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선거구제 개편 구상에 대한 비판적 코멘트
채진원 경희대 시간강사
<고인이 되신 김대중 전대통령의 서거에 삼가 애도를 표합니다.>
김 전 대통령의 서거와 이로 인한 조문과 장례정국으로 지난 8·15 경축사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밝힌 중대선거구제 개편 구상 논의가 잠시 촛점에서 벗어나 있을 것 같다. 타이밍이 적절하지는 않지만 몇 가지를 정리해 볼 필요가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제시한 중대선거구제도 개편구상은 구체적인 윤곽이 드러나지 않은 채 워낙 추상적인 차원에서 제기된 것이라 보는 사람에 따라 정파적 시각에 따라 다양한 해석이 나오는 것은 너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필자의 의견 역시 그런 수준에서 하나의 의견이다.
1. 한국 정당정치의 문제점이 ‘지역주의’ 일까? 단성악적 독백주의일까?
아마도 이명박 대통령이 중대선거구제 개편 구상을 내놓은 배경에는 한국 정당정치의 문제점을 ‘지역주의’로 인식하고 있는 것 같다. 따라서 영호남 지역주의를 극복하는 방법의 하나로써 한나라당은 호남에서 서진을, 민주당은 영남에서 동진할 수 있는 제도적 방안을 고민한 것으로 보인다. 물론 한국 정당 정치의 문제점으로 ‘지역주의’를 보는 것은 한나라당과 민주당이라는 양당구도하에서 두 당 모두 전국적인 정당이 아니라 특정 지역에 기반하고 있으면서 이해관계를 관철시키고 있다는 점에서, 배타적인 지역정당이라는 한계를 개선할 수 있는 중대선거구제도가 하나의 방법이라는 점에서 일리가 있고 타당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러한 양당의 시각은 일찍부터 지역주의 정당을 탈피하고 계급정당, 이념정당을 추구하고자 했던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의 시각에서 한국정당 정치의 문제점을 보면 좀 다르게 보인다. 즉, 적어도 한국정치의 문제점은 지역주의 그 이상이다. 자본-임노동, 진보-보수 등 사회적 균열구도에 따라 정당구도가 형성되어 국민의 다양한 계급 계층적 이해를 대변해야 하는 데, 한국의 정당정치 구도는 그렇지 못하다. 다시 말해서, 한나라당과 민주당 양당 중심의 구도가 보여주고 있듯이, 노동자가 1천 만명이 넘어도 노동자의 이익을 대변할 수 있는 정당의 국회의원이 10명도 안된다는 차원에서, 한국 정당 정치의 문제는 계급계층적 불비례 대표성이다.
그리고 필자의 시각에서 보면, 한국정당 정치의 문제점은 지역주의와 계급계층적 불비례 대표성 그 이상이라는 점에서 다르다. 필자가 볼 때, 한국 정당 정치의 가장 큰 문제점은 국민들의 다성악적인 이해관계를 반영하거나 상호작용하지 못하면서 자기 정당들끼리 따로 노는 정치의 단성화(독백주의), 즉 진보와 보수라는 이념적·정파적 편향성이 가장 심각한 문제로 다가온다.
예를 들어 보면, 국민들의 이념성향과 정치권의 이념성향과 거리가 좁혀지지 않고 따로 놀고 있는 현상이 그것을 반증한다. 하나를 보고 전체를 말할 수 없지만, 최근 추세를 반영하는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가 5일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본인의 주관적 이념성향'을 묻는 질문에 응답자들은 "중도(43.4%)> 진보(31.7%)> 보수(24.9%)"순으로 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응답은 한국의 국민들의 의식과 이념적 성향이 보수만 있고, 진보만 있는 것이 아니라 보수와 진보를 포함하여 중도성향의 국민이 다수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다성악적목소리와 시각으로 보여주고 있다. 즉, 이 같은 중도, 보수, 진보의 다양한 목소리 비율은 한국정치의 복잡성과 이질성과 공존성을 동시에 보여주고 있으며, 그 중에서 중도의 목소리가 상대적으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최근 서강대 현대 정치연구소 이현우 교수팀이 조사하여 주간동아(2009-07-20)에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한나라당과 자유선진당 지도부는 자기 정당의 평균 이념이 국민보다 보수적이라고 인식한 반면, 민주당과 민노당 지도부는 자기 정당이 국민보다 더 진보적이라고 인식”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렇듯, 각 정당의 평균이념이 국민의 성향보다 보다 더 보수 또는 더 진보에 위치하고 있다는 점에서, 기존의 주류 정당들 모두가 중도 성향의 다수 국민의 이해관계를 배제할 뿐만 아니라 변화하는 시민들의 의식과 다성악적 세계로 나아가고 있는 사회분위기를, 반영하지 못하고 자기들만의 이념적인 진보-보수의 편가르기(이념의 양극화)로 ‘단성악적 독백주의’에 빠져있다는 것을 명증하게 보여주고 있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이러한 기존 정당정치가 진보-보수의 이념적 편향성에 따른 단성악적 독백주의에 빠져 있기 때문에 결국 이것이 국민들의 정당에 대한 불신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적절한 상관관계를 보여주는 적절한 예라 할 것이다.
특히, 기존의 주류정당들이 진보 중도 보수 등으로 다양하게 복잡하게 혼합되어 있는 국민들의 다성악적인 성향과 목소리들을 반영하지 못하고, 자기들만의 이념적 성향인 진보, 보수라는 단성악적인 독백주의를 지킬 경우, 민주대 반민주 혹은 진보대 보수라는 이분법적인 사고는 독백주의에 빠져 대화와 토론 및 공론장 정치는 실종되게 된다.
결국 이것은 2009년 노무현 전대통령의 죽음 전후과정에서 그리고 7월 한나라당이 다수의석을 무기로 하여 미디어법을 강행처리하는 과정에서 벌어진 국회 난투극과 폭력사태 및 야당의 장외투쟁과 헌법재판소 소송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정국경색이 보여준 것처럼, ‘대화와 신뢰부족’에 따른 잦은 ‘교착과 파행’ 및 ‘정치의 사법화’(judicialization of politics) 또는 ‘다른 수단에 의한 정치’(politics by other means)가 판을 칠 수 밖에 없다.
그렇다면, 결국 이렇게 한국 정당정치의 문제점을 어디에 포인트를 주느냐에 따라, 그 해법은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한나라당과 민주당,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 그리고 필자가 바라보는 한국 정당 정치의 문제점을 바라보는 포인트가 다르기 때문에 그 해법의 우선 순위도 다르다.
필자는 지역주의, 사회적 균열구조에 반응하는 선거제도 개혁보다도 더 우선적으로 기존 정당들이 이념적 편향성과 단성악적인 정치에서 벗어나 다성악적인 목소리를 반영하는 정당구조로 자체 내부개혁을 진행했으면 좋겠다. 그 시작은 대화와 소통을 원활히 할 수 있는 원내정당화를 촉진하는 것이라 생각된다.
2. 중대선거구제가 정치개혁일까? 이미 파산한 폐기처분당한 제도일까?
흔히, 중대선거구제 하면, 중선거구제와 대선거구제를 혼합한 말로, 중선거구제는 선거구당 2~5명의 대표자를 선출하는 것이고, 대선거구제는 5~10명의 대표자를 선출하는 것을 말하고 있는데, 정치권은 아직까지 어떤 형태의 중대선거구를 말하는지 정확하게 밝힌 바는 없지만, 대선거구제가 아니라는 점은 분명하다.
중대선거구제는 이미 94년 일본에서도 그리고 우리나라에서도 유신헌법 당시에 시행되다가 시행의 문제점으로 폐지된 바 있고, 또 민주당의 전신인 새정치국민회의에서도 돈 선거와 부패 및 파벌정치를 부르는 선거시스템으로 경험되고 분석되어 폐기된 바 있는 선거제도이다.
일본의 한 정치학자는 중대선거구제의 문제점에 대해 다음과 같이 평가하였다.
"세계에서 유사한 예가 없는 중선거구라는 시스템에 부패를 낳은 근원이 있다. 한 개의 선거구에서 2인내지 5인 정도의 후보자를 낼 수밖에 없다. 같은 선거구에서 경쟁을 하게 되면, 정당조직은 기능을 발휘하지 못한다. 같은 당내의 동지이면서 선거에 있어서는 적군도 아군도 되는 것이다. 이를 위해 몇 만인, 몇 수집만 인이라는 후원회조직을 만들어 치열한 싸움에 도전해가는 것이다. 이런 조직을 만들기 위해서는 거액의 자금이 들 뿐이다."
이 중대선거구제도는 한국정치의 고질적인 병폐인 현 지역주의 구도를 고스란히 인정하고 있는 상태에서 지역주의에 기반한 전략적 투표행위를 부추긴다는 점에서, 지역주의 세력과 명망성있는 보수정객들에게 무조건 유리한 선거제도라는 점에서, 선거구가 넓어져 돈이 더 많이 들어간다는 점에서, 지역주의와 돈 선거를 청산할 수 없는 제도라는 점이다.
오히려 중대선거구제도는 정치개혁과는 무관하게 거꾸로 지역주의와 고비용 정치를 더욱 합법화 양성화할 뿐이다. 특히, 지역주의에 기반한 전략적 투표행위를 부추긴다는 것은 중대선거구를 가정할 경우, 지난 대선의 득표율로 한나라당은 호남에서 단 한석도 얻을 수 없음에 반하여 민주당은 영남에서 몇 석을 얻을 수 있게 된다.
그렇지만 이를 알고 있는 영남의 유권자들은 호남에서 한 석도 안주는데, 우리만 주면 바보가 된다는 생각에서 다시 전략적 투표를 하게 될 가능성이 커져 지역주의가 다시 부활 강화되는 논리와 같은 것이다.
아울러 중대선거구제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점은 국민의사의 정확한 반영이라는 민주적 선거의 기본기능을 제대로 발현시키지 못한다는 점에 있다. 예컨데, 특정 선거구에서 90%의 압도적 지지를 받아도 의석을 갖게 되고, 5%의 지지밖에 받지 못하는 경우에도 2위가 되어서 똑같이 의석을 하나 갖게 된다면, 그 결과가 정당한 국민의사의 반영이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3. 생각해 볼 수 있는 쉬운 제도 개선부터 어려운 제도개선까지
필자의 생각은 어려운 선거제도 개선보다는 자당차원에서 시작할 수 있는 개혁을 먼저 시작했으면 좋겠다. 우선 강한 정당기율에 기반한 당론제도를 개혁할 필요가 있다. 특히, 집권당인 한나라당의 당론채택방식은 당쇄신특위가 고백한 대로, 청와대와 대통령 그리고 대통령의 의중을 전달하는 원내외 당 지도부에 의해서 일방적으로 정해지는 경우가 많다. 원외당 지도부와 청와대 및 대통령에 의해 당론이 주도될 경우, 원내에서 타당 의원들과의 합리적이고 생산적인 그리고 건설적인 대화와 토론을 제약하거나 어렵게 한다.
원외지도부와 청와대 및 대통령에 의해 주도되는 당론의 경우, 원내에서 타당과의 합리적이고 생산적인 그리고 건설적인 대화와 토론이 어렵기 때문에 결국 이것은 일방적으로 관철되기 시작할 때 국회의 합리적인 절차와 토론 및 합의형성에 하자가 생기게 된다고 생각한다.
의회가 교착과 파행을 피하기 위해서는 정당이 대통령과 청와대, 그리고 청와대의 의중을 관철하는 원내외당지도부에 의하여 당론이 결정되지 않도록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된다. 이를 위해서는 강제적 당론을 금지시키거나 의원들의 합의에 따른 당론투표제를 도입하도록 하거나 무엇보다도 형식화된 의원총회를 실질화하여 원내정당화를 내실화하는 것이다.
또한 원외당지도부 중심의 당론 형성을 약화시키고 상임위중심의 당 운영을 활성화시킬 필요가 있다. 즉 관련된 상임위원회가 헌법에 보장된 의원들의 양심에 따른 대화와 토론 및 자유투표 교차투표를 활성화할 필요가 있다. 특히, 민감한 사안과 이슈에 대해서는 의원총회 산하에 패널토론, 전문소위원회를 설치하여 운영하면서, 합리적인 안을 만들 필요가 있다.
장기적으로 의원들이 당지도부의 눈치를 보면서 집단행동에 참여하는 이유는 공천권을 쥐고 있는 사람들이 대통령이나 계파 보수 또는 보스 대리인이기 때문이다. 의원들의 자율적인 독립성을 활성화시키기 위해서라도 의원들이 당지도부와 보스의 눈치가 아니라 민심에 민감해지도록 공천제도를 상향식공천제도로 개선할 필요가 있다.
어려운 제도개선으로 선거제도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면, 현행 <지역구+비례대표>를 병립하는 방식에서 비례대표를 획기적으로 늘리는 가운데, 전체의석 배분을 선거에서 얻은 정당득표율에 따라 의석을 배분하는 <독일식 정당명부비례대표제>를 도입하는 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다만 한국은 독일과 같은 연방제 국가가 아니기 때문에, 지역분권과 지방자치를 고려하여 의원명부는 권역별 명부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중요한 것은 제도 개선이 만병통치약이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할 때 제도개선의 효과를 담보할 수 있다. 제도개선은 모든 문제를 일거에 해결할 수 있다는 ‘원펀치 증후군’을 양산할 수도 있다. ‘원 펀치’는 매우 매력적이지만 그 만큼 매우 어려운 일이다.
마치 이것은 혁명 한방으로 모든 것 해결할 수 있지만 혁명이 쉽게 일어나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다. 국민들의 의식과 상관없이 당리당략적으로 위로부터 진행되는 무리한 제도개선보다는 현실에서 고칠 수 있는 아래로부터의 작은 관행, 말, 행동부터 개선해보도록 하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