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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쟈넷 posted Jun 28,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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뻥 뚫린 비정규노동자의 가슴

[인터뷰] 한국주택금융공사 채권추심 계약직 이재석 씨

오도엽(작가)  / 2008년06월26일 17시33분

이재석 씨는 여느 날과 마찬가지로 하얀 와이셔츠를 입고 회사에 출근을 했다. 금융기관에서만 13년을 일한 베테랑이다.

▲  한국주택금융공사에서 계약직으로 일해 온 이재석 씨

6월 3일이었다. 경제를 살리겠다는 새 정부가 들어선지 딱 백 일째 되는 날이었다. 늘 하던 대로 이재석 씨는 컴퓨터를 켜고 회사 전산망에 접속을 했다. ‘계약인력 운용’ 부사장 명의의 공문이 올라와 있다. 이재석 씨 얼굴이 밝아졌다.

지난 해 6월 ‘공공부문 비정규직 종합 대책’이 만들어졌다. 비정규직 직원을 정규직이나 무기 계약직으로 전환하라는 지침이다.

이재석 씨는 한국주택금융공사에서 3년 째 비정규직으로 일을 하고 있다. 이 지침에 따르면 이재석 씨는 올해 7월에는 정규직이나 무기 계약직이 되어야 한다. 11개월 씩 계약을 연장하는 불안한 삶을 끝낼 수 있다.

한국주택금융공사 광주지사에서 일을 하던 이재석 씨는 지난 3월에 익산센터로 옮기라는 제안을 받았다. 광주에서 쭉 일을 해오던 이재석 씨는 갈등을 하였다.

이제 갓 초등학교에 입학한 아들을 전학을 시키는 것도 부담이었다. 아내의 직장이 광주인데 떨어져 살 형편도 아니었다. 아내보고 직장을 그만두라고도 할 수 없었다. 맞벌이를 해도 먹고 살기 빠듯한 형편이 아닌가. 거기다 11개월마다 한 번씩 계약을 연장해야 하는 이재석 씨 처지에 아내의 수입은 무시할 수 없었다.

팀장은 걱정하지 말고 익산으로 옮기라고 했다. 7월이 되면 ‘공공부문 비정규직 종합 대책’에 따라 더 이상 계약연장이라는 불안에 시달릴 일이 없을 거라고 했다. 본사에서도 계약직 직원을 무기 계약직으로 전환하겠다는 지침을 수차례 밝혀온 터였다.

▲  이재석 씨는 한국주택금융공사에서 3년 째 비정규직으로 일을 하고 있다.

이재석 씨는 결심을 했다. 집을 팔고 익산으로 이사를 했다. 아내에게 직장을 그만두라고 했다. 올 7월부터 무기 계약직이 되면 안정된 일터에서 일을 할 수 있으니 집안 경제는 걱정하지 말라고 큰소리를 쳤다. 이제 갓 학교에 들어가 선생님과 정을 붙인 아들도 전학을 시켰다.

익산으로 전출을 가면서 회사와 3개월 단기계약을 했다. 무기계약 전환을 앞둔 6월 말에 맞춰 계약기간을 설정한 것이다. 회사는 11개월씩 하던 기존 계약대신 7월 무기 계약직 정책시행에 맞춰 2개월에서 6개월 사이로 단기계약을 맺고 있었다. 이재석 씨만이 아니라 대부분 2년 이상씩 일을 한 계약직원들 대부분이 7월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6월 3일 회사 전산망에 올라온 ‘계약인력 운영’이란 공문 제목을 보고 당연히 무기 계약직으로 변경한다는 지침이라고 이재석 씨는 생각했다. 아니 믿고 있었다.

마우스로 공문을 클릭 했다. 그런데 이게 웬 말인가. 한국주택금융공사의 채권추심을 담당하는 계약직 인력을 모두 계약종료하고 새로운 인력으로 충원하겠다는 말이 아닌가.

갑자기 하늘이 시커멓다. 눈앞에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아내는 직장을 그만두고, 집까지 익산으로 이사를 했는데, 이제 어디로 가란 말인가. 어떻게 먹고 살란 말인가. 그것도 다른 일자리를 알아볼 여유도 주지 않고 나가라니. 기가 막혔다.

그날 밤 퇴근을 한 이재석 씨는 차마 아내에게 이달 말로 계약 해지되어 실업자가 된다는 말을 할 수 없었다.

“여보, 직장에 다니지 않고 살림만 하는 것도 이제 몸에 익네.”

아내가 된장찌개를 식탁에 올리며 말을 했다. 초등학생 아들과 다섯 살 난 딸아이가 식탁으로 달려와 숟가락을 들었다.

“아빠 화났어.”

딸이 아무런 말도 없이 밥만 먹는 아빠에게 물었다.

딸의 목소리에 이재석 씨는 주루룩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이재석 씨는 딸에게 아무 말도 할 수 없는 부끄러운 아빠가 되고 말았다. 일회용품 비정규직.

▲  6월 25일 한국주택금융공사 채권추심 일을 하는 비정규직 노동자가 서울 본사 앞에 모였다. 그들은 빨간 바탕에 하얀 구멍이 그려진 몸자보를 입고 있다.

7월이면 비정규직법이 시행된 지 일 년이 된다. 이랜드 뉴코아 노동자들이 비정규직법에 의해 쫓겨난 지도 일 년이 되었다. 비정규 노동자를 거리로 내모는 ‘비정규직 법’이 확대 시행되는 7월을 앞두고 지난해보다 더 많은 비정규 노동자가 거리로 내몰리고 있다. 소리 소문도 없이 중소규모 사업장까지 비정규직법에 의해 희생당하고 있다.

이재석 씨는 숱한 비정규직 노동자의 한 명에 불과할 뿐이다. 이재석 씨의 눈물은 비정규직 노동자가 일하는 사업장 곳곳에서 장맛비처럼 쏟아지고 있을 것이다.

설마 했던 ‘비정규직 보호법’이 역시 ‘비정규직 눈물법’이 되었다.

진정 비정규직을 보호하려고 만들었다면 공공기관에서 앞장서 모범을 보여야 한다. 그런데 경제 대통령이 들어서고 100일이 지나자 모범은커녕 공공기관이 앞장서 법을 악용을 하려고 한다.

“새 정부가 들어서고 공공부문 개혁, 공공부문 통폐합을 운운하잖아요. 이 칼날이 정말 보호되어야 할 비정규직을 해고하는 형태로 진행되고 있어요. 구조조정이 필요한 곳에서 개혁이 일어나지 않고 가장 약하고 보호받아야 할 비정규직을 희생양으로 내세운다니 말도 되지 않아요. 그것도 공공부문에서 앞장서서 법을 악용하니 치가 떨립니다.”

한국주택금융공사에서 채권추심 일을 하는 계약직 직원은 오십 명이다. 이 가운데 6월 말로 쫓겨나는 사람은 열여섯 명이다. 나머지는 계약만료일이 되면 자동 계약해지가 되어 올 11월에는 오십 명 전원이 거리로 쫓겨난다.

채권추심 업무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계약직원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무기 계약직 전환 대상이 쫓겨나는 대신에 6개월 이내의 단기 계약직 사원으로 새로 충원하겠다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공공부문 개혁을 떠들자 한국주택금융공사는 무기 계약직이나 정규직 전환을 앞둔 비정규직을 내몰고 있다. 그 자리에 단기 계약직을 신규 채용하여 이명박 정부의 정책에 호응하는 것처럼 생색만 내겠다는 것이다.


한국주택금융공사 비정규직 노동자는 누구도 계약해지라는 개별 통보를 받지 않았다. 6월 3일 전산망에 달랑 올라온 공문 두 쪽이 전부다. 거기에는 대상자 이름도 없다. 기준도 없다. 무조건 다 나가라는 말밖에 없다. 그것도 다른 일자리를 알아볼 최소한의 여유도 주지 않고 거리로 나가라고 하니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미칠 지경이다.

손전화의 문자 하나로 해고하였다는 말은 들었지만 회사 전산망 공문 하나로 해고라니 말도 되지 않는다.

왜 나가야 하는 지도 모른다. 탄원서도 써보았지만 회사는 묵묵부답이다. 어떤 해명도 없다. 변명 한마디도 없다.

6월 25일 한국주택금융공사 채권추심 일을 하는 비정규직 노동자가 서울 본사 앞에 모였다. 그들은 빨간 바탕에 하얀 구멍이 그려진 몸자보를 입고 있다. 뻥 뚫린 비정규 노동자의 가슴을 보여주고 있다.

이재석의 가슴을 들여다보면 정말로 뻥 뚫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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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도엽
2008.06.27 09:04
정말 할 말이 없습니다. 공기업에서 항상 강조하던 윤리경영 이런것이 윤리경영 인가요? 너무 어이가 없고 할말이 없습니다.
김대우
2008.06.27 09:06
“아빠 화났어.”


딸이 아무런 말도 없이 밥만 먹는 아빠에게 물었다.


딸의 목소리에 이재석 씨는 주루룩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이재석 씨는 딸에게 아무 말도 할 수 없는 부끄러운 아빠가 되고 말았다. 일회용품 비정규직.

왜 '아버지'가 부끄러워져야 하는 사회가 되어야하는겁니까!
김재현
2008.06.27 1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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