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그들은 거리로 나섰던 거다"

by 김오달 posted Sep 18,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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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그들은 거리로 나섰던 거다"
지난해 한 월간지 부탁으로 써둔 글 공개, 이랜드·비정규직 관련
 
김오달 기자
기자도 잊고 있던 이랜드 관련 기사가 하나 있어 소개해볼까 한다. 지난 2006년 3월, '그래서 그들은 거리로 나섰다-끝나지 않은 비정규직 투쟁의 현장'이라는 제목으로, 지금은 사라진 모 월간잡지의 부탁을 받아 작성한 것이었다.
 
비정규직법안과 관련해 특수고용직노동자들의 문제까지 포함해 작성한 이 기사는 기자가 이랜드투쟁 취재에 열성적으로 뛰어든 배경도 설명(?)해주고 있다.
 
개인적으로 97년(으로 기억된다), 처음 벌어진 이랜드노동자들의 파업현장을 최초의 노동투쟁현장으로 접했던 기자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이랜드는 뭔가 문제 있는 기업"이라는 인식을 갖게되었던 것 같다.
 
쓴지 1년 하고도 7개월이나 지난 기사지만, 독자들에게 현재 벌어지고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에 대한 이해를 구할 수 있는 기사라고 생각해 미천한 글발이지만 그냥 묻혀두기 아쉬워 내놓아본다. /필자 주
 
끝나지 않은 비정규직 투쟁의 현장
 
작년 겨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엔 체감온도로 따지면 영하 20℃가 훨씬 넘는 혹한의 날씨에도 여전히 천막을 지키고 있는 이들이 있었다.
 
이 땅에서 비정규직이라는 이름으로 살아가는 이들이 바로 그 주인공들. 국회에서 비정규직 관련 법안의 논의가 진행되어온 2년여의 지난한 시간동안 아스팔트 위에 천막을 치고 농성을 밥 먹듯 해온 비정규직 노동자들이었다.
 
그러나 힘겨운 투쟁에도 불구하고 개선될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는 현실은 점차 그들의 의욕을 상실케 한다. “이젠 차라리 천막이 편하다”는 자조섞인 한탄이 천막 안에서 자주 들려올 정도다.

▲ 2005년 겨울 여의도 국회앞     © 김오달 기자

햇수로 3년이다. 여전히 현실은 바뀌지 않은 채 그대로이며, 파업을 했다는 이유로, 노동조합을 만들었다는 이유로, 5년이 넘도록 그대로인 임금 좀 올려달라고 했다는 이유 등으로 직장에서 해고되어 거리로 내몰린 이들은 여전히 그 얼음바닥같은 아스팔트 위에 자리를 깔고 앉아 “비정규직도 인간이다!” 라고 외치고 있다.
 
인간으로서 살아가기 위해 가장 기본적으로 보장받아야 할 권리인 ‘일할 권리’를 달라고 외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정부와 여당은 ‘비정규보호법안’이라는 이름으로 비정규직 사용 기간을 늘리고, 그나마 존재하던 ‘사유제한’마저도 모든 직종에 전면허용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를 보호하기는커녕 오히려 양산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밖에 없는, 이름뿐인 보호법안을 통과시키려하고 있다.
 
인권침해로까지 이어진 비정규직 차별
 
지난 해 11월 10일, 광화문에서 열린 ‘비정규 노동열사 합동추모제’에 참석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노무현 대통령은 가장 먼저 비정규직의 눈물을 닦아주겠다고 약속했지만, 참여정부가 출범한 후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삶의 모습은 점점 더 비참해지기만 했다”고 울분을 토로하며, “더 이상 죽을 수만은 없다. 이제 비정규직 노동자들 스스로 나서 비정규직 차별철폐를 이루어낼 것”이라며 결의를 다졌다.
 
하지만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현실은 이들의 외침을 지켜내기엔 너무나 버겁다.
 
‘단결권,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 등 노동자라면 누구나 가져야 할 노동3권조차도 갖지 못하고 늘 고용불안에 시달려야 하는 것이 이들의 현실이기 때문이다.

일례로 대표적인 비정규직 투쟁사업장인 이랜드 노동조합의 경우 지난 2000년까지만 하더라도 비록 저임금(50만 6000원)의 기간제 비정규직 아르바이트일지라도 본인이 희망하는 한 계약연장은 얼마든지 가능했지만, 계속되는 회사의 불법파견과 정규직 약속 불이행을 위한 계약연장 거부 등으로 결국 고용불안이 심화되는 결과로 이어졌다.
 
그 과정에서 회사 측은 200일이 넘는 파업투쟁의 성과로 노조가 얻어낸 약속이었던 ‘3년내 정규직화’ 합의는 하나도 이행하지 않은 채 ‘연매출 2조 654억, 순이익 2854억’이라는 어마어마한 이윤창출을 이룰 수 있었다.

이러한 비정규직 노동자의 심화된 고용불안은 비단 이랜드 노동조합 한 곳의 특별한 케이스가 아니라 전체 노동자의 절반 이상에 달하는 850만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처한 현실이다. 
 
▲     © 김오달 기자

또 지난 해 4월 국회헌정기념관에서 열린 ‘비정규노동자들의 증언대, 우리들의 삶을 말한다’라는 증언대회에선 권혜영 금융노조 비정규직지부 위원장이 “계약직들이 금융노조 비정규직지부에 가입하고 집단적 움직임을 보인 것을 빌미삼아 우리은행이 126명의 사무행원 전원을 계약만료라는 명목으로 계약해지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대표적 불법파견 사업장인 ‘하이닉스-매그나칩’ 사내하청지회 오병융 부지회장도 “12년간 하청업체가 5~6회가 넘게 교체되었지만 한번도 고용불안을 느껴본 적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조를 설립하고 교섭을 요구하자 4개 업체가 한꺼번에 200여 명의 직원들을 해고했다”고 밝히며, “비정규직들에겐 헌법에 보장된 노동 3권도 피해간다”고 호소했다.

이 뿐만이 아니다. 지난 해 1월부터 근로기준법 준수, 노조인정 등을 요구하며 1년여를 파업하고 있는 대표적 장기투쟁 사업장인 언론노조 출판지부 성진애드컴분회(분회장 이진훈)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비정규직으로서 받는 설움이 차별을 넘어 인권침해로까지 이어지는 현실과 마주하게 된다. 
 
▲ 2005년 4월 성진애드컴 집회     ©김오달 기자

성진애드컴의 파업은 이 회사 사장아들인 김모 이사의 인격모독적 발언들로 인해 촉발되었다. 평소 김모 이사는 노동자들에게 ‘전라도 깽깽이’, ‘뚱뚱한 년’ 등의 말을 서슴지 않고 내뱉었으며, 여성노동자들이 생리휴가를 쓰려면 병원에서 발급되지도 않는 ‘생리입증 진단서’를 제출하라고 해 성적수치심을 일으켜 ‘성희롱 논란’이 일기도 했다.
 
이에 노동자들은 노조를 결성해 사측의 부당한 처사에 항의했으나, 회사측은 되려 노조결성 이후 사업장에 16개의 감시카메라를 설치해 직원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는가하면, 비조합원을 동원해 전화통화 기록과 화장실 출입 횟수 등을 기록하는 등의 인권침해적 노무관리를 일삼았다.
 
성진애드컴은 명함·전단지 등 인쇄 및 발송을 전문으로 하는 업체로, 관련 노무자들에 따르면 을지로 인쇄골목에 위치한 업체 중 그나마 근무조건이 ‘훌륭한 편’이라고 하니, 4만여명으로 추정되는 다른 대다수 비정규직 인쇄노동자들의 근로조건은 두 말할 필요없이 열악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어느 학습지 女교사의 죽음
 
한편, 지난 2003년에는 구몬학습교사 이정연 씨가 스트레스성 심장질환으로 인한 호흡장애로 사망한 사건이 있었다.
 
학습지 교사를 하면서 실적 강요, 휴회 홀딩(개인적 사정에 의해 학습지 회원이 학습지를 중단한 상태임에도 중단처리하지 않는 불법행위), 가짜회원 만들기, 회비대납 등과 같은 부당영업 강요와 토요일ㆍ공휴일 근무, 퇴사의 자유박탈 등의 부정 업무로 인한 스트레스가 이 교사의 주된 사인이었다.
 
▲ 故 이정연 교사의 영정사진     © 김오달 기자

실제로 故 이정연 교사 사망 직후 전국학습지산업노조가 이 교사가 관리하던 회원들을 인수인계하는 과정을 조사한 결과 ‘전체 203개 과목 중 134개 과목에 대한 회원명단이 허위가입’임이 드러났다.
 
이에 학습지교사들은 “더 이상 우리를 죽음으로 내몰지 말라!”고 외치며 연일 구몬학습 본사 앞에서 시위를 가졌다.

최근 대법원에서 ‘노동자성을 인정할 수 없다’는 판결을 받은 학습지교사들은 그 인정되지 않는 ‘노동자성’ 때문에 노동계에서조차 ‘특수고용노동자’라고 불리지만, 실제 그들의 삶의 처지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거나 오히려 더 열악한 처지에 놓여있다는 것이 학습지교사들의 한결같은 이야기다.
 
죽어야만 인정받는 비극은 이제 없어져야
 
이같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문제는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2000년부터 노동계의 이슈가 되어 온 이 문제에 대해 더 이상 우리 사회가 침묵해서는 안 되기에 수많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천막농성으로, 타워 크레인 점거로, 때로는 자신의 몸에 시너를 뿌리고 불을 당기는 ‘분신’으로, 비참한 현실에 내몰린 자신들의 처지를 봐달라고 절규하고 있는 것이다.

2005년 작년 한 해동안 민주노총의 ‘사회적 교섭’ 사태, 인권위의 비정규직 관련 권고안과 그에 대한 정부와 재계의 반발, 민주노총의 비리문제, 그리고 민주노동당의 비정규 법안 입장 변경 등 여러 가지 비정규직 관련 기사들이 언론을 통해 보도되었다.

▲     © 김오달 기자

하지만 정작 그러한 기사들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처해있는 현실이나 삶의 문제에 대한 내용은 전혀 없다.
 
수많은 언론 기사의 초점은 오직 ‘비정규관련입법’에 관련한 정치권의 힘겨루기에만 맞춰져, 여당 안이 통과되느냐 마느냐 하는 것만 부각되고 있을 따름이었다.
 
언론이 그렇게 비정규직 관련 보도를 하고 있는 동안, 2000년부터 시작된 비정규직 노동자의 죽음은 무려 13건에 달해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그야말로 죽어야만 언론에 기사거리가 되는 또 다른 소외에 놓여 있음을 여실히 드러냈다.
 
▲ "차라리 죽여라!"     © 김오달 기자

사회는 크게 세 가지 부류의 사회가 존재할 수 있다.
 
첫째는 어떠한 사회적 문제로 인해 사람이 죽어나가기 전에 그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는 사회, 둘째는 어느 한 사람이 죽어야만 그 문제를 해결하는 사회, 셋째는 사람이 죽거나 말거나 문제해결에는 관심이 없는 사회가 바로 그것이다.
 
지난 5년여 간의 비정규직 노동자 문제를 되돌아보면 우리 사회가 세 번째 언급한 그런 사회가 되어가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된다.
 
이제 핵심적인 문제를 논의하면서 하루 속히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삶을 이유로 죽음을 선택하지 않아도 되는 날이 오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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