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크스에 논리를 죽인 시몰라시옹이론(여러분들이지금살고 있는세계)

by 도봉박홍기 posted Apr 19,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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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에 21세기 새역사  시뮬라시옹 그리고 그사유에 반대는 이미 죽었다. 20세기 서적들은 이미 절대진리가 퇴색한 과거에 보수에 망령으로 돌아갓으니 마르크스에 논리가 이미 보수에 이론에 지나지 않는것을 절재진리도 절대적 지도자가 필요한것이 아닌 자유 의지에 의한 개인선택권이 이미 진보에 새역사 임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시뮬라시옹(simulation) 효과

 

장 보드리야르(Jean Baudrillard)의 시뮬라시옹. 이는 원천이나 실재 없이 실재적인 것의 모형들에 의해 만들어진 것, 즉 과잉 현실 hyperreal을 가리키는 것이다. 흔히 '가상현실'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발터 벤야민은 기계복제가 미술작품의 아우라(aura)를 파괴했다고 말했지만.- 아우라는 ‘진짜(진품)의 고유한 분위기를 말한다. 예술작품이 향유하는 역사적 유일성과 진품성에서 느껴지는 분위기나 후광 같은 것이다.

 

보드리야르는 정보의 폭발(explosion)과 의미의 내파(implosion)가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질서의 핵심으로 등장했다고 주장한다. 그는 대중매체가 사회화 작용을 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인 것을 내파한다고 본다내파는 더 나아가 모든 사회 제도들이 내부에서 폭발하고 무너지고 있다는 것도 의미한다.

 

보드리야르의 세계에서 확실성은 전혀 존재하지 않으며 저항은 신기루요 사회변혁은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 전체주의적인 텔레비전의 오락과 정보는 소음과 역정보에 지나지 않는다고 이해한 보드리야르는 텔레비전 테크놀로지의 확산을 개탄하고 대인커뮤니케이션(interpersonal communication)의 회복을 열망하였지만 어떻게를 전혀 제시하지 않았다.

 

좌파 이론가들로부터 허무주의자ㆍ비관주의자ㆍ패배주의자ㆍ탈정치주의자로 비판받는 보드리야르에게 있어서 대안은 현실에 과잉 순응하는 것뿐이다. 그의 말을 직접 들어 보자.

 

적합한 전략적 저항은 의미와 발언을 거부하고, 거부와 비수용의 형태 그 자체인 현 시스템의 메커니즘을 과잉 순응적인 방식으로 흉내내는 것이다. 이것이 대중의 저항 전략이다. 그것은 거울의 경우처럼 시스템의 논리를 흡수하지는 않으면서 복사하고 의미를 반영시킴으로써 그 논리를 뒤집어버리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이야말로 현재로선 가장 유력한 전략이다(만약 이걸 전략이라고 부를 수 있다면).

 

그는 포르노마저도 여성의 신장된 지위 향상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여성이 남성 권력에 도전해서 이길 수는 없다며 여성의 힘은 유혹의 힘이라고 단언한다. 여성은 전투적인 자세를 버리고 남성을 유혹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다른 모든 힘에 대등하거나 그보다 탁월한 이 유일한 힘을 부인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무분별한 행위라고 질타한다.

 

이렇게 말을 막 해대니 보드리야르에게 과격, 극단, 냉소, 허무 등과 같은 딱지들이 따라다니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옳고 그른 걸 떠나서 과잉 순응이 과연 실천 가능한 전략인지는 따져 보아야 하겠지만, 한 가지 분명한 건 사이버 시대의 정보 폭발 현상은 학자들로 하여금 보드리야르의 주장을 더욱 자주 인용케 하고 있다는 사실일 것이다.

 

보드리야르(Jean Baudrillard) 간파한 것처럼 우리는 현재 대중매체에서 조장한 이미지(시뮬라시옹) 실재보다 실재적인 것으로 인식하며 살고 있다. 그랙서 삶은 잡지 광고이며, 진실한 것은 신문지면의 개비의 담배이다. 현실 세계는 MTV에서 펼쳐지는 끔찍하도록 환상적이고 무차별적인 다큐멘터리라는 미망에 사로잡혀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여걸식스 실재보다 실재적인 것으로 인식하며 현실의 바로미터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하지만 이처럼 대중매체가 조장하는 상징세계가 현실세계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기란 말처럼 쉬운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대중매체가 매순간 무차별적으로 우리를 공격하고 있기 때문이다
.

삼순이 브라운관에서 주류를 이룬다면 현실역시 어느정도 변화하겠지만 그럴 가능성이나 개연성은 높지 않다. 텔레비전을 비롯한 대중매체는 적극적인 주체성보다는 수동적 여성성으로 무장시킨 이미지, 섹시함으로 포장된 정형화된 수동적 여성상, 예쁜 외모의 규격화 등으로 구축된 상징의 세계를 더욱 견고하게 구축하고 있기 때문이다
.

모처럼 브라운관의 변방에서 중심부로 나온삼순이에게 사람들이 열띠게 환호하는 것은 역설적으로 우리의 브라운관의 풍경이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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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서 과잉의 시대, 글쓰기로 교란”
이러니 들 생각해 보셔 다 개소리지 졸라리 빡돌게 하는구나

생각들 해보셔 당신 머리는 도봉 박홍기보다 못한거야 그런거야 다 개같은 뒤진인간에 지적 미학에 탐론에 지나지 않는다고 그것이 진실이야 진실을 외면하지 말자 나같은 돌대가리도 척보면 안다.

원본과 복사본, 진짜와 가상의 경계가 모호해진다는 시뮬라시옹 이론을 통해 현대사회를 탁월하게 분석해낸 프랑스의 석학 장 보 드리야르(77), 그의 쉽지않은 시뮬라시옹 이론은 영화 ‘매트릭 스’를 통해 대중화됐고, 이는 시뮬라시옹 이론의 대가인 그가 직접 원본(보드리야르의 이론)과 가상 이미지(영화)의 관계를 적 나라하게 보여주는 아이러니를 빚기도 했다.

 

24일부터 26일까지 열리는 국제문학포럼에 참석차 한국을 찾은 장 보드리야르와 연 세대 이상길 영상대학원 교수가 25일 오전 서울 광화문 대산문화 재단 회의실에서 만나 대담을 가졌다.

 

질문을 하나 던지면 지치지 않고, 친절하고 열정적으로 설명하는 그는 탈근대성에 대한 오해에서 시작해, 가상세계가 ‘완전한 실재’가 된 현대사회 분석 을 거쳐 세계화와 테러시대의 철학에 대한 논의를 풀어냈다.

 

―일반적으로 ‘탈근대’ 사상가로 널리 알려져 있다. 이런 지적 꼬리표를 받아들이는가.

“‘탈근대성’과 관련해 일종의 오해가 있다. 나 스스로 ‘탈근 대적’이라고 여기지 않는다. ‘탈근대’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르겠다. 사람들은 근대성의 종말과 시뮬라시옹을 연결시키길 원한다.

영화를 예로 들자면, 나는 ‘매트릭스’같은 영화에 영 감을 불어넣은 사람이다. 정말 그로테스크한 상황이다. 탈근대성 논의는 미국에서 왔고, 그곳에서 활발하다. 사람들은 역사의 종언 , 정치의 종말 등을 논하지만, 이는 총체적인 단순화에 지나지 않는다. 오히려 오해의 기초가 되고 지금 실제 일어나고 있는 일 을 분석하는 데 장애물이 된다. 현상속으로 좀 더 섬세하고 미묘 하게 들어가면 탈근대성이라는 용어는 더 이상 필요가 없다. 그 냥 그대로 끝인 것이다.”

―그렇다면 탈근대성보다 근대성의 극단적 양상에 관심을 가지는 가.

“근대성의 와해, 혹은 어떤 종류의 상승하는 힘에 관심을 갖고 있다. 현대사회에서 실재 그 자체, 현실 원리, 합리성의 원리 등 은 붕괴하고 있다.

전자 테크놀로지나 네트워크 시대에 더 이상 원래 형태를 지닌 현실은 존재하지 않는다. 디지털 세상에서는 원본이 있다 해도 가상성에 흡수돼 버린다. 일종의 ‘현실의 종 말’이다. 거짓과 진실, 원본과 카피의 경계가 모호해졌다.

세계는 이미 건설된 것, 인위적인 것이며 진실은 모두 만들어진 것, 가상적인 것이다. 가상성이야말로 ‘완전한 실재’이다. 더 이상 자연세계는 없다.”

―1991년 걸프전이 임박했을 때, “걸프전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 다”라는 글을, 전쟁이 한창 벌어지고 있을 때 “걸프전은 정말 일어나고 있는가?”라는 글을, 전쟁이 끝난 뒤에 “걸프전은 일 어나지 않았다”라는 글을 썼다. 이들은 시뮬라시옹과 가상성, 세계화의 논리를 구체적인 현상 분석을 통해 흥미롭게 풀어낸 결 과였다.

“그렇다. 당시 우리는 완전히 정보화된 세계에 있었다. ‘사건 ’도 예외는 아니었다. 모든 것이 화면, 디지털과 테크놀로지를 통과해야 하는 세계에서 우리는 결코 사건의 실재와 마주할 수가 없다. 사건 그 자체는 이들의 절대적인 융합 뒤로 사라져 버린 다. 이는 걸프전에서 폭력이나 사상자가 없었다는 말이 아니다.

가짜 사건이었으며 따라서 그것이 일어났다고 말할 수 없다는 말 이다. 그것은 미디어 보도와 이미지 안에서 즉각 용해돼 버렸다.

전쟁은 사전에 고도로 프로그램화돼 있었고, 그대로 실현됐다.

‘레디 메이드’였고 그렇게 현실속에 투사됐다. 이같은 분석은 걸프전뿐 아니라, 이라크전에도 유효하다.”

 ―그 두 전쟁 사이에는 진정한 ‘사건’이라 할 만한 9·11이 있 었다. ‘테러시대’ 철학은.

“문제는 오늘날 사건이란 무엇인지, 사건을 만드는 것이 무엇인 지를 아는 것이다. 사건은 예측불가능하고 급작스러운 것이다.

정보가 모든 것을 흡수하고 집어삼키는 이 동질적인 세상에, 혹 은 동질성 자체에 틈과 균열을 내는 것이다. 달리 말하면, 현재 세계는 가상적으로 완전하게 프로그램화되고 조직돼 있다. 세계 질서 안에서는 아무 일도, 어떠한 폭력적 사건도 일어나선 안 된다 . 모든 것이 예측되고 예방돼야 한다. 전쟁뿐이 아니라 어떤 것 도 일어나선 안 된다. 모든 종류의 특이성의 말살이나 마찬가지 다. 이런 세계질서에 틈과 균열을 내는 모든 것이 바로 테러리즘 이다.”

―그렇다면 이같은 세계화 폭력속에서 더이상 평화는 기대할 수 없는가.

“우리는 점점 더 화해와 평화로부터 멀어지고 있다. 평화와 화 해는 일종의 균형상태를 요구한다. 냉전시대에는 비록 공포에 의 해서지만 가시적 균형이 있었다. 그런데 오늘날에는 완전한 불균 형만 있다. 세계적 강대국과 테러리즘 세력 사이의 급진적 적대 만 있다. 강대국은 헤게모니를 쥐고 있기 때문에 협상이 필요없 다고 생각한다. 이들에겐 적대자는 없고 제거해야 할 ‘악’만이 있다. 여기서 타협이나 균형점을 찾는 것은 불가능하다. 세계화 는 점점 더 폭력적인 차별속에서 진행될 것이다.”

―걸프전, 9·11, 세계화 등에 관한 글쓰기는 ‘상징적 도전’으 로 여겨진다. 글쓰기를 통해 체계의 상징적 질서를 교란시키려 하는가.

“그렇다. 이런 세상에서 진실을 말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다 양한 해석들이 가능하고 우리는 결코 하나의 객관적 진실을 알 수 없다. 설령 진실을 안다 하더라도 그것은 아무 짝에도 쓸모 없을 것이다. 따라서 나는 진실을 말하는 것 이상으로 나아가고 자 한다. 진실을 넘어 역설로서 상황을 움직이려 한다. 정보의 과잉 , 커뮤니케이션의 과잉, 질서의 과잉이 프로그램화된 현질서 안 에서 그 질서에 반대되는 공허, 빈 구멍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확실성에 맞서는 불확실성을, 자명성에 맞서는 수수께끼를 만들 어내는 일이다. 사유는 바로 그러한 작업이다.”

―이같은 맥락에서 이 시대 지식인의 역할은.

“이제 도덕적이며 지적 의식을 가진 지식인이라는 범주는 없다.

‘완전한 실재’안에서 지식인의 자리는 없다. 완전한 실재는 부정적 작업을 추방하며 실재와 거리를 둔 비판적 사유를 불가능 케 한다. 나역시 나의 언어 작업들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알 수 없다. 다만 장기적으로 긍정적 결과를 낳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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