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의 정체성을 포기해선 안된다고 얘기하는데,
도대체 그 <정체성>이라는 것이 무엇인가?
항구적이고 불변적인 정체성이란 없다.
모든 건 유동하는 흐름 속에 놓여 있을 뿐이다.
<정체성>이란 것도 우리끼리 평가하는 자족적인 규정이 아닐 것이다.
진보 스스로가 진보를 규정하는 정체성도 그닥 설득력이 없다.
만일 이명박이 이명박 정부 자신의 정체성을 규정짓는다면
그 역시 이명박 정부의 정체성은 아닐 것이다.
정체성도 결국은 나와 타자간의 상호 이해와 관계라는
맥락 속에서 끊임없이 형성되고 있을 뿐이다. 간단히 말하면,
정체성도 상호 규정 속에 놓여 있는 것이다.
지금 시대의 대중들이 진보를 이해하지 못하고 외면한다면
진보는 자신의 정체성에도 수정을 가할 수도 있어야 한다.
자기 신념과 이론에 수정가능성까지 열어놓지 않는다면,
이들의 행태가 <종교 근본주의자>들과 무엇이 다를까?
예컨대, 자본 대 노동 이라는 시각이나
우리 사회의 만악의 문제를 그저 신자유주의 문제로만 보는 안경만 쓰고 있거나
노동중심성 이라는 교리가 지금의 현실을 읽기엔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붙잡고 있는 점들은 진보의 정체성이라기보다
오히려 진보 근본주의자들의 도그마틱한 종교 신념에 가깝다.
자신이 지금 믿고 있는 진리가 허물어지기를 두려워하는 건
내가 볼 때 근본주의 종교 신앙인들의 작태에서나 종종 볼 수 있다.
예를 들어보자.
여기서 만일 누구 말대로 저 왼쪽의 사회주의 이상을 자기 정체성으로 삼고
이를 실현하고자 하는 급진평등 좌파가 있다고 치자.
그런데 실제 현실에서 보면 왼쪽으로 갈수록 더더욱 극소수인 처지로 외면받고 있다.
만일 그렇다면 더 넓은 중간 영역에 포진된 수정자본주의와 사회민주주의 안으로 파고들어
대중과의 소통성을 우선적으로 확보하고서 이를 통해
좀 더 왼쪽에 놓인 사회주의로 나아가고자 하는 중도결집 전략을 쓰는 것은
과연 진보 정체성의 훼손이나 포기가 되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오히려 나는 그것의 운용과 활용이야말로 바로 <정치>라고 말하고 싶다.
정체성이 목적하는 이상에 맞춰져 있다면
정치란, 목적하는 그 이상과 당면한 현실 간의 간격을 좁히려는 <길찾기>다.
나는 오히려 진보의 정체성을 굳이 말한다면, 이미 아래 어느분께서 언급하셨듯이
"지금 고통 받는 사람들을 외면하지 않는 것" 이라고 생각한다.
지금 고통 받는 사람이 중요한 것이지
먼훗날 2-300백 년 후에나 고통받는 약자를 염두에 두고 있는 건 아닌 것이다.
바로 지금 시대에 고통받는 약자들한테
실질적 효력이 미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게 <능력 좌파> 아닌가.
진정한 능력과 권위라는 것도 결국은 시대와의 소통에서 비롯하는 것이다.




정답은 이념안에 녹아있는 가치 즉 정책되겠습니다..보수건 진보건 사회주의건 자본주의건 간에 최대한 좋은 것만 취하려는 정책적 노력을 해야지 이건 되고 저건 안된다 라니 그런 폐쇄적인 마인드는 버리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