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신당이 의석도 얻지 못했고 촛불 정국도 지나갔으며 다가올 지방선거에서 확보할 지지율조차 안심하기 힘들다. 몇몇 인지도 있는 정치인과 명망가 중심으로 당을 끌고 나가기에는 힘이 부친다. 위기라는 진단은 정확하다. 무엇으로 위기를 돌파할까?
서로 흩어진 채 당비만 내며 중앙당이 잘하기만을 기다리는 일명 '페이퍼 당원'인 평당원들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진보신당이 가진 마지막 총알이다. 평당원 조직화는 당이 살아남는 것은 물론 장기적으로 탄탄한 미래를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그뿐만 아니다. 입당하고 나서 가만히 보니까 당 안에서 평당원들이 만날 길이 없다. 자신과 같은 생각과 고민을 지닌 이들을 만나고자 하는 욕구가 넘치지만 만날 통로가 없다. 흩어진 채 안타깝게 모니터 저편을 상상할 뿐이다. 어떻게 하면 평당원들간의 만남을 이루고 함께 삶을 꾸려갈 수 있을까?
민주노동당 시절부터 평당원 민주주의가 꾸준히 제기되어 왔다. 그게 벌써 몇년째 이야기인가? 분당을 통해 주사파와는 결별했고, 지금도 당내에 정파가 있지만 평당원 조직화를 가로막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그렇다면 평당원 조직을 어떻게 만들어야 할까?
제일 먼저 떠오르는 대안은, 평당원 협의체를 만들고 중앙당에 정식으로 인정받은 다음 일정 비율 이상의 지분을 배정받는 것이었다. 민주노총이나 전농 등이 민노당에 지분을 갖듯이 평당원을 대표하는 조직을 만든 다음 당에 지분을 요구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결과적으로 당내에 평당원 정파가 생기는 셈이다.
그러나 또 생각해 본 결과..이보다는 보다 유연한 조직형태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클로즈드 숍
맨 먼저 떠오른 생각은 일종의 클로즈드 숍이었다. 대의원은 물론 각종 당내의 요직에, 평당원으로서의 경력을 필수적으로 요구하는 것이다. 간단하게, 무슨무슨 자리는 평당원 활동경력 몇 년이 요구되는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한 이유는 중앙당에 진출하기 위해서는 평당원이라는 풀pool을 통과하지 않고는 갈 수 없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따로 협의체를 만들어 수직적 의사소통 구조를 만들면 결과적으로나 장기적으로 중앙당과 평당원 협의체가 분리되는 경향이 생길 것이다. 지분만 받고 떨어지거나, 아니면 생활에 바쁜 평당원들이 미처 조직을 챙기지 못하다 흐지부지되는 사태가 일어나기 쉽다.
클로즈드 숍이란 아이디어를 반드시 주장하는 게 아니라...당 전체 조직 내에서 이동하기 위해서는 평당원이라는 풀을 거치지 않고서는 움직일 수 없는 조직을 구성하는게 목표인 셈이다. 평당원들이 따로 모이는 것이 아니라, 조직의 관절이자 관문이 되는 것이다.
경직된 조직 모델을 갖고서는 평당원들이 서로 만날 수가 없다. 지금 조직을 만들려면, 장기적으로, 정말로 머리 잘 써야 하겠다. 그래야 혹시 지지율이 안 나와도 안 흩어지고 같이 버티지 말이다.
태왕사신기 보면 이런 대사 나오더라.
'내가 있는 곳이 궁이다.'
이 말이 맞다. 당 있는 곳이 평당원 있는 게 아니라 평당원 있는 곳에 당 있다.
인터넷 동호회
홈페이지가 어떻게 나올지 모르겠는데, 왠지 업체랑 뭔가 꼬였다는 느낌도 들고...예전에 일하던 데서 홈페이지 디자이너가 게으르고 멍청한 탓에 시기를 놓쳐서 아이템 날리고 돈 날리던 경험이 있어서 걱정이 된다(그탓에 나도 목이 잘렸다).
지금 당내 동호회 사이트라고는 다 링크만 되어 있고, 지역모임 게시판이 따로 있긴 하지만 구 단위 모임까지 가려면 한참 걸린다. 당홈페이지가 뭐그리 예술적으로 아름다울 필요는 없으니, 구단위 지역모임은 물론 동호회들도 모조리 모아다가 메인에 넣어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메인을 열면 후르르 뜨는 수많은 지역모임과 동호회들...
예전에 우리모두가 그랬고, 노사모가 그런 모양이었다. 생긴건 제일 후졌고 잘나가긴 제일 잘나갔었다. 세과시처럼 보인다고 할지 모르지만 그런 것도 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처음 덜렁 들어온 평당원이 도대체 어디로 갈지 알려줘야 한다.
방금 가입한 평당원이 당헌당규 읽고, 정책 꼼꼼히 보고, 강령 읽으며 감동 받겠는가? 그냥 답답해서, 뭔가 호소해볼수 있을까 해서, 아니면 같은 생각하는 사람 만나려고 왔지 스터디하러 온 게 아니다. 어디에 가면 어떤 사람을 만날 수 있을지 홈피가 알려줘야 한다.
홈피 자체가 당원들을 분산시켜 버리고 있으니 문제다.
내 분야는 아니지만 인터넷이 우리에게 준 가장 큰 선물 중 하나는 새로운 조직모델이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이 만나면 조직이 만들어지는데, 이제까지 가장 대표적인 모델은 가족이거나, 군대, 아니면 교회...정도였다.
인터넷 동호회는 내부에서야 가족처럼 지내고, 또 실제로 가족이 되기도 하지만, 그 모델 자체는 매우 민주적이고 느슨하다. 권력이 분산되어 있고 억압도 덜 일어난다. 물론 당이 그렇게 될 수는 없다. 에너지가 집중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흩어진 평당원들이 모이기 위해서는 인터넷 동호회 모델이 가장 만만하고, 쉽다.
지금 가톨릭, 영화, 음악 등의 동호회들이 있는데, 이들 동호회들이 그냥 취미활동이 아니라 평당원 조직체로서의 위상을 인정받고, 여기서의 활동이 평당원 경력이 되었으면 한다.
지역모임이 있지 않은가?라고 나올 수도 있는데, 사실 나또한 페이퍼 당원이라 지역모임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른다. 잘못했다. 하지만 지역모임은 정식 당조직이라는 건 안다. 지역모임에서의 활동은 정식 당활동이 된다. 동호회 활동도 그래야 한다.
대학에서 학생회 선거 할 때, 가장 든든한 기반은 물론 학과지만 동아리도 기반이 된다. 당내 인터넷 동호회들을 그냥 버려두지 말고, 지원도 좀 해주고 이뻐도 해 주고, 집회할 때 자꾸 불러서 공연시키고 좀 그랬으면 좋겠다. 정식 당조직으로 인정했으면 좋겠다.
역시 지역모임으로 다 끌어넣지 그런가...라는 얘기도 나올 수가 있는데, 동호회 활성화를 주장하는 첫 번째 이유는 역시 조직의 다안성이다. 평당원 한 명이 활동할 수 있는 다양한 통로가 존재해야 한다. 가령 지역모임 하면서, 인라인 모임 갔다가, 음악 동호회에서 채팅하고...그런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는 공간들이 존재해주는 것이다.
어차피 평당원들은 운동권이 아니다. 이들을 한데 끌어넣는 조직은 아직 불가능하다. 흩어진 점에 불과한 이들을 선과 선으로 연결하고, 점 하나를 찍으면 아무리 멀리 있는 점까지도 갈 수 있는...더 나아가 그 점과 선이 전국을 뒤덮을 수 있는 조직을 만드는 것이다.
점조직 만들자는게 아니고.
당의 생협화
지역모임 자꾸 거론해서 미안한데, 지역모임은 반드시 필요하지만, 그래도 걸리는게 하나 더 있다.
사람들이랑 얘기하다가, 지역이 광진이야요...그러니까 광진지역 직장인들이 대부분 퇴근이 늦어서 고민이라고 하더라..
회사랑 집만 부지런히 왔다갔다 하면 정작 자기가 사는 지역에 대해 잘 모르게 된다. 집주변에 뭐가 있는지 뭐가 생기는지도 감각이 둔해진다. 지역에 대해서는 전업주부가 제일 잘 알수밖에 없는 것이다.
지역모임이 문제라는 얘기가 절대 아니고! 사람들이 정작 어디서 진정으로 살고 있는지 봐야 한다는 말이다. 회사에서? 집에서? 학교에서? 사는 장소라는 건 꼭 지역을 얘기하는게 아니다. 인터넷이나 컴퓨터 속에서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지역모임 이외의 당활동이 가능한 곳이 필요한 것이다.
문제는 살고 있는 당원들이 활동하려면, 지역모임과 동호회만으로는 아직 부족하다는 것이다. 지역모임은 반드시 필요하고, 동호회는 여가에 쓰이는 에너지를 모으지만, 그래도 부족하다. 자기가 1년 이상 열심히 활동한 인터넷 동호회가 몇 개나 되는가? 돈도 벌고 생활도 하고 그러려면 하고 싶어도 중간에 관두게 된다.
당을 생협으로 만들자는 건, 쇼핑 사이트 열자는 게 아니고...일종의 서비스 생협을 하자는 제안이다. 의료나 법률, 교육, 음악, 미술 등에 종사하는 당원들이 직업별로 자발적으로 모인 다음, 가격을 낮춘 서비스를 공여하거나 아님 실비만 받거나, 그냥 자원봉사만 하거나...
사실 이건 교회나 성당에서 하는 거다. 가톨릭 연령회가 대표적인 케이스다. 그뿐만이 아니다. 가난한 집 아이들이 교회에 가는 이유는 신앙뿐만이 아니라 가면 또래들이 있고, 공부도 할 수 있고, 음악과 연극 등 돈이 드는 예술활동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걸 하려면 중앙당에서 지원이 많이 필요할 거란 생각이 든다. 그렇지만, 당 안에서 생활에 필요한 것을 해결할 수 있고, 또 다시 나눠줄 수 있는 공간을 열어준다면, 공을 잘 들여서 활성화가 되고 제가 알아서 돌아간다면...꽤 괜찮을 것 같다.
당에서 뭐 먹여살려 줘야 하냐...고 생각하는 건 오해다. 생협은 기본적으로 증여적 관계이기 때문이다. 증여와 도움의 관계 말이다. 정당의 존재목적은 집권이라지만 그 안에 들어오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당의 집권이 궁극적인 목적이 아니다.
자기가 살려고 오는 거란 말이다.
장악되지 않는 조직
앞에서 얘기한 평당원 협의체건, 지역모임이건, 인터넷 동호회 연합이건, 아니면 직업별 봉사단체협의체건, 아니면 내가 생각하지 못한 더 좋은 조직형태건...내 바램은 쉽게 장악되지 않는 조직이었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안그래도 없는 시간과 돈을 쪼개 오는 당원들은 조직까지 살피고 돌볼 여를이 별로 없다. 겨우겨우 따라가기도 바쁠 따름이다. 그래서 시스템을 잘 만들어야 한다. 시스템이 별건가, 사람이 그때그때 움직이기 귀찮으니까 만든 거지...
민주주의 체제에서 조직 장악은 결국 선거이다. 해도해도 안되서 분당한게...실은 주사파보다 머릿수가 모자란 탓도 전혀 없다고는 할 수 없다.
원래 조직이란 게 이상해서 장(長)만 잡으면 이상하게 다 잡히는 경향이 있다. 필요해서 뽑은 건데, 이상하게 조직의 약점이 되고 잘못 뽑으면 없느니만 못 하는 경우도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열심히 장을 뽑는 이유 중 하나는 수직적 의사결정구조 말고는 다른 구조를 상상하지 못하기 때문일 게다.
평당원 조직은 단일한 색깔에 장악되어서는 안 된다. 그런데 장악되지 않는 조직을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시간 없고 돈 없고 바쁘고 경험 없는 평당원들이 무슨 수로 선거에서 이기남.
대학 때 아주 작지만, 장 없는 조직을 경험해봤는데...무지 편했다. 장이 없으니까 외부에서 잡힐 일도 없고, 구성원들도 책임감을 크게 가졌다. 짐을 모조리 모아 지울 장이 없으니 당연한 일이다.
평당원들이 따로 기존 조직과 비슷한 형태의 조직을 만드는 것보다, 그보다 당의 강건한 베이스(이 무슨 운동권같은 말투?), 조직의 관절, 아무도 평당원 풀을 통과하지 않고서는 당 안에서 한 발짝도 이동할 수 없는 조직형태...를 꿈꾸고 있지만...그러러면 다양한 색깔이 장려되어야 한다.
그러려면 특별히 시킬 일도 없는 장을 두느니 안 두거나, 아니면 회비나 걷게 하는게 낫다.
위에 쓴 것들은 정교하게 생각해 본 건 아니지만 아, 이런 게 있으면 좋을 것 같애...^^라고 생각한 결과에 불과하다. 이러한 아이디어를 모아 보고, 안그래도 바쁜 중앙당에 요구하는 것보다는, 지역모임에서 각기 실험해 본 다음 확장시켜 보는 게 어떨가 싶다.
대안없는 비판 하지 말라지만 지금은 정말 대안을 내놓아야 한다. 머리를 정말 많이, 잘 써야 하는데, 시간은 별로 없다. 같이 생각을 정리해보고 지역별로 실험에 들어가봤으면 어떨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