장을 하는 것은 매우 복잡하고 어려운 일이다. 왜냐하면, 케인즈주의적인 국가를 한번도 경험하지 않은 국민을 향해서, 국가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먼저 설명하고, 그 다음에 국가가 공기업을 공공성을 살려가면서 운영해야 한다고 말해야 하는 이중고를 겪고 있다는 것이다. - 여기서 분명히 할 것은, 한국은 과거에도 충분히 사적 경쟁이 난무했던 국가였다는 점이다. 국가가 산업을 통제했다는 의미에서는 국가자본주의이지만, 개인에 대해서 아무것도 해주지 않았다는 점에서는 신자유주의적이었다. ○ 현재 - 한국에서 신자유주의는 국가주도로 이루어졌다. 하이에크는 공식제도가 사회적 과정을 조종할 수 있는 가능성은 제한되어 있다고 하였으나, 한국에서 신자유주의는 국가주도로 이루어졌다. - 하이에크의 말처럼 ‘부패된 민주주의는 지지표와 특혜의 교환’임이 분명하다. 이는 독점자본과 국가의 관계로 이해해도 무방하다. 그런데 (제3세계의, 또는 한국적) 신자유주의 하에서 이는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 한국에서 신자유주의 개혁은 실패했다. 그 이유에 대한 평가는 다양해서, 첫째, 신자유주의 도입이 국가주도로 이루어졌기 때문이라는 주장이 있고, 둘째, 흔히 시민운동가들이 비판하는 것처럼 개혁이 미진했기 때문인데, 이는 기본적으로는 신자유주의가 재벌시스템과 최악의 형태로 결합되었다는 이유로 인해서라는 것이고, 셋째, 신자유주의 프로그램을 도입할수록 경제상황은 악화될 것인데, 그 이유는 신자유주의가 어느 나라에서도 불황극복에 성공하지 못했고, 90년대 미국의 호황은 신자유주의 때문이 아니라 미국이 세계체제 내에서 차지하고 있는 최상층의 위치 때문이라는 것 등이다. - 신자유주의가 군부독재, 국가독점자본주의를 반대하는 사상임은 확실하나, 민중의 힘이 아니라 자본과 국가의 힘으로 도입되었기 때문에 그것은 자본의 이해에 복종할 수밖에 없다. 새로운 지배-종속관계의 출현일 뿐이라는 말이다. 한국의 신자유주의는 재벌과 초국적 자본에 봉사하는 체제다. ○ 하이에크의, 철학적 측면에서의 매력 - 하이에크는 민주주의의 횡포를 비판하면서 아무리 다수의 결정이라도 소수의 권리를 침해하지 못한다고 한다. 또한 시장에서는 다수파나 소수파의 욕구에 대해 차별하지 않는다고 한다. - 이는 마이너리티 운동가들에게 매력적으로 들릴 수 있다. - 그러나, 하이에크는 문화의 진화 과정에서 인구를 번창시키는 쪽이 성공한 것이라고 하면서 암묵적으로 ‘자본주의적 다수의 지배’에 손을 들어주고 있다. 또한, 시장에서 소수파의 욕구는 차별받지 않으나 도태되거나 상업적으로 이용될 뿐이다. 자본주의와 결합한 자유주의는 소수파를 옹호하지 못한다. - 하이에크는 사회를 인위적으로 구성하고자 하는 이성중심주의를 끊임없이 비판했다. - 이는 이성중심주의, 발전적 역사관 등을 중심으로 구성되었던 근대철학에 회의적인 탈근대적 문제의식을 가진 철학자들에게는 호감가는 주장이다. - 그러나, 하이에크는 진화주의적 역사관을 갖고 있고, 모든 제3세계가 진화를 통해 ‘미국’처럼 될 수 있다는 발상을 현실 속에서 강요한다. 여전히 근대의 틀 안에 있다는 것이다. 5. 자본에 의한 하이에크의 취사선택 ■ 현실에서 하이에크의 사상은 단지 취사선택되었을 뿐이며, 그 기준은 초국적 금융자본 중심의 ‘세계화’ 및 그 과정에서 각 나라가 처한 상황에 종속된다. 한국에서 하이에크사상은 신자유주의적 흐름과 재벌, 초국적 자본의 현실적 힘이 충돌하는 접점에서 현실화되는데 이는 전 세계의 공통적인 현상이다. ○ 신자유주의 시대≠자생적 질서 - 한국에서 신자유주의는 국가주도로 도입되었다. 하이에크가 비판하는 ‘처분적 법률’들이 시장경제의 주도자들에 의해 강요되었다. 규제완화 차원에서 폐기된 법률도 많고, 새로운 규제로 등장한 법률도 많다. 특히 재벌 및 초국적 자본과의 관련에 있어서 한국식 신자유주의는 이들의 이해와 긴장, 대립, 절충의 관계 속에서 형성되었다. - 그리고 이는 전 세계에서 거의 공통된 현상이다. 특히 제3세계에서 신자유주의의 도입은 WTO, IMF, 세계은행과 같은 초국적 기구나, 초국적 (금융)자본의 압력에 의해서 진행되었다. - 현재 세계경제는 미국 등의 몇몇 중심부 국가와 이들이 주도하는 국제기구, 국제협약 그리고 초국적 자본이 지배한다. 이들은 세계화시대의 ‘인위적 질서’이다. 제3세계 국가 민중들이 보기에 세계화시대의 경제는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움직이는 것 같고, 보이지 않는 손의 보다 원활한 운동을 위해 WTO와 같은 국제기구를 통해, 그리고 국내에서의 ‘신자유주의 개혁’을 통해 각종 규제가 완화된 것 같으나, 사실 그 ‘보이지 않는 손’은 초국적 자본이 전 세계적 차원에서 마련하는 잉여가치 창출 전략이라는 인위적 질서로서 다시 태어났을 뿐이다. 민중들만 그 ‘손’을 보지 못하고 있다. 초국적 자본은 세계적 차원에서 경제주체들이 수행해야 할 과제와 역할을 할당하는데, 이는 하이에크가 비판하는 간섭주의적 경제의 조직 질서와 유사하다. - 자생적 질서는 그 구성원들이 공동으로 추구할 구체적인 집단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질서가 아니지만, 자본주의 안에서 그리고 ‘신자유주의 개혁’의 시대 안에서 사회구성원들은 누구나 집단적으로 추구할 구체적인 목표를 부여받는다. 누구나 ‘돈벌이’에 매진해야 한다는 목표가 그것이다. - 신자유주의는 하이에크의 주장과는 달리 문화적 진화과정에서 자생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 신자유주의 시대 금융시장 - 신자유주의적 세계화가 가속화되고 있는 시대에 그 주체는 초국적 금융자본이다. 또한 세계경제 호불황의 기준은 주식시장의 등락에 맞춰져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 그런데, 세계경제를 쥐락펴락하는 금융시장은 전적으로 시장메커니즘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 아니다. 주식시장은 오히려 온갖 정치적인 이유로 변동한다. 주식시장은 세계 정치, 사회의 온갖 움직임들을 ‘가격화된 표현’으로 흡수한다. - 그런데, 어쩌면 하이에크가 바란 게 이런 것이었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세계화시대 주식시장은 세계 정치, 사회 상황에 대한 옳고 그름의 척도가 된다. 주식시장을 호황으로 이끄는 행위가 바로 올바른 행위이다. 올바른 행위란 가격시스템에서 승리하는 행위이니까. - 실제로 정부는 과거 케인즈주의 시절처럼, 시장에 개입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 대부분의 이유는 주식시장을 살리기 위해서다. ○ 국가 - 하이에크가 말하는 실질적 법치국가의 권한과 자원이용은 극히 제한되어야 한다. 이것이 신자유주의자들이 말하는 작은 정부(또는 작고 강한 정부)이다. - 그런데, 현실에서 신자유주의 정부의 실체는 자본 앞에서 작고, 노동자 민중에게 강한 정부이다. 또한, 중심부 신자유주의 국가는 제3세계에 대해서 강한 정부이다. - 하이에크는 국가가, 보호국가로서 강제권을 발동하는 기능과 서비스를 하는 기능이 있으며 이 양자는 엄격히 제한되어야 한다고 말하나, 실제로 국가의 강제권은 (초국적) 자본에게 위임된 형태로 혹은 (초국적) 자본으로부터 위임받은 형태로 자국의 노동력 관리 차원에서 민중에게 강력하게 행사되며, 서비스 기능은 민중에 대해서는 엄격하게 제한되나 자본에 대해서는 하이에크식의 ‘법치국가적 입법정책’의 외양을 띤 ‘규제완화’의 형태로 행사되며 이는 결국 차별적인 특혜 제공에 불과하다. - 작은 정부는 복지체제가 약화된 정부이나, 이런 상황에서도 군사비 등의 예산은 별로 줄지 않는다. 특히 미국의 경우 ‘군사적 신자유주의’라 불러도 무방하다. ○ 기타 - “모든 개개인들이 각자 서로 다르게 가지고 있는 가치의 잣대 및 삶의 방법, 선호구조를 서로 인정하고 존중하는 것이야말로 자유주의의 핵심적인 도덕 가치”이나, 한국에서는 아직도 국가보안법이 존재한다. 또한, 서구의 자유주의는 제3세계, 특히 반자본주의적 기치를 건 국가에 대해 적대적이며, 전쟁도 불사한다. ■ 이처럼, 하이에크의 사상은 현실에서 온전히 실현되지 않았으며 자본의 이해에 따라 적절히 취사선택될 뿐이다. 아울러, 현재의 시스템으로 잉여가치 창출이 더 이상 불가능해지는 순간, 하이에크는 자본에 의해 용도가 폐기되거나 혹은 함께 몰락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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맘 먹고 읽기 시작했는데.. 살림하는 아줌마로 산지 몇년되니 이거 이해하기가 영~ 어렵네여.. (사실 살림하는 아줌마 아니어도 이런글 다 어렵지 않나여?? 아닌가??!!) 쉽게 어캐 않되나여??!! 한편 답답하고 아쉽고.. 한편엔 서운하기도..(이렇게 따 시키나?? 싶어서..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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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 한마디로 특권층을 위한 특권층에 위해서 신자유주의가 외곡되고 이용되고 사기친다는 말씀입니다" 죄송 그냥 제식대로 쓰면은 반발이 심해서 먹물 티좀 내 봣습니다" 꾸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