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소득은 왜 정당한가?
기본소득은 경제 우선의 논리를 뒤집는 시도, 경제는 인간적, 시민적 삶의 기초
오늘날에는 모든 사람에게 이러저러한 권리가 있다는 것을 부정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리고 모든 권리 가운데 가장 기본적인 것 혹은 출발점이 생명과 생존의 권리라는 것을 부정하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 사실 인간의 생명 혹은 생존은 개인의 권리가 성립할 수 있는 조건이므로, 생명권이나 생존권은 권리 이전의 권리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런데 권리란 어떤 정치공동체 내에서 혹은 그런 공동체를 통해서만 보장된다. 다시 말해 인간의 권리라고 말하지만 현실은 시민의 권리로 나타나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인해 정치공동체 밖에 혹은 정치공동체의 사각지대에 있는 사람들의 무권리 상태가 문제가 된다.) 이런 시민의 권리는 현대 사회에서는 헌법으로 보장되어 있다.
하지만 현실의 또 다른 논리는 자본주의적 상품시장경제이다. 생산수단(자본)이 없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노동력 상품을 시장에서 팔고 그 대가로 받은 임금으로 살아가야 하는 게 자본주의의 논리이다. 이때 모든 사람이 적절한 가격으로 자신의 노동력 상품을 팔 수 있다면 큰 문제는 드러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현실은 정반대이다. 자본주의적 경기 변동에 따라 나타나는 임금 등락은 말할 것도 없고, 거시경제적으로 보면 아예 일자리가 없는 경우도 적지 않다. 게다가 자본주의가 발전하면 할수록 이런 경향은 심화된다. 여기에 더해 또 다른 현실은 노동력 상품 판매자가 보통 말하는 ‘을’의 지위를 차지하며, 이는 노동 과정에서의 소외, 부당한 대우까지 감수해야 하는 처지에 빠지게 한다. 따라서 자본주의 사회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생존권을 박탈당하거나 불완전하게밖에 보장받지 못하는 처지에 빠질 수 있다.
기본소득은 이런 현실의 논리를 뒤집고, 정치라는 관점에서 모든 구성원의 생존 혹은 생존의 물질적 조건을 보장하는 방도로 제출된 것이다. 정치공동체가 왜 그렇게 해야 하는가에 대해 우선 공화주의적 견해를 말할 수 있다. 고대 그리스와 로마에서 기원하는 공화주의는 모든 사회구성원(시민)의 자유의 확대 및 참여를 보장하는 것을 자신의 목표로 삼는 정체(政體)이다. 이를 시민의 측면에서 보자면 자신의 사적 이익이 아니라 공적인 일을 우선시하는 것이며, 자신의 공동체에 대한 소속감과 충성심의 표현인 애국심으로 나타난다.
이런 사회가 성립하고 작동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모든 시민이 그 무엇보다 독립성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때 독립성은 물질적인 것과 정신적 것 모두를 포함한다. 다시 말해 타인에게 자신의 삶을 의탁해야 할 정도로 가난한 사람이거나, 타인에게 어떤 판단을 의존해야 할 정도로 빈약한 정신의 소유자라면 공화국의 시민으로서 자격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물론 고대 사회는 노예에게 물질적 생산을 의존했기에 시민들이 정치와 예술에 참가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를 벌 수 있었다. 또한 완전한 독립성을 갖춘 시민이란 어찌 보면 이상(理想)이었지 현실은 아니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모든 시민의 자유가 보장되는 정치공동체를 우리의 목표로 삼는다면 시민의 독립성은 가장 중요한 전제가 된다.
문제는 자본주의 시장경제인 오늘날에는 시민의 물질적 독립성을 어떻게 보장할 것인가이다. 한 가지 방식은 ‘완전 고용’을 통해 그리고 부수적으로 부당한 계약 조건의 제약을 통해 시민의 물질적 독립성을 보장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논리적으로나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렇다고 해서 과거 사회주의 국가처럼 생산수단을 국가가 소유하면서 모든 사람에게 일자리를 ‘할당’하는 것도 바람직한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거기서는 그 무엇보다 공화주의가 지향하는 자유가 부족할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적절한 수준의 기본소득을 통해 시민들의 물질적 조건을 보장하는 것이 양자의 위험을 피하는 길이라고 볼 수 있다.
다음으로 기본소득은 모든 자원의 공유라는 관점에서도 가능한 일이다. 이른바 자연 혹은 대지는 그 누구의 것도 아니며 모두의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여기에 인간의 노동이 들어감으로써 인간적으로 유용한 어떤 것으로 변화하기 때문에 무조건적으로 모두에게 동등한 몫이 있다고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어느 정도의’ 몫이 있는 것은 분명하며, 그것이 어느 정도인지를 결정하는 것이 정치공동체의 업무라 할 수 있다.
대표적인 예가 알래스카이다. 미국 연방에 가입한 1959년에 알래스카는 주 헌법을 통해 알래스카의 모든 자연자원은 알래스카 사람들에게 속한다는 원칙을 천명했다. 이에 따라 이후 발견된 석유에서 나오는 수익금을 알래스카 영구기금으로 만들었고, 이를 ‘배당금’으로 알래스카 주민에게 매년 지급하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이에 대해 석유 같은 자원이 없는 경우에는 불가능하지 않느냐고 말하지도 모른다. 하지만 공유 자원이 하나도 없는 나라 혹은 지역은 없다. 그것 없이는 인간의 삶 자체도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현대 사회의 가장 중요한 공유 자원 가운데 하나는 전파이다. 이를 사적 소유나 배타적 이용으로 할 것이 아니라 만인의 것으로 하고, 거기서 나오는 수익금의 일부를 기본소득 재원으로 삼을 수 있다.
기본소득을 공화주의적 관점에서 보건, 자원의 공유라는 관점에서 보건 모두 경제 우선의 논리를 뒤집는 시도이다. 다시 말해 경제는 인간적, 시민적 삶의 기초이지 통제자가 아니라는 것이다. 따라서 기본소득은 기존 사회의 논리를 문제 삼는 것이고 어떤 심대한 변화를 겨냥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