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등한 세상을 꿈 꾸는 것은 좌파들의 오랜 희망이자 모든 것이다. 좌파는 오로지 평등한 세상을 위해 그토록 싸워왔던 것이다.
노동조합을 만든 것도, 진보당을 만들어 원내에 진입을 한 것도........
그리고 그 후 민주노동당과 분당을 한 것도, 그리고 이번 지방 선거에 5+4 연합을 한 것도.....평등을 위한 것이라고 둘러 댈 것인가?
인민들이 요구하는 것은 진정 빵일까? 그 빵을 골고루 나눠주기 위해 좌파는 모든 것을 걸었다. 그러나, 그 빵 속에는 온갖 추악한 것들이 숨어 있음을 모르는가. 이윤과 소비라는 더러운 것들. 노동자는 자본가와 이윤을 나누기 위해 대가리 터져라 싸우고, 소비자가 된 노동자는 악착 같이 소비를 해야 한다. 정부 역시 소비(투자)에 총력을 기울인다.
빵은 이제, 자본주의의 총아가 되었다. 우파나 좌파나 오로지 빵이다.
빵을 어떻게 나눌 것인가에 모든 것이 달려 있다. 그것에 대한 법과 제도의 헤게모니를 장악하는 것이 정치다.
진보신당이 당원들을 무시하고 선거연합을 하고, 노회찬이 조선일보에 러브콜을 보낸 것도 오로지 그 빵의 평등한 분배, 즉 그것에 대한 법과 제도의 헤게모니를 잡기 위한 정치적 고려(?)라고 판단이 된다.
사실, 우파보다 좌파들은 빵보다 장미(가치)를 선호한다. 어떤 좌파 정치인은 가치연합이라는 그럴 듯한 말로 둘러 댄 적도 있었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이 있다. 노회찬이 노무현 상주 노릇하면서 쌩쇼를 하고 조선일보에게 아부하고 이번 지방선거에서 연합을 해야할 수 밖에 없는 것이 진보신당의 현실이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정당이라는 것은 오로지 인민들의 빵을 위해서만 존재해야 하는 것이 필연적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빵은 오로지 법과 제도로서만 분배가 된다는 것이다.
의회정치로 대변되는 대의 민주주의 선거제도에서 소수당이 살아 남기는 힘들다. 의회의 한 구석을 비집고 들어가 좌파 정책의 한 구절이라도 소리치고 싶다면, 노회찬이가 한 짓에 돌을 던지고 싶지 않다.
장미를 손에 든 당원들이 아무리 천박하다고 불만을 토해도 그에 대해 귀를 막고 오로지 빵을 위해 돌진하는 것이 정치가들의 숙명이다.
그러나, 잊었는가? 민주노동당 시절. 심상정 국회의원이 민주당과의 주고 받기 끝에 만들어 낸 국민연금에 관련된 정책 '사회연대전략' 그것은 좌파 정당이 내놓은 것이라고 믿을 수 없는 졸렬한 것이었다. 국민연금의 분배에 대해 맛보기만 보여준.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그나마 내놓자면 민주당과 그렇게 타협을 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것이 바로 의회정치라는 거다. 타협과 연합을 통한 공조와 그리고 분열. 오로지 한나라당을 때려잡기 위해 야당들이 연합을 해서 지방선거에서 승리해서 4 대강 사업과 세종시 문제를 해결한다는데.....
과연, 그것이 이루어 질 수 있을까? 절대로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의회에서 정책을 받대하고 만들어 가는 과정에서 진보당의 가치는 소멸된다. 진보당이 의회를 완전히 장악한다고 해도 그것은 불가능하다. 의회정치란 그런것이기 때문이다.
70년간 노동당이 의회를 장악한 스웨덴의 경우는 특히한 경우다. 그렇더라도 스웨덴의 경우도 진보적 가치가 의회정치에서 상당 부분 훼손되는 지경이다.
그런데, 한국 의회에서 진보정치라니. 의회에 국회의원 몇 명 보내고 지방의원 몇 명 챙긴다고 진보정치가 이루어질까? 인민들에게 빵을 조금이라도 골고루 나누어 줄 수 있을까? 어쩌면 선거연합과 의회정치의 타협을 통해 작은 떡고물이라도 조금 주워 먹을 수는 있을 것이다.
의회정치를 통한 대의 민주주의는 민주주의 기능을 상실한 지 오래다. 따라서 대의 민주주의는 민주주의가 아니다. 그것을 통한 법과 제도의 개혁은 불가능하다. 물론, 작은 떡고물을 챙겨 조금 나누어 줄 수는 있다.
의회정치는 자본을 획득한 자유시민들과 귀족들 간의 타협의 장소였다. 지금도 선진국 의회는 상 하 양원으로 나뉘어져 있는 것이 그 증거이다.
프랑스 대혁명은 민주주의의 시발점이 아니라 자본주의로 사회가 개혁되는 단서를 제공했다.
그리고 대의 민주주의 절차적 민주주의가 완성되어가는 19 세기에 노동자들은 지독한 노동조건으로 탄압을 받았고 그 시기에 전 세계에 가장 많은 식민지가 탄생되었다.
그리고 조금 나아진 노동조건 마저도 자본가와 귀족들 간의 타협이었다는 것이고, 인민들을 위한 복지 역시 거기서 벗어날 수 없었다는 것이다.
더구나 문제가 되는 것은, 그토록 평등하게 분배받기를 요구하는 빵 속에 들어 있는 추악한 진실에 대해서는 아무런 책임도 묻지 않고서.......
빵 속에 들어 있는 추악한 이윤에 대해서는. 그리고 이윤이 인민들에게 돌아가 소비라는 칼이 되어 자본의 사회에 아무런 제약 없이 활개치는 마당에서는. 이 문제에 대한 아무런 대책이 없는 것이 현재의 좌파들이다.
오로지 빵을 자본가들에게 더 많이 뺏어오고 그 빵을 아귀처럼 먹는데만 혈안이 되어 있을 뿐.
좌파는, 이제 바야흐로 장미를 쥐어야 한다. 가치의 평등이야 말로 진정한 자유이고 사랑이고 평등이다. 가치의 평등은 법과 제도에 의한 평등이 아니다. 그것은 사회적 공감대와 연대와 교육과 사회운동을 통한 공동체 정신의 발현이다.
법과 제도는 권력이라는 상식을 잊었는가. 그리고 그 권력은 오로지 자본주의와 밀회를 즐기고 있을 뿐이다.




일단은 정당의 형식을 띈 곳이니 선거를 통해 집권하는 것을 목적으로 해야할 것이고요, 대의 민주주의가 민주주의가 아니라고 하는 부분은 논쟁의 여지가 있지만 그러면 대의 민주주의외에 어떤 방법이 있는가 묻고 싶네요. 대의 민주주의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국민투표도 도입하고, 지자제도 하고, 그 외의 여러 장치들을 만들어 내는 것이겠죠.
소비(빵)에 대한 측면에서는 진보신당이 4대가치 중 하나로 생태를 표방한 만큼 앞으로 그에 대한 구체화와 실천이 뒤따를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