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소득 논의를 위해 4] 기본소득은 어떤 사회를 지향하는가

by 박선미 posted Sep 25,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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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소득은 어떤 사회를 지향하는가?

기본소득, 개인의 자유와 공동체를 함께 지키는 방법


우리는 앞에서 기본소득의 필요성, 정당성, 재원 등에 관해 살펴보았다. 기본소득이 필요한 이유는 한편으로 현재의 불안정노동체제가 더 이상일자리=생존을 보장할 수 없기 때문이며, 다른 한편으로 생태적 위기로 인해 더 이상 (물질적) 성장 지향 사회가 가능하지 않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정당성과 관련해서는 자유로운 시민들로 이루어진 공화정이 그 구성원의 물질적 독립성을 보장해야 한다는 주장과 모든 사회구성원은 공유재에 대해 일정한 몫이 있다는 관점을 제시했다.


끝으로 재원과 관련해서는 부의 재분배를 목표이자 근거로 하여 소득과 자산에 적절한 과세를 해서 기본소득 재원을 마련하는 것, 앞서 말한 공유재인 자연적, 사회적 자원에서 나오는 수익을 기본소득으로 분배하는 것, 국가화폐의 발행을 통한 배당을 지급하는 것 등에 대해 논의하였다.


이렇게 보면 기본소득은 얼핏 보기에는 매우 단순한 아이디어라고 할 수 있지만, 매우 복잡한 근거와 구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러니, 기본소득이 도입되면 해당 사회와 그 사회구성원은 다면적이고 심층적인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따라서 이후 사회에 대한 전망 없이 기본소득 도입을 주장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또한 이러한 전망이좌파내에서 기본소득을 둘러싼 쟁점의 근거가 되기도 한다. 간단히 말해 기본소득이 자본주의를 강화하는 것이냐 아니면 자본주의를 넘어서는 것이냐 같은 식의 논쟁 지형이 있다.


자본주의의 극복과 기본소득의 관계에 대해서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불가피하게 과거 사회주의 운동 내부의 논의와 경험을 참조해야 한다. 유럽 사회주의 (정당) 운동은 주로 마르크스의 입론인 역사유물론과 계급투쟁의 관점 등에 입각하여 19세기~20세기 초에 정렬했다. 그런데 바로 그 시기는 보통선거권의 확대를 통한 민주주의의 진전, 독점자본과 주식회사의 발전, 민족주의의 확대, 제국주의적 팽창 등이 이루어진 시기였고, 이런 정세 속에서 사회주의 운동 내에서는 부르주아 정치 질서에 대한 태도, 권력 쟁취 방식, 대안적인 생산양식의 모습 등을 둘러싼 논쟁이 벌어졌다. 이 논쟁은 제1차 세계대전과 러시아 혁명을 거치면서 국제 사회주의 운동의 분열을 낳았고, 그 결과 소비에트식 공산주의와 서유럽의 사회민주주의가 각기 다른 방향을 지향하기 시작한다.


소비에트식 공산주의는 사적 소유를 폐지하고 주로 국가 소유에 기초한 사회주의 사회를 건설하려 했으며, 서유럽의 사회민주주의는 자본주의 시장에 대한 정치적 통제를 통해 자본주의의 문제점을 완화하는 방식을 택했다. 성장이라는 점에서 눈부신 성과를 거뒀지만 현실에서 여러 문제를 낳았을 뿐만 아니라 결국 체제의 붕괴로 이어진 것은 공산주의였다. 이에 반해 현실에 맞는 수정을 여러 수준에서 거듭한 사회민주주의는 살아남았다. 하지만 꾸준한 개혁을 통해 사회주의에 도달한다는 의미에서의 개혁주의는 사라졌다고 할 수 있기 때문에, 사회민주주의가 지금의 사회와 다른 세상을 꿈꾼다고 말하기 어려운 지경이 됐다. 더구나 1980년대 이후대안이 없다는분위기 속에서 훨씬 더 오른쪽으로 돌아서면서 사회민주주의라는 이름 자체가 부끄러울 정도로 바뀌기까지 했다.

 

경제 모델의 구상과 관련해서 우선 화폐로 지급되는 기본소득은 시장의 존재를 인정하고 존중한다. …… 시장 자체는 사회의 다양성을 도모하고 개인들의 개별성을 발휘할 수 있는 제도이며, 따라서 자본주의가 시장을 장악하지 못하게 하는 게 필요한 일이 된다. 이때 기본소득은 특히 노동력의 탈상품화를 뒷받침함으로써 이런 기능을 하게 될 것

1980년대 초중반에 유럽에서 기본소득 아이디어가 제기될 때 상황이 이러했다. 이런 맥락에서 기본소득은 어떻게 하면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으면서 공동체를 유지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이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지금은 선명해졌지만 당시로서는 크게 도드라지지 않았던 생태 위기에 대한 인식을 담고 있었다. 자본주의와 구별되는 의미에서의 시장 속에서 개인의 선택을 가능하게 하고, 시장 외부에서의 개인의 선택 또한 뒷받침하며, 그러면서도 사회구성원의 공동성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방향을 기본소득 아이디어로 실현하고자 했다는 것이다.


물론 기본소득 자체가 어떤 경제 모델을 자동으로 낳는 것은 아니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기본소득 아이디어를 가장 잘 실현할 수 있는 경제 모델을 구상할 필요가 있다. 경제 모델의 구상과 관련해서 우선 화폐로 지급되는 기본소득은 시장의 존재를 인정하고 존중한다는 점을 말해야겠다.


이는 자본주의와 시장을 구분하는 것이며, 자본주의는 다른 무엇보다 이윤극대화와 경제활동 자체를 우선시하는 체제라고 본다는 것이다. 도리어 시장 자체는 사회의 다양성을 도모하고 개인들의 개별성을 발휘할 수 있는 제도이며, 따라서 자본주의가 시장을 장악하지 못하게 하는 게 필요한 일이 된다. 이때 기본소득은 특히 노동력의 탈상품화를 뒷받침함으로써 이런 기능을 하게 될 것이다.


다음으로 사회적 연대의 의미가 있는 경제활동, 주체들의 참여가 제약되지 않는 경제활동이 필요한데, 이는 협동조합과 사회적 기업 등의 형태로 나타날 것이다. 이는 특히 자본주의 경제활동의 주요 특징인 생산자 중심 경제 혹은 그 반대편에서 나타나는 낭비 경제를 넘어서서 사회구성원들이 실질적으로 필요한 것을 생산하고 소비하는 데 기여할 것이다. 끝으로 여전히 공적 소유 혹은 국유 부문이 필요할 것이다. 인프라스트럭처 부문이 여기에 해당할 것이며, 어떤 영역이 그렇게 될지는 민주적 절차와 자체 합리성에 의해 결정될 문제이다.


기본소득은 크게 보아 두 가지 내용을 담는 미래 사회를 지향한다. 하나는 경제를 다시금 사회의 통제 아래 두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개인들이 충분한 자기 시간을 누릴 수 있게 하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사회는 새로운 기술과 조직, 새로운 윤리를 필요로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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