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이명박의 ‘미친 교육’ 정책들을 보면 한 숨만 나옵니다. 자사고 100개 설립에서부터 40년 전에 없어졌던 중학교 입시를 부활시키는 국제중학교 설립까지 사교육비 감소를 한다고 하면서도 정작 사교육비를 배로 늘리는 정책만하고 있으니까요. 실제로 몇몇 학원들은 불황 속에서도 매출액이 크게 늘었다더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준화에 대한 강한 불만을 한나라당 쪽에서 가지고 있는 한 이명박의 ‘미친 교육’ 정책은 계속될 겁니다.
그 쪽 사람들이 평준화에 대해 불만을 가지고 있는 것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죠. 평준화는 곧 하향평준화라면서 이른바 ‘경쟁력’ 강화라는 이유로 평준화 해체를 주장합니다. 하지만 그 사람들이 말하는 하향평준화라는 것의 근거가 어디 있나요? 굳이 먼 나라 이야기를 들지 않아도 국내에서 비평준화 지역과 평준화 지역을 비교해보면 별 차이가 없다는 게 통계로 드러났죠. 설령 평준화로 인해 학력이 떨어졌다 하더라도 평준화 해체론자의 말은 그다지 동의할 수가 없습니다.
학교는 지식을 전달하는 곳이면서, 학생들이 미리 사회를 체험하게끔 하여 나중에 있을지 모를 서로 간의 갈등을 예방하는 곳입니다. 그렇다면 학교의 교실은 남자부터 여자, 장애인부터 비장애인, 공부 못하는 아이들에서 공부 잘하는 아이들까지 최대한 다양한 아이들이 섞이게 하여 사회의 축소판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래야 학생들 간의 오해와 편견이 줄어들 것이고, 나중에 사회에 나가서도 불필요한 사회적 갈등을 일으키지 않겠죠. 하지만 비평준화 체제에서는 이러한 것이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약 한달 전 쯤 이었습니다. 안산 지역에서 중학교 전교 1~2등만 간다는 이른바 명문 학교를 나온 친구가 있는데 , 다른 친구들은 어느 학교로 갔느냐에 대해 그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었었죠. 그 때 제가 ‘네 학교에서는 안 그러겠지만 내 친구 중 몇 명은 충청도 쪽으로 학교를 갔다’고 말했더니, 그 친구가 ‘어디? 카이스트?’라고 말하더군요. 제가 말한 ‘충청도 쪽’ 학교란 이른바 학벌이 낮은 학교를 말한 것이었지만, SKY로 불리는 곳에 수십 명 씩 학생을 보내는 곳에서 학교를 다닌 그 친구는 생각나는 충청권 대학이라곤 카이스트 밖에 없었던 겁니다. 그래서 제가 ‘그게 아니라, 좀 안 유명한 대학을 말한 거야’라고 말하니, 그 친구가 ‘그런 대학에 왜가?’라고 대답하더군요.
이처럼 비평준화 출신 아이들은 성적에 따라 다른 학교에서 교육받아 왔기 때문에 당연히 서로 간의 이해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어요. 이는 나중에 대학을 다니고, 사회에 나가서도 그대로 일 것입니다. 이 때문에 결국 사회적인 불필요한 갈등은 줄어들기는커녕 더욱 늘어만 갈 것이고 사회는 더 각박한 곳이 되겠죠.
(혹시 오해가 있을 수 있는 것 같아 말하는데, 여기사 말하는 ‘통합’ ‘갈등’은 보수주의자들이 말하는 그것들과는 다릅니다. 힘 있는 사람들을 변호하기 위해 두 단어를 악용하는 그 사람들과는 달리, 저는 학벌로 사람을 따짐으로서 이루어지지 못하는 ‘통합’과 불필요하게 발생하는 ‘갈등’을 말한 겁니다.)
이와 같이 비평준화 체제에서의 학교는 본래의 목적과는 달리 오히려 서로 간의 오해와 편견을 키워 사회적 갈등을 더욱 유발시키는 존재가 되어버립니다. 이러한 체제는 설령 학력을 신장 시킨다고 하더라도, 신장시킨 학력보다 더 많은 갈등을 낳을 수 있기에 결코 올바른 체제라고 할 수 없습니다. 평준화 해체론자들은 학력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좀 더 넓은 안목으로 평준화 해체로 인한 사회적 결과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평준화 체제야 말로 학교를 본래 역할에 충실하게 만들 수 있으며, 사회적으로도 기여할 수 있는 체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