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배의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

by 바다의별 posted Feb 12,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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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령 함락, 하느님의 은총

1870년에 로마는 이탈리아 군에 함락됩니다. 하지만 교황이 살고 있던 바티칸에까지 군대를 들여보내지는 않고 내버려 두지요. 서기 756년에 프랑크족의 피핀 왕이 기증한 라벤나 등으로 성립돼 그 뒤 성쇠를 거듭하던 교황령이 1115년 만에 무너진 것입니다. 세계 역사에 수명이 1000년이 넘게 이어진 나라는 로마와 비잔틴제국(동로마제국), 그리고 교황령 이렇게 셋뿐입니다. 우리 역사의 신라가 993년을 이었으나 아깝게도 1000년에는 조금 모자랍니다.

보통 웬만한 나라나 왕조는 200년을 넘기기 어려운데 이렇듯 어떤 나라나 1000년을 향해 오래 지속되면 그 나라에 사는 이들은 변화의 가능성이나 필요를 스스로 부정하게 됩니다. 현 질서나 체제가 그만큼 효율적이기에 그토록 오래 존속할 수 있었다고 보는 것입니다. 물론 그것은 맞는 말입니다. 고대 어느 종족은 재판을 할 때 피고인을 깊은 물에 빠트렸다고 합니다. 살아나면 죄가 없는 것이고, 죽으면 죄인이라는 것이지요. 물론 그 근거는 하느님이 그를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왕조가 일정한 이상 오래 가면 대개 내부의 변란이나 혁명으로 무너지는 경우는 드물고, 대개는 외적의 침입으로 멸망합니다. 교황령도 마찬가지였지요. 하지만 이처럼 거의 영구불변한 자연의 일부처럼 여겨지던 왕조, 체제가 무너지는 것은 바로 지진과 같은 충격을 줍니다. 교황령이 무너진 것은 가톨릭 교회에도 비슷한 충격을 줬지요. 하지만 대개의 교회 역사가들은 이 사태를 두고 하느님의 은총으로 해석합니다. 세속 권력을 잃음으로써 교회 본래의 영적 소명에 충실할 수 있게 됐다는 것입니다. 간단히 말해서, 아직까지도 교황령이 유지되고 있어서 교황이 인구 수천만 명인 국가의 수장이라고 한다면, 지금의 교황들이 세계 각국으로부터 받는 존경과 우대를 받고 있겠습니까? 물질적으로 이해관계가 엇갈릴 일이 없으니 도덕적으로 존경을 해 줄 수 있는 것입니다.

자기 반성 없이 조롱만으로는 어림없어

왜 갑자기 실패의 충격 얘기를 하냐구요? 지금 이명박 정부 하에서 가장 정신적 충격을 받는 이들은 바로 해방 후 세대, 그리고 그 핵심인 386세대입니다. 이들은 한국전쟁 이후 비록 수많은 곡절이 있기는 했지만 꾸준히 성장했고, 성공을 해왔습니다. 그 역사는 바로 성공의 역사였고, 또 앞으로도 절대 무너지지 않을 것 같았지요. 하지만 실패했습니다. 이명박의 등장은 그 외면적 증거입니다. 선거에서 진 것이지요. 그리고 합법적 대통령직의 권한과 국회 다수 의석이라는 절차적 민주주의의 힘으로 지난 수십년간 쌓아온 민주주의의 성채를 일거에 무너뜨리는 모습을 보면서, 자신의 지나간 수십년의 성공이 이렇게 허약했나 하는 절망에 빠집니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이들 가운데 상당수가 자기 안의 문제를 살피는 일은 소홀히 한 채, 이명박을 공격하고 다음 아고라에서처럼 “쥐새끼”니 뭐니 하는 온갖 방법으로 조롱하는 짓으로 자신의 우월감만 확인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이들은 앞으로도 실패만 반복할 것입니다.

또 이명박 정부의 등장과 잇달은 실정으로 일부에서는 이전 정부인 노무현 정부에 대한 그리움이 짙어지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노무현 정부와 이명박 정부는 여전히 별 차이가 없습니다. 이명박이 약 1년 전의 대선에서 승리한 것은 무슨 이유입니까? 바로 노무현 정부 5년간 가진 자는 더 강력해졌고 없는 자는 더 약해졌기 때문입니다. 이 추세를 유지하느냐, 뒤집느냐가 바로 해방 이후 한국 정치의 본질 문제입니다. 설사 심상정이 대통령이 되더라도 이 추세를 뒤집지 못하면 그는 이명박과 별 차이가 없습니다. 이 추세를 뒤집지 못한다면, 우리는 일본 제국주의에서 해방되지 못한 것과 별 차이가 없습니다. 도대체 왜 우리는 노예 상태에서 해방을 원했고, 왜 민주정치의 주인이 되고자 했던 것입니까? 간단합니다. 잘 먹고 잘 살기 위해서입니다. 우리는 이 추세를 뒤집고, 바로 잡아야 합니다.

왜 노무현의 후계자는 대선에서 이명박에게 졌습니까? 바로 먹고살기 힘들어진 중하층 대중이 이반했기 때문입니다. 이들이 이명박에게 속았다구요? 속은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지지를 잃어버린 죄는 없어지지 않습니다.

 

   


해답은 고통받는 대중 속에서

이명박 정부의 실정이 한없이 이어지면서, “앞으로도 4년이 더 남았다”고 한탄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이런 이들은 4년 뒤에는 한나라당이 쉽사리 정권을 잃을 것이라고 보는 모양입니다. 또 일부에서는 4년을 못 참겠다고, 심지어 군 쿠데타까지도 기대하는 이도 있는 모양입니다. 민주주의를 그렇게 쉽게 내 집안 전기밥솥에 밥 짓는 것처럼 해 먹으려다가 단단히 배탈이 난 필리핀이나 타이의 사례가 지금도 진행중입니다.

민주주의에서는 법과 형식 절차가 매우 중요합니다. 레닌처럼 혁명을 일으켜 스스로 정권을 잡고 확 뒤집으려는 것이 아니라면, 현재의 합법적 통치자가 아무리 미워도 손쉽게 탄핵이나 비헌법적 대중 시위, 궁정 정치로 몰아내어도 결코 좋은 결과를 얻기 어렵습니다. 그것은 감기 빨리 낫겠다고 애한테 소주에 고추 가루 풀어먹이는 것과 같습니다. (일부에서 이런 식의 노무현 지지자들이 혹시 나중에 파시스트로 될 지 모른다고 보는 이유는, 바로 이들의 이런 독선 의식 때문입니다.)

노무현 정부가 패배하고 한나라당이 정권을 잡은 것은 바로 민중과 끈이 떨어졌기 때문입니다. 정규직 노조는 계속해서 조직률이 떨어지고, 비정규직은 늘어나는 상황에서 근로대중은 뿔뿔이 개인으로 흩어진 채 방황합니다. 속았든 어쨌든 이들은 이명박의 “경제 대통령”을 대안으로 선택했습니다. 이명박이 답이 아니었다면, 다음 선거에서 또 누구인가를 선택하겠지요. 요행히 답이 맞을 수도 있고, 또다시 틀릴 수도 있지만, 진짜 문제는 답을 어떻게 풀어야 할 지 모르고 홀짝 찍기 시험만 반복한다는 것이지요.

답을 푸는 방법은 간단합니다. 근로 대중이 스스로의 입장에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정치 지도자, 정치세력을 스스로 조직하는 것뿐입니다. 386이란 말로 대변되던 노무현 정치세력의 한계는, 그들의 개인적 선의와는 무관하게, 바로 대중과 조직적으로 연계되지 못한 때문이었습니다. 노무현 정권 5년 동안 오히려 대중 조직은 끊임없이 약화돼 갔습니다. 노무현 정치세력은 스스로가 대중을 위한 선의를 갖고 있으므로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겠지요. 하지만 피해 대중 속에 깊이 조직적으로 뿌리내린 정치세력 없이 진정한 진보가 이뤄졌던 역사는 절대 없습니다.

한번 우리 스스로를 돌아봅시다. 지금 현실화되고 있는 대고통의 시대에, 가장 피해자인 집단은 누구인지, 그리고 그들과 나의 거리는 얼마만큼 떨어져 있는지. 아마 상당히 멀리, 그리고 오래 떨어져 있을 것입니다.

고통당하는 민중과 함께 대고통을 같이 극복해나갈 때 진정한 진보의 길은 더욱 튼튼해질 것입니다.

(2009년 1월 30일)
박준영/ 아시아가톨릭뉴스(UCAN) 한국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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