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결집요? 어찌 소위 '종북세력'과도 함께 할 수 있죠?"
라는 질문에 대하여
- <진보결집>에 대한 물음들에 답하기 위하여
사실 이런 의구심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비일비재하던 것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얼마 전 통합진보당 해산 판결로 인해 잦아들었죠. 자유민주주의의 기본적인 헌정 질서마저 부정하는 헌재 자신의 판결을 경악스러울만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우리 내부에서 잠시 잦아든 이 의구심이 완전히 사라졌다고 보기도 어려우리라 생각합니다.
어느샌가 ‘종북’이라는 언어는 우리 사회의 배제와 폭력, 지배계급에 의한 ‘두 국민 전략’, 반공이데올로기를 모조리 대체하는 막강한 것이 되었습니다. 어떠한 논쟁에서도 “너 종북이지?”라는 폭력적 언사 한마디면 더 이상 토론의 여지가 사라지고, 공허한 침묵의 시간이 이어질 뿐입니다. 그 때문에 우리는 ‘종북’이라는 언어를 다루는 데 있어서 어떤 곤경을 마주하게 됩니다. “난 종북은 아니야”라는 부정(혹은 고백)조차도 반공이데올로기의 자장에서 자유로울 수 없게 만드는 효과를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남한 좌파는 북한 정권의 폭압적 정치, 비민주주의적인 상황에 대해 비판하면서도 지난날 남한 사회운동이 지녔던 딜레마적인 태도에서도 벗어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더불어 한반도 평화를 위협하는 근본적인 원인으로서의 미국의 군사세계화 전략에 대해서는 더 비중을 두어, 비판해야 합니다. 셋째로 우리는 분단 상황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며 민중운동 진영, 이른바 좌파를 대중들로부터 고립시키려 하는 남한의 지배세력에 맞서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어야 합니다.
지금까지 남한 사회운동은 이런 반공이데올로기 공세에 제대로 응전하기 어려운 조건에 놓여 있었습니다. 남한 사회운동의 절대적인 다수파는 언제나 NL진영이었고, 그 때문에 운동 전체의 상징적 표상은 항상 NL진영의 목소리와 선전선동에 맞춰져 있었습니다. 어쩌면 이런 점 때문에 지난날 일부 좌파는 NL진영을 향해 ‘종북’이라는 레토릭을 덧씌우거나 ‘반조선노동당-반자본주의’식의 반정립적인 태도를 고수했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이런 논박은 전체 운동에서의 입장의 우위로 귀결되기보다는 항상 밑도 끝도 없는 불화로 귀결되곤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런 상황은 오히려 진보정당을 지지하는 대중들과 진지하게 토론-승인받은 입장을 운동(혹은 ‘당’)의 입장으로 관철시키는 과정을 거치지 못한 채 ‘운동권’끼리의 논쟁 안에 갇히도록 만들었습니다. 건강하고 공개적인 토론의 기회는 주어지지 않고, 세력의 우위로 판가름 나곤 했습니다.
이제 우리 스스로 실력의 우위를 통해 한반도 평화문제, 북한 문제에 대한 입장을 관철시키고 이를 우리 운동 전체의 표상으로 만들어나가는 실질적이고 전략적인 실천이 필요합니다. 결국 대중들 대다수는 언제나 “‘진보’가 어떻게 말했다더라”로 평가하고 가늠할 뿐, 진보진영 중에서 누구는 이렇고 누구는 저렇다더라고 디테일하게 보지 않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건 전체 사회운동, ‘진보진영’의 표상을 획득하는 것이 아닐까요?
북한 정권은 북한의 민중들을 억압하고 착취하는 독재정권임이 분명합니다. 동시에 우리는 ‘종북’이라는 명명 자체가 불러오는 반공이데올로기의 효과에도 맞서야 하고, ‘종북’이라는 규정이 갖는 반정치성도 넘어서야 합니다. 이미 그것의 이데올로기적인 효과는 그것과는 무관한 운동 전반의 후퇴를 통해 드러났고, 지금 진보진영은 그 어느때보다 큰 위기를 마주하고 있습니다. 대중들로부터 멀어지고 외면 받고 있습니다. 이런 곤경을 극복하는 것은 운동 내의 다수파로부터 끊임없이 회피하는 소수파 안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합리적이고 당당하게 한반도에서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의 평화를 위한 권리를 이야기하고, 좌파가 견지해야 할 북한 체제에 대한 올바른 입장을 개진하고 설득함으로써 ‘진보’ 혹은 ‘좌파’라고 하면 “북한 정권의 반민주성에 대해서도 비판하고 한반도에서 사는 사람의 평화를 위해 통일을 지향하는 이들”이라는 표상을 승인 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이와 더불어 정의당 내 NL계열에 대한 재평가 역시 필요합니다. 정의당 내 NL계열은 3대 세습 등 문제에서 북한을 일방적으로 지지하지 않습니다. 단적인 예로, 지난 2013년 5월 북한이 동해에 단거리 미사일을 발사했을 때 소위 NL계로 분류되는 대변인의 논평은 “오늘 북한의 미사일 발사로 한반도의 위기와 긴장이 더욱 증폭되었다. 대화와 평화적 해결에 역행하는 모든 행위는 더 이상 진행해서는 안 된다. 북한은 일체의 군사적 행동을 중단하기 바란다”였습니다. 평화공존을 바라되 할 말은 하는 입장은 우리와 다르지 않으며, 민중들 속에서 투쟁하는 모습 또한 우리와 다르지 않습니다.
통합진보당 출신 대표 활동가들과 진보결집 논의를 함께 하진 않겠지만 설사 과거 통합진보당의 당원이었던 수만 명의 사람들 중 일부가 입당한다고 해서 그건 두려운 일이 아닙니다. 오히려 환영할 일이죠. 그들 대다수는 말없이 모든 사태를 지켜보며 안타까워하기도 하고, 비판하기도 했던 평범한 노동자, 농민들이었습니다. 언제나 다시 마주치고 충돌할 기회가 올지라도 우리는 얼마든지 그들과 교통하고 논쟁할 수 있으며, 이것에 대해 굳이 두려워할 필요 없습니다. 이런 변화, 간극 속에 우리가 개입하고 확장할 틈이 만들어지리라 생각합니다.
흩어져있던 여러 그룹들, 사람들이 결집한다는 것은 우리가 기억하는 예전의 합종연횡들과는 다를 것입니다. 의견그룹들을 공개적으로 인정하고, 이들이 공개적인 논쟁을 통해 경쟁하고 대중들로부터 승인받는 과정입니다. 난맥상에 빠진 제 진보진영에 활력을 부여하고 새로운 당을 만들어나가는 것은 단지 물리적으로 여러 그룹들이 다시 합쳐진다는 의미를 뛰어넘습니다. 우리가 어떤 과정을 통해 결집하느냐에 따라 달라집니다. 그것은 반공이데올로기와 맹목적인 교조주의의 양극단을 넘어 급진적이고 합리적인 좌파, 진보정당의 새로운 표상을 만들어나가는 것이어야 합니다.
이미 진보결집 공동선본은 새로운 진보정당의 상에 대한 ‘5대 기준’의 첫 번째로 “진보정치의 독자적 성장을 전제로, 다양한 진보적 사상과 노선이 경쟁하며 상호 발전을 촉진하는 당”의 모습을 제시한 바 있습니다. 권태훈, 김윤희, 나경채 진보결집 대표단 당선으로 진보정당, 나아가 전체 사회운동/노동운동의 활력있는 재생의 프로젝트를 노동당에서부터 시작해나갔으면 합니다. 지금은 우리에겐 분명 획기적 변화와 체질 개선의 계기가 모두 필요합니다. 그건 진보결집만으로 가능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제대로된 교육 체계를 마련해 활동가를 양성하고, 뉴미디어를 이해하는 선전홍보 전략, 이러한 교육-선전 전략에 조응하는 조직화와 투쟁 전략도 요구되죠. 그러나 진보결집 없이 그것이 가능한 것도 아닙니다.




노심조도 바꿨다고 하면서 탈당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