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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티조선 운동하던 소년, '키워'로 거듭나다
[서평] 20대 논객 한윤형이 쓴 <키보드워리어 전투일지(2000~2009)>
09.04.08 15:51 ㅣ최종 업데이트 09.04.08 15:51 최민호 (cnfqkf0816)

내가 한윤형이라는 사람을 알게 된 건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아마 2007년으로 기억한다. 인터넷이라는 정보의 바다 속에서 헤엄치며 놀길 좋아하던 나는 이곳 저곳 돌아다니다 우연히 그의 글 한 편을 보게 되었다. 그의 글은 무척 논리적이었다. 문장은 간결했고 군더더기가 없었다.

 

한윤형? 처음 들어본 이름이었다. 그러나 그의 글은 내게 진중권의 글만큼이나 잘 쓰여진 명문(明文)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나는 그에 대해 아는 게 아무 것도 없었다. 그의 본명보다 더 유명한 '아흐리만'이라는 필명에 대해서도 나는 알지 못했다.

 

 그리고 시간이 흘렀다. 2008년, 극도로 혼란한 정국 속에서, 나는 글을 쓰기 시작했다. '한글2007'을 띄워놓은 새하얀 모니터를 바라보며 한 글자 한 글자 써내려갔다. 그 즐거움이 나를 계속 컴퓨터 앞으로 잡아끌었다. 해야 할 공부가 있었음에도, 글을 쓰고자 하는 욕구는 더욱 커져 갔다.

 

그러나 글쓰기는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정치, 사회, 특히 내가 관심 있는 교육 분야의 글을 쓰는 데 있어서 매번 어느 지점에서는 키보드를 두드리던 손가락이 멈춰서 있었다. 실타래처럼 엉켜진 생각은 앞으로 나아가지지 않았다.

 

그 때 그의 글이 생각났다. '그렇게 글을 잘 쓰는 사람의 글을 보고 그 구조와 논리를 체득하다 보면 내 자신의 실력을 한 단계 발전시킬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글을 찾는 것은 의외로 쉬웠다. 그는 블로거였다. 그것도 꽤 유명한. 하루 방문객이 1~2천명에 달하는, 소위 파워블로거였다. 그의 블로그에 방문한 나는 7백여 개에 이르는 '글'의 분량에 먼저 압도되었다. '저걸 언제 다 읽지?'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래도 즐거웠다. 그의 글은 모두 충분히 읽을 가치가 있었고, 재미있었기에.

 

  
<키보드워리어 전투일지(2000~2009)>의 겉표지
ⓒ 텍스트
한윤형

최근 한윤형은 자신이 지금까지 썼던 글과 새로 쓴 글을 모아 한 권의 책으로 출판했다. <키보드워리어 전투일지(2000~2009)>. 제목이 재밌다. 키보드워리어란 인터넷 상에서 타인과 싸우는 전투형 인간을 가리키는 은어다. 인터넷에서 서로 치고 박고 싸울 순 없으니 결국 '게시물'과 '댓글'을 통해, 말과 글로 싸울 수 밖에 없다. 그래서 '키보드'워리어인 셈이다. 그는 키보드워리어였다. 제목에 나타나 있는 연도 표시에서 알 수 있듯이, 지난 10여 년을 '키워(키보드워리어의 줄임말)'로 살았다.

 

 그의 인생은 투쟁과 싸움의 연속이었다. 그는 '조선일보'와 싸웠고, '노빠'와 싸웠으며, 현 정권이 들어선 이후에는 정권에 대한 비판의 날을 세우며 '키워'로의 삶을 이어나가고 있다. 평범한 고교생 한윤형을 일약 세상에 알린, 조선일보 인터뷰 거절 사건은 그 투쟁의 시발점이 됐다.

 

서울대와 조선일보가 공동주최했던 '제 1회 고교생 논리논술 경시대회'에 참가하여 대상을 수상한 한윤형은, 자신의 집에 인터뷰를 하러 찾아 온 조선일보 기자들에게 인터뷰를 하지 않겠다고 했다. 왜냐하면 그는 당시 안티조선 운동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나카 요시키의 <은하영웅전설>과 김용의 <영웅문>을 즐겨 읽던 소년 한윤형은 어느날 진중권의 <네 무덤에 침을 뱉으마>를 접하면서 '정치'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됐다. 인물비평, 강준만, <인물과 사상>, 순차적으로 관심의 저변을 늘려가던 그가 안티조선 운동에 참여하게 된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러나 안티조선 운동을 하고 있더라도 그는 '고교생'이자 '수험생'이었다. 그런 그에게 서울대에서 주최하는 논술대회가 주는 무게감은 가볍지 않았다. 그러나 문제는 공동주최사였다. 그곳이 바로 조선일보였기 때문이다.

 

 공동주최사가 조선일보라는 점 때문에 그가 대회에 참가할지 말지를 고민하고 있을 때, 안티조선 운동을 같이 하고 있던 '우리모두'의 사람들은 그에게 참가를 권유했다. 누군가는 농으로, "일단 나가서, 아예 대상을 먹어 버리세요"라고 했단다. 그리고 그는, 정말 대상을 수상했다. 그가 조선일보의 인터뷰를 거절한 것은 그 자신의 '신념' 때문이었다. 신념을 지키기 위해, 평범한 고교생이 최다부수 발행을 자랑하는 조선일보에 이름 석 자를 당당히 올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발로 뻥 차버린다는 것이 쉬운 일이었을까?

 

 대학생이 된 한윤형은 좀 더 본격적으로 안티조선 운동에 참여했다. 소기의 성과도, 그 자신이 느끼는 만족감도 있었지만 2002년 대선 정국이 들어서면서 안티조선 운동은 그 문제의식과 생명력을 잃어갔다. 당시 민주당 대선후보였던 노무현 캠프에서 '조선일보 절독 50만 부 운동'을 벌이면서 사실상 안티조선 운동은 노무현의 정치운동의 산하로 흡수되었고, 그렇게 안티조선 운동의 주력은 노무현 지지자들로 대체되어 갔다. 그 과정에서 노무현을 지지하지 않는 좌파들은 안티조선 진영을 이탈했다.

 

 이후 그는 민주노동당에 입당했다. 그가 민주노동당에 입당한 것은 당의 정강 정책에 충실히 동의해서는 아니었다. 오히려 그는 민주노동당의 강령을 부담스러워했다. 그는 기본적으로 시장경제를 옹호하는 사람이고, 그 힘을 신뢰한다(그 자신도 스스로를 가리켜 '어떤 의미에선 굉장히 보수적'이라고 한다).

 

다만 그는 그 장점이 맹목적인 자유방임을 통해서는 발휘될 수 없다고 믿는다. 그렇기 때문에 시장에 대한 국가의 적극적인 개입을 선호하며 시장에서 소외받기 쉬운 소수자에 대한 국가의 의무를 요구한다. 소수자. 바로 그것이었다.

 

 그는 안티조선 운동과 같은 시민사회 운동의 진영에서조차도 쉽사리 소수자의 처지로 내몰리는 좌파들에게 돌아가야 할 공정한 몫을 주장했다. 그리고 그런 소수자인 좌파에 대한 옹호의 과정에서 그는 자연스레 민주노동당을 옹호했고, 2001년 말 자주파(NL)들이 소위 '9월 테제' 이후 대거 민주노동당에 가입하자 그 스스로의 표현대로 '이상한 사람들이 좌파정당을 집어삼키는 꼴은 보아 넘기지 못하겠다는 심보'가 작용하여 민주노동당에 가입하게 됐다. 그 자신의 사상과도 상관없이 말이다.

 

 그리고 그의 무대는 '우리모두'에서 민주노동당 지지자들 담론의 중심이 되는 '진보누리'로 옮겨간다. 그곳에서 그는 2003년부터 2004년까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지지자들, 이른바 '노빠'들과 일대 혈전을 벌인다. 노빠와 좌파의 싸움, 그 원인도 여러 가지였고 현상도 다양했지만 확실한 기폭제 역할을 한 것은 '이라크 파병' 문제였다. 좌파들은 "침략전쟁을 부인한다"는 헌법조항을 대통령이 어겼다고 강렬하게 비판했으며 진중권은 노무현 전 대통령을 가리켜 '학살 도우미'로 지칭했다. 노빠들이 크게 반발했음은 물론이다.

 

 2004년 6월 22일 한국인 김선일이 이라크 무장 단체에 납치되어 피살당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그는 이 사건을 '국가가 국민에 대해 저지른 선행살인'으로 인식했다. 그래서 그는 좌파들조차 '이라크 무장 단체'에 돌리던 1차 책임을 국가에 물어야 한다고 했다. 당시 그는 세 부류의 사람들과 상대해야 했다. 군사 보복을 감행하자는 군사주의자, 노무현에게는 책임이 없다는 노빠, 그리고 국가가 국민에게 저지른 선행살인의 시점 파악을 잘 못하고 있는 좌파가 바로 그들이었다.

 

 말하자면 좌파들이 이라크에 군사를 파견했을 그 당시를 선행살인의 시점으로 보고 있었다면, 한윤형 그는 정부가 무장 단체의 철군 요구를 묵살하고 파병원칙을 재확인했던 그 순간을 선행살인의 시점으로 본 것이다. 국가는 국민의 생명을 보호할 의무가 있다. 불법도 아닌 합법적 행위를 통해 얼마든지 자국민의 생명을 보호할 수 있었음에도 정부는 납치범들이 예시한 24시간의 절반이 지나기도 전에 파병원칙을 재확인함으로써 그들의 요구를 묵살했다. 그리하여 김선일은 피살되었고, 그는 이 점을 견딜 수 없어 했다.

 

 폭풍처럼 질주했던 시기가 지나고, 군대에 다녀와 예비역이 된 청년 한윤형은 이제 다른 문제에 눈을 돌린다. 책의 제목이 이제는 하나의 고유명사가 되어 버린 '88만원 세대'. 그 자신도 88만원 세대에 속해있지만 책을 접하기 전까지는 또래 세대의 문제에 눈을 돌리지 못했다고 한다. 고등학생 시절부터 안티조선 운동을 했기 때문에 늘 연장자들과 어울렸고, 그 탓에 동년배들의 문제에 깊이 생각할 기회가 없었다는 것이다. 이제 그는 88만원 세대의 근본적인 문제, 그것을 야기 시킨 사회의 구조에 대해 진지한 성찰의 시간을 갖는다.

 

 사람은 사회적 동물인 이상 살면서 어느 조직에 속하고 누군가의 편이 되는 순간이 온다. 네 편 내 편 갈려서 싸우기도 한다. 네 편을 향한 날카로운 칼끝이 내 편을 향하게 되면 일순 무뎌지는 것은 어찌 보면 어쩔 수 없는, 자연스러운 일이기도 하다. 그러나 한윤형 그에게는 그게 없다. 내 편이지만 잘못된 것은 잘못되었다고 통렬하게 비판한다. 그 칼끝의 퍼런 서슬은 오히려 네 편을 향했을 때의 그것보다 더 날카롭다. 가령 최근 있었던 진보신당의 경기도당 비정규직 문제에 있어서도 그는 당을 향해 비판의 목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그래서일까? 그의 글은 늘 당당하다. 꿀릴 게 없으니 당당하고, 논리에 막힘이나 거짓됨이 없으니 당당하다. <키보드워리어 전투일지(2000~2009)>에는 그의 10년 세월의 당당함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물론 당당했기에 늘 행복했던 것만은 아니다. 키보드워리어의 전투일지답게, 그 속에는 전투 후에 그가 입은 유무형의 부상에 대한 아픔도 스며있다. "이 모든 것은 기록될 필요가 있다." 그의 블로그 대문에 걸린 말이다. <키보드워리어 전투일지(2000~2009)>에는 그 모든 것들이 기록되어 있다.

  • 노엣지 2.00.00 00:00
    마눌님께서 오늘부터 읽고 있다고 하던데 배경설명을 좀 해드려야 겠네요. 글 잘 읽었습니다.ㅎ
  • 코스 2.00.00 00:00
    함 읽어봐야겠네요. 비범한 분인듯 한데요?
  • 창조적개새 2.00.00 00:00
    두 살 어린 고1이지만 고3이 ..............대단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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