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당에서 기본소득이 충분히 토론되길 바라며, 기본소득이 무엇인지에 대해 몇 가지 측면에서 소개하고 싶습니다^^.
아래의 글은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 홈페이지(basicincomekorea.org)의 <기본소득 소개> 일부입니다.
기본소득, 왜 필요한가?
신자유주의 체제의 경제위기는 항시적, 기본소득에 답 있다
기본소득이란 모든 사회구성원의 ‘적절한 삶’을 보장하기 위해 정치공동체가 모든 구성원에게 개별적으로 아무런 조건 없이 정기적으로 지급하는 것이다. 물론, 특히 오늘날에, 어떤 (정치)공동체가 구성원의 안녕과 행복을 추구하지 않는다고 말하겠는가? 그리고 이를 위한 이러저러한 방도가 없는 사회가 어디 있겠는가? 대표적으로 복지국가의 다양한 복지 제도와 정책이 그런 것이다.
하지만 기본소득에 대한 주장과 관심이 커지는 이유는 사회구성원의 안녕과 행복을 추구한다는 기존의 방책들이 이제는 별로 효과가 없거나 경우에 따라서는 반대 효과를 가져왔다는 인식 때문이다. 예를 들어 일자리가 곧 복지라는 명제 아래 완전고용을 추구하는 것이 복지국가의 주요 목표였지만 저성장 혹은 고용 없는 성장의 시대에 이것이 가능하다고 보기는 어렵다. 또 시장의 효율성을 통해 모든 사람의 자유와 행복을 보장하겠다는 신자유주의의 약속은 사실상 거짓이었음이 드러난 지 오래이다.
오늘날 기본소득의 필요성은 우선 경제체제의 운영 방식이 보이는 한계에서 나온다. 전 세계적으로 보면 1980년대 이후에, 한국으로 한정하면 1997년 이후에 본격화된 신자유주의의 특징은 불안정노동체제와 금융시장 자본주의의 본격화이다.
불안정노동체제는 비용 절감을 통해 이윤을 극대화하려는 기업의 전략 속에서 일반화된 사회적 양상이다. 이 속에서 노동자들은 한편으로 낮은 임금과 장시간 노동뿐만 아니라 고용 불안에 시달리며, 다른 한편으로 아예 일자리가 없어서 삶의 불안에 시달린다. 이런 사태가 가능했던 것은 1980년대 이후 자본-노동 사이의 힘의 관계가 바뀐 데 있다. 물론 여기에 더해 기계화와 자동화가 늘어난 것도 한몫했다. 특히 기계화와 자동화는 점점 고용 자체를 줄이는 경향을 띤다.
다음으로 금융시장 자본주의의 가장 큰 문제는 실물 경제와 무관한 방식으로 이윤을 추구한다는 것이다. 즉 적절한 일자리를 제공하는 것이 매우 제한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일종의 제로섬 게임처럼 누군가의 이득은 누군가의 손해를 수반한다.
그런데 어떤 경제체제이든, 생산-유통-소비가 적절하게 균형을 이루며 돌아가지 않을 경우, 그 체제는 무너질 수밖에 없다. 지금의 신자유주의 체제는 극단적인 이윤 추구 속에서 소득 분배가 너무나 불균형하게 이루어지기 때문에 다수가 소비할 수 있는 몫 자체가 심각하게 줄어들었다. 따라서 경제 위기는 항상적이다. 이보다 더 큰 문제는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삶의 조건을 빼앗기면서 사회 자체가 해체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현존 경제체제의 한계에 더해 생태 위기라는 더욱 큰 문제가 우리 앞에 놓여 있다. 생태 위기는 크게 보아 자원 고갈과 기후 변화로 인한 생태계의 위기를 가리킨다. 우선, 우리 문명을 떠받치고 있다고 할 수 있는 석유 자원을 생각해 보자. 석유 자원의 고갈 문제는 이미 오래전부터 운위되었는데, 이제는 국제에너지기구조차 2006년에 이미 피크 오일이 지나갔다고 말할 정도이다. 연료로서의 석유는 광범위하게 쓰일 뿐만 아니라 다양한 소재의 원천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석유 없는 세상은 지금과 많이 달라질 것이다. 다음으로 기후 변화도 심각한 문제이다. 온난화로 인한 해수면 상승은 수많은 해안가 도시에 직접적인 영향을 줄 뿐만 아니라 이른바 이상 기후로 인한 다양한 피해도 벌써 드러나고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이중의 문제에 대해 기본소득이 주요한 해법이 될 수 있는가? 다시 말해 소득과 자산에 따른 심각한 사회양극화를 넘어서서 모든 사회구성원이 적절한 삶을 누릴 뿐만 아니라 생태 위기가 극복할 수 있는 방도가 될 수 있는가?
우선 기본소득이 모든 사회구성원에게 지급된다면 최소한의 삶을 재량껏 누릴 수 있는 물질적 조건이 마련되는 셈이다. 그러면 당연히 소비가 어느 정도 늘어 경제가 좀 더 원활하게 돌아갈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재원을 무엇으로 마련하느냐에 따라 (소득세, 자본 이득세 같은 경우) 소득 재분배 효과가 나올 수 있다.
하지만 이뿐만이 아니라 또 다른 더욱 적극적인 효과가 나온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람들이 고용에 목을 매는 것은 다르게 먹고살 수 있는 방도가 없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다른 조건이 없다면 나쁜 일자리(저임금, 장시간 노동, 위험한 일)라도 마다하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기본소득이 주어지면 굳이 오랜 시간 일하지 않아도 되고, 임금이 적거나 위험한 일은 거부할 수 있는 여지가 생긴다. 이렇게 된다면 사람들이 더 많은 시간을 다른 활동, 예를 들면 문화 활동, 돌봄 노동, 정치 활동 같은 활동에 쏟을 수 있게 되어 이른바 문화 사회로 이행할 수 있고, 민주주의도 더욱 확장될 수 있다.
이런 효과의 연장선에서 기본소득은 생태 위기의 해법이 될 수 있다. 오늘날 생태 위기를 낳은 근원은 이윤의 극대화를 위한 과도한 생산과 소비라 할 수 있다. 자본은 살아남기 위해 더 많이 생산하고 더 많이 판매하려고 하며, 다수의 사람들은 이 속에서 그저 소비자로 존재한다. 즉 인격이 아니라 무엇을 얼마나 소비하느냐를 잣대로 자신과 타인을 바라보고 있다.
하지만 많이 생산하고 많이 소비한다고 해서 행복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깨닫게 되었다. 다시 말해 ‘좋은 삶’은 물질적 풍요에 있는 게 아니라 자아가 충만해지고, 인간 및 자연과의 관계가 풍부해지는 것에 있다는 것을 이제 어렵게나마 알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기본소득으로 인해 사람들이 더 적게 일하고, 비물질적, 문화적 활동에 더 많은 시간을 낸다면 우리는 지금과 같은 경제 성장이 아니라 삶과 자연의 증진을 원리이자 목표로 삼게 될 것이다.
분명 기본소득은, 실현된다면 이런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 올 것이다. 하지만 아직 다수가
기본소득을 지지하고 있지는 않다. 아마 그것은 낯설기 때문일 것이다.
이때 낯설다는 것은 현대 사회에서 소득이란 일한 대가로 돌아오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아무 조건 없이 기본‘소득’을 지급하는 것은 납득할 수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런 문제 제기에 대해 기본소득이 이러저러한 이유로 정당하다고 답할 수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